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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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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에 시베리아의 투바의 우육고원에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대형 무덤이 만들어졌고, 1971년부터 발굴되어서 아르잔-1호로 명명되었다. 이 무덤을 발굴한 그랴즈노프는 이미 1920년대에 파지릭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무덤을 많이 발굴했지만, ‘그’가 남긴 책의 제목으로 ‘차르(цар)’라고 붙인 경우는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1984년 사망).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르면서 가장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파지릭 유적은 1929년에 1호분을 발굴하고 그 뒤에 1947~1948년에 다시 조사해서 책은 1950년에 나왔지만, 1980년에 나온 아르잔 1호 보다는 훨씬 상세하고 책의 내용과 인쇄상태도 훨씬 좋다. 그 사이에 소련의 정치 경제가 많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정치경제안정은 학문성과로 바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르잔 1호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전해지는 정보가 적어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물론 주인공 남녀의 중심무덤방이 도굴이 심하고 빈 방이 많다고 해도, 말 170여 마리에 대한 정보 혹은 말이 확인된 무덤의 사진이나 그림은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과 말이 함께 부장된 가장 중심 무덤방, 13번 무덤방, 31번 무덤방을 제외하고 말만 부장된 무덤을 어제 표로 소개한 바 있다. 말만 부장된 무덤방의 말도 재갈과 재갈멈치 등 마구를 착장한 상태였다. 굴레에는 멧돼지송곳니를 달아서 장식하는 점은 인간과 함께 묻힌 말과 같다.

 

그런데 34a 무덤방에서는 특이한 청동제 재갈멈치가 확인되는데, 3개의 구멍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그림 1-1). 책에 적힌 내용에는 다른 무덤방에서는 출토되지 않았다 한다. 앞서 계속 포스팅한 재갈멈치와는 차이가 있다. 별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냥 3공 재갈멈치와는 다른 거푸집(청동을 부어서 틀을 만드는 곳)을 썼을 텐데, 거푸집 만드는 단계부터 미리 계획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무덤방에서 출토되지 않았다는 말은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 무덤에는 너무 경의 수가 많다.

그림 1-5,6도 앞서 본 3공 재갈멈치와 다르지만, 이 유물은 소재가 청동이 아닌 뼈로 제작된 유물이다.

 

 

그림 1. 아르잔-1호 출토 재갈멈치(1, 2-34a번 무덤방 출토, 3-5: 37번 무덤방, 6-5번 무덤방 출토)(5,6-뼈, 그 외 청동)

 

이 무덤방이 위치한 봉분 위에서 그림 2-2의 사슴돌이 발견되었다.

사슴돌은 주로 사슴이 많이 그려져셔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슴돌에는 무기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무기의 형태를 보고 사슴돌의 연대를 정한다. 이 사슴돌에는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청동거울에 그려진 등에 혹 달린 사슴 3마리와 멧돼지 6마리가 남아있다(가장 왼편의 사슴 옆에 엉덩이와 입만 남은 사슴이 있다). 사슴과 멧돼지 위 쪽에는 검과 알 수 없는 막대기가 달려 있다.

 

이 유적에서는 멧돼지송곳니로 굴레에 달아서 장식을 했다.

멧돼지는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기원전 5세기에 알타이 지역에 존재했던 파지릭 문화의 유적에서는 몇 점(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말의 가슴에 달았던 1점)출토되지 않았지만, 아르잔 1유적에서는 아주 많은 양의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굴레 장신구가 출토된다. 멧돼지 모양의 장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2. 아르잔 및 그 주변에서 발견된 사슴돌.1-소스노프카 발견(아르잔과 가까운 곳)2- 아르잔1의 봉분 출토(사각형 돌을 펴서 그린 그림), 3, 10-오르삭-악시 출토, 4-투란(아르잔 무덤에서 우측에 위치한 마을이름) 발견 사슴돌, 5,6,8-아르잔과 가까운 벨로예 호수 출토, 7-우육고원 발견, 9-사말가타이, 11-볼쇼이 아직, 12-친가타그, 13-우육-아르잔 출토

 

 

아르잔-1호의 정보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그나마 충족해 줄 유적이 아르잔-2호이다. 아르잔-2호는 연대는 1호에 비해서 늦지만, 황금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은 유적이다. 멧돼지 모양의 황금 장신구도 포함된다.

 

 

그림 3. 아르잔-2호의 멧돼지, 고리트(활통)에 붙인 장신구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장식은 직접적인 유물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호랑이와 지지대 위에 올라간 청동 산양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수 많은 멧돼지 장식과 사슴돌의 사슴도 포함시킬 수 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마을에는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 무덤이 스키타이 문화라는 유라시아 전역에 유행했던 문화의 발원지 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유물이 동물문양장식, 무기와 마구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다.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특정하게 고정된 자세로 때로는 과장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된 유물이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겪기 전까지 필자도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널리?

 

그런데 이 생각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행동반경이 작은 우리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농경시대를 오랫동안 거쳐왔고, 현대가 되어서는 섬나라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아니면 멀리갈수 없고 가봐야 서울-부산이 가장 먼 거리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소수민족들은 지금은 그들의 생활습관이 많이 바뀌었지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그들은 수천 km 반경의 지리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있다고 한다(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의 소수민족).

 

다시 돌아가서, 유라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동차가 없어도 가능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의 반경은 있었지만.

동물문양장식은 왕래가 자유로웠던 시절에 모두가 이해하는 하나의 표식?과 같은 기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각 지역의 무덤양식이 다르고 토기도 차이가 있는데, 비슷한 동물문양이 나타난다는 점, 또 동물문양은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과장되게 표현해서 체계화 된다는 점 때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아르잔-1호를 가장 주목하게 된 것은 어제 소개해 드린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원형 호랑이장식 때문이었다.

이 유적에서는 동물문양장식에서 아직 형상화 된 그리핀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지릭 고원과 우코크 고원의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산양장식이 출토된다(그림3,4). 말무덤인 26a, 26b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방에서는 최소한 말 뼈 11마리분이 확인되었고 재갈과 재갈멈치 세트도 11벌 출토되었다. 굴레에 달던 각종 장식판들도 있다. 특히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된 장식판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림 1. 무덤방 26번, 무덤방 26번의 북쪽벽에서 청동산양(26)이 있었는데,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그림 2. 무덤방 26번 출토 마구의 굴레장식 (1-7: 멧돼지 송곳니, 8-나무, 구멍에 멧돼지송곳니를 끼움, 9,10-목제)

 

그 중에서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는데, 청동으로 제작된 산양장식물이다. 산양이 발을 세우고, 청동판 위에 올라간 모습이다. 모두 5점 확인되었고, 산양 아래의 청동판은 원뿔모양과 방형의 청동판 위에 올라간 것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 손잡이(그림4-1)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산양은 꽤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앞 다리와 뒷다리의 근육, 다리의 관절, 굽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눈이 매우 둥글고 크게 과장되었고 다리도 뚱뚱하게 과장되었다. 사슴이나 말 등의 우제류는 날씬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산양은 캐리커쳐 한 느낌이다. 뿔도 면(그림 4-2)을 각지게 표현하기도 하고, 둥글게 표현한 면(그림 4-1)도 있다. 산양을 지지하는 지지대에는 구멍이 있는데, 아래가 비어 있다. 구멍을 통해서 굴레에 달아서 장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 무덤에서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3.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6: 상단의 3번유물과 같음, 7-상단의 1번유물)

 

 

 

 

그림 4.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1-그림 3의 2번유물, 2-그림 3의 4번 유물) 

 

그런데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곳이 있다. 아르잔과 멀지 않은 곳으로 저지대인 미누신스크 지역이다. 이곳에는 또 다른 스키타이 문화의 지역으로 타가르 문화라고 하는 문화가 알려진 곳이다. 필자가 스키타이 문화의 표를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타가르문화의 위치와 시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되는 문화인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종모양의 받침대 위에 다리를 펴고, 뿔을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뿔이 아르잔 출토의 산양과는 달리 마디가 있고 더 길어서 야생염소로 생각한다. 다리를 뻗었고, 머리를 들고 있는 자세, 과장된 눈, 지지대 등 아르잔 1호의 산양표현과 같다. 물론 다리가 날씬하다는 점, 귀가 표현된 점 등은 차이가 있다. 염소아래의 지지대가 비어 있음으로 막대기에 꽂아서 일종의 지팡이 꼭지장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림 5. 에르미타주 소장, 높이 18.6cm, 타가르문화, 기원전 7세기

 

타가르 문화가 있던 미누신스크 지역에는 청동기시대에 카라숙문화가 영위되었던 곳이다. 과장된 염소의 눈은 카라숙문화에서 사슴문양의 눈표현인데, 이 시절에는 청동단검의 손잡이 끝에 사슴머리가 달려서 출토되었다. 설명드린 바 있는데, 아르잔-1호 무덤의 봉분 위에는 등에 혹이 볼록 난 사슴이 그려진 돌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널리 유행하던 것이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론이 흑해북쪽일 것이라는 의견은 1850년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 주로 흑해북안을 위주로 발굴하면서 먼저 나온 것이고, 러시아 혁명 후에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그 의견은 약간씩 흔들리다가 아르잔 1호의 발굴이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앞서 말씀드린 바 있다. 그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것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유물에 이미 동물문양장식이 많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잔 1호는 직경 120m의 크기와 6000개의 통나무를 써서 모든이를 압도하긴 했지만 실제 무덤은 견고함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유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은 많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을 휩쓸었던 스키타이 문화는 초기철기시대로 알려졌고 기원전 9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알려진 아르잔 1호가 현재 알려진 오래된 유적이다. 필자가 계속 ‘스키타이 문화’라고 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스키타이 문화권’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이 공통된 특징인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각 지역의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세가지 요소가 비슷하게 나타나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스키타이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흑해북안부터 시베리아를 벗어나서 중국동북지역 가운데 요서지역과 황하상류의 오르도스에도 특징 등이 보인다.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문화는 기원전 9세기부터 늦게는 기원전 4~3세기까지 영위된 문화로 본다. 그러나 이 문화가 나타나는 시점과 없어지는 시점은 지역마다 다르다. 또한 각 지역의 무덤문화나 개별 문화적 요소도 다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알타이의 기원전 5세기 가량의 유적인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 파지릭 유적과 비교해 볼 때 아르잔 유적은 비교적 가깝지만, 시간상 300년 이상 앞서기 때문에 당연히 문화적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아르잔 유적을 기준으로 해서 이 유적이 위치한 곳의 강 이름을 따서 ‘우육문화’라고 한다. 혹은 ‘투바문화’라고도 한다. 앞에서 보았던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 유적과 파지릭 유적을 파지릭문화라고 했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른 문화로 볼 수 있는 우육문화의 아르잔 유적의 1호분은 아쉽게도 도굴당해서 유물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주인공 남녀가 묻힌 곳에는 근동지역에서 들어온 옷과 담비가죽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금,은, 동, 터키석, 갈탄, 뼈 등으로 제작된 장신구(그림 1,2, 표)가 남아 있고 중심 무덤방의 동쪽에 위치한 말 6마리 사이에서도 마구가 많이 출토되었다(그림 4).

 

 

그림 1. 아르잔 1호 출토유물. 중심 무덤방. 표의 그림번호와 일치.

 

중심무덤방의 1호 무덤방 외곽에 위치한 통나무관 6개와 2호 무덤방에서도 유물이 출토되었다(표). 5호 나무방과 6호 통나무관을 제외하고 모두 유물이 출토되었다(표는 그림으로 제시된 것만 표로 만들었다). 2호 무덤방에는 통나무관도 있었는데, 금제품과 터키석 등이 출토되었다. 주인공 남녀가 묻힌 1호 무덤방은 도굴이 심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유물의 전체 수량이나 특징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1호 무덤방의 남쪽에 위치한 4호 관에는 청동단검 3자루(그림 1~3) 및, 모직 옷, 금제 귀걸이(그림 2-10,11) 등이 출토되었다. 4호 통나무관 박에서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서 이 통나무관도 도둑맞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동물문양장식이 붙은 청동 검의 손잡이(그림 2-4)가 출토되는데, 4호의 것인 확률이 많다.

 

 

 

그림 2. 아르잔 1호 출토유물. 중심무덤방 중에서 주인공의 무덤방 및 주변의 통나무 관 출토품. 표의 그림번호와 일치

 

 

그림 3. 아르잔 1호 출토유물 말과 관련된 유물. 주인공 무덤방, 26호, 31호, 37호 통나무관 출토품

 

 

 

그림 4. 아르잔 1호 출토유물. 말의 굴레장식.

 

 

 

 

 

주인공

그림번호

가죽

청동

금제

은제

터키석

갈탄

멧돼지송곳니

Antigorite

Argillite(퇴적암)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남 녀, 사지골만

1-1.

 

꼬인동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7.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2.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9.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10.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4.

 

 

 

 

 

고리모양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3.

 

 

 

 

 

 

고리모양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5.

 

 

 

 

 

 

고리모양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6.

 

 

 

 

단추

 

 

 

 

 

(6)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1.

 

재갈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2.

 

 

 

 

 

 

 

 

?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4.

 

 

목제도 덧입힘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7.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8.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10.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6.

 

 

 

이마장식(w)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9.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12.

장식판(w)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4-1~6

 

 

 

 

 

 

 

굴레장식

 

 

인간

중심무덤방

2호통나무관

 

1-8.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2호통나무관

2-5.

 

 

장신구

 

 

 

 

 

 

 

인간

중심무덤방

2호통나무관

2-7.

 

 

장신구

 

 

 

 

 

 

 

인간

중심무덤방

3호통나무관

(18~20)

2-8.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

 

가죽집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2.

 

단검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2.

 

화살촉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0.

 

 

귀걸이(W청동)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1.

 

 

귀걸이(W청동)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3.

 

 

 

 

 

 

화살촉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밖

 

2-3.

 

단검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밖

 

2-4.

 

검 손잡이(금박)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밖

 

2-6.

 

투부

 

 

 

 

 

 

 

 

인간

중심무덤방

6호통나무관

(60세이상)

2-9.

불을 만드는데 사용됨.

 

 

 

 

 

 

 

 

 

(11)

26호무덤방

26호무덤방

 

3-3.

 

 

 

 

 

 

 

 

 

?

31호무덤방

31호무덤방

사람 2

3-11.

 

 

장식판(w말총)

 

 

 

 

 

 

 

(13)

37호무덤방

37호무덤방

 

3-5.

 

 

장식판

 

 

 

 

 

 

 

표. 아르잔 1호 출토유물. 그림의 번호와 일치(표와 그림을 맞춰보시면 됨).

 

그랴즈노프는 4호 통나무관에서 담비가죽, 모피 옷, 금제 귀걸이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서 다른 통나무관도 비슷한 사정이었다면, 이들도 높은 계급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가장 중심부 만큼은 아니지만...

 

1호 무덤방의 주인공 남녀와 주변을 에워싼 8인은 어떤 관계였는지는 현재 였으면 바로 DNA분석을 했다면 어느 정도 단서가 나왔겠지만, 그렇지 않다. 친족관계였는지, 상하관계였는지, 혹은 가깝다면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울러 중심 무덤방의 북쪽에 위치한 9호 무덤방에서는 통나무관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이곳도 1호 무덤방의 주인공을 호위하는 듯 한 8인과 같은 관계였을 것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그 외에 31호 무덤방에서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고 장식판(그림 3-11)도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무덤에서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보다는 말과 관련된 유물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파지릭 1호분은 주인공이 이미 도굴로 없어져 버려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일명 ‘얼음공주’라고 불린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유물은 대부분 그녀가 입고 있거나 착장하고 있는 머리장식이었다. 필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필요도 없는 유물을 무덤 안에 꽉 채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도 주인공 관련 유물은 의복과 토기, 목기이다. 반면에 말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사실 말을 부릴 때 필요한 것은 재갈과 고삐이다. 그 외는 전부 장식적인 요소인데, 말은 대부분 치장되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 중에 일종인 파지릭 문화에서는 주인공 관련 유물 가운데는 거울도 있다. 얼음공주의 거울은 손잡이가 달린 목제로 만든 거울에 경면은 청동으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은제로 만든 거울을 뿔로 만든 받침대에 삽입해서 만들었다. 둘다 거울을 담는 주머니가 있었는데, 얼음공주 거울은 펠트로 만든 주머니 였고, 파지릭 2호분의 은제 거울은 표범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두 개의 포스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크 알라하 3 유적 얼음공주의 거울

2020/01/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2500년 전,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3유적 중에서 1호분에 묻힌 여성은 25~30세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 까지 시베리아 알타이의 ‘얼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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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릭 2호분 은제 거울

2020/03/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유적의 2호 무덤을 마감하면서...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유적의 2호 무덤을 마감하면서...

시베리아의 알타이 남부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있다. 그곳의 이름은 파지릭 유적인데,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이루는 한 장소로서, 알타이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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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흑해와 가까운 쿠반 강(카프카스 산맥 북쪽, 강은 흑해로 흘러감) 유역에서 출토되는 거울은 청동으로 제작되었는데 손잡이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되었다(그림 1). 예전에 이야기 한 바 있는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의 유물로, 스키타이 인들이 그리스 공방에 주문해서 제작했었을 것으로 본다. 손잡이의 세로 방향 으로 깊게 파인 모습이나, 손잡이가 달린 거울은 그리스 거울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쿠반 지역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문화의 거울, 기원전 6세기로 추정,손잡이 포함 길이 35.5, 너비 18cm

 

손잡이가 달린 거울은 시베리아에서도 출토되지만, 막대기 모양의 손잡이 대신 해서 바로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그림 2-아래). 유물은 사글리-바치 II유적 출토품이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투바에 위치한다. 투바는 이미 공개한 바 있는 아르잔 유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유적은 기원전 5~4세기 가량으로 파지릭 유적 보다 늦다고 평가받는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이른 청동거울로 생각되는 유물은 손잡이가 없고, 거울에 꼭지가 붙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알타이의 서쪽에서 채집된 유물로 알려졌는데, 사슴 6마리가 경면(얼굴보는 면)의 반대쪽에 돌아가면서 표현되었다(그림 2-위). 중앙에 꼭지가 붙어 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재밌는 점은 이 거울의 사슴표현이다.

 

자세히 보면 사슴의 등에서 목과 가까운 부분에 볼록 솟은 표현이 있다. 발은 쭉 뻗어서 발로 선 자세로 표현되었다. 눈은 매우 지나치게 과장해서 둥글게 그렸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사슴의 등은 대게 편평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주로 사슴은 다리를 배 쪽으로 넣고 무릎을 꿇은 자세였지만, 이 사슴은 다리를 쭉 펴고 있다. 이 유물은 기원전 8~7세기 가량으로 평가받는다.

 

 

 

그림 2.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의 거울, 위: 청동제, 알타이 서부지역 수집(부흐타르마 라고 알려짐). 에르미타주 소장, 13.5cm, 아래: 청동제, 사글리-바치II유적 기원전 5~4세기, 발굴품

 

거울은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 채집된 유물인데 어떻게 구체적인 연대가 나왔을까?

 

답은 사슴의 표현에 있다.

 

파지릭 고원에서 동쪽에 위치한 투바지역에서 발굴된 아르잔 1유적에서 확인된 유물 때문이다. 아르잔 1유적에서는 봉분(무덤을 덮은 흙) 위에서 사슴돌이 몇 개 발견되었다(그림 3). 사슴돌은 일종의 비석처럼 생긴 것인데, 주로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한다.(그러나 사슴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사슴돌에는 등이 볼록 솟아있고, 발을 곧추세운 사슴이 그려져 있다(그림 3-1). 뿐만 아니라 이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제 사슴표현에도 발을 뻗어서 표현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아르잔 1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834년 기원전 9세기에 이 유적이 만들어졌다면, 청동거울에 그려진 사슴문양도 그 때 유행했던 문양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아주 널리 유행했는데, 등이 솟은 사슴표현은 그 때부터 전해지던 것이다. 즉 사슴표현 중에서 아주 이른 표현방법이다.

 

 

그림 3. 아르잔 1유적의 봉분 위 사슴돌(1~6)

 

이런 이유 때문에 사슴문양 청동제 거울은 대략 기원전 8세기부터 늦게는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본다. 물론 사슴청동제 거울(그림 2-위)이 출토된 유적이 더 빠를 수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좀 더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 확실한 연대가 있는 유적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발굴된 무덤은 대부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일컬어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의 지역적 명칭인데,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면 스키토-시베리아 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문화가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아직 로마노프 왕조가 있을 때) 부터 흑해북안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로마노프 왕조 멸망 후)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시베리아에도 스키타이 문화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이 시베리아 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명칭도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혹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공동체 등 여러 명칭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계속해서 스키타이 문화라고 한 것은 러시아어가 워낙 생경해서 쉽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짧고 간결하고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르잔 1유적을 발굴하면서다. 1971~1974년에 발굴된 유적인데, 나이테연대측정법으로 기원전 9세기 중반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의 크기와 규모도 대단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았으나, 특히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왜냐하면, 에르미타주에 소장되어 있는 황금의 동물문양장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림 1). 이 유물은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이름이 들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가가린은 소련 아니 인류 역사상 처음 우주로 간 사람의 성도 가가린이다)이 1716년에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유물로 알려졌다. 그는 시베리아의 토볼스크 라는 지역에서 근무했다. 그곳 농부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표범 혹은 호랑이 장식. 10.9×8.9cm

 

아르잔 1 유적의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직경이 25cm가량이고, 말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청동으로 만든 호랑이 장식은 에르미타주 유물에 비해서 2배나 크다. 에르미타주 소장품은 허리 버클에 붙었던 장식이고, 아르잔 유물은 말의 가슴에 착장했던 것이다. 말과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두 유물은 차이가 있다. 크기와 재질, 용도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만드는 표현 기법에도 차이가 있다. 청동제 호랑이는 더 크기 때문에 좀 더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이빨과 입술, 발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눈,코,입이 과장된 것은 두 점의 공통점이다. 반면에 꼬리는 황금 유물이 좀 더 현실적이다. 황금 유물의 앞발과 뒷발, 꼬리 등의 빈 공간은 보석류를 상감한 것이다. 현재 보여지는 뒷 판은 상감 후 땜질로 마감했다고 한다. 또한 큰 차이점 중에 하나는 청동제 유물은 대체로 얼굴이나 몸통이 편평하지만, 황금제 유물은 불룩하게 솟아 있고, 특히 얼굴과 앞 다리, 엉덩이의 근육을 표현해서 매우 볼륨감 있는 느낌이다.

 

 

그림 2. 아르잔 1 출토 청동제 말 가슴 장식

 

아르잔 유적의 가장 중간에 주인공이 묻힌 방 바로 옆에 2번 무덤방(그림 3)은 말이 30마리 들어 있는 무덤이다. 이 무덤방은 8×7.5m이고 높이는 0.9m이다. 말 무덤의 크기가 이 정도이다. 전체 무덤의 크기는 직경이 120m이고, 높이는 3~4m이다. 무덤 전체에 사용된 통나무는 6000개가 넘는다.

무덤에서 시신을 안치하는 곳을 ‘매장주체부’라고 하는데, 이 유적은 매장주체부가 지하가 아닌 지상에 설치되었다. 다시말하면 무덤구덩이를 파지 않았다. 무덤방이 70개 정도 있었는데, 같은 봉분(무덤을 불룩하게 덮은 흙) 아래에 있었다.

 

 

그림 3. 아르잔 1 유적의 무덤방 2번, 말 무덤. 말 30마리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남겨진 화려한 무덤이다..누군가의 희생으로 알아가야 하는...장례식은 산 자의 잔치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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