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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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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유적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의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8~7세기)에서는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청동거울에는 꼭지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부착되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이 유적의 굴레장식으로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더 이른 스키티이 유적인 시베리아의 아르잔-1 유적(기원전 9세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1903년부터 슐츠가 발굴했는데, 그 중 2호분(슐츠의 번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청동솥은 다리가 나팔상으로 붙어 있고, 손잡이에 산양 두 마리가 달려 있는 것이다. 솥의 입구 가까이에는 삼각형 문양이 표현되었다(그림 1).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그림 2.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청동솥은 1점 더 있는데, 동체부에 산양장식과 기하학적 문양이 붙어 있고 손잡이에도 산양장식이 달려 있는 것이다. 청동솥 바닥에는 아래에 다리가 붙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전체모양은 그림 1과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출토당시에 이미 부서진 채 확인되었다.

 

슐츠는 무덤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대에 발굴된 바에 따라서 살펴보면 슐츠는 무덤의 크기를 매우 과장되게 설명했다(갈라니나 2006).

 

한편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는 켈레르메스 유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기억하시겠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방 5호에는 2중으로 나무방이 만들어졌는데, 그 사이에 청동솥 2점이 확인되었다. 청동솥은 나팔상의 다리가 달린 점은 비슷하지만 손잡이의 형태는 차이가 있다.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은 유사하다.

 

2020/05/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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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8~7세기 청동솥은 동물문양장식이 주요하게 부착되었으나,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진다. 문양의 요소에도 그리스적인 요소가 더 가미된다.

 

그림 3. 라스코파나 모길라 출토, 기원전 4세기

 

기원전 8~7세기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시베리아와 흑해에서 모두 청동솥이 확인되지만 아르잔-2 유적 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솥은 동물문양이 부착되면서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는 차이점이 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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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외부의 영향이 꽤 있었던 것으로 소개해 드렸다. 주로 고대 이란 및 우라르트, 그리스와 관련된 유물이었다.

기원전 8~7세기의 유적은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이 잘 알려져 있다. 최근의 발굴된 이 시기의 유적도 있으나 잘 알려진 유적은 18~19세기에 이미 발굴되었다. 당시에 큰 무덤을 중심으로 발굴을 했고 그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은 상당히 부장양도 많고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특히 18~19세기 발굴에서 학문적으로 발굴을 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이 정확한 무덤의 구조나 모든 유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특히 세간의 관심된 황금 유물 중심으로 연구된 내용이 많고, 그 유물은 인접한 국가에서 제작되어 복잡한 당시 정세를 보여 줄 수 있다.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들도 작은 규모의 무덤도 있지만 대형 무덤은 ‘차르’무덤으로 구분되고 거의 19세기에 이루어졌다고 무방하다(알렉세예프 2012).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권은 유라시아 초원에서 공통성이 나타나는 요소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은 것이고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은 공통적인 생업경제라고 했다.

 

스키타이 삼요소라고 불리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그 공통성이다. 하지만 켈레르메스 고분에서 출토된 은제 거울이나 전투용 도끼, 검 등은 시베리아에서 볼 수 없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매우 다른 것이었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도 자신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은 이미 소개되었다. 사슴과 표범으로 장식된 화살통 황금장식판, 사슴 방패장식판, 표범 장식판 등이다.

 

또 하나의 유물이 있는데, 청동 거울이다.

청동거울은 중앙에 꼭지가 붙었고,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꼭지에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그림1. 켈레르메스 청동거울, 직경 15.2cm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시베리아의 아르잔-1호(기원전 9세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아르잔-1호의 유물은 말의 앞 가슴을 장식했던 것이다. 용도는 다르지만 몸을 말고 있는 맹수문양의 전통이 이곳에서도 확인된다.

 

켈레르메스 유적과 같은 시기의 시베리아 유적인 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 무덤방 5호에서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거울은 중앙에 꼭지가 있고,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르잔-2호(아래 포스팅)의 꼭지는 문양이 없어서 두 유적의 유물은 차이는 있다.

 

포스팅

2020/06/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철기시대 청동거울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철기시대 청동거울

유라시아를 풍미했던 스키타이 문화는 시베리아에서는 철기시대에 해당된다. 아르잔-2호에서도 철제품이 풍부하게 출토되지만 여전히 청동으로 만들어지는 유물이 있다. 앞서 아르잔-2호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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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동거울의 중앙에 꼭지를 붙이고, 테두리를 만든 청동 거울의 스타일은 동일한 것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에 있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시베리아에서 유래된 것이다.

반대로 시베리아 아르잔-1호에서는 고대 이란 지역의 직조물이 발견되었다. 아르잔-2호에서도 고대 이란의 직조물이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목걸이에 새겨진 낙타 등 흥미로운 점이 많다.

 

시베리아와 흑해에서 확인되는 유적에 남아 있는 유물은 기원전 8~7세기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의 스타일과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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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무덤인 투엑타 유적의 1호에서는 코젤(산염소)의 뿔을 나무로 만든 것이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에 씌웠던 말의 가면 중 뿔에 해당하는 유물이었다. 쌍으로 확인된 것은 모두 3쌍이었으나 부속품 등이 더 많이 출토되어서 더 많은 말 가면이 있었을 것이다.

 

코젤은 사슴과 달리 뿔을 뒤로 휘어지게 표현한다. 사슴의 뿔은 가지처럼 표현하거나 종종 뿔이 없는 사슴도 발견되기도 한다. 코젤이 표현된 유물은 알타이 뿐만 아니라 넓은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흑해부근에서도 발견된다.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쿠반 지역은 흑해를 서쪽으로 한 곳이다(그림 1). 쿠반 강은 흑해로 흘러간다. 쿠반 강에서 19세기 말에 발굴된 대형 고분 가운데서 코젤을 표현한 유물이 스키타이 무덤에서 출토된다.

 

 

그림 1. 흑해 부근의 스키타이 유적(Ullyap: 울스키 아울)

 

 

청동판에 코젤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나머지 동물은 입과 눈모양만으로 캐리커쳐 한 것처럼 특징만 부각시켜서 독수리로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새의 부리와 눈이 강조되었고, 큰 눈위에 독수리 부리와 눈만 표현된 것이 3개 있고 부리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그림 2).

이 유물은 지팡이나 막대 끝을 장식하는 것인데, 방울이 2점 붙어 있다. 그래서 일종의 간두령(竿頭鈴: 지팡이 끝에 붙인 방울)이라고 한다. 소리나는 방울을 단 지팡이를 사용할 때는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제사지낼 때이다.

 

그림 2. 울스키 아울 유적 2호분 출토, 높이 26cm, 너비 18.9cm, 1908년 조사

 

이 유물이 출토된 울스키 아울(Ульский аул, Ulsky aul)유적의 1호분은 그 모습의 스케치가 남아 있다(그림 3). 높이가 6미터에 달하는 봉분이 있고 지하에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든 무덤이다.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그림 4-a)과 같이 무덤방의 천장 위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도굴아님). 이 곳의 고분에도 말이 특히 많이 매장되었는데, 무덤방 둘레에서 확인되었다. 이 보다 빨리 발굴된 무덤(1898년 조사)에서는 말이 400마리 매장되었다고 하는데 도굴이 심해서 전모는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림 3. 울스키 아울 유적 1호분의 스케치

 

 

위의 그림만으로는 무덤구조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주 간략하게 그려진 것이다(비교적 최근자료에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있는데 여력이 된다면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흑해부근에서 발굴된 스키타이 무덤은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무덤구조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문양장식은 이를 뛰어넘어서 확인된다. 알타이의 유물에서도 드러났듯이 사실적이면서도 과장된 표현법이 이 곳에서도 사용되는 것이다.

 

그림 4. 흑해 북안의 무덤: a-코스트롬스카야 유적(위는 평면도, 아래는 단면도에 가까움, b-엘리자베틴스카야 유적(무덤 평면도)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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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인 알타이 지역에 입지한 파지릭 문화는 파지릭 유적을 발굴하면서 그 곳에서 나온 매장문화의 특징을 일컫는 것이다. 무덤구덩이에 나무로 된 방(목곽)을 설치하고 통나무관을 넣고 시신을 안치하며 말을 함께 매장하는 특징은 알타이의 스키타이문화(파지릭문화) 뿐만 아니라 흑해 북쪽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무덤구덩이의 모양, 무덤방의 구조, 지표상에 들어나는 봉분(무덤을 덮은 흙)의 모습 등은 다르다. 시신을 미라처리 하는 것은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파지릭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파지릭 유적도 도굴당했고, 바샤다르 유적도 도굴당했다. 하지만 바샤다르 유적은 그 피해가 더 심한데, 적어도 파지릭 유적에서는 말의 매장부분은 많이 손대지 못했지만,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그 부분에도 피해가 심했다. 말을 통째로 꺼낼 수 없으니 무덤방에 들어간 도둑은 북쪽벽에 구멍을 내고 말을 잘라서 꺼냈고, 그 잔해가 무덤방에 놓여 있었다.

 

당연히 말 14마리를 장식한 굴레와 마구도 손상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역시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다. 바샤다르 유적은 파지릭 유적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다고 생각하는데, 말을 장식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 파지릭 유적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100년 전부터 사용하던 말 장식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정말 따분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무를 깍고 금박지에 싸서 말의 굴레에 단 점, 청동재갈과 재갈멈치를 사용한 점은 바샤다르 유적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살펴본 아르잔-2 유적은 바샤다르 유적 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다. 아르잔-2 유적에서는 재갈과 재갈멈치 및 굴레장식은 청동(그림 4)으로 제작되었다. 100년 늦은 바샤다르 유적에서는재갈과 재갈멈치는 청동이지만 굴레장식은 나무로 제작(그림 1, 그림 3)된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2호분 마구

 

바샤다르-2 유적에서 잘 남아 있는 마구세트(재갈, 재갈멈치, 굴레장식)는 7번 말의 것(그림 1, 그림 3)이다. 발굴당시에는 가죽굴레가 재갈에 붙어 있었는데(그림 1), 2017년 영국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도록(그림3)에서는 없어진 채로 전시되었다.

 

 

그림2. 마구 각 부위 명칭

 

 

 

그림 3. 바샤다르 유적 2호분 마구(그림 1과 동일), 재갈멈치길이: 27cm, 재갈의 길이:21.7cm, 재갈구멍직경: 7.8cm

 

 

이 유물은 재갈멈치가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다. 재갈멈치에는 굴레끈을 연결하기 위해서 구멍이 2개 있다. 아르잔-2유적의 유물을 상기해보면 재갈멈치는 화살처럼 휜 ‘(’모양(그림 4)이지만, 바샤다르 유적은 ‘S’형이고 그 끝에 장식판이 붙었다. 재갈멈치를 끼우기 위한 재갈의 고리모양은 원형이다. 지금 언급한 것은 파지릭 문화의 초기 문화의 특징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림 4. 아르잔 유적 2호분 말 퇴장지에서 출토된 마구를 기반으로 한 말 복원도. 아르잔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된 재갈과 재갈멈치는 16호 무덤방, 퇴장지에서 출토된 것이 다르다. 바샤다르 유적 2호분 보다 약 100년 정도 빠른 유물.

 

 

그런데 같은 무덤에서 출토된 재갈멈치 가운데는 청동이 아닌 나무로 제작된 것도 있다(그림 5-1). ‘S’자형으로 양 끝에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달려 있다. 독수리가 아닌 하이브리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림 5. 바샤다르 유적 2호분 출토, 재갈멈치, 1-나무, 2-청동(그림1,3의 재갈멈치와 동일). 

 

스테파노바(2006)는 재갈멈치에 달려 있는 구름모양 같은 장식판이 그림 5-1의 그리핀과 같은 의미라고 보았다. 필자도 동의하는데, 재질이 다르기 때문에 나무처럼 세밀하게 표현을 못했을 수 있다. 어쨌든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재갈멈치 장식으로 나무로 된 그리핀이 사용된 것(그림 5-1)은 사실이다.

 

 

100년 뒤의 파지릭 유적 및 아크 알라하 1,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유물과 다른 점이 또 있는데, 재걸멈치를 연결하는 ‘Y’자 부위이다. 그림 1에서는 이 부분이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3에서 가장 위의 둥근 원판 모양은 말 이마를 장식하는 것(당호)이다.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된 말 이마장식은 모두 원판(그림 6)이다.

 

 

그림 6. 바샤다르 유적 2호분 출토, 말 이마 장식

 

 

참고문헌

 

Степанова.Е.В. Эволюция конского снаряжения и относительная хронология памятников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вести .Вып. 13. СПб: 2006. 102-150 с.(스테파노바, 2006, 파지릭 문화의 마구 변천과정과 연대)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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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아르잔-2호에는 말을 위한 무덤 시설이 있었다. 무덤방 16호인데, 금속제 마구는 이곳에서 대부분 출토되었다. 사람이 들어간 무덤방에서 마구가 확인된 적은 없다. 무덤방 16호를 제외하고 금속제 마구가 있는 곳은 무덤의 경계벽 아래에 있는 ‘퇴장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모두 4곳 혹은 5곳이 있다.

 

퇴장지는 무덤의 북서쪽 구역에서만 확인된다. 별다른 시설 없이 무덤경계벽 사이 혹은 아래좁은 공간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2호는 2a와 2b로 번호가 두 곳으로 나눠진 것이다. 두 공간에서 나누어서 유물이 출토된다는 가정에서 퇴장지의 번호를 구분한 것인데, 2a(그림 5-1,2)와 2b(그림 5-3~10)가 유물로 보아서 그렇게 관련성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하여간 5공간에서 마구 및 무기가 출토된다.

 

1호 퇴장지에서는 재갈+재갈멈치+굴레장식 및 각종 마구장식이 출토되었다. 재갈 멈치의 양쪽 끝에는 동물문양장식이 있고, 재갈멈치 뒤에 따로 굴레를 달기 위한 고리(그림 1-2,3)가 마련되어 있다. 재갈(그림 2-9)은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부위의 고리가 사각형이다. 안장을 고정시킬 때 사용했던 벨트에 달았던 벨트장치(그림 2-11,12)과 굴레장식이 있다. 굴레장식은 낙타머리 3점(그림 2-1~3)을 제외하고는 모두 호랑이 모양인데, 오른쪽(그림 3-12~16)과 왼쪽(그림 3-17~21)에 착장했던 유물의 방향이 다르다. 용도(그림 2-5~8, 10)가 정확하지 않은 말과 관련된 유물도 여럿 있다. 대부분 장신구이다. 갈기(그림1-1)와 꼬리(그림1-4)에 달았던 금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동제이다.

 

그림 1.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2.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3.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4. 1호 퇴장지 출토 재갈, 재갈멈치와 굴레 복원도

 

2A 퇴장지에서는 벨트장식(그림5-1)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청동판(그림5-2)만 출토되었고, 2B에서는 재갈멈치 없이 재갈(그림5 -4)만 출토되었다. 화살촉과 벨트장식(그림5-3)도 있다. 청동제품이다.

 

그림 5. 아르잔-2호 퇴장지 2A와 2B

 

3호에서는 재갈(그림6-2)과 재갈멈치(그림6-1,3) 외에 원뿔모양의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원뿔모양의 청동유물은 굴레에 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3호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고리가 완전하게 네모이다. 재갈멈치는 양쪽에 수직으로 구멍이 있고 위쪽 끝에만 동물문양이 장식되었다. 재갈멈치 끝에 붙은 고리는 굴레와 연결하기 위한 고리이다. 3호 재갈멈치의 동물은 그리핀이다. 독수리 얼굴과 부리에 목 부위에는 갈기가 표현되어 있는 그리핀(그림 7-4)이다.

 

4호에서는 금제로 만든 갈기와 꼬리 장식이 출토되었는데, 1호와 거의 같은 형태이다.

 

 

그림 6. 아르잔-2호 3호(1~7)와 4호 퇴장지(8.9)

 

퇴장지에서 출토되는 재갈과 재갈멈치는 특히 무덤방 16호와 다르다. 재갈멈치는 굴레를 매기 위한 고리의 위치와 형태, 가장자리 끝 부분 장식 등이 매우 차이가 있다. 재갈멈치의 고리 위치는 굴레 착장하는 방법과도 관련이 되기 때문에 별꺼 아닌게 아니다. 그림 3의 말 복원도를 보면 알 수 있다. 3호에서 출토된 재갈멈치는 굴레와 연결을 위한 구멍 위치가 전혀 다르다. 재갈 가장자리의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부위의 모양에 차이가 있다.

 

3호 퇴장지에서 확인된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은 아르잔-2호에서 확인된 유일한 유물이다.

 

그림 7. 아르잔-2호 3호(3~5)와 4호 퇴장지(1,2)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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