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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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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케르치 해협에는 위치한 기원전 4세기 유적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는 최소 여성 3인과 남성 1인이 함께 매장되었다. 그 중에서 1명의 여성은 특정한 신(神)을 숭배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4세기 데메테르 신화가 흑해 북안에서 유행했는데, 유물과 무덤의 구조로 보아서 그녀를 숭배한 여사제의 무덤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출토된 말머리 장식과 옷장식에는 스키타이 신화의 아르김파사와 유사한 여성상이 발견되었다. 이 신화속의 여주인공은 데메테르 신화와는 달리 아나톨리 지역의 키벨레 숭배를 바탕으로 그리스로 전파된 여성으로 알려졌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은 케르치 해협에서 러시아 국경에 위치하지만, 아주 근거리에 위치한 쿨-오바 유적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위치한다.

 

쿨-오바 유적은 기원전 5세기경으로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보다는 약간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또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는 그리스 계통, 그리스제품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지만 쿨-오바 유적에서는 재지의 유물이 많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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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한 점은 사슴장식이다. 기원전 7세기의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의 사슴장식의 재해석처럼 보인다. 이 유적에서 나온 사슴장식은 그리스 장인에 의해서 스키타이 전통이 재해석된 것으로 여겨졌다(페레보드치코바 ). 이 유물을 설명하면서 간단하게 쿨-오바 유적과 그 유적의 소속인 보스포러스 왕국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다.

 

그림 1.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 출토, 사슴장식,

 

그림 2. 기원전 7세기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출토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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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쿨-오바 유적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의 외관상 특징, 높이나 직경에 대한 내용은 없고 단지 지하에 석실로 된 무덤방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유적은 1830년에 발굴되었고, 아직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이다. 다행인건 무덤의 구조에 대한 단면도가 남아 있는데, 무덤의 천장이 줄어드는 형식이다. 무덤 내부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발견되었다.

 

그림 3. 쿨-오바 유적의 단면도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볼쇼야 블리즈니차는 처음부터 필자의 마음을 끄는 유적이었다. 왜냐하면 유적의 이름 때문이었는데, “큰 쌍둥이”라는 뜻이다. 무덤의 외관을 지역의 주민들이 그렇게 불러와서 생긴 이름인지 모르겠다. 유적을 처음발굴한 자벨린이 19세기부터 볼쇼야 블리즈니차라고 불러 왔다.

바로 인접한 우크라이나의 블리즈니차Близни́цa 라는 지명이 또 있는데, 큰 2개의 산이 있는 지형적 특징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유적이 있는 케르치 해협의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은 평지여서 산지 지형과는 다르다. 아마도 고분의 봉분이 2개 이상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케르치 해협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경계를 하는 지역으로 오른쪽은 러시아, 왼쪽은 우크라이나이다. 볼쇼야 블르지니차 유적과 거의 비슷한 시기의 유적인 쿨-오바 유적은 우크라이나,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은 러시아가 국경이다. 현재 쿨-오바 유적의 유물도 대부분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중이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쿨-오바 유적 모두 케르치 해협에 위치하며 스키타이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뒤섞인 보스퍼러스 왕국의 대표적인 곳이다. 그래서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특히 흑해 북안에서 발견되는 그리스 문화의 물건은 주로 포도주, 화장품, 그리스 요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원전 5세기 말에는 흑해 북안의 도시인 Panticapaeum에서 동전과 보석을 생산하던 공방도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기원전 5세기 말 이후에는 그리스 여성이 착용하는 것과 닮은 장신구도 많이 발견된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여성장신구도 그곳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키타이 신화 속에 나오는 아르마스피와 그리핀이 그려진 칼라프를 착용한 여성은 또 다른 장신구 세트를 가지고 있는데, stlenida라고 불리는 이마를 가르는 덮개장식(그림 1)이다. 그의 가장자리에는 니케가 장식되어 있다. stlenida도 관자놀이 장식과 함께 착용했다. 목걸이, 팔찌, 반지(4점) 등도 부수적인 장신구이다. 반지에도 신화 속의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이 여성의 옷에는 금판이 붙어 있었는데, 그 중에 증명사진처럼 얼굴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데메테르와 그의 딸 페르세포네, 헤라클레스(그림 3) 이다. 또한 춤추는 모습을 표현한 여성들이 표현된 금판장식(그림 4)이다. 여성들은 칼라프(역사다리꼴 모양의 모자)를 쓰고 짧은 치마(그림 4)를 입고 있는데, 그리스 도자기에서 종종발견되는 형상과 비슷하다.

필자가 참고로 하고 있는 아르타모노프의 저서에는 누락되었지만 춤추는 여성들이 표현된 황금판과 함께 스키타이 여신인 아르김파사(그림 4)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함께 전시중이었다.

또 이 여성은 청동거울(그림 5)과 이미 소개한 마구장식인 팔라프 및 재갈멈치(그림 6)도 가지고 있었다.

 

 

그림1.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1매장지의 2번째 머리장식

 

그림 2.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1매장지의 2번째 머리장식과 세트 관자놀이 장식

 

그림 3.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1매장지의 2번째 옷에 단 금판장식, 위(헤라클레스), 중간(데메테르), 아래(페르세폰네)

 

그림 4.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1매장지, 아르김파사와 춤추는 여성

 

 

그림 5.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1매장지의 2번째 옷과 세트인 청동거울,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를 묘사

 

그림 6.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1매장지의 청동재갈멈치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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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흑해와 아조프해가 연결되는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다. 이 곳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유물 속에서 등장하는 스키타이 여신이 발견되었다. 잘 알려진 것은 말의 얼굴가리개이다. 이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도 돈을 더 주고 들어가야 하고, 사진 찍기가 금지된 방에 전시되어 있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위치: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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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진찍기 금지가 무슨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 많이 소개 되어 있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유물도 아니다. 이런 게 있어야 더 재밌어 하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위한 이벤트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 말가리개가 사진찍기가 금지된 방에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유적에서는 여신관련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2020.08.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흑해 북안 스키타이 사람들에게 탄생설화가 있다.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스키타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그리스인 들이 하는 이야기가 헤로도투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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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하나는 이미 소개한 말 장식으로 팔레라(그림 1)라고 불린다.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주로 원판형 팔레라로 그 안에 동물문양이나 혹은 이야기(혹은 신화)속의 한 장면을 표현한다. 원판형의 팔레라는 이미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소개한 볼쇼야 블리즈니차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그리스인과 싸우고 있는 아마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잘 못 설명한 것이 있는데, 이 유물은 청동을 주조해서 만든 것이다. 즉 틀에다가 액체화된 청동용융액을 부워서 만들었다. 이 시기에 많은 금속제 유물이 주조로 만들어 졌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기원전 4세기, 팔레라, 청동, 말 머리 장식, 직경 9.5cm

그림 2. 주조틀, 기원전 3~2세기 헤르손 지역


주조틀(그림 2)은 점토로 만들어진 것인데, 양판과 음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전 4세기경의 금속유물들이 매우 비슷한 것들이 많은데, 주조로 붕어빵 굽듯이 구워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동으로 된 유물을 토제로 된 틀에서 제작된 예는 우리나라의 청동으로 된 세문경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토제틀은 거의 발견된 예가 없는데, 제작 후 토제틀을 깨어내어야 거울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세문경의 문양이 워낙 세밀하기 때문이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과 쿨-오바 유적에서는 여성상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다시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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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 09:22 사르마트 문화

오늘날 우크라이나인 흑해 북쪽읜 초원지역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점과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에는 무덤이 아주 많아진다. 봉분이 있는 무덤, 혹은 없는 무덤 등 매우 많은 무덤이 생긴다. 그 중에 마마이-고라(Mamay-Gora)라고 불리는 유적에는 무덤이 317개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 12개가 여성무덤이었다. 남성은 110명, 여성은 135명이 확인되었고, 일부 여성들은 무기를 부장한 여성전사들이었다.

드네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스켈키 라고 불리는 유적은 봉분이 없는 무덤이다. 53개의 무덤에서 22명의 전사가 남아 있었다. 그 중에 절반은 여성인데, 11명 가운데 무기를 가지고 있는 여성은 4명이다. 팔코는 전사 22명 가운데 두 번째는 여성 전사이고, 세 번째는 무기를 소지한 여성전사로 계산하기도 한다. 스켈키 유적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돈 강 유역에서도 엘리자페토프스코예 유적에서 147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 35개는 여성의 집단 무덤이다(팔코 2010).

 

이 시점의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전사들은 연령도 다양했다. 절반은 25~25세의 여성이지만 가장 어린 여성은 16세 정도이고 가장 나이든 여성은 60세도 있었다. 젋은 여성가운데 어린아이와 함께 매장된 경우가 4명 정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혼으로 판명되었다.

 

여성전사들이 발견되는 유적은 주로 아조프 해 연안에서 많이 발견된다. 돈강 유역에 자리 잡았던 사르마트 사람들이 서쪽으로 몰려 오면서 처음 정착한 곳이 드네프르강 하류의 아조프해 지역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전사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헤로도투스에 따르면)

고고학적으로도 이곳에서 여성전사 무덤들이 집중되어서 기록과 비슷하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발굴이 많아지게 되면서 돈 강 유역에도 여성전사들의 무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팔코 2010). 그냥 여성들 무덤이 (남자들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질료니예 2 유적의 남녀합장 무덤 가운데 여성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여겨진다(그림 1). 남성보다 많은 부장품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여성가운데 권력자의 존재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유적 뿐만 아니라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매우 거대한 무덤 속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포스팅)

 

그림 1. 질로니예 2유적의 2호 쿠르간 2호묘, 북쪽이 여성무덤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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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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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군인으로써 전쟁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몸에 있는 상처이다. 크게 3가지 상흔이 남아 있다. 화살에 맞은 상처, 사자의 손실 또는 골절, 두 대골과 사지가 모두 잘린 상처 등이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주로 두개골의 관통상처가 치명적인 것이다.

무기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뼈에 남은 상처로 인해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군인으로써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팔코 2013)

 

흑해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전사들은 주로 기원전 7세기 초부터 발견된다. 여성전사는 주로 기원전 7말 혹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기원전 4세기경 무덤으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경계상에 있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여성전사 부족이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묘사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매우 혼란한 시점에 남성은 모두 전장에 나갔을 테지만 여성은 집(노인과 어린아이)을 지켜야 했다. 그 과정 중에 여성들은 똘똘 뭉쳐서 집단으로 대항했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역사가는 오해를 한 것은 아닐까. 혹은 여성들에게서 얻고 싶은 것을 못 얻었거나. 또 일부는 남성들처럼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를 용감한 여성대신 잔인한 여성으로 묘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초원인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이니 삐딱하게 보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Андрух С. И. 2001. Могильник Мамай-Гора. Кн. 2. Запорожье(안드루흐 2001, 마마이 고라 유적)

Фиалко Е. Е. Погребения амазонок из могильника Мамай-Гора // Stratum plus. Археология и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 2010. — № 3. — С. 187—196.(팔코 2010, 마마이-고라 유적의 아마조너스 여성무덤)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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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1.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에서 황금관은 호흘라치 유적의 유물이 잘 알려져 있다. 북방의 상징과 그리스 문화가 함께 결합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관의 상단에는 세계수를 중심으로 양쪽에 동물장식이 있는 모티프 인데, 같은 주제로 된 황금관이 코비야코프스키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포스팅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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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 [사르마트 문화] -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는 우랄 강부터 볼가 강 유역, 흑해북안까지 퍼져 있던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스키타이 문화와 여러 모로 연속된다.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유적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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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10호 무덤의 주인공

 

 

가죽으로 된 띠에 황금 장식판을 붙인 것이고 이 장삭판은 일종의 모자로 된 장식판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은 기원후 1~2세기부터 로마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11개의 무덤가운데 사르마트 문화의 것은 5개이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에서 화려한 황금관을 썼던 주인공은 호흘라치와 마찬가지로 여성이다. 이 무덤은 유적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았던 무덤이다.

이 여성은 매우 화려한 목걸이(그림 2)를 착용하고 있었다. 잠금장치가 있는 것으로 남성이 중심에 있고 양쪽에는 말의 머리를 하고 있는 용을 타고 있는 기마병이 창을 들고 있는 남성, 궁수가 싸우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중심에 있는 남성은 수염을 길렀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의복인 카프탄을 입고 있었다. 여밈이 있는 있는 상의이다. 남성은 앉아서 다리를 교차해서 앉아 있는데, 무릎에는 검이 들어 있는 검집이 놓여 있었고, 손에는 잔을 쥐고 있었다.

 

그림 2. 코비야코프스키 10호 무덤의 목걸이

 

 

 

다리를 교차해서 앉은 모습은 기원전 4000~3000년기로 이란에서 유래했다(자세츠카야 1986).그리고 기원전 1000년 후반 중앙아시아에 자주 등장한다(루덴코 1962). 그리고 로만 조각에서도 도상적 규범으로 등장인물들이 양반다리 자세를 하는 것이 자주 보인다.

 

남성이 들고 있는 잔은 스키타이 문화부터 전해져 온 잔과 같은 모습으로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잔 가운데 한쪽으로 된 손잡이가 달린 잔이다. 황금유물이 많이 출토된 기원전 2세기 무덤에서 나무로 된 잔이 발견된 유적도 있다. 스키타이 신화 혹은 문화는 고대 이란어를 사용하는 유목민들 사이에 신성한 의식 용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В.К. Гугуев Кобяковский курган (К вопросу о восточных влияниях на культуру сарматов I в. н.э. — начала II в. н.э.). // ВДИ. 1992. №4. С. 116-129.(구구예프 1992, 코비야코프스키 무덤(1000년기~2000년기 사르마트 문화에서 동쪽 영향에 대한 질문)

Засецкая И.П. Зооморфные мотивы в сарматских бляшках. // Античная торевтика. Л., 1986. С. 13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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