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2022. 11. 9. 09:15 고깔모자와 코트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외투 종류 가운데 모피가 아닌 펠트로 제작된 코트가 파지리크 유적의 3호에서 발견되었다. 3호는 기원전 5세기의 1호, 2호, 5호와는 달리 기원전 3세기로 이미 스키타이 문화는 없어지고, 흉노 시절에 해당하는 무덤이다.

 

모자가 달린 매우 부피가 큰 펠트로 만들어진 것인데, 옷 위에 착용할 수 있고, 고리투스를 덮을 수 있다. 후드는 탈부착 가능하다. 인접한 투바지역의 민족지 자료가운데 비슷한 옷이 비옷으로 사용되었다. 이 펠트로 된 레인코트는 카자흐스탄의 말 목동과 몽골과 투바에서도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3호의 펠트코트

 

무기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복은 시베리아 남부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유목민들 사이에 매우 인기 있었다. 사냥이나 목축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에도 사용된 기록이 남아 있다. ‘Strategikon’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Maurice(582~602년)가 남겨 놓은 군사매뉴얼인데, 이 코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스트라테기콘에 따르면 소매가 넓은 펠트로 된 외투 또는 후드가 달린 옷이 군사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한다. 갑옷과 활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커서, 우천시 혹은 이슬로 축축해지면, 갑옷과 활을 덮어서 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언제라도 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갑옷은 펠트 코트로 가리면 그 빛이 적에게 멀리 보이지 않고, 또한 적의 화살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에 필요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이 비옷이 나온 3호 보다 이른 시점의 무덤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남아 있었을 수 있다. 이들 무덤에서는 알 수 없는 펠트조각들이 대량으로 나왔으나, 이미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코트 형태가 아니라도 어떤 모습으로든 비오는 날에 대한 대비는 있었을 것이다. 

스키타이 활이 다른 유목민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고, 이 활을 만든 사람들은 잘 사용하고 보관하는 방법도 알았을 것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