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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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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청동기시대는 비파형동검 등장 이후에 청동유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불과 1~2년까지 전만해도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이다. 기원전 15세기가 한국청동기시대의 시작으로 보는데, 기원전 8세기가 되어야 청동유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바뀔 계가 있었는데, 1996~1999년에 남강의 대규모 댐공사로 인해서 대대적인 발굴이 있었다. 그 때 대평리 옥방 5지구에서 곡옥형 청동기가 출토된 적이 있다http://eastsearoad.tistory.com/129?category=737917. 이것은 한국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유물일 가능성이 있었으나 유물의 반출관계나 출토맥락이 분명치 않아 학계에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2016년 한반도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유적 중에 하나인 강원도 아우라지 유적의 주거지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이 출토됨으로 인해서 비파형동검 이전에 이미 한국에 청동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학계는 이 자료는 신뢰하는 분위기이다. 이는 시베리아 카라숙문화로부터 전해졌을 가능성이 논의 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강 대평의 청동유물 또한 비파형동검 이전의 유물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옥방 5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에서도 두 시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시기와 청동기시대 시작 단계이다. 그간 연구된 바로는 비파형동검 시기에 곡옥형청동유물이 확인된 예는 없다. 그렇다면 남강 대평 유물은 청동기시대 시작 단계의 유물로 볼 수 있다.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곡옥형 청동기가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에서 전해졌을 것이라고 이미 간략하게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의 반출관계가 명확하지 못해서 어떤 맥락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청동기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평거동 유적에서 직접 청동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토기와 석기가 남강 평거동에서 확인되며, 특히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면 그 영향력은 대평 유적까지도 가능성이 있다.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 유적인 시니가이 A유적 중층, 아누치노-14 유적과 동부2유형 수보로보 6 유적은 청동유물이 반출된다. 그 종류는 곡옥형 청동기, 청동단추, 연주형 청동유물 등 주로 소형이다. 뿐만 아니라 곡옥형 청동기와 청동단추는 토제모방품도 유적에서 출토된다.http://eastsearoad.tistory.com/144?category=737917 청동유물의 성분분석을 바탕으로 이 지역 출토의 청동유물은 바이칼 지역의 서쪽에 있는 카라숙 계통과 같다는 의견이 있다(콘코바)으며, 이는 카라숙 문화가 동진하면서 생긴 결과로 보고 있고, 기원전 13~9세기 가량의 사건이다.

 시니가이 문화에서 출토되는 청동 유물은 단추, 연주장식품, 곡옥형이다. 단추와 연주장식품은 기타 지역에서도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곡옥형은 연해주와 대평에서만 출토되고 있으며 가장 유사한 형태는 시니가이 A유적 중층 출토품이다.

 그렇다면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곡옥형 청동기는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과 관련성이 깊으며, 평거동 뿐만 아니라 남강 대평 유적으로도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며 그 시기는 3300년 전 부터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말은 그렇다고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의 주류가 연해주로 부터 온 문화에 의한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비파형동검은 압록강 유역과 인접한 그 지역으로 부터 들어왔으며 이로 인해서 한국은 비파형동검을 특징으로 한 청동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그렇다면 연해주에서 남강 유역까지 어떤 경로로 오게 되었을까?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