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루드나야 문화의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의 장신구, 완벽한 옥기는 아닌 옥석, 사진외에도 장신구는 여러 점 출토되었음)
지난 포스팅에서 루드나야 문화의 박편석기 중 끝이 뾰족한 도구가 장신구(그림1)의 구멍을 뚫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뚫었을까?
러시아에서 60년대부터 소비에트 시절부터 고고학에 자연과학의 방법을 많이 도입하였다. 대표적인 연구자가 세르게이 세묘노프이다. 그 가 연구한 것은 현미경을 이용해서 석기의 날을 치밀하게 분석해서 사용흔적을 찾아내고, 그 대상물을 찾는 것이다. 미세사용흔적분석이라고 한다(세묘노프 1968). 이 방법은 미국에서 더 발전된 듯 보인다((T. 더글라스 프라이스, 2013).
그 사람은 바이칼 유역의 베르흐냐 부레티 유적에서 출토된 부채꼴 모양으로 구부러진 골각기의 1/3지점에 세석인을 끼워 넣은 유물에 주목하였다(그림2). 이것이 일종의 콤파스로 보았고 옥에 구멍을 뚫는 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았다(세묘노프 1968, 그림2). 이 세석인은 끝이 예리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 유적에서는 함께 둥근 옥제품이 출토되었다. 옥제품은 완벽하게 둥글게 잘려진 것이 아니라 조잡해 보인다.
(그림 2. 1~3: 베르흐냐 부레티 출토, 4~5: 시묘노프 제시(시묘노프 1968)
그림 3. 1·5: 글라스코보,2·3: 렌코바 1호, 4: 포노마레보, 6~8: 남보력고토 유적출토
루드나야 문화의 장신구에 뚫려진 구멍도 완벽하게 둥글지는 않다(그림1). 특히 옥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둥근 디스크 모양의 옥기는 옥귀걸이보다 만드는 방법이 어렵다. 원판으로 잘라내고 가운데만 동그랗게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의 장신구는 완벽한 옥은 아님,)
완벽하게 둥글게 잘라낸 옥기는 홍산문화에서 확인되는 옥제품으로 제작방법이 전혀 다르다.
필자는 루드나야 문화의 세석기는 석촉이 아니라 장신구 제작도구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석촉은 이미 타제 및 마제석촉이 유적에서도 확인됨으로 구지 세석인을 석촉으로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루드나야 문화의 유적인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에서는 화재난 주거지여서 골각기가 많이 확인되지만 베르흐냐 부레티 유적과 같이 골제 콤파스가 출토되지는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런데, 루드나야 문화의 세석인 용도를 밝히는 것은 어떤 역사적 해석인가?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세묘노프 1968, С. А. Семенов,1968, Развитие техники в каменном веке, НАУКА Ленинградскре отделение, Ленинград
T. 더글라스 프라이스(이희준 옮김), 2013, 『고고학의 방법과 실제』,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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