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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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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 13:29 스키타이 동물장식

흑해지역은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 유역과 흑해의 우측에 위치한 쿠반강 유역으로 구분된다. 스키타이 초기 유적들인 켈레르메스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은 쿠반강 유역의 중 하류에 분포한다. 물론 멜구노프 유적은 드네프르강 중류 역에 위치하지만 러시아 연구자들이 흑해지역 가운데 초기 문화의 중심지라고 생각했던 곳은 쿠반 강 유역이다.

그 이유는 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청동기문화 때문이다. 스키타이 문화로 이어지는 문화적 전통을 간직한 것은 코반 문화이다.

 

앞서서 흑해 지역의 전통적인 스키타이 유물로 간두령을 설명한 바 있다. ‘스키타이 끝장식’이라고 불리는데, 그 아래에는 대롱 혹은 슴베가 달려 있고 윗 정상부에는 동물형상의 머리 혹은 동물의 전신상이 붙어 있다. 가장 빠른 유적 중에 한 곳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독수리 머리 그리핀이 붙은 간두령이 출토되었다. 위로 향한 귀, 부리 밖으로 드러난 혀 등이 특징이다. 그런데 그 외에도 주둥이 끝이 원통형 모양이고 눈이 불룩하게 표현된 간두령이 발견되었다(그림 2). 방울이 달리지 않은 끝장식(그림 3)에도 동물의 눈 표현이 불룩한 것이 있다.

 

대체적으로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동물 눈은 크게 음각으로 표현된다. 그에 반해서 눈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불룩하고 작게 표현되어 눈을 강조하지 않은 유물은 스키타이 시대에는 처음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다.

 

그림 1.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간두령

 

그림 2.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간두령

 

그림 3.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끝장식

 

그런데 이와 같은 동물 눈의 표현방법은 사실 청동기시대 코반 문화에서부터 있었다. 이 문화의 동물장식은 눈이 거의 없거나(그림 5) 불룩 튀어나왔으며(그림 4), 주둥이가 원통형으로 튀어나오도록 되어 있다.

 

그림 4. 기원전 10세기, 코반문화의 청동 동물장식.

 

그림 5. 기원전 10세기, 코반문화의 청동 동물장식.

 

이러한 연유로 켈레르메스 유적의 간두령과 청동 끝장식은 기원전 13세기부터 카프카스 산맥의 북쪽(쿠반강 유역)에 있었던 코반 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6. 드네프르강 유역의 간두령 2-볼콥츠이 쿠르간, 3- 부드키 쿠르간

 

그런데 켈레르메스 유적이 있었던 시기에 드네프르 강 유역의 부드키 마을에서 발견된 쿠르간(부드키 쿠르간이라고 하자)과 볼콥츠이 마을 부근에서 발견된 쿠르간(볼콥츠이 쿠르간)에서 발견된 간두령(그림 6-2,3)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간두령(그림 2)의 동물장식과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방울자체의 모양도 쿠반 강 유역에서 유래했다고 보인다.

일린스카야(1965)는 드레프르강 유역(그림 6)의 유물이 켈레르메스 유적과 별 개라고 생각했지만 쿠반 강 유역에서 드레프르 강 유역으로 간두령 장식이 퍼져 갔을 것이라고 보는 것(페레보드치코바 1980)이 합당하다. 사슴장식과 마찬가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더보기

간두령 장식에 붙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그림 1)은 그리스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장식 중 환상의 동물장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 유물이 늦다는 점을 앞서서 설명했다. 간두령의 동물장식은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에서 온 동물장식도 붙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전통이 깊은 유물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의 온라인뮤지엄: 코반문화

youtu.be/oTsCnD8rpq8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Ильинская В.А. 1965 : Некоторые мотивы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 СА. 1965. №1. С. 86-107.(일린스카야 1965, 초기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몇 가지 모티브)

Переводчикова Е.В. 1980 : Типология и эволюция скифских наверший. // СА. 1980. №2. С. 23-44(페레보드치코바 1980, 스키타이 끝장식의 형식과 진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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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여신상의 최초 모습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유물을 참고로 할 때 양 손에 맹수를 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 손에 든 동물은 변화되지만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이다.

 

맹수모양장식은 아르잔-1 유적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가 가장 이른 형식이다. 아르잔-1 유적이 기원전 9세기에 만들어진 유적이기 때문이다. 흑해 부근의 스키타이 문화를 연구한 알렉세예프도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최초 모습은 아르잔 유적으로 생각한다(알렉세예프 2003). 흑해 북안에서는 기원전 7세기 혹은 기원전 8세기 유적에서는 무기는 확인되지만 한 개체로 만들어진 동물문양장식은 확인되지 않는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표트르 1세에게 시베리아 토볼스크 주지사였던 가가린이 보낸 스키타이 유물 가운데 아르잔-1유적과 비슷하게 생긴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있다.

2020/04/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버클 표범장식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버클 표범장식

파지릭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기원전 5세기 가량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스키타이문화는 이르면 기원전 9세기 까지도 올라가는데, 그때도 동물문양장식이 있을까?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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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맹수장식은 여러 모양으로 응용되었는데, 팔찌의 끝장식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유물은 끝부분과 코일이 따로 제작되어 땜질해서 제작되었다. 호랑이의 입에 사슴다리가 표현된 것이다. 눈은 삼각형으로 돌을 감입할 수 있도록 홈이 파져 있었다.

 

 

그림 1. 시베리아 남부 추정, 1716년 12월 12일 시베리아 톰스크의 주지사인 가가린이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선물. 기원전 4~3세기의 유물, 직경 10cm

 

 

맹수가 달린 장신구가 한 점 더 있는데, 이는 목걸이다(직경 33cm). 역시 가가린이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유물이다. 가장 끝에는 맹수장식(그림 3-1,3)이고, 그 아래에는 귀달린 새의 머리가 표현되었다(그림 3-2). 호랑이는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고(그림 4), 몸통은 음각으로 표현되어서 매우 역동감 있다. 맹수와 새머리로 연결된 동물문양은 팔찌로 연결되어 몸통을 표현하는데, 그리핀의 모습을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2. 시베리아 남부 추정, 가가린이  표트르에게 보낸 시베리아 목걸이, 직경 33cm

 

 

그림 3. 그림 2의 세부사진

 

 

그림 4. 그림 2의 세부사진

 

 

아르잔-1유적에서는 이미 중심매장부가 도굴당해서 주인공의 부장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잔-2유적에서 주인공 남녀가 목걸이와 팔짜를 착용한 모습을 알 수 있다. 나선형 팔짜와 토르크(목걸이)이는 유라시아 유목민의 전형적인 장신구이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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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된다. 살아생전에 함께 사용하던 일상용구 중에 특히 식기는 무덤방 안에 관 밖에 몇 점 부장되었다. 말은 무덤방 바깥에 무덤구덩이의 북쪽벽에서 늘 확인되는데, 대부분 마구를 착장한 말이 많다.

투엑타 1호분은 말이 8마리 매장되었는데, 다양한 굴레장식(그림4 참고, 마구용어)이 확인되었다.

초본류를 형상화한 것과 동물을 형상화 해서 장식판으로 사용했다.

그 가운데 동물은 사슴, 호랑이, 그리핀 외에도 동물을 간략화한 굴레장식도 많다.

그리핀은 알타이에서 가장 많이 확인되는 독수리머리와 맹수의 몸통을 결합한 것이다. 독수리머리그리핀은 머리만 굴레장식에 많이 활용되었다. 이 유물은 100년 뒤의 파지릭 유적, 아크 알라하-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등에서도 계속 확인된다.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뿔, 귀, 갈기가 독수리 머리에 합체되면서 생성된 것인데, 갈기가 없는 그리핀(그림 1)도 설명드렸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

 

독수리 머리 그리핀과는 다른 종류인 합성동물도 있는데 호랑이가 주인공이다.

호랑이 머리 아래에 구름 혹은 날개가 붙은 장식판(그림 2)이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

 

또 호랑이 머리에 사슴뿔을 부착한 유물이 확인된다(그림 3).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 뿔 달린 호랑이, 가죽 아플리케

 

 

가죽으로 제작된 것으로 파지릭 유적 1호분에서 안장장식으로 가죽으로 표현된 동물문양이 있어서 이 유물도 안장장식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합성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그리핀의 여러 종류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이 유물은 다른 각도에서도 볼 수 있다. 호랑이와 사슴의 결합(동물투쟁문의 요소)이라는 점이다.

 

 

그림 4. 마구 명칭

 

 

파지릭 유적과 투엑타 유적의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파지릭 유적의 유물을 소개한 것이 유투브 동영상에 떠서 소개해 드린다. 대부분 5호 출토품이다. 

코로나 약(백신 혹은 치료제)나오기 전까지 못갈 것 같은데, 구경하시기 바란다. 

 

youtu.be/rAvoeqxfEHI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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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해발 2500m 우코크고원의 기마전사는 칼쥔 강의 상류에 묻혔다. 꼬리달린 모피코트, 바지, 스타킹은 살아생전에 착용하던 것이었고, 새머리 고깔모자와 호랑이 모양의 목걸이는 부장용으로 제작되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필자는 약간 생각이 다른데, 어떤 의식이나 행사용으로 사용하다가 무덤에 그대로 넣어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생전에 사용하던 물건 중에 하나가 그릇이다. 나무쟁반과 나무잔도 사용하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스키타이 사람들의 무덤에는 나무로 된 그릇 외에도 뿔과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이 들어갔다.

 

재밌는 점 중에 하나가 시베리아에는 토기가 주요한 유물이 아니다.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는 발견되지만 아주 드물다. 한반도와 그 인접한 지역에는 발굴하면 가장 많은 유물이 토기이지만 이 지역은 토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토기가 없어서 미개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토기가 없는 것은 먹는 음식이 달라서 토기가 필요 없는 음식문화였을 가능성이 있다 목제나 뿔로 만든 냄비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주종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제품 종류들. 실제로 루덴코(1952)가 발굴한 파지릭 유적에서는 목제 그릇에 유제품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사진이나 도면은 없음)

 

뿔로 만든 그릇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유물평면도 38)(그림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분(그림 2-2,3), 얼음공주(아크 알라하 3유적)(그림 2-1, 그림3)무덤 등에서 출토되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출토(필자촬영)

 

그림 2. 우코크 고원에서 출토된 뿔 잔 1-아크 알라하 3유적(그림 3과 동일), 2,3,4-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분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뿔 잔 (필자촬영)

 

뿔제 잔은 몸통 부위와 바닥부분이 서로 나뉘져서 만들어진다. 재료도 다른데, 몸통은 야크(그림 2-1에 동물그림)의 뿔을 이용했고, 잔의 바닥은 야생염소(그림 5의 동물) 뿔로 만들어졌다. 그림 4와 그림 5에서 만드는 제작방법을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그림 4. 파지릭 문화의 뿔제 잔 만드는 방법 1, 몸통부위

 

 

그림 5. 파지릭 문화의 뿔제 바닥 만드는 방법 2, 바닥부위

 

몸통 재료인 야크 뿔도 야생야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폴로시막은 파지릭 사람들이 지금처럼 야크 떼를 키우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야크가 발견 된 예는 뿔제 잔과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5호분 미라가 확인된 무덤에서 나온 야크 가죽이다.

 

흥미로운 유물이 한 점 더 있는데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발견된 미니어쳐이다(그림 6-21). 금으로 제작된 것인데, 귀걸이나 치레걸이의 일부로 사용된 것이다. 그림 6-21의 미니어쳐는 그림 1과 매우 유사하다. 바닥이 편평하고, 몸통과 바닥부위가 연결되는 부분에 각이 져 있으며, 몸통의 중앙에 안으로 들어가도록 표현되어 있다. 손잡이도 한쪽에만 붙어 있다.

 

이미 아르잔-2호 에서도 미니어쳐로 된 금제 잔이 주인공 5호 무덤방에서 출토된 바 있다. 남성의 검집옆에서 출토되었다.

이를 참고로 하면, 이 미니어쳐 잔도 비슷하게 체인에 달려서 어딘가에 부적이나 혹은 정표 혹은 알수 없는 표식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일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아르잔-2호(아래 포스팅 참고)에서도 출토된 위치가 매우 애매해서 여성의 것인지 남성의 것인지 애매하다고 했다. 아르잔-2에서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그런 의미였을 수도 있다.

 

 

그림 6.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 21번 유물이 뿔제 잔과 비슷한 형태이다.

 

2020/06/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 여성의 검과 칼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 여성의 검과 칼

스키타이 검은 짧은 단검으로 보통 허벅지에 착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크 알라하-1유적의 남성전사도 목검이 있었는데, 허리가 아닌 바지주변, 허벅지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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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에서 사용되는 동물은 그 당시 사회에서 인간 삶에 비중을 높이 차지하는 동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뿔이 잔으로 만들어져서 무덤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 자체가 특정 야생동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고 폴로시막(얼음공주 무덤 발굴자)는 생각한다. 달리 이야기하면 야크를 대신해서 야크 뿔로 만든 잔을 넣었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А.П. Бородовский, 2000,Технология изготовления предметов из полого рога,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320 c.(보르도프스키이, 뿔로 만든 유물 제작 기법/ 알타이 미라 현상)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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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무덤에서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보다는 말과 관련된 유물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파지릭 1호분은 주인공이 이미 도굴로 없어져 버려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일명 ‘얼음공주’라고 불린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유물은 대부분 그녀가 입고 있거나 착장하고 있는 머리장식이었다. 필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필요도 없는 유물을 무덤 안에 꽉 채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도 주인공 관련 유물은 의복과 토기, 목기이다. 반면에 말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사실 말을 부릴 때 필요한 것은 재갈과 고삐이다. 그 외는 전부 장식적인 요소인데, 말은 대부분 치장되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 중에 일종인 파지릭 문화에서는 주인공 관련 유물 가운데는 거울도 있다. 얼음공주의 거울은 손잡이가 달린 목제로 만든 거울에 경면은 청동으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은제로 만든 거울을 뿔로 만든 받침대에 삽입해서 만들었다. 둘다 거울을 담는 주머니가 있었는데, 얼음공주 거울은 펠트로 만든 주머니 였고, 파지릭 2호분의 은제 거울은 표범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두 개의 포스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크 알라하 3 유적 얼음공주의 거울

2020/01/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2500년 전,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3유적 중에서 1호분에 묻힌 여성은 25~30세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 까지 시베리아 알타이의 ‘얼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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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릭 2호분 은제 거울

2020/03/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유적의 2호 무덤을 마감하면서...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유적의 2호 무덤을 마감하면서...

시베리아의 알타이 남부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있다. 그곳의 이름은 파지릭 유적인데,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이루는 한 장소로서, 알타이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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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흑해와 가까운 쿠반 강(카프카스 산맥 북쪽, 강은 흑해로 흘러감) 유역에서 출토되는 거울은 청동으로 제작되었는데 손잡이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되었다(그림 1). 예전에 이야기 한 바 있는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의 유물로, 스키타이 인들이 그리스 공방에 주문해서 제작했었을 것으로 본다. 손잡이의 세로 방향 으로 깊게 파인 모습이나, 손잡이가 달린 거울은 그리스 거울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쿠반 지역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문화의 거울, 기원전 6세기로 추정,손잡이 포함 길이 35.5, 너비 18cm

 

손잡이가 달린 거울은 시베리아에서도 출토되지만, 막대기 모양의 손잡이 대신 해서 바로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그림 2-아래). 유물은 사글리-바치 II유적 출토품이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투바에 위치한다. 투바는 이미 공개한 바 있는 아르잔 유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유적은 기원전 5~4세기 가량으로 파지릭 유적 보다 늦다고 평가받는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이른 청동거울로 생각되는 유물은 손잡이가 없고, 거울에 꼭지가 붙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알타이의 서쪽에서 채집된 유물로 알려졌는데, 사슴 6마리가 경면(얼굴보는 면)의 반대쪽에 돌아가면서 표현되었다(그림 2-위). 중앙에 꼭지가 붙어 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재밌는 점은 이 거울의 사슴표현이다.

 

자세히 보면 사슴의 등에서 목과 가까운 부분에 볼록 솟은 표현이 있다. 발은 쭉 뻗어서 발로 선 자세로 표현되었다. 눈은 매우 지나치게 과장해서 둥글게 그렸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사슴의 등은 대게 편평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주로 사슴은 다리를 배 쪽으로 넣고 무릎을 꿇은 자세였지만, 이 사슴은 다리를 쭉 펴고 있다. 이 유물은 기원전 8~7세기 가량으로 평가받는다.

 

 

 

그림 2.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의 거울, 위: 청동제, 알타이 서부지역 수집(부흐타르마 라고 알려짐). 에르미타주 소장, 13.5cm, 아래: 청동제, 사글리-바치II유적 기원전 5~4세기, 발굴품

 

거울은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 채집된 유물인데 어떻게 구체적인 연대가 나왔을까?

 

답은 사슴의 표현에 있다.

 

파지릭 고원에서 동쪽에 위치한 투바지역에서 발굴된 아르잔 1유적에서 확인된 유물 때문이다. 아르잔 1유적에서는 봉분(무덤을 덮은 흙) 위에서 사슴돌이 몇 개 발견되었다(그림 3). 사슴돌은 일종의 비석처럼 생긴 것인데, 주로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한다.(그러나 사슴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사슴돌에는 등이 볼록 솟아있고, 발을 곧추세운 사슴이 그려져 있다(그림 3-1). 뿐만 아니라 이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제 사슴표현에도 발을 뻗어서 표현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아르잔 1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834년 기원전 9세기에 이 유적이 만들어졌다면, 청동거울에 그려진 사슴문양도 그 때 유행했던 문양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아주 널리 유행했는데, 등이 솟은 사슴표현은 그 때부터 전해지던 것이다. 즉 사슴표현 중에서 아주 이른 표현방법이다.

 

 

그림 3. 아르잔 1유적의 봉분 위 사슴돌(1~6)

 

이런 이유 때문에 사슴문양 청동제 거울은 대략 기원전 8세기부터 늦게는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본다. 물론 사슴청동제 거울(그림 2-위)이 출토된 유적이 더 빠를 수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좀 더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 확실한 연대가 있는 유적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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