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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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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네모꼴 나무방패를 살펴보다가 우리는 ‘솔로하’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에도 비슷한 유물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유물이 소장된 곳은 표트르 1세라고 불리는, 러시아 사람들은 표트르 대제라고 하는 러시아 차르의 겨울궁전인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Hermitage ‘에르미타시’라고 쓰는게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데, 필자가 계속 에르미타주라고 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이미 한국에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대로 번역하면 ‘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수집품(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Великого, the Siberian collection of the Peter the Great )’ 이다. 현재 총 240점이 전해진다.

 

그는 1689년부터 재위했는데, 러시아 영토가 된 모든 곳의 민족 고대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1715년에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표트르에게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황금 유물 10점을 바쳤다. 표트르는 이 유물의 중요성을 바로 알았고, 비슷한 유물을 수집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1718년의 날짜가 적힌 포고령에는 시베리아의 유물을 수집하고 출토품을 모으라고 강요했다. 특별포고령에 의해서 고대 유물을 숨기거나 녹이는 것을 매우 금지시켰다. 17세기 말경부터는 도굴로 엄청난 양의 황금유물이 황금을 얻기 위해서 녹여졌기 때문에 이를 금지시킨 것이다.

 

1715년~1718년에 시베리아에서 가가린이 수집한 금제품 240개가 보내졌다. 가가린은 농민들로부터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농민들은 고분을 도굴해서 그에게 팔았다.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봉분이 있는 무덤은 쉽게 눈에 띈다. 그리고 도굴되었다.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1727년에 이 수집품들은 러시아의 첫 번째 국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Кунсткамера, Kunstkamera)(그림1)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그 뒤에 1859년에 제국 고고학 위원회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이송시켜 보관했다.

 

그림 1.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유물이 처음 보관된 쿤스트카메라, 1741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과학아카데미 건물이었던 쿤스트카메라의 모습을 동판화에 새겨서 찍은 것이다. 현재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어 있다. Christian-Alber Wortmann작품. 47cm, 62.6cm

쿤스트카메라는 처음에는 매우 작게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매우 커졌다. 1714년에는 수백마리 물고기, 새, 뱀이 항아리에 보존되었고, 1698년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가져서 기괴한 해부학 작품도 많다. 1716년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동물 등이 보관되었고, 1717년에는 동물 해부학표본, 식물과 나비 박제 등도 구입해서 전시했다. 식물동물표본 뿐만 아니라 각종 기계와 도구도 모았다. 쿤스트카메라는 에르미타주와 매우 가까운데, 한번 가보시길 바란다. 필자가 들렀을때는 한국관도 있었는데, 주로 민속품 등이 전시되었다.

 

시베리아 콜렉션이라는 명칭은 19세기 후반의 스피친이라는 고고학자가 표트르 1세의 유품들을 정리했는데, 그 때 시베리아에서 온 골동품이 담긴 소포, 여러 편지와 목록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스피친이 이 유물들을 시베리아 콜렉션이라고 했고, 표트르 대제의 이름을 함께 붙여서 그를 기념했다.

 

쿤스트카메라에 유물이 있는 동안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인 흑해북안의 쿠르간 발굴유물도 함께 보관되었는데,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유물과 함께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었다. 그래서 에르미타주에 시베리아 유물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 고분의 유물도 함께 있게 되었다.

 

표트르 1세가 남긴 편지 등에서 알아낸 것은 시베리아 수집품의 출토지역은 가가린이 총독으로 있던 토볼스크와 톰스크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에 발굴품을 토대로 시베리아 콜렉션은 오비강, 이르티스 강, 알타이의 서쪽 지대와 현재 카자흐스탄 북부(시베리아 남부)라는 주장이 강한데, 이에 대한 반론도 크다고 한다.

 

어쨌든 시베리아 콜렉션을 두고 이견이 없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라는 점이다.

 

 

그림 2.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3.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4.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5.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6.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7.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8.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해 온 우리의 주인공 여성은 아직 설명드리지는 않았지만 긴 상의에 긴 치마를 입었다. 상의는 흰색이고, 하의는 붉은색 계통인데, 삼단으로 짠 펠트제품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베리아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뭔가가 있지 않으신가?

추위,,모피코트...러시아인들이 쓰고 다니는 높은 모피로 된 모자 등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999라는 만화를 매우 좋아했다. 어린 학생들은 많이 모르실텐데, 두 주인공이 여러 별을 기차로 타고 다니는 만화이다. 지금 기억에 그건 일요일 아침인가에 했는데, 난 그걸 보기 위해서 모든 걸었다..그걸 하는 시간을 비우기 위해서, 엄마아빠 잔심부름은 빨리 다 하고,, 밥도 일찍 다 먹고,,‘신성한’ 마음으로 기다렸다..은하철도 999.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2명인데, 메텔이라고 불리는 여성과 한 명 남자의 이름은 기억안난다. 메텔은 키가 크고 금발인 여성이었는데, 검은색이고 높은 모자와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모티브가 된 것이 러시아여성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하면 모피코트다. 17세기에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를 삼킨 이유도 사실 모피 때문이다. 그때 유럽은 소빙기로 혹독한 추위 때문에 꽁꽁 얼어붙었고, 욕심 많고 많이 돌아다녀서 아는 것 많은 표트르 1세는 시베리아 무주공산에 깃발꽂고 동물잡아 모피로 유럽에 팔아서 돈도 벌고, 고분도 들쭉날쭉 파서 표트르 대제 콜렉션을 만들었다. 그 유물은 지금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다. 유럽여행을 가시면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모스크바는 안가시더라도,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꼭 한번 머무르고 도시를 느끼시기 바란다..훔쳐오고 싶은 도시이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은 모피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알타이 산맥의 다른 무덤에서는 코트 입은 사람들이 발견된다.

초창기에 파지릭문화를 연구할 때는 모피코트도 계급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베르흐-칼쥔 2 유적을 발굴하고 나서 많은 점이 의문투성이로 바뀌었다. 이 무덤은 일반무사의 것인데, 매우 재밌게 생긴 모피코트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1호분(그림2)과 3호분(그림1), 2 무덤에서 발굴되었는데, 스탈일이 다르다. 요즘 개념으로 하면 털이 안으로 들어간 ‘무스탕’(3호분)(그림1)과 털이 밖으로 나온(1호분)(그림1) 그냥 우리가 아는 모피코트이다. 요즘은 리버시블이 유행하던데, 그렇게 입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림1.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무사의 모피코트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은 어제 설명 드린 문신이 새겨진 무사가 주인공인 무덤이다. 그의 모피코트는 털이 안으로 들어간 바깥은 맨들맨들한 무스탕이다. 그런데 이 코트의 가장 하단에는 ‘꼬리’처럼 달린 장식이 붙어 있다. 이 코트는 두 장을 붙인 것인데, 안은 양털을 쓰고 그 위에 담비가죽을 붙인 것이다. 목과 양쪽 어깨, 소매 단, 여밈 부분은 검은색 나귀가죽을 따로 써서 붙였다. 그리고 아플리케 장식으로 덧붙였는데, 붉게 물들인 말총과 청색의 가죽조각을 이어붙여서 만든 술을 2열로 달았다. 이 모피코트의 꼬리부분은 너비 49, 길이 57cm이다.

 

민족지학적으로 꼬리달린 외투는 북아시아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도 입는다. 꼬리달린 외투는 놀랍게도 스키타이 문화의 것으로 생각되는 암각화에도 남아 있다. 그 분포범위는 시베리아의 큰 강 계곡마다 분포하고, 중국 북방에서 프리바이칼의 앙가라 주변지역까지 넓게 퍼져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66). 즉 현재 민족지학적으로 남아 있는 꼬리달린 외투의 기원은 2500년 전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사냥꾼의 복식이라고 이해된다.

 

베르흐 칼쥔-2유적 1호분(그림 2)에서 출토된 모피코트는 꼬리가 없다. 밖으로 양털이 나오고, 안쪽으로는 흰색 모르모트 가죽을 덧입힌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3호분도 마찬가지이지만, 현대의 카라 라고 하는 부분이 없다. 외투의 오른쪽 하반부의 허리부근에 붉은색으로 염색된 말갈기(그림 2의 b)를 모아서 만든 숱을 부착했다.

소매가 매우 길어서 손가락을 덮을 정도이다. 모피의 착용방법도 유적마다 다르다. 베르흐 칼쥔 2유적에서는 소매를 끼운채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1호분 모피코트 

 

우리는 여기서 하나를 추측할 수 있는데, 이번 달의 주인공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처음부터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장례식은 태어나면서 계획 되었다..고분의 말이 6월쯤 죽었으니 모피코트가 필요 없기도 했겠지만,, 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왜?

 

그녀는 손을 오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전에 시신의 자세는 빠른 시간안에 결정났을 것이다.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었다면 손 모양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오클라드니코프 1966,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6 : Петроглифы Ангары. М.-Л.: 1966. 322 с.(앙가라강의 암각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에르미타쥬 박물관...

러시아 최초로 동방정책을 시작한 표트르 대제의 겨울궁전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건물자체가 박물관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박물관이 정말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박물관이 없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박물관, 일본 동경박물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등 동아시아는 건물은 현대식이고, 유물만 예전의 것으로 전시된 경우가 많다.

그 나름대로 현대식 건물과 오래된 유물이 주는 독특한 느낌도 있지만.

이런 환경에 익숙한 내가 정말 머리를 한대 꽝 맞은 느낌을 받은 곳이 에르미타쥬이다.











모두 박물관의 모습이다.


작년에 한국에 온 러시아 연구자와 이야기 하다가

한국의 박물관이 너무 좋다는 거다..현대식건물..

난 반대로 이야기 했다.

역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거가 맞는 얘기 일까?


하지만 우리나라도 먼가 한 곳은 이런 느낌을 받는 곳이었으면 한다.

이런 느낌이라는건...건물과 전시된 유물 모두 오래된 느낌.

덕수궁박물관이 일부 그렇지만.. 거긴 한 나라 역사 전체를 보여주는 곳은 아니다.


에르미타쥬는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유물 부터 거장의 그림까지...

정말 탁월한 박물관이다.


이런곳은 바라지 않더라도.

중요한 유적 발굴된 곳에 이것을 살려둔 박물관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발굴되고 난 뒤에 대부분 유적은 사라진다...유물은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지지만.

그런데 중국 박물관은 요즘 새로 지어져도 이런 곳을 살려 두고, 유물은 그곳에 전시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베이징 이야기가 아니라...지방인 낙양 같은 곳에도 그런 곳이 여러 곳이었다.



레고랜드...웃긴다. 아마도 거기다가 고고학유적을 그대로 살려둔 박물관을 지었다면.

한국에서도 독보적인 곳이 되었을 꺼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이 복도를 지나서 지하로 가면 고고학실이 있다.
그래 고고학은 땅속이지...ㅋ
사람들은 잘 모른다. 고고학실이 있다는 사실도..


위의 사진은 현재 아프카니스탄에 위치한 곳에서 발굴된 거다.

사실 그 땐 유물이 너무 많아서 영혼없이 찍은 사진도 많다. 나의 전공은 아니지만 하면서 찰칵.
스키타이 유물은 다음 포스팅으로...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말 그대로 박물관이다.
고고학 유물 부터 근현대 미술품까지...너무 많아서 피곤하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 진품을 소장하고 있는 몇 개 안되는 박물관으로 알고 있다.













구관을 떠나서 신관으로 들어가면,,,모두를 앞도하는 사이즈

앙리 마티즈의 댄스.

에르미타주에서 주문한 거로 들었다.




앙리 마티즈와 칸딘스키





지하에서 유물 보다가 지치면 올라와서 그림을 보았다.


에르미타주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려면 한 일년은 필요하다고 느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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