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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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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기원전 5~3세기대의 유물이 출토되어서 유적도 그 당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키타이 스타일의 동물문양장식과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유물도 있지만 그리스 스타일도 있고, 페르시아에서 제작된 유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유적에서 출토된 금 제품은 아케메니드 왕조의 금제품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 알려드리지 않은 유물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스핑크스처럼 생긴 반인반수가 원판형 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있다. 앉아 있는 스핑크스로 오른쪽 앞발을 올리고 있고, 반구형의 모자를 쓰고 있고 이마 경계에는 진주?알 문양의 목걸이가 돌아간다. 모자 아래에는 머리카락을 뒤로 모은 스타일이다. 날개의 윤곽을 따라서는 깃털을 표현했고 그 끝에는 맹수가 달려 있다. 이 유물은 옷의 장신구(직경 5cm, 직경 4.2cm)이다.

사람얼굴 대신 날개 끝에 붙은 동물의 얼굴만 있는 유물도 있다(그림 2).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반인반수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사자얼굴그리핀

 

이 원판 속의 반인반수는 동물과 인간이 한몸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람얼굴과 마주보는 동물의 얼굴은 사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사자와 다르다. 오히려 코가 짧고 갈기 표현이 없어서 호랑이?와 가깝다. 옷에 원판을 다는 스타일은 고대 이란 민족을 포함해서 아주 널리 퍼져 있던 유행으로 원판을 단 것으로 만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반인반수(맹수몸통+새 날개+ 인간얼굴)는 이미 아케메니드 왕조 이전의 근동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유적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제이말 1979).

 

 

 

제이말이 이야기한 근동은 카프카스 산맥 남쪽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 지역에 앗시리아가 존재했을 때 그 보다 북쪽산악 지역에는 우라르트가 번성했다. 기원전 8세기에는 앗시리아 보다 우라르트가 훨씬 강성했다고 알려졌다.

우라르트의 고대 도시인 토파흐 칼레에서 발굴된 유물 가운데 청동으로 제작된 유물 가운데 반인반수 상이 알려져 있다(그림 2, 그림 3).

 

그림 3. 우라르트의 반인반수, 높이 16cm

 

그림 4. 그림3과 동일 유물.

 

청동솥에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날개를 편 새의 모습에 인간 얼굴이 달려 있는 유물도 발견되었다. 알리샤르 유적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림 5. 우라르트의 알리샤르 유적 출토의 청동제품

 

스키타이 문화에서 반인반수는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아르김파사가 그려진 은제거울에서 이미 나온다. 맹수몸통에 날개를 달고 머리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며, 그들은 스키타이 표범장식을 발 아래에 밟고 있다.(아래 포스팅에서 거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2020/08/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가 번성했을 때 인접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 그리스, 우라르트,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유물은 스키타이 인이 주문해서 제작했던 것이다. 각

eastsearoad.tistory.com

그렇다면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나온 스핑크스 모습을 그리스 스타일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반인반수, 스핑크스, 인간얼굴이 달린 그리핀 모두 인간과 동물이 동등하다고 생각될 때 만들어질 수 있는 물건이지 않을까?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1959 :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М.: 1959. 260 с.(피트로프스크 1969, 우라르트 제국)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9. 13:1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당시에 타고 다니던 전차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그림 1). 4마리 말이 끌고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입체상이다. 전차는 뒤가 개방된 형태이고, 두 바퀴의 바깥쪽에 스파이크가 붙은 형태이다. 바퀴에는 9개의 축이 있다. 오른쪽 바퀴의 살은 보존되지 못했다. 전차의 전면에는 삼각형으로 채워진 두 개의 직사각형이 ‘X’형을 이루고 있고 그 교차점에 ‘Bes’로 추정되는 인물의 얼굴이 부착되었다. 베스는 이 유적에서 원판형 장식판에서 확인된 적이 있다.

 

그림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 높이 7.9cm, 길이 18.8cm(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고삐를 쥔 라이더는 고깔모자를 썼고, 목걸이를 차고 있다. 라이더는 허리끈을 차고 있다. 다른 이는 앞으로 넓은 옷자락이 있고 끈으로 묶은 튜닉?을 입고 있다. 라이더와 같은 매우 두터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그림2).

남성이 매우 무거운 목걸이를 착용한 예는 아르잔-2호의 5호묘 남성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 남성의 목걸이는 1kg이 넘는 목걸이였다.

두 사람은 마차의 바닥에 구멍을 통과해서 와이어를 구부려서 고정시켰다. 마차는 전차를 관통해서 연결되어 있다(그림 3).

 

그림2.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 높이 7.9cm, 길이 18.8cm

 

 

그림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전차, 엑스레이 사진(아래 인스타그램에서 참고)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전차, 엑스레이 사진(아래 인스타그램에서 참고)

 

4마리 말은 재갈과 재갈멈치 등을 착장한 상태였으며, 가슴걸이도 있다. 말은 다리가 다 보존되지 못했고 모두 9개 뿐이다.

 

이 유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브리티시 뮤지엄에서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금 제작 기술을 알아내기 위해서 이 유물을 엑스레이 촬영한 결과(그림 3, 그림 4) 전차는 손으로 만든 작은 조각의 금판과 단선이 함께 연결되었고 사람과 말의 내부는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물로 만드는 방법(거푸집 이용)방법보다 적은 금을 사용했고, 유물은 가벼웠다. 그리고 거푸집을 이용하는 방법 보다는 섬세한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어디를 갔을까요? 그리고 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 전차는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https://www.instagram.com/p/CIf_xUAIOS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7. 12:55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현재 타지기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국경의 아무다리야 강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의 유적은 그리스-박트리아 유물, 페르시아 유물, 스키타이 유물이 출토된다(제이말 1979). 그 중에서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8점은 스키타이 금제품을 제작하는 기술로 만들어졌다(Scythians 2017).

 

인간형상물 가운데 평면판 속에 고깔모자를 쓰고 막대기를 들고 있는 스키타이인(그림 1)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평면판속의 인물은 43명으로 모두 무엇가를 들고 있다. 그 중 23명은 막대기를 들고 있다. 막대기를 들고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손동작은 아닌데,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사람, 막대기를 두 손으로 든 사람, 막대기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받치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하다.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 가운데 2인은 다른 손에는 그릇을 들고 있다. 그 중에 한명은 고깔모자를 쓰고 아키나케스 검을 찬 스키타이 인이다.

그는 왼손에는 막대기, 오른손에는 뚜껑이 있는 잔을 들고 있으며, 마스크를 쓰고 있다. 스키타이 남성들이 턱수염을 길게 길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입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그림 2). 오른손에만 막대기를 들고 있는 스키타이 남성도 턱을 가리고 있지만 입을 가리지는 않았다(그림1).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스키타이 남성(그림 2)에는 고깔모자 위에 V자 모양의 매듭이 있고, 마스크는 모자 위로 연결되어 있다. 이 남성이 들고 있는 잔은 한쪽에만 손잡이가 붙은 것이다. 이 남성의 오른쪽 종아리에는 새가 3마리 스타킹(기억하시겠지만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펠트제 스타킹은 남성도 착용했다.)(그림 3-227, 그림 2와 동일) 에 새겨져 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남성 1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남성 2

 

그림 1과 그림 2의 두 남성이 스키타이 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깔모자와 아키나케스 검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성과 유사한 모자와 복장을 한 사람은 6~7인(그림 3-217, 218, 221, 223 224?, 그림 4-237, 239)인 정도 더 있다. 평면판 위에 그림이 선명하지 않은 것은 제외했다. 그림 4-236은 턱수염이 아니라 콧수염이어서 스키타이 사람에서 제외했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평면판 1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평면판 2

 

먼저 포스팅에서 이야기 했지만 이 평면판의 용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면이 아닌 측면을 표현했고 두 손에 들고 있는 기물등은 동일한 사건? 혹은 동일한 상황을 연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스크를 쓴 남성은 궁금하다. 아마 1년 전만 해도 이 유물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 텐데...지금 우리처럼 마스크를 쓴 스키타이 남성은 왜 마스크를 썼을까?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12~319 p.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J.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неопр.).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9. 13:03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은 현재로는 타지기스탄과 아파카니스탄의 국경에 위치한 곳으로 이 강의 우안에 위치해서 타지기스탄 국경 내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는 발견된 황금유물은 그레코-박트리아, 페르시아, 스키타이 동물 스타일로 제작되었다. 스키타이 동물장식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아무다리야 퇴장 유적에서는 팔찌가 대량 출토된다. 여러 번 감을 수 있도록 코일모양으로 된 것과 한쪽이 떨어져 있는 스타일이 있는데 모두 동물문양으로 장식된 것이다.

그 중에서 한쪽이 떨어져 있는 스타일(개방형 팔찌)로 그리핀(사자얼굴+산염소뿔+날개)이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왜 다른 이들은 페르세폴리스의 스키타이 대표단이 들고 있는 팔찌와 비슷한 유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유물은 개방형 팔찌 중에서도 차이가 있다. 대부분 몸통은 매끈하게 처리하고 끝에만 동물을 장식하는데, 이 유물은 전면에 문양이 표현되었다. 어떻게 제작되었을까?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의 스키타이 팔찌는 2점이 발견되었다. 크기는 동일하지만 무게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 직경 7.9cm, 무게 128. 04g, 무게 129. 34g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의 스키타이 팔찌, 그림1과 동일

 

 

그림3. 아파다나 궁전에 묘사된 스키타이 대표단

 

팔찌 모양의 거푸집을 이용해서 금속물을 부어 주조해서 만들어졌다. 특히 복잡한 눈, 귀과 같은 곳은 먼저 만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몸통에 미세한 표현을 위해서 표면을 누르는 과정을 통해서 제작되었다. 주조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은 두 개의 팔찌 크기가 같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무게는 1g 미만으로 차이가 있는데, 주조 한 뒤에 몸통에서 세밀하게 마연하면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아파다나 궁전 벽의 스키타이 대표단이 들고 있는 팔찌도 몸통에 음각이 있고 두 동물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아무다리야 퇴장지의 유물을 가장 먼저 연구한 달턴(O.Dalton)(1905)은 이 유물은 스키타이 동물양식이라고 했다. 흑해 쿠반 지역에 있는 카진스코예 유적의 목걸이 장식에서 비슷한 동물장식이 있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바르코바(1928)는 이 동물을 곰이라고 해석한 바 있으나, 늑대라는 의견(Scythians 2017)도 있다. 주로 동물의 주둥이가 튀어나온 맹수는 늑대로 보는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을 참고로 한 것 같다.

20세기 초 달턴은 아무다리야 퇴장 유물이 대부분 기원전 4~3세기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르타모노프(1973)는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의 코일모양과 개방형 팔찌과 비교해서 기원전 4세기로 생각했다. 2017년 영국박물관에서 열린 스키타이 유물 특별전에서는 기원전 5~4세기 유물로 소개되었다.

 

 

 

<참고문헌>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Borovka G, 1928, Scythian art, London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보물)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7. 13:15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으로 알려진 유물의 대부분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인간형상물(입체), 팔찌와 목걸이, 반지, 원판형 장식판, 평면금판(인간형상). 토기, 동전 등 1300여점이 알려졌다. 주석 청동으로 제작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동전은 기원전 5~4세기 페르시아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유적의 연대가 이와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대부분 동전 때문에 유적의 연대가 여기에 고정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동전으로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매우 불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을 대표하는 그리핀이 달려 있는 팔찌는 쌍으로 존재한다. 크기가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

그리핀은 기본적으로 사자의 날개에 맹금류의 날개와 부리, 산염소 뿔과 귀를 합성한 것이다. 몸통, 날개, 목, 머리, 뿔의 표면에는 작은 홈이 있는데, 상감을 위한 것이다. 딱 한 곳에서 라피스라줄리(청금석)이 박힌 것이 확인되어서, 그리핀의 홈에는 청금석을 박아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1 보다 약간 큰 팔찌(그림 2)는 British museum에 소장되어 있지 않고, Victoria and Albert Museum(그림 2)에 소장되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 높이 12.3cm, 11.5cm, 무게 364.17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 높이 12.6cm, 11.8cm, 무게 395.2g

 

그림 3. 페르세폴리스의 동쪽벽 그림

 

두 팔찌는  팔찌의 모양(오메가 모양), 제조기술 모두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시대의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큰 근거는 아파다나 궁전의 동쪽 계단에 거의 비슷한 모양의 팔찌를 들고 시리아(Schmidt 1953) 혹은 리디아(바르네트) 대표단이 왕에게 선물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제이말은 아파다나 동쪽 계단의 조각만으로 이 팔찌의 기원을 알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같은 대표단이 아파다나 북쪽 계단에는 다른형상의 팔찌를 들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작가인 Xenophon(기원전 430년 생)은 페르시아 궁정에서 명예의 선물로 간주되는 품목 가운데 팔찌가 있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두 팔찌가 다른 곳에 소장된 이유는 처음 입수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880년 5월에 Barton F.선장이 라와핀디로 운반하던 상인들로부터 유물 중에 일부를 획득했고 이를 1884년에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팔았다. 영국박물관의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은 A. Cunningham과 O. Franks가 구매한 것이었지만 최초로 상인들과 접촉한 테진 계곡을 경비하던 영국선장 F. Barton이 몰래 판 것은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으로 팔려갔다. 커닝햄은 인도고고학 책임조사원이었고, 프랭크스는 골동품수집가이자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의 연구원이었다. 커닝햄이 죽고 그의 유언으로 프랭크스가 그들이 사 모은 컬렉션(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을 연구했다. 커닝햄이 죽고 나서 2년 뒤에 프랭크스가 죽으면서 브리티시 뮤지엄에 기부했다.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은 페르시아, 그레코-박트리아, 스키타이 동물스타일이 모두 확인된다. 특히 아케메니드 금제품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2007년 부터 타지기스탄 정부에서는 이 유물의 반환요청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http://collections.vam.ac.uk/

J.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неопр.).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