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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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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주거 유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기원전 4세기 카멘스코예 성곽(Каменское городище, Kamenskoye settlement)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카멘’은 러시아어로 돌이라는 뜻]

 

발견당시 19세기는 러시아제국이었으나,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경 속에 있다. 처음 유적의 평면도가 그려진 것은 1899년으로 이때에 발굴이 시작되었다(그림 1).

주로 발굴은 1938년부터 1950년 사이에 이루어졌고, 1980년대에도 성벽조사가 이루어졌다(그림 2).

 

그림 1. 19세기에 작성된 유적의 지형도와 평면도

 

그림 2. 1938~1950년도 카멘스코예 성곽 유적의 평면도와 발굴위치

 

 

그림 3. 1950년도 발굴범위 9에서 확인된 지상식 주거지

 

 

그림 4. 1950년도 발굴범위 9의 3번 주거지의 화덕자리 평면도와 단면도

 

이곳에서는 주거지가 수혈식 집도 있지만 대부분 지상식 주거지이고, 집 내부에 화덕자리가 있는 모습이다.

필자가 이 자료를 찾은 이유는 ‘아크로폴’ 때문이다. 아크로폴이라고 한 것이 필자가 알고 있는 ‘내성’의 의미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카멘스코예 성곽은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서 성벽을 양쪽 끝에 쌓았다. 지형상 좁은 곳에만 성벽을 쌓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크로폴 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그리스식으로 공간을 나눈 구획은 확인되지만 사실 스키타이 사람들이 살았던 구역과 구분되었다. 한 공간에 거주한 것은 맞지만, 스키타이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좁은 공간에서 살았다.

 

생각보다 금속을 생산한 장소가 많이 발견되었다. 발굴범위 바깥에서도 여러 곳에서 금속기 생산하는 층이 발견되었다(그림 2). 이는 발굴 전에 그 층이 많이 노출되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그라코프는 이 유적이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생산과 무역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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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Граков Б. Н. Каменское городище на Днепре //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археологии СССР. М., 1954. № 36(그라코프 954, 드네프르 강의 카멘스코예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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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산맥의 남부를 흐르는 우랄 강변에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데, 유적들에는 국경이 없다. 이 지역의 기원전 5~4세기경 유적들은 아주 낮게 무덤구덩이를 파고 거의 지상식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를 봉토로 만들어 덮었다. 특이하게 이 지역의 무덤에는 점토를 블록으로 만들거나 점토벽을 만들어서 무덤의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필리포프카 유적과 마찬가지로 베소바 유적에서도 목조구조물 주변을 점토벽으로 둘러쌓아서 만들었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볼가-우랄 강변의 문화는 ‘사우로마트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는 사르마트 문화라고 불리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후기 사르마트 문화’라고 하기도 하지만 ‘훈-사르마트 문화’ 그냥 ‘사르마트 문화’ 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후기 사르마트 문화부터 민족을 특정하는데 ‘훈’족의 문화라고 여겨진다. 후기 사르마트 문화는 스키타이 지역의 중심지 중에 한 곳인 흑해까지 퍼졌다는 것이 학계의 생각이다(그림 1).

그런데 사우로마트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을 모두 보이는 유적이 필리포프카 유적이다. 기원전 5~4세기 이며 이를 일컬어 ‘초기 사르마트 문화’라고 하기도 하고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혹은 ‘스키토-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그림 1).

 

좀 답답한 경우는 스키타이 문화와 훈 족의 문화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이 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이후의 문화 전체를 사르마트 문화라고 부르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해가 가는 면(다음에 설명하기로 한다)도 있기는 하지만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 시대와 훈의 시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각 지역 명칭과 연대

 

앞에서 필자는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필리포프카 유적을 설명했는데,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것은 ‘스키토-사르마트 문화’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지역명칭을 스키토 –사르마트 문화 1기(기원전 7~5세기), 스키토-사르마트 문화 2기(기원전 5~4세기)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후기 사르마트 문화는 훈-사르마트 문화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학계에서도 불리는 용어이다.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지역명칭은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스키토-사르마트 문화는 러시아 문법상에 따른 것이고,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로 이해하면된다. 같은 예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으로, 이미 한국학계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혼돈을 막기 위해서이다.]

 

우랄-볼가 강 유역의 유적들은 무덤구조에서는 흑해지역과 좀 더 유사하다.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쿠르간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이나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지하로 매장구덩이를 파기는 했지만 목조구조물은 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포프카 유적, 베소바 유적 등의 무덤은 이 지역민의 아이디어로 축조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들도 네트워크가 있었을 것이고 선진 지역과 소통하기 위해서 낙타장식과 같은 동물장식을 사용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유물이 또 하나 있는데 석제로 만든 쟁반이다. 베소바 유적에서는 원형과 장방형의 석제 쟁반이 무덤 속에서 출토되었다(그림 2).

2021.07.0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중부/타스몰라 문화] -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나무쟁반, 돌쟁반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나무쟁반, 돌쟁반

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권은 기원전 9세기부터 아르잔-1호를 기준으로 시작되지만 실제로 초원의 각 지역에 여러 유적이 발견되는 되면서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는 기원전 7~4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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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베소바 유적의 제사용기, 카디르바예프는 이를 석제 제단이라고 했지만, 제사용기가 좀 더 자연스럽다.

 

인접한 타스몰라 문화에서 석제와 나무로 만든 쟁반이 발견되었는데, 베소바 유적에서는 다리가 붙어서 다른 형식이다. 다리가 붙은 나무쟁반은 알타이(파지르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소재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유물처럼 보이지만 사용방법은 같았을 것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나무그릇에 붙이기 위한 장식판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그렇다면 석제 쟁반이나 금장식을 붙인 나무그릇은 스키토-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물문양 장식과 같이 스키타이 문화권을 묶는 공통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나중에 논문으로 밝히겠지만 스키타이 3요소 외에도 스키타이 문화권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물 중에 하나는 그릇이다]

 

즉 우랄-볼가강 유역의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는 지역적 특징이 강하기는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권의 특징적인 유물인 동물장식 뿐만 아니라 제사용기도 지역적 특징에 맞게 고안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Кадырбаев М.К. Каменные алтари–жертвенники из Северо–Запад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 Совет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Наука, 1977. – № 3. – С. 204–213. (카디르바예프 1977, 카자흐스탄 북서 지역에서 나온 석제 제단)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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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의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금으로 된 십자형 그리핀이 표현된 장식판과 산양머리 장식판이 고깔모자와 상의에 부착되었다고 추정된다. 발굴당시에 고깔모자와 상의는 남아 있지 않지만 장식판의 위치로 보아서 고깔모자와 상의에 십자형 그리핀, 상의 소매 끝에 산양머리 장식판이 붙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십자형 그리핀은 여밈이 있는 상의의 가장자리에 붙은 것으로 생각하는 복원안(그림 1)과 어깨와 등판을 따라서 장식되었을 것이라는 복원안(그림 2)가 있다.

 

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여성복원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의복 복원(룩파노바 2017)

 

필자가 카자흐스탄 동부 이식 유적의 십대남성의 의복은 여밈이 있어서 시베리아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흑해지역일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시베리아 특히 알타이에는 상의가 2가지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미라나 아크 알라하-3 유적의 1호 여성미라가 입고 있던 상의는 여밈이 없고 긴 상의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여성은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동물털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된 현재의 무스탕과 같은 스타일이다. 초본류를 상징하는 가죽 어플리케 장식을 붙인 것(그림 3)으로 코트의 뒤가 길게 꼬리처럼 달렸고, 앞은 여밈이 있는 형태이다(그림 4).

 

그림3.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모피코트 일부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 여성복원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여성은 모피코트 자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되었다(폴로스막 2001). 하지만 나중에 무덤에서 나온 금박은 가죽어플리케 장식에 달았던 것으로 옷에 달았던 것으로 보이며, 위에 상의(폴로스막은 모피코트로 추정)가 하나 더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나중에 나온 저서(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에는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그림 6)되었다. 미라로 출토될 당시에 두 손이 마주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폴로프막 2001)에는 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는데 무게가 실렸으나, 입관 당시에 어깨에 걸치는 방법으로 착용했다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그림 5. 아크 알라하-3 유적 여성미라의 모피코트에 달렸던 가죽어플리케를 장식했던 금박

 

그림 6.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여성미라 복원(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의 또 다른 유적인 카탄타 유적에서도 여밈이 있는 상의(카프탄이라고 부름)가 출토되었는데, 가죽으로 제작되었고 가죽어플리케 장식과 담비털로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이다.

그림 7. 카탄타 유적에서 출토된 상의(카프탄)

 

추나코바(2004)는 카탄타 유적과 파지리크 유적의 의복에 장식된 담비털은 이란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털로 그 세계관이 전해진 것으로 보았다.

그럴 수도 있지만 여밈이 있는 상의와 그 위에 장식판을 다는 것은 알타이 유적(파지리크, 아크 알라하-3, 카탄타)보다 훨씬 이른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호에서 이미 발견되는 것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아르잔-2호는 알타이 유적 보다 훨씬 뒤에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탁사이-1 유적과 이식 유적에서 여밈이 있는 상의는 시베리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흑해지역과 관련짓는다는 결론은 섣부르다. 거기에 달린 장식판들이 동물문양이고, 특히 십자형 그리핀은 알타이와 카자흐스탄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재지의 특징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Лукпанова Я.А. Реконструкция женского костюма из элитного погребения Таксай–1: Взгляд археолога // Поволж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1 (19), 2017. – С. 234–244(룩파노바 2017, 탁사이-1 유적 엘리트 무덤에서 나온 여성의복 복원

Чунакова О. М. Пехлевийский словарь зороастрийских терминов, мифических персонажей и мифологических симꠓволов. — М.: Издат. фирма РАН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2004. — 285 с(추나코바 2004, 조로아스트교의 용어, 신화적 인물 및 신화적 상징의 팔라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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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은 7개의 무덤이 일렬로 있는데, 유적발견당시 지역 주민들은 이를 가르켜 ‘칠형제’의 무덤이라고 부르면서 그대로 유적명이 되었다. 2001~2004년에는 성벽이 조사되었고 서쪽에는 회자가 남아 있다. 성벽의 평면도는 사다리꼴에 가깝다.

 

무덤은 약간 나지막한 흙 위에 벽돌로 된 석실을 만들고 통나무 뚜껑을 덮었고 그 위에 봉분을 쌓은 것이다. 7개의 무덤 중 2호와 4~7호는 일렬로 서에서 동으로 나란히 배치되었고, 3호만 약간 열을 벗어났는데, 쿠반 강의 지형조건 때문으로 생각된다. 무덤은 쿠반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거의 일렬로 서 있는데, 무덤이 있는 제방의 길이 때문이다.

7개의 무덤은 동시에 축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비교적 최근 연구에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가장 늦은 무덤이 1호와 2호 만들어졌다.

 

지도( 지점을 정확하게 찾음)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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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브라트니예 유적에서 나온 유물 중에는 유기질제 각배에 부착해서 장식했던 삼각형 금판 위에 그려진 동물문양 때문에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호랑이가 사슴을 등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졌는데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펠트장식의 문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유적에서 각배 뿐만 아니라 그리스 유물이 많이 나온다. 2000년대 발견된 성곽에서는 성곽의 통치자 이름이 적힌 일종의 비문이 나와서 성곽은 기원전 3세기 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덤은 기원전 5세기부터 축조되었다.

 

그림 1.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출토 각배장식판, 황금

 

맹수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파지리크 유적 뿐만 아니라 페르세폴리스(그림 2-a), 쿨-오바(그림 2-c),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2-d)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지만 기원전 7세기인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2-b)에서도 찾을 수 있다(그림 2).

 

그림 2. 세미브라타니예 유적의 동물문양과 같은 문양, a-페르세폴리스, b-켈레르메스, c-쿨 오바 d-표트르 1세의 콜렉션, e-세미브라트니예, f-파지리크 유적

 

이미 선학들이 연구했듯이 기원전 5세기 이후 스키타이 동물스타일에는 페르시아, 그리스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유물에도 스키타이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

 

그림 3. 쿨-오바 유적의 사슴장식, 기원전 7세기 코르트롬스카야 무덤에서 출토된 사슴방패장식을 모방해서 그리스 공방에서 만든 유물로 알려졌다.

 

그림 4.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장식판, 궁수

 

동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케르치 해협의 쿨-오바 유적과는 가장 다른 점은 무덤 구조이다. 쿨-오바 유적은 석벽으로 쌓은 천장이 높은 석실무덤이고,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은 석벽으로 쌓았지만 통나무로 무덤을 덮은 구조이다. 나무로 된 매장주체부는 기원전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 있었던 전통이다.

 

참고문헌

Горончаровский В.А. 2014 Семибратние курганы в контексте истории и древностей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Боспор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XXX // Симферополь, Керчь (고론차로프스키 2014, 흑해 북쪽의 세미브라트니예 무덤에서 확인된 고대역사)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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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이 보낸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황금여성상은 보기드문존재이다. 소형 여성상이 주로 만들어지는 시기는 시베리아의 후기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가운데 오쿠네보 문화이고 모두 골제로 제작되었다.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성을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 여성상은 나신으로 여성성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금으로 제작되었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흑해 북부, 크림반도, 코카서스 산맥 부근의 유적에서는 돌로 제작된 남성상들이 확인된다. 이 남성상은 기원전 7~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시간에 따라서 손에 들고 있는 각배, 허리띠, 무기, 장신구(목걸이), 헬멧, 손모양 등에 따라서 연대가 구분된다. 간혹 여성상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남성상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인 표트르1세의 황금여성상은 나신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은 팔찌뿐이고, 머리에는 모자? 와 같은 것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손 모양은 왼손이 위, 오른손이 아래이며 나란히 가슴 바로 아래 전면의 정중앙에 두고 있다.

 

2021.05.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18세기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1716년 12월 12일 표트르 1세에게 두 번째 소포를 보낸다. 그때 황제는 외국에 출장중이었고, 모스코프가 소포를 대신받았다. 이 사실은 표트르 1세와 함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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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남성석인상도 흑해북안과 카프카스 산맥부근에서 이런 손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기원전 7~6세기의 유적(그림 1,2)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유적 이후의 석인상은 각배(그림 3)를 들고 있다. 석인상의 손 모양은 손을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것, 마주하고 팔꿈치를 굽힌 것, 양손을 아래로 내려 놓은 것, 손 한쪽은 위+ 다른 손은 아래로 한 것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서 손모양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징을 황금 여성상에 대입한다면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몸을 말고 있는 맹수상과 같이 매우 이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입상),기원전 7~6세기, 살라뱐카 유적

 

그림 2.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좌상),기원전 7~6세기, 상단-비노그라도프카 유적

 

그림 3.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석인상(입상), 기원전 5세기, 테레노프카 유적

 

하지만 이 여성상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된 여성의 모습은 대부분 어떤 유물의 한 부분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예를 들면 거울) 옷을 입고 있다. 옷을 거의 벗거나 얇은 옷을 입혀서 신체를 드러낸 여성상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추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물에서 발견된다.

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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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성을 드러낸 청동기시대 유물도 대부분 옷을 입은 것으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흥미롭게도 머리카락 표현으로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다. 후기구석기시대 이후로 나신으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극히 드물다.

 

그림 4.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의 여성상(4~7), 남성상(8~10)

 

그래서 이 표트르 1세의 황금여성상은 손 모양은 스키타이 지역의 유물이지만, 나신이라는 점에서  불확실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Завитухина Золотая статуэтка из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оллекции.// СГЭ. [ Вып. ] XXXVIII. Л.: 1974. С. 41-44(자비투히나 1974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중에서 황금상에 대해서)

김재윤 2021,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 골제 인간형상물에 대한 검토」, 『영남고고학』, 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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