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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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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가운데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 중에 하나인 목걸이는 실제로 흑해 및 코카서스 부근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에서 발견된다. 특히 기원전 4세기 이후에 많은 양의 목걸이가 출토되는데, 금, 은, 동으로 제작되었다.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석인들도 목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은데 기원전 5세기 이후로 생각되는 석인상들은 목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아진다. 남성석인상(그림 1)이 대부분이지만 여성석인상(무기가 없음)도 이 시기에 발견되는데 3중으로 목을 감고 있는 목걸이를 착용했다(그림 2).

 

그림 1.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남성(81-올호프치크 출토, 83-마리우폴 출토), 남성이 걸고 있는 목걸이 처럼 꼬인 줄도 유적에서 실제로 발견된바 있다.

 

그림 2.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여성(프레그라드나야 석인상 1호)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목걸이는 남성, 여성, 어린이 무덤에서 모두 발견된다. 스키타이 장신구를 연구한 페트렌코는 목걸이가 내포하는 위세가 초원 스텝지역과 산림 스텝 지역에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초원지역에서는 크게 특권의식이 없는 무덤 부장품이지만 초원 북쪽의 타이가 스텝지역에서 발견되는 목걸이는 귀족의 재산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코롤코바는 위세품이라기 보다는 목걸이를 통해서 서로를 구분하는 인식표시로서 보았다. 그녀가 목걸이와 함께 팔찌를 일종의 인덱스처럼 여긴 것은 다양한 형태의 목걸이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목걸이의 회전 수, 목걸이의 종류(두꺼운 와이어, 안이 빈 튜브구조, 주조한 것, 구멍을 뚫은 것)와 동물장식 및 목걸이의 연결 방법이 다양한데 여러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목걸이 끝장식이 닫히고 나선형으로 회전된 토크(목걸이)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지역은 흑해북안인데, 대부분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이 지역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시작되는 기원전 7세기 및 기원전 6세기에는 이러한 형태가 발견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유적이 체르토믈리크 유적이다(그림 3-1,2).

 

그림 3. 1-체르토믈리크, 북서쪽 무덤방, 기원전 4세기, 2-남서쪽 무덤방, 기원전 4세기, 3-크라스느이 페레콮, 22호 2번 무덤방 기원전 4세기, 4-차얀 무덤 목걸이 끝장식, 기원전 4세기 5-아판-사르차 유적 출토, 목걸이 끝장식 기원전 5세기, 6-목걸이 끝장식, 7-코발레프카 5유적, 2번 쿠르간 2번 무덤방, 기원전 4세기

 

목걸이 끝에 달린 동물은 맹수의 전신이며, 귀 모양이 약간 씩 다르다. 표트르 1세의 목걸이와 팔찌도 목걸이 자체의 모양도 차이가 있지만 달린 동물도 머리만 달리것, 전신이 달린 것(그림 4-3) 등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

 

그림 4. 표트르 1세의 수집품

 

목걸이가 내포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코롤코바 및 페트렌코의 의견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롤코바의 2001년 글에서는 목걸이와 팔찌만을 이야기 했지만 대부분의 학자가 인식하듯이 머리장식도 집단을 상징하는 표식일 수 있다. 축구의 유니폼처럼. 흑해지역에서 목걸이가 특권의식이 없다고 보는 것은 시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다른 장신구는 주인공 무덤이나 그 외의 무덤이나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지지만 유독 목걸이와 머리장식 만은 주인공의 것이 눈에 띄도록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Петренко В.Г. Украшения Скифии VII-III вв. до н.э. М., 1978 // САИ. Вып. Д.4-5. С. 41.(페트렌코 1978,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의 장신구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우너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Королькова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в оформлении гривен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й эпохи.// Ювелирное искусство и материальная культур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1. С. 68-95. (코롤코바 2001, 스키토-시베리아의 목걸이의 형성과 동물장식에 대해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울란곰 유적은 여러 모로 인접한 러시아 알타이의 유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앞으로 차차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차이점도 상당한데, 필자의 눈에 띤 것은 청동솥이다.

추야강 유역의 유스티드 XII 유적, 졸린 유적, 울란디르크 유적 등에서는 청동솥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기원전 4~3세기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크기가 매우 작은 것으로 10cm 보다 약간 크고, 그 안에 불에 달군 돌과 향료씨앗등이 발견되어서 향로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33호의 청동솥(그림 1의 1번)은 2700년 전(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유물과 닮아 있고 크기도 비슷하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아도 근거리에 위치한 추야 계곡의 무덤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에서 발굴된 청동솥

 

울란곰 유적의 나무방무덤인 23호는 7인이 매장된 곳이다. 무덤의 크기는 2.4×2.4m, 깊이는 1.1m이다. 통나무가 아닌 나무판자를 남동-북서쪽에서 깔았고, 무덤방의 덮개는 이와 교차되게 덮었다. 무덤 안에는 남성 4인, 여성 1인, 아이 1인이 같은 무덤 안에 있다. 두향은 북서쪽이고, 굴신장을 한 상태이다.ㆍ.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23호 나무 무덤방

 

그림 2에서 가장 왼쪽의 I호 인골은 남성(나이모름), II호 25세의 남성, III호 여성, IV호 남성(50~55세), V호(1~2세) 유아, VI호 남성, VII호 여성이다. 인골은 모두 돌 베개를 베고 있었다. VI호와 VII호 남녀는 앞 그룹의 사람들과 약간 떨어져 있다.

이 중에서 IV호 남성이 부장품이 가장 많다. 머리 위에는 항아리, 허리뼈 근처에는 청동송곳과 철제 축, 맹수장식의 청동장식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동화살촉, 철제 전투용도끼, 청동칼과 각 종 화살통 청동 장식이 있었고, 엉덩이뼈와 대퇴골 아래에는 일종의 사슴뼈가 발견되었다.

IV호 남성 외에도 청동화살촉이 있었던 사람은 VI호 남성과 III호 여성이다. VI호 남성은 청동 화살촉 5점, III호 여성은 3점 청동화살촉, 2점 골제 화살통과 함께 부장되었다. 모두 머리쪽을 향했고 화살통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용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떤 철제품과 유리구슬도 함께 부장되었다.

III호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보는 방향이 다르며, 화살통을 가지고 있던 여성이다. 직업을 보여 주는 유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사실 여성전사는 이미 아르잔-2호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유적의 22호묘 여성은 오른쪽 쇄골에 남은 근육의 흔적이 매우 발달한 것으로 보아서 활을 많이 쏘았던 여성으로 전사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0.06.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시베리아 투바의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아르잔-2호는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무덤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장례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는 매장주체부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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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7인은 한 무덤 안에 다같이 들어갔을까? 시간차이를 두고? 아니면 동시에? 2인장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유적에서 가장 많은 사자(死者)가 발견된 곳은 9인이 발견된 곳도 있다. 이런 유적을 요즘 발굴한다면 각종 분석을 해 볼 수 있을 텐데...

 

더보기

노보고르도바가 보고한 울란곰 유적은 1989년 러시아에서 출판되었지만, 그 속의 내용을 읽어보면 1980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에 울람곰 유적의 내용이 이미 다 출판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필자가 이 책을 여기저기 찾다가 러시아의 중고책 서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여러 판매자가 중고책을 파는 사이트 인데, 내가 찾은 판매자는 아마도 유대인인 듯 한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살면서 책을 판매하고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찾은 이유는 러시아 책의 도면이 너무 간략해서 이다. 어쩌면 노보고르도바는 단행본으로 자신의 도면이 책에 나왔기 때문에 매우 축약된 것만 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독일어는 모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몽골의 울란곰 유적은 러시아 학자들이 발굴해서 독일과 러시아에서 출판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독일어 책은 러시아국적의 유대인이 이스라엘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40년이 지나서  한국에 있는 내가 산 것이다. 오기만을 기다린다.  내가 유학갈때 책과 여러 물건을 배로 붙인적이 있다. 항공료는 너무 비싸서 그냥 배로 붙였다. 석달이 걸려서 러시아에서 받았는데, 부산서 출발한 그 상자는 일본부터 유럽 각국의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사진이 없는게 참 아쉽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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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3. 8. 12:33 스키타이 무기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 실릭티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화살은 단면(자른면)이 원형이고 양쪽으로 능이 붙은 형태이고, 평면은 자루를 끼울 수 있는 슴베가 있는 모습이다. 알타이의 기원전 7세기경에 발견되는 화살촉과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르다. 능이 같은 간격으로 3개 달린 것이 알타이의 기원전 7세기 유물이다.

 

그림 1. 실릭티 유적의 화살촉

실릭티 유적 보다 북쪽에 위치한 베렐 유적은 알타이의 산 자락에 위치했는데, 알타이의 높은 곳이 아니라 해발 1000m에 위치한 유적이다. 우코크 고원(2500m), 파지릭 계곡(1500m)보다 훨씬 낮다.

 

베렐 유적에서도 화살이 발견되었는데 청동과 골제 화살촉이다. 청동화살촉은 중앙에 원형의 빈곳 없이 삼각형에 가깝고 슴베 부분(자루에 끼우는 부분)이 길게 나와있다. 실릭티와 같은 유물은 막대를 화살촉 안으로 삽입하는 것이고, 베렐 유적의 화살촉은 나무 막대에 끼우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베렐 유적의 골제 화살촉은 슴베 부분이 없고 촉의 중앙이 비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골제 화살촉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림 2. 베렐 유적의 화살촉

 

쿠바레프(2007)의 의견에 따르면 베렐 유적과 같은 청동 화살촉(그림 2)과 골제 화살촉은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 이후의 유물이다.

 

베렐 유적은 실릭티 유적과 같은 국경(카자흐스탄)에 위치하지만 각각 산지, 평지에 위치해서 무덤의 구조 및 유물이 매우 다르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2. 2. 13:23 스키타이 동물장식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기원전 7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간두령 및 끝장식이라고 불리는 유물은 그리스 문화의 유물이 많아지는 기원전 5세기 및 기원전 4세기에도 발견된다. 방울 위에 동물을 부착하는 기본구조는 같지만 동물과 방울의 모양은 달라진다.

 

동물의 모양은 쿠반 강 유역의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에서 보이는 동물장식처럼 납작한 청동판에 음각을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로 사슴(그림 1-3, 4)과 그리핀(그림 1-1,2)이 많이 발견되는된다. 사슴의 뿔은 소용돌이 같고 견갑부는 나선모양이다. 톨스타야 마길라에서 출토된 방울은 사슴모양과 가깝지만(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그림 3)은 거의 동물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나선문양, 뿔만 강조되었다.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의 청동방울에 달린 사슴(그림 1-3)은 눈의 모양이 원형이 아니라 옆으로 찢어진 모양이다. 그리핀(그림 1-1,2, 그림 2)은 날개를 위로 치켜올리고 있고, 턱 아래에는 알 수 없는 긴 수염?같은 것이 붙어 있다.

 

그림1.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1~4)과 체르토믈리크 유적(5)

 

그림 2. 톨스타야 마길아 유적(그림 1-4와 동일)

 

그림 3. 체르토믈리크 유적

 

그런데 이 유적에서 발견된 장식패식(일종의 치레걸이)(그림4)에는 납작한 장식패에 새의 머리를 입체적으로 붙인 유물이 여러 점 발견되었는데 그리스 장인이 제작했다고 한다(모졸레프스키 1979). 비슷한 방법으로 표현된 유물이 간두령 장식에 부착되는 현상이 있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경(알렉세예프 2003)에는 간두령 장식에 그리스적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보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림 4.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의 장식패

 

그렇다면 간두령 장식은 스키타이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스키타이 이전의 청동기시대 후기 코반 문화의 청동장식이 붙어 있었다. 기원전 5세기가 되면 그리스적인 동물장식이 붙는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 후반 체르토믈리크 유적(알렉세예프 2003)의 간두령 장식(그림 3)은 그런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체르토믈르크 유적의 간두령 장식은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출토품에서 이어 받아서 추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원전 5세기 이후의 간두령 장식은 이러한 계통만 있는 것일까?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Мозолевській Б.M. Товста Могила. Київ, 1979, с. 40(모졸레프스키 1979, 톨스타야 마길라, 우크라이나어, 도면참고, )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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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9. 13:18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4세기 흑해의 쿠반 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사자머리 그리핀은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물과 비교했을 때 원칙적으로 연관되는 부분도 있고 변형되는 것도 있다.

 

그림 1의 예를 둘어 보면 입을 벌리고 있고, 귀가 붙은 점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은제 거울이나 청동 간두령에 붙은 그리핀과 유사하다. 그러나 입이 더 벌어지고 재갈멈치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앞발과 함께 몸통이 붙은 것이다.

 

2021/01/06 - [스키타이 동물장식] - 독수리머리 그리핀

 

독수리머리 그리핀

독수리머리 그리핀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귀, 목, 부리로 구분해서 살펴 볼 수 있다. 귀는 조류의 특징이 아니지만 독수리머리 그리핀이라고 불리는 유물에는 하늘로 솟은 귀가 있으며, 긴 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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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투즐라 네크로폴리스(쿠반 강 유역) 출토

 

이들 유물은 아케메니드 유형의 사자머리 그리핀으로 여겨진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림 1과 비교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유물로 인해서 그리스 문화로부터 동물문양이 스키타이 문화에 생기게 되었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리스의 유물이 더 늦다기 때문에 이는 모순이라고 이미 포스팅했다. 이 유적의 거울은 알렉세예프(2012)도 카프카스 남쪽의 아나톨리 지역에 있었던 우라르트에서 제작했을 가능성도 지적한 바 있다. 만약 기원전 4세기 쿠반강 유역의 유물이 아케메니드 왕조의 유물을 변형한 것이라면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원전 7세기의 유물도 아나톨리 및 서아시아지역에 있던 한 국가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

 

기원전 5세기 이후 쿠반강 유역의 동물문양장식은 매우 도식화, 추상화 혹은 스타일화 되었다(좋은 말로 그렇고 솔직히 어떤 동물인지 구분이 안가도록 뭉그러뜨리게 만들었다. 더 이상 동물문양에 의미를 두지 않는 느낌이기도 하다). 눈이 매우 크고 둥글어 머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입 모양이 벌어져서 눈과 맞닿아 있다. 도식화된 동물장식은 간두령(그림 2)장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 출토 간두령장식

 

그림 1의 유물은 이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잘 알려졌고, 페레보드치코바는 이란의 유물표현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쿠반 강 유역(흑해의 동북해안가?)의 유물은 흑해 북안의 유물과는 구분된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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