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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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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3km 떨어진 곳에 붙였다.

학자들은 이곳의 이름을 아크 알라하 1유적이라고 주소를 붙였고, 유적에서 1호분에는 어제 이야기 한 15세 가량의 유로포이드 소년과 함께 45~50세의 유로포이드 남성으로 밝혀졌다. DNA분석법으로 두 명다 남성으로 밝혀졌는데, 둘이 아버지와 아들일 가능성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한다(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어쨌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고 처음에는 알았으나, DNA분석법이 도입되면서 전혀 다른 양상이 밝혀졌다.

 

소년의 무덤과 크기가 약간 크지만, 중년 남성의 무덤 부장품도 용도가 같은 유물도 있지만 생김새는 다르고, 소년의 무덤에는 있는 유물이 중년남성에게는 없는 유물도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왼쪽 소년, 오른쪽 중년남성의 관

 

그는 몸을 편채 오른쪽으로 누워있었고, 두향은 동북쪽이고 손은 팔꿈치 쪽으로 굽혀 있었다. 머리아래에는 바닥이 편평한 목침(48×23×8.5cm)이 있었는데, 소년의 것보다 크다. 목침 근처에는 새머리 고깔모자가 확인되었다. 고깔모자의 가장 정수리 부분을 장식하던 새머리 장식과 분리된 채였다.말과 사슴에는 금박을 입혔을 것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의 새머리 고깔모자

 

이 남성도 목에는 목걸이를 착용했는데, 목제로 제작되었고 금박을 입힌 것이었다. 표범 두 마리가 마주보고 사슴머리를 같이 물고 있으며 그 아래에도 사슴머리가 표현된 것이었다(그림 3). 목제 귀걸이도 확인되었다. 두개골에는 검은색의 직모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목 근처에는 양모로 만든 끈이 여러 갈래로 만들어진 매듭이 확인되었다. 끝에는 둥근 술이 달려 있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의 목제 목걸이의 앞 장식

 

허리춤에는 목제로 제작하고 금박을 입힌 허리띠의 부속품과 허리끈이 확인되었다. 모두 6점인데, 4점은 2점씩 짝을 이루어 양쪽으로 대칭되게 제작되었고 가장 끝에 두 점은 각각 모양이 다르다. 가장 중심의 동물모양장식은 표범이 조각되어 있는데 2점(그림 4-3,4)이다. 동물모양장식 허리끈 부속품 옆에는 허리띠 장식은 부채꼴모양이 새겨져 있다. 가장자리에 네모꼴 프레임을 새기고, 그 안에 3열로 부채꼴이 새겨졌는데, 열과 열의 부채꼴 방향은 다르다(그림 4-2,5). 가장 하단의 중앙에는 긴네모꼴로 구멍이 뚫려져 있다. 이 허리띠 장식도 2점이다. 가장 끝에 허리띠 장식은 크기가 가장 작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오른쪽에 오는 부분은 부채꼴 모양이 3열로 새겨져 있는데(그림 4-1), 가장자리의 네모꼴 프레임과 구멍이 없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왼쪽의 네모꼴은 무문양으로, 하단의 중앙에 네모꼴 구멍이 있다(그림 4-6).

허리부근에서 불로 만든 빗이 확인되었고,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날이 위로 향하게 한 투부가 확인되었다(그림1).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전사의 허리띠 부속품, 상단은 중년남성의 것, 하단은 소년의 것이다.

 

오른쪽 대퇴골 근처에는 상태가 않 좋은 목제 칼집과 그 안에 철제 단검이 들어있었다. 왼쪽 대퇴골 근처에는 이미 형체가 없어진 활집에 붙어 있던 목제가 붙어 있던 것이 발견되었다. 일렬로 구멍은 남아 있었지만, 소년의 화살통처럼 동물문양장식은 없었다. 활대가 붙은 화살 5점과 조합식 활의 목제부분도 남아 있다.

 

남성은 펠트제 붉은색 바지와 펠트로 만든 신발도 신고 있었다.

 

소년의 관에서는 자안패, 거울, 목제칼 등이 발견되었으나 이는 중년 남성의 무덤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소년의 관에서는 고깔모자는 발견되지 않고 목침 위에 말모양장식등이 확인되었는데, 모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안패, 거울, 목제칼과 함께 충분히 여성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발굴당시(1990년)과 보고서가 출간된 해(1994년)에는 인골분석에 DNA분석은 그 때까지 고고학에 도입되기 전이기 때문에 단순히 뼈를 보고 여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학자들은 보고 당시에는 바지를 입은 소녀전사정도로 생각했다.

 

둘 다 남성인 것이 밝혀졌 진 덕에 소년의 목침 위에 있던 산양모양 조각도 용도가 분명해 졌다. 모자장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모자장식 부속품, 산양장식. 뿔이 빠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유물은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 활과 화살통, 목제 목걸이와 귀걸이, 허리띠 버클과 고깔모자 등이다. 하지만 용도는 같지만 전부 모양이 달랐다. 하나만 빼고,. 그것은 매듭이다. 매듭은 두 관에서 출토된 유물이 거의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되었다.

 

 

둘은 어떤 연유로 같은 무덤에 묻히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면.,,

 

참고문헌

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Пилипенко А.С., Трапезов Р.О., Полосьмак Н.В. Палеогенет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носителей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з могильника Ак-Алаха-1 (Горный Алта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Изд-во Ин-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5, том 43, № 4, с. 144 — 150(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된 파지릭문화인의 고인류학적 분석)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라고 불리는 고원에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30세가 안되는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별명은 얼음공주이다.

앞에서 얼음공주의 머리 정수리 장식 중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판을 넣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가 또 있는 것이 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5섯 마리의 동물이다. 가장 첫 번째 왼쪽 어깨와 가까운 부위에는 영양과 사슴의 뿔을 도식화 한 것이고 다리엔 굽이 달려 있고 날개가 달려 있어 그리핀으로 보인다(그림4).. 그 아래에 몸통을 비틀고 있는 얼굴모습이 다른 그리핀이 그려져 있다. 하완골의 시작부위에는 뒤를 바라보는 양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양의 다리쪽에는 기다란 꼬리를 늘어 뜨린 점박이 표범이 표현되었다. 그 밑으로는 머리가 없는 육식동물의 몸통이 남아 있다(그림1,그림3)발톱을 드러낸 발과 얼룩무늬 호랑이 꼬리, 사슴몸통으로 이루어졌고, 등허리에는 도식화된 그리핀의 머리가 달려 있다. 사슴의 끝머리에는 그리핀의 머리로 장식이 되었다. 여성미라의 왼쪽 손목에는 뿔이 늘어진 사슴머리가 보인다(그림 1).

오른손 하완골에는 비틀어진 몸통이 그려졌는데(그림 1의 오른팔 참고), 양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게 무슨 동물인지 알기 어렵다. 오른손 엄지손가락(그림5 )에도 문신이 그려졌다.

 

이 여성의 문신은 바늘을 찌르는 방법으로 문신을 새겼다. 바늘을 찔러서 피부 깊숙이 색소 성분을 침투시켰는데, 그 성분은 루덴코에 따르면 그을음으로 추정된다. 문신을 넣기 전에 밑그림을 그렸는지, 아니면 스탬프 같은 것으로 밑그림을 찍어 놓고 문신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무기화학연구소와 촉매화학연구소의 도움으로 엑스레이기법과 미세현미경을 이용해서 살갗을 스캐닝했다. 20마이크론 정도의 범위에서 칼륨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점들이 드러났다. 칼륨함유가 많은 것은 문신에 쓴 색소가 식물계통으로 식물을 오래 태워서 얻은 재나 숯에서 얻어낸 경우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 보다 이전에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확인된 남성미라(그림 6)의 몸에 새겨진 문신,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에서 확인된 문신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새기는 방법과 스타일, 모티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파지릭 유적은 1948년에 미라가 발굴되었는데, 60세의 몽골로이드 남성이었다. 그의 양쪽 팔, 등허리의 상부, 정강이(그림 6) 등에 환상적이며 사실적인 동물을 그려넣었다(루덴코 1949). 파지릭 유적의 미라 설명은 다시 할 예정이다.

베르흐 칼쥔-2 유적 3호분에서는 젊은 남성의 왼쪽어깨에만 굽이 달린 환상의 동물 그리핀이 그려져 있었다. 베르흐 칼쥔 2 유적에서 확인된 남성의 어깨에는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여성과는 다른 스타일의 그리핀이 있다. 최소 4마리가 혼합된 문양이다. 몸통은 사슴인데,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또 다른 표현으로 굽달린 다리가 표현되어 있고, 날개도 표현되었다. 사슴의 배쪽에는 그리핀의 머리가 그려졌다(그림 2).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3구의 미라에 새겨진 문신이 모두 한 사람의 기술자가 새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분석된 나이테연대측정법의 결과 이 세 유적을 매장한 시기는 매우 가깝다. 특히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과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은 거의 동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어떤 관계였는지, 심히 궁금하지만, 그런 연구는 없었다. 아니면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재밌는 스토리라인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왼쪽 팔 문신(국립중앙박물관 1995)

 

 

 

그림 4.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왼쪽 어깨 사슴문양문신(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그림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문신이 새겨져 있다. 미라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얼음이 녹아서 그녀에게 접근가능했을때 미라의 팔뚝은 탄력이 남아 있어서 누르면 부드러운 느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림 6.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미라.

 

 

 

참고문헌

 

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문명전

루덴코 1949, Руденко С.И. 1949 : Древнейшая «скифская» татуировка. // СЭ. 1949. №3. С. 133-143.(루덴코 1949, 고대 스키타이인의 문신에 대해서)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그 중에서도 우코크 고원 중에 아크-알라하 3유적이라는 곳에 뭍힌 미라는 머리, 목, 손 등을 복원에 힘썼던 것으로 평가된다. 모든 미라가 똑같이 복원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이야기가 최초로 적힌 역사서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는 미라 처리 방법 중에 몸 속에서 내장을 다 꺼내고, 그 안에 생강, 향료, 아니스 씨를 넣고 다른 부족으로 장례를 치르러 가는 모습을 그린 바 있다.

 

카메네츠키라는 러시아학자는 헤로도투스의 텍스트를 현대어로 다시 번역해서 어떤 종류의 식물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냈다. 사초(Cyperus longus L), 향초ㅡ 셀러리의 씨앗(Apin graveolens), 아니스(Pimpinella anisum L)등이다. 그러나 이런 식물은 헤로도투스가 본 지역을 헤깔리게 한다. 카메네츠키(1995)는 잉런 식물은 소아시아, 이란, 쿠르디스탄 까지 가서 전쟁을 불사해야 얻을 수 있는 약초로 설명했다.

그림 1. 사초(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분소 식물연구소에 소장된 현대초본류의 표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의 내부는 무엇으로 치워졌을까?

자잘한 양털, 말총, 잡초, 사초, 이삭, 뿌리 등 식물섬유로 채워졌다. 말총은 절단면을 꿰맬때도 사용했다. 러시아 알타이 파지릭유적의 미라, 중국 신강성의 수바쉬 유적의 미라에도 말총이 사용되었다.

미라의 내부에 식물성 섬유를 채워 넣는 것은 비단 알타이에서만이 아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 뱃속에도 큼직하게 자른 싹들과 뿌리로 채워졌다.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 베레쉬 유적의 다인묘에서도 가슴부위와 배주변을 잡초를 채워넣는다. 시베리아는 아니지만 페루의 미라에서도 구멍뚫린 두개골 안에는 잡초와 재를 채워넣었다.

 

가슴부위에는 아주 검은색으로 탄화된 물질들이 채워져있었다고 한다. 말총, 식물잔편, 모래 등이 섞였다. 대부분 탄화되었는데, 탄화되지 않은 물질을 현미경으로 일일이 골라서 가수분해 한 결과 내장의 일부로 분석되었다.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파지릭문화에서는 내장을 충전물과 한덩어리로 섞어서 다시 미라로 돌려보내주었다. 이는 이집트와 티벳에서처럼 내장을 따로 보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알타이 산맥의 미라가 잘 보존된 이유는 얼음도 한몫을 했지만, 방부제 역할을 한 물질이 있다. 바로 수은이다. 미라의 피부 표면에서 검출되었다. 무덤이 물에 잠기면서 수은이 흡착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미라의 가발, 모자, 다른 곳에서는 수은이 검출되지 않고, 피부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수은화합물을 사용했다. 이집트의 미라에서는 수은이 검출되지 않았다.

우코크 고원에서 멀지 않은 악타쉬 지역에 주사(朱砂)광산이 있다. 주사의 주 성분이 수은이다. 아크-알라하 3유적을 포함한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주사를 광물제 염료로 써서 목제와 가죽제 물건을 채색해는데 썼다. 금광에서 금을 캐고 금박장식을 만들기 위해서 수은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라의 몸에 섞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발삼(balsam)처리라고 한다. 발삼은 여러 향료가 들어간 일종의 고형에 가까운 기름이다. 좀 더 쉽게 이해하면, 연고가 일종의 발삼이다. 미라에게 발삼처리를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조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만 사후의 삶이 이어진다는 의식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에서 신을 조각내야만 그가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인간과 신은 동격이니, 미라로 만들어야 부활을 위한 담보가 된다. 고대 이란인들에게도 육체를 부활하려는 희망이 있었다는 여러 문화의 예를 보고,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에게도 그런 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참고문헌

카메네츠키이 1995, Каменецкий И.С. О бальзамировании умерших царей у скифов//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альманах(Армавирского краеведческого музея). Армавир; Краснодар; М.: (카메네츠키이, 1995,스키타이 죽은 왕의 발삼처리에 대해서.//역사고고의 연대기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방 안과 관속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관의 뚜껑을 열자 얼음속에서 가장 머저 드러난 것은 머리부분이다(그림1). 이 여성은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무릎은 살짝 굽히고, 손가락은 팔꿈치 쪽으로 굽혀서 배쪽으로 손을 모은 채 누워있었다(그림 2,3).

 

그림1. 관의 뚜껑을 열고 내부를 정리하는 장면

 

그림 2. 관 속

 

그림 3. 주인공의 손 모습과 전체 모습, 목걸이

 

통나무관의 바닥과 시신의 바닥에는 펠트제 깔개가 깔려 있었다. 펠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한다. 주인공은 가발을 쓰고 있었는데, 상반부와 통나무관의 상부 1/3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주인공이 입고 있는 실크로 만든 여밈없는 긴 블라우스와 긴 치마(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타이즈도 신고 있었다. 펠트, 옷과 타이즈 등은 따로 설명한다.

 

 

주인공의 대퇴부 부근에는 펠트로 만든 주머니 속에서 청동거울이 있었다. 나무틀 안에 보는 경면이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나무 손잡이의 끝에는 구멍이 남아 있었다. 손잡이 부근에는 다양한 색깔의 구슬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에는 사람의 어금니도 있었다.

 

그림 4. 청동거울, 구슬과 화장품 출토장면
그림 5. 청동거울의 뒷면

 

목에는 목걸이(그림 3)가 있었는데, 표범장식(그림 6)이 붙어 있었다. 이 장식은 표범의 머리부분이 살짝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는데, 나무판으로 제작한 후, 금박으로 장식되었다. 금박은 얼음이 녹으면서 찢겨 나가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림6. 목걸이의 가장 중앙장식
그림 7. 아크-알라하 3유적 1호분 여성 주인공의 목걸이, 필자촬영

이 여성의 머리에는 높이 61cm의 말총가발이 있었고, 가발은 고깔모자(그림 9)가 씌어져 있었다. 모자에는 15개의 금박을 입힌 목제 장식(그림 10)이 붙어 있었다. 가발에는 금박을 입힌 배지처럼 앉아서 상체를 돌린 모습의 사슴모양 목제 장식을 붙였다. 머리의 정수리에는 머리를 모아서 꼬아 올려, 붉은 주머니로 쌓고 그 끝에는 사슴모양 장식이 붙어 있었다(그림 11). 나무로 다리를 굽힌 동물모양(그림 11의 가장 왼쪽)을 원형장식위에 올린 것이다. 금박되었다. 귀걸이도 착용했는데, 둥근 고리모양이다. 그 부근에 석제 그릇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탄화된 고수의 씨앗(그림 8)이 있었다.

 

 

 

 

그림 8. 석제 그릇
그림 9. 꼬깔모자
그림 10. 꼬깔모자 장식, 목제, 새

그림 11. 가발을 여성 복원도, 가장 왼쪽이 정수리를 장식한 사슴장식이다. 다리를 굽히고 있다. 오른쪽은 미라의 머리를 근접해서 찍었는데, 미라제작은 따로 설명할 예정이다.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 중 아크 알라하 3유적이라고 하는 유적의 1호분의 주인공인 이 여성은 일반인들에게는 얼음공주라고 알려졌고, 좀 더 자세하게는 샤먼의 지위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성샤먼인지, 가장 최상급의 신분이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이는 부장품 때문이다. 현재 가장 최상급 무덤은 알타이 산맥에서는 또 다른 유적인 파지릭 고분이 최상급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그 무덤의 크기 뿐만 아니라 부장품의 양과 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파지릭 무덤에서는 마차가 통째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이야기 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번달의 주인공인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부장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림은 7번을 빼고 아래 책을 참고했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put-k-nebesnym-pastbishcham/

https://scfh.ru/papers/dvadtsat-let-spustya/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갑자기 어제 오늘 이 키워드로 많이 찾아오셔서 ....

시베리아 카테고리의 신석기시대, 순동시대, 청동기시대가 다 채워져야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이 문화에 대해서 자세하게 포스팅 할 예정인데, 머 하나씩 해 두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문화라고 불리는 시베리아의 철기시대문화에서는 미라가 확인된다.

필자가 대학교 입학하던 해인 1995년에 한국에 알타이 미라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에서도 순환전시를 한 적이 있다. 너무 전시가 어둡고 유물전시물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해 놓아서 미라의 얼굴은 생각이 안난다. 내가 그때는 러시아 유학갈꺼라고 생각도 안했다. 여담이지만.

 

먼저 알타이 미라의 복원문제를 접근 하기 위해서는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알타이 미라를 복원했는데, 유럽인이라더라...아니다 등....

(역사와 정치의 문제이다)

 

알타이는 산맥의 이름이다. 알타이의 굽이굽이 산맥은 사람이 안 살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 즉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 산 위가 아니라 산과 산 사이에 유적이 위치한다. 이런 지형을 러시아어로는 돌리나долина라고 하고, 우리나라 말로는 계곡이 가장 적당하다. 그런데 한국어로 계곡이라고 번역하면 그 뉘앙스가 아주 좁은 계곡에 물이 흘러내리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알타이의 그 산 사이의 그 분지 같은 계곡을 단순히 계곡이라고 번역하기 힘들다.(초창기에는 그렇게 번역을 많이 했다.)

 

하여간 산과 산사이의 평탄지, 낮은 곳으로 완전한 분지는 아니지만 아늑한 곳에 유적이 많다. 알타이 산맥 사이에서는 특히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많이 남아 있는 돌리나 곳이 ‘우코크’이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Ploskogor'ye+Ukok/@47.2032452,86.9194223,5.46z/data=!4m5!3m4!1s0x42b77554a0669b95:0x2fcb81f24cd72647!8m2!3d49.3333333!4d87.5?hl=ko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kr

이 우코크(Укок, Ukok)고원의 무덤에서는 여성미라가 출토되었다. 우코크 고원의 무덤에 관해서는 너무 많은 내용이라서 올해 차차 해 보도록 하겠다. (사실 필자는 신석기시대부터 차례대로 하고 싶은데,)

 

그런데 이 여성은 살아서도 매우 인기가 많았겠지만, 죽어서도 인기가 너무 많아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여성이 발견된 무덤이 있는 유적의 이름은 아크 알라하-3(Ак-Алаха-3,Ak-Alakh-3) 유적이다. 1993년 폴로시막(Наталья Викторовна Полосьмак)이라는 여성 고고학자가 책임을 맏아서 발굴을 하였다. 이 유적은 기원전 5~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필자가 앞에서 포스팅한 사진은 직접 찍었는데, 그때가 2008년인가 였다. 이 미라는 그 때까지 폴로시막 박사가 연구하는 연구소의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2012년에 알타이공화국의 고르노-알타이 시(г. Горно-Алтайск, Gorno-Altaysk)의 아노히나 박물관(музея имени Анохина, Anokhin National Museum)으로 옮겼다.

 

즉 필자가 사진을 찍은 연구소박물관은 노보시베리스크 시의 연구소 박물관에서 찍은 것이고 2012년은 알타이공화국의 박물관으로 옮겼다. 미라 입장에서는 알타이에 쭉 매장되었다가 연구소에서 발굴해서 노보시베리스크로 갔다가 다시 알타이로 돌아온 곳이다.

 

2018/05/02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무덤과 집

 

무덤과 집

앞에서 과거의 무덤은 살아 생전의 집을 옮긴 것에 대해서 신석기시대의 사례를 예로 들고 살펴보았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22?category=714181 그런데 또 필자가 알고 있는 그런 사례를 설명하고자..

eastsearoad.tistory.com

 

알타이공화국은 중국으로 치면 소수민족자치구이다. 러시아는 소수민족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각 지역에 공화국을 인정한다. 러시아연방소속이지만 자기네들의 자치법도 있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알타이 사람들 신화에는 땅 밑에 있는 공주를 건드리면 재앙이 닦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20년간 알수 없는 지진과 홍수 등이 모두 알타이 미라를 꺼내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서, 알타이로 다시 돌아온 공주를 땅속에 뭍기로 결정했다.

알타이의 영적 센터에서 회장은 샤먼인데, 이 분과  몇몇 사람이 알타이 법원에 박물관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 했으나 졌으나, 국제법으로 소송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상한건 예전에 필자가 본 미라의 얼굴복원 모습은 유럽인도 아니고 아시아인도 아니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사람들은 인도-유럽인종이라는 생각 혹은 연구가 팽배했었다. 그런데 위의 일이 있은 이후로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모든 알타이 미라의 복원된 얼굴은 유럽인에 가까웠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몰로딘 박사는 우코크 고원에서 발굴된의 미라는 공주도 아니고, 중간계급정도이고 어쨌든 이제 알타이에 있다......그리고 알타이의 모든 자연재해가 이 우코크 고원에서 발굴된 미라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 알타이의 다른 유적인 파지릭 무덤에서 미라가 발굴이 첫 번째이고, 그가 계급적으로도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 인터뷰가 신문에 실린적이 있다'.(«Эксперт Сибирь» №19(161)

https://web.archive.org/web/20070525114358/http://www.expert.ru/printissues/siberia/2007/19/interview_arheolog_molodin/

 

*참고로 인터뷰한 몰로딘 박사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대표적인 책임수석연구원의 자격으로 인터뷰 했지만 사실은 우코크 고원 발굴책임자인 폴로시막 박사의 남편이다^^

 

미라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계속 포스팅 해 드리겠다. 최근에 떠 돌아다니는 여성미라의 얼굴복원에 관한 내용도 정보를 좀 더 수집해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