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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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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우랄의 스키타이 문화인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청동솥, 목제 그릇, 아키나케스 검 등이 출토되면서 이곳 역시 스키타이 문화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봐온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늘 마구도 빠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어제 설명드린 철제 장검, 아키나케스 검은 무덤의 동편입구에 있는 작은 구덩이(직경 35~40cm, 깊이 150cm)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곳에는 재갈, 청동과 금으로 만들어진 굴레장식(그림 1~3), 숫돌이 출토되었다.

특히 굴레장식은 스키타이 그리핀이 출토되었다. 맹금류인데, 귀와 머리에 벼슬이 달려 있는 그리핀의 머리이다(그림 1). 맹금류에 귀와 벼슬이 달려서 합성된 동물이긴 하지만 그 조합이 명확하지는 않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의 주둥이가 매우 길고 어색한 것처럼 이 유적의 그리핀도 동물의 특징이 명확하지는 않다. 이 유물은 하단에 정방형으로 끈을 끼울 수 있게 받침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핀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굴레를 장식하는 방법은 약간 다른 유물도 있다(그림2). 끈을 따라서 부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앞면만 그리핀이 있고 뒷면은 꼭지가 달려 있다.

그리핀 2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에 붙은 것도 있는데, 그림 3과 같이 눞여도 그리핀의 부리와 눈, 귀가 보이고, 세워도 그리핀이 보이는 모양이다(그림 3). 역시 굴레장식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출토 그리핀 굴레장식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출토 그리핀 굴레장식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출토 그리핀 굴레장식

 

알타이 그리핀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데, 어떤 동물이 결합되었는지 알 수 있지만 실제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그리핀은 부리로 보아서 맹금류라는 것은 알수 있지만 머리모양은 정확하게 호랑이 머리인지 사자머리인지 명확하지 못하다.

 

그 외에도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모양의 마구가 출토되었다. 원형의 금제 장식판과 굽은 모양의 철제판이 함께 조합된 모습으로 출토되었다(그림 4, 5).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출토된 모습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출토 장식 혹은 마구?, 모두 2쌍 출토, 그림 4와 동일, 위 제품은 철제(제일 위의 유물 끝에 붙은 것은 금), 아래는 금제

 

그림 4와 5는 정확하게 말에 어떻게 착장되었는지는 모르지만 2쌍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서 마구와 관련을 시킨다. 위의 그리핀굴레장식과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남부 우랄 지역의 스키타이 문화인 이른 사르마트 문화(혹은 사브로마트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은 필리포프카이다. 1호가 가장 크고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뉴욕에서 유물이 소개된 적도 있다. 특히 1호의 왼쪽에 위치한 감실(100×50cm, 깊이 90cm)에는 원래 이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황금사슴과 함께 외국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2020/1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필리포프카 유적] -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황금사슴 아래에는 금으로 된 쿱신(액체용기담는 그릇)(그림 1-1), 리톤(rhyton, 각배)(그림 1-2,3), 반구형 펜던트(그림 2), 동물문양장식(그림 3~6)이 출토되었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반구형 펜던트, 높이 4.8cm(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산양(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쌍봉 낙타(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높이 4.1cm, 너비 5.2cm, 그림 4의 낙타는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어서 어딘가에 붙여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맹수머리(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필리포프카 사슴(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이중에서 페르시아 유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손잡이에 산양이 장식된 쿱신과 각배이다. 실제로 페르시아에서 출토된 각배 가운데 아주 유사한 유물이 확인된 바 있다(그림 7).

이 유적에는 쌍봉낙타가 등장하는데(그림 2,4) 얼굴이 실제 낙타와는 다르다. 특히 맹수얼굴 같은 낙타도 있다(그림 4). 같은 감실에서 출토된 맹수머리(그림 5)만 묘사된 유물과 쌍봉낙타의 얼굴은 거의 비슷하다.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는 쌍봉낙타가 동물장식으로 확인된 바 없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낙타가 사용된 경우는 이미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의 주인공 5호묘의 주인공 남성 목걸이에는 낙타문양이 사용된 바 있다. 또한 아르잔-2호 내의 돌판에 새겨진 그림에도 쌍봉낙타가 사슴과 함께 묘사되었다. 알타이의 칼박타쉬 암각화 유적(초기 철기시대 암각화)에도 확인되었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확인된 낙타는 실제 낙타를 변형시키는 방법은 스키타이의 제작방법이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 나타난 낙타는 박트리아산으로 여겨지는데,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우랄 남부에도 전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유적의 낙타는 황금 쿱신과 리톤과 같이 수입된 물건이라기 보다는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되어 소비되었을 수 있다.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같은 스타일의 물건이 출토되었고 다른 모습의 낙타도 출토되기 때문이다.

 황금사슴과 같이 주둥이가 과장된 사슴문양(그림 6)은 목제를 금판으로 입힌 사슴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흑해 지역의 사슴과 같이 뿔을 몸통 전체까지 뒤 쪽으로 길게 표현하는 점은 같다.

 

기원전 4세기에는 그 이전의 사브로마트 문화를 대신해서 사르마트 문화가 이 지역에 정착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이란계통의 유물이 몇 점만 남아 있지만 기원전 4세기 이후의 사르마트 문화 유적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뿐만 아니라 이란계통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스키타이 문화와는 구분한다.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미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된 기점으로 보고 있는데,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5세기, 기원전 4세기로 학자들 마다 차이가 있다. 일단 1호 유적에서는 시베리아 사슴도 아니고 흑해 사슴도 아닌 필리포프카 사슴(입이 과장되게 튀어나온 사슴)과 맹수머리 쌍봉낙타가 눈에 띈다....그러나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림 7. 아케메니드 시기(이란), 기원전 5~4세기(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다. 그런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앞서 소개한 바 있는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도 중심무덤방 옆에 또 다른 무덤방이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체르토믈리크 무덤은 그 규모 뿐만 아니라 출토된 유물로도 유명한데, 고리트를 감쌓던 황금 장식판, 의례용 철검과 금제 검집이 함께 출토되었다. 무덤 입구를 통과하면 처음 들어가는 무덤방에서 남쪽에 위치한 일종의 감실(k)(그림 1)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무덤의 평면도(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필자편집, 본문의 내용대로 넘버링)

 

고리트의 본체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드러진 것이지만 남아 있지 않고 금판장식만 남아 있다. 상하단에는 동물투쟁문과 식물문양이 타출되어 표현되어 있다. 타출은 반대편을 도구로 두드려서 다른면이 튀어나오도록 하는 기법이다. 기본적으로 여러 판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2. 체르토믈리크 무덤에서 출토된 고리트 장식판(Алексеев А.Ю. 2012)

 

 

중앙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은 상단왼쪽 에 있는 활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가 아킬레스다(그림 3-위). 두번째 장면은 스코로스 섬의 리코메데스 궁전에 아킬레스를 여장해서 숨기는 장면, 리코메데스의 딸 사이에서 아킬레스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그림 3-아래), 리코메데스 왕에게 아킬레스가 작별인사하는 모습이다.

 

 

 

그림 3. 그림 2의 상단(Алексеев А.Ю. 2012)

 

하단은 리코메데스의 아내이자 데이아미아(리코메데스의 딸로 그의 궁전에 숨어서 연애함, 아킬레스의 연인?)의 어머니인 여왕, 리코메데스의 다른 딸과 작별인사하는 장면이다(그림 4의 위). 벽에 기대고 있는 인물이 아킬레스이다.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를 보여주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은 아가메논이라는 설이 있다. 또 아킬레스가 트로이왕 프리암(프리아모스)이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 받으러 온 장면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란계 영웅서사시를 묘사했다는 설도 있다(그림 4의 아래). 하단의 마지막 장면은 파리스에게 화살을 맞아 죽은 아킬레스의 유골을 항아리에 운반하는 그의 어머니 테티스를 묘사한 장면이다(그림 5).

 

 

 

그림 4. 그림 2의 하단(Алексеев А.Ю. 2012)

 

 

 

그림 5. 그림 2의 하단 가장 마지막(Алексеев А.Ю. 2012)

 

이 유물을 분석한 알렉세예프는 유물이 제작된 곳은 보스포러스 왕국(케르치 해협에 위치, 스키타이 유목민족과 그리스 인이 특징이 함께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 대표적인 유적 쿨-오바)의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본다. 다른 부족과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의식적이고 권위 있는 물품을 배포해서 외교정책을 한 Perisade I(Paerisades I)때로 기원전 330~320년에 제작되고 배포되었던 것으로 본다.

 

체르톰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스키타이 문양(동물)과 함께 그리스 신화가 묘사된 것으로 확실히 스키타이 특징만 나타난 지역에서는 제작되기 힘들었던 유물이다. 그래서 드레프르강 하류의 체르톰리크 유적이 위치한 스키타이 지역 보다는 당시에 그리스 문화의 특징이 나타난 캐레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의 연결반도)보스퍼러스 왕국의 공방이 제작지였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캐레치 해협의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은 보르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여겨지는데 스키타이 차르의 체르톰리크 무덤과는 전혀 다른 무덤구조(포스팅 참고)이다. 확실히 이 시점에는 흑해 스키타이 지역은 각 지역마다 자신의 지역색이 뚜렷해졌다.

 

이 유물이 그리스 신화로만 구성되었다면 별로 재미없었을 것인데, 가장자리는 동물과 식물문양을 넣어서 장식했다는 점은 중요한 점이다. 특히 상단에 위치한 동물이 투쟁하는 문양의 특징은 스키타이 특유의 문양이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 Чертомлык.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91. 416 с.(알렉세예프, 무르진, 롤레 1991, 체르토믈리크(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강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봉분을 쌓아 만드는 쿠르간(봉분무덤)이 있고, 그 내부의 부장품도 철검(아키나크 검), 화살촉, 재갈, 재갈멈추개,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어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과 공통성이 있다. 물론 동물장식도 포함한다.

 

특히 필리포프카 유적의 사슴장식(그림 1~3)은 유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의 사슴 스타일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적에서 모두 5개가 출토되었는데 무덤의 입구 좌측에서 출토되었다(그림 4-16). 원래는 모두 세워진 상태로 부장되었을 것이다.

유물은 황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 청동, 은을 합금했고, 그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사슴의 원형이 남아 있다. 유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여러 조각을 이어붙인 것도 있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당시의 사슴

 

사실 뿔만 아니면 이 동물을 사슴으로 보기 힘들다. 지나치게 튀어나온 입과 사슴치고는 짧은 다리 때문이다. (알타이의 사슴과 비교해보면 세밀하지 않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사슴복원, 높이 49~51cm, 뿔의 너비 29~30cm, 몸통전체길이 39~41cm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사슴, 그림2의 옆 모습

 

그림4.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사슴이 출토된 무덤 1호의 평면도, 16번 자리에서 사슴이 출토되었다. 남쪽으로 난 길다란 계단복도가 입구이다.다시 설명드리겠다(Пшеничнюк А.Х. 2012)

 

 

 

황금사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목제 사슴을 감싼 부분이 금, 은, 청동으로 합금한 금속물질이다. 나무조각을 금으로 싸는 동물장식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문화의 동물장식 특징이다. 물론 사슴을 표현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이 유적에서는 알타이와 투바에서 출토되는 목제 잔이 출토된다. 물론 손잡이 모양은 다르다. 유적에서는 금과 합금한 금속판으로 만든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발굴할 당시인 1986년에는 흥분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현재의 자료로 보면 기원전 4?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당대에 존재하던 기술로 만든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기원전 7세기경의 시베리아 투바 아르잔-2 유적에서 훨씬 세련된 동물문양장식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프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바브루르가지 I유적의 그룹구성원 가운데 3그룹에는 12호와 14호 무덤이 포함되었다. 이 유적에는 아이 무덤에 유물이 거의 부장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14호 무덤에는 1호, 6호, 12호와 달리 목제 쟁반(그림 1-2)과 허리띠 장식(그림 1-6,7), 활과 화살(그림 2-3,4,5)과 토제 항아리도 발견되었다. 동물문양장식은 목제 쟁반에 올려진 체 있었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4호 무덤, 1-토제 항아리, 2- 목제 쟁반, 3-청동칼, 4,5-화살촉, 6-허리띠 버클, 7-허리띠 장식판, 8-목제 사슴머리, 9-목제 원판형 장식

 

그런데 이 무덤이 속한 3그룹(9~14호)은 쿠바레프가 나누어 놓은 것이다. 1그룹과 2그룹에서 아이 무덤이 성인의 무덤 앞에 위치한다. 아이무덤과 어른 무덤이 세트가 되는 현상은 앞서 살펴본 울란디르크 유적, 타샨타 I유적 뿐만 아니라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도 있었다. 그렇다면 14호 무덤도 15~16호와 같은 그룹이 아닐까?

 

15호에도 무기류와 원형의 장식판, 목제로 된 거울모형, 허리띠 장식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허리띠 장식은 14호의 것과 유사하다. 특히 14호 무덤은 13호와 만들어진 연대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14호 무덤은 15호와 속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5호 무덤, 1~3: 토기, 4-모형 거울, 5~7: 화살통 원판형장식, 8-허리띠 장식, 9, 11-모형 검, 10,12-목제 칼, 13-화살통의 구조물, 14,15-모형 화살, 16,19-화, 20-모형 투부, 21,22-칼, 23-금박 24-돌 베개, 25-검은색 물감 범위, 26-재갈(1~3: 토제품, 4~8, 10, 12~19-목제: 9,11,20, 21-청동제품, 22, 26-철제품, 23-금박)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5호의 유물

 

 

 

무덤호수

성별

필자

쿠바레프

무덤시설

크기

말 매장

상부직경(m)

시설(cm)

첫 번째열

 

1

아이

1그룹

1그룹

통나무관

 

0

 

5세기

2

나무무덤방

 

1

 

 

3

나무무덤방

 

2

 

 

4

석관묘

 

0

 

 

5

나무무덤방

 

0

 

 

6

아이(남향

2그룹

2그룹

나무무덤방

 

0

 

 

7

남녀

나무무덤방

 

2

 

 

8

여성(서향)

나무무덤방

 

0

 

 

9

여성

3그룹

3그룹

석관묘

7

140×80

0

 

 

10

여성

나무무덤방

7

160×100

1

 

 

11

남성

나무무덤방

5-6

230×140

0

 

 

12

아이

석관묘

7

160×110

0

 

5세기

13

남성

나무무덤방

7

240×150

1

 

4~3세기

14

아이

새로운 그룹

석관묘

5

120×100

0

 

 

15

남성여성남성

 

나무무덤방

4-6

140×100

1

 

 

16

여성

석관묘

5

130×80

0

 

4~3세기

17

여성

4그룹

4그룹

석관묘

 

0

 

4~3세기

18

남성

석관묘

 

0

 

 

 

 

 

 

 

 

 

 

 

 

 

두번째열

4~3세기

21

남성

석관묘

 

0

 

 

22

남성,여성

나무무덤방

 

2

 

4~3세기

23

남성

석관묘

 

2

 

 

24

무덤없음

무덤없음

 

 

 

4~3세기

25

남성

석관묘

 

1

 

5세기

26

남성

5그룹

5그룹

나무무덤방

 

2

 

 

27

여성

나무무덤방

 

0

 

 

28

여성

나무무덤방

 

0

 

 

29

여성

나무무덤방

 

2

 

 

30

남성

나무무덤방

 

1

 

그렇다면 이 유적에서 가장 먼지 만들어진 1그룹, 5그룹과 함께 3그룹(14호를 제외한)도 같은 시기이다. 3그룹에서 13호는 기원전 5세기 대에 만들어진 무덤이기 때문이다.

 

 

14호 집 아이는 이 유적 가운데서 석관묘에 부장되었으나 가장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심지어 16호 성인 여성에는 유물이 한 점 도 없었는데, 이 아이 무덤에는 더 유물이 많이 부장된 것이다. 앞의 포스팅에서 이 유적에서 석관묘에 묻힌 아이는 부활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14호는 예외가 되는건가?

 

그리고 흥미로운건 17호 이후로의 무덤에는 아이 무덤이 없는데, 아이 무덤이 없는 그룹과 있는 그룹은 어떻게 다른 건가? 독신자 그룹일까? 더 중요한 유물(동물장식이 달린 모자)은 17호 이후의 무덤에서 다 출토되고 있다. 지도자 그룹일까?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