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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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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국가는 카자흐스탄인데, 넓은 만큼 지역간에 문화적 차이가 크다. 동부 산악지대는 알타이와 가까운 북쪽(베렐 유적, 실릭티 유적)과 남쪽(이식 유적)의 성격이 다르고, 서쪽은 우랄 산맥 남부의 유적(탁사이-1 유적)과 중부(타스몰라 문화)이 다르다.

 

[알타이와 가까운 북쪽의 베렐 유적과 실릭티 유적의 성격도 다르다]

 

그 중에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화려한 옷과 의복으로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대단히 지역적인? 인물이었던 같다.

 

높은 고깔모자는 동물문양으로 장식된 것인데, 고깔모자와 동물장식은 투바의 아르잔 2호 여성이 쓴 것과 비슷하다. 물론 동물장식은 차이가 있다. 같은 무덤의 남성은 고깔모자를 쓰지 않은 것으로 복원되었다는(추구노프 외 2017) 점에서 고깔모자를 먼저 쓰기 시작한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비교한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는데, 동물장식을 모자 꼭대기에 다는 방법은 남성 모자에서 발견되는 방법이다. 카자흐스탄 동부의 이식 유적의 십대 남성(황금인간이라고 불림)과 알타이의 아크 알라하-1유적의 남성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알타이 추야 강 계곡의 여러 유적에서는 남성무덤에서만 볼 수 있는지, 여성 무덤에서도 있는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데 모자 자체가 잘 남아 있지 않았다. 동물장식의 위치가 모자의 꼭대기인지 측면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추야강 계곡의 자료들은 이 경우에는 고깔모자를 쓴 정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동물문양을 좀 더 세분화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흑해지역의 남성도 고깔모자를 쓴 모습이 항아리와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벽 등 회화적인 방법으로 볼 수 있지만, 장식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

 

관자놀이 장식은 원추형을 매개로 한 것인데, 아르잔-2호의 여성 관자놀이 장식과 비슷하게 고안된 것이다. 흑해지역의 여성들은 원형 장식이 가장 포인트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한 차이가 보인다. 혹은 필자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미 재지적인 유적에서 발견되었을 수 있다.

 

 

여밈이 있는 상의는 십자형 그리핀 장식이 달렸다. 옷의 스타일 자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베리아에서도 발견되고, 재지의 다른 유적에서도 있다는 점에서 어딘가에서 왔다기 보다는 그냥 지역적인 옷이었을 것이다. 십자형 그리핀은 알타이 및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되는 유물이고, 흑해지역에서는 볼 수 없다.

 

향유병과 금판이 부착된 목제그릇은 이웃한 볼가 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볼 수 있다. 탁사이-1 유적에선 금판이 보고되지 않았으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대단히 많은 금판은 목제그릇의 구연부에서 동체부를 감싸도록 디자인 된 것인데, 시베리아에서는 볼 수 없었다. 시베리아에서 금판으로 장식된 목제 그릇은 손잡이가 하나 달린 아르잔-2호 출토유물인데, 손잡이를 감싼 것이다. 목제 그릇을 금판으로 장식한 것을 흑해지역에서 주로 발견되고, 아마도 필리포프카 유적 혹은 탁사이-1 유적에 동시에 들어왔을 수 있다. 청동거울과 함께 가장 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적인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 들어왔다고 해도 기원전 4세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미 그 지역에서 유행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손잡이 달린 청동거울에 장식된 그리핀은 필리포프카 유적과 탁사이-1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큰 부리와 눈이 표현된 그리핀? 머리이다.

 

그리고 3인의 전사가 표현된 목제빗은 페르시아인과 스키타이 인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도 별로 놀랄 것이 없는 것은 인접한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페르시아 계통의 그릇(금제 각배와 항아리 등)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에 당시에 그 지역과 교통이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다른 재밌는 무용담도 있을 수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