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알타이 산 위에 있는 기원전 5세기 무덤에서는 미라가 나오고, 그들의 몸에는 동물문양 문신이 새겨져 있다. 주로 변형된 동물인데, 굽동물의 몸통에 독수리 부리가 부착되고 사슴 뿔처럼 보이지만 말 갈퀴처럼 보이기도 하며, 끝에는 새 머리가 달려 있다. 꼬리는 말처럼 길게 처리되어 있다. 이 동물을 사슴형 그리핀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 전사의 문신은 머리가 없는 굽동물(그림 1-5)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입과 뿔에 달린 새 머리가 남아 있어서 원래 머리 없이 그려진 것이 아니다. 원래 머리 없이 그려졌다고 보여지는(그림 1-2, 4, 7, 10, 11) 동물 중에서 실제로 그림 1-2,4, 10, 11은 머리가 없는데, 처음 의도인지, 아니면 지워진 것인지 애매하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사슴형 그리핀의 범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1-7은 머리 부분이 이상하게 그려진 것이고, 그림 1-8의 동물은 뿔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슴형 그리핀과 자세 등이 유사하다. 이들은 사슴형 그리핀이다.
그림 1. 파지리크 문화의 문신
아크 알라하 3유적과 파지리크 2호의 남성 미라에는 사슴형그리핀 외에도 호랑이 변형이 있다. 전자(그림 1-12)는 발과 꼬리 표현이 굽동물이 아닌 호랑이 변형(그림 1-13)에서 관찰할 수 있다.
파지리크 유적 2호와 5호, 1호에는 말에게 씌운 가면이 발견된다. 말에게 없는 뿔을 달아서 사슴처럼 보이도록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말의 안장에도 동물장식이 달려있어서 말은 온통 동물장식으로 덮여 있게 된다. 말의 꼬리도 땋거나 금판으로 감아 처리해서 문신속의 사슴형 그리핀과 마찬가지로 처리했다.
이들은 말을 살아 있는 사슴형 그리핀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분 말 가면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말 꼬리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 2호분의 남성 모자 장식은 높은 장식을 만들어 붙인 것인데, 사슴의 뿔을 변형시킨 것이다. 파지리크 5호분 캐노피에 있는 반인반수의 괴물도 얼굴만 사람이고 사슴(그림 4-4)을 변형 시킨 것이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5호분 캐노피
그래서 필자는 알타이 미라 문신의 사슴형 변형동물 혹은 사슴형 그리핀은 알타이 고유의 동물장식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가 사슴변형의 시작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사슴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유라시아 철기시대 스키토-시베리아(스키타이) 동물장식 가운데 가장 난해한 유물은 여러 동물이 조합된 그리핀이라고 불리는 동물장식이다.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아르잔-2호에서 그 모습이 보이며, 흑해지역에서도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 페레퍄티하 유적에서 발견된다.
아르잔-2호에서 보이는 동물장식 가운데 사슴, 멧돼지, 호랑이 등은 이미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에서 있었기 때문에 아르잔-2에서 보이는 동물장식은 아르잔-1호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르잔-1호의 내부에서 발견된 사슴돌(그림 1-2)에 그려진 사슴장식과 멧돼지 및 아르잔 유적이 위치한 주변에서 발견된 사슴돌 속의 사슴문양이 발견된다. 사슴돌은 시베리아 청동기시대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르잔-2호의 동물문양요소는 그 지역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아르잔-1유적 및 아르잔 주변에서 발견된 사슴돌
그런데 흑해지역은 사슴장식이 있어서 시베리아 동물장식과 공통적인 요소를 갖추었기는 하지만 그리핀은 사뭇다르다. 특히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장식에 새겨진 그리핀, 같은 유적의 철검 반인반수, 투부에 장식된 합성동물은 다른 지역의 전통을 따를 수 있다. 특히 거울과 검은 우라르트에서 주문제작, 투부는 이란에서 수입되었다.
칸토르비치는 철검에 그려진 반인반수를 합성동물로만 보아서 이란의 지비예 유적, 기원전 9~8세기 앗시리아의 도장 등 유물과 비교해서 이란 지역과의 관련성을 제기했지만 이들은 합성동물이다. 분명히 켈레르메스(그림 2)나 멜구노프 유적의 유물에는 활을 쏘는 장면으로 사람이 합성된 것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필자는 우라르트에서 발견된 청동 반인반수 상이 더 관련성이 깊다고 생각한다(알렉세이예프 2012, 김재윤 2021). 더욱이 우라르트는 코카서스 산맥의 바로 남쪽에 기원전 8세기부터 존재했다.
아뭏튼 머리(새)+몸통(맹수 혹은 굽동물)+ 다리(굽동물)+팔(사람)+날개(물고기)가 전부 다른 동물들로 조합된 동물장식(그림 2). 머리, 날개(새)+몸통(맹수)(그림 3, 그림4)는 비교적 간단한 그리핀으로 구분된다.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철제 검 반인반수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그림 4. 페레퍄티하 유적의 황금장식
그림 5. 아르잔-2호의 재갈멈치
심플한 그리핀 장식(그림 3,4)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었다는 생각도 있지만 우라르트가 더 가능성이 높다. 심플 그리핀(그림 5)은 머리모양이 아르잔-2호 그리핀과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데, 귀의 처리 방법이 다르다. 아르잔-2호 그리핀은 귀가 둥글고, 흑해지역의 그리핀은 귀가 쫑긋 선 모습이다. 페레보드치코바는 스키타이 동물장식이 엄격한 규칙으로 변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점을 참고한다면 새머리에 붙은 귀의 모양 차이는 크다. 조합된 동물의 차이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흑해와 시베리아에서는 각각 동물을 조합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추론가능하다. 흑해지역은 좀 더 인접한 지역(우라르트 및 이란)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수 있다.
참고문헌
Канторович А.Р. Истоки и вариации образов грифона и грифоподобных существ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зверином стиле VII–VI вв. до н. э. /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альманах. – № 21. – 2010. – С.189-224.(칸토로비치 2010 기원전 8~6세기 초기 스키타이 동물장식에 있어서 그리핀 및 유사 그리핀의 원천에 대해서)
이제까지 보여드린 스키타이 여신인 거울을 들고 있는 여신인 티파티가 표현된 네모꼴의 장식판은 여성의 베일에 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거울을 들고 있으면서 몸을 돌리고 있는 여성이 있는 긴네모꼴의 장식판은 머리를 장식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착장했을까?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장식판은 긴 베일에 장식된 것으로 모두 58기가 출토되었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매장자는 여성인데, 그녀는 장식판에 표현된 모습과 흡사하게 치장되어 매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나온 장식판
그림 2. 무덤에서 나온 장식판, a- 크라스느이 페레콜 22호 쿠르간 2호묘, b-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 여성피장자와 출토유물(부분 복원), c-노보셀라흐 쿠르간 4호(기원전 4세기)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고, 베일을 쓰고 있으며 관자놀이에 둥근 장식을 달았고,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착장했고 거울도 발견되었다. 베일에 붙은 장식판에 자신과 닮은 여성이 표현된 있었다(그림 1). 앞머리와 베일 사이에는 삼각형 장식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른 유적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아래포스팅 참고).
그림 3.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복원
그림 3에서 이용된 머리장식은 이미 소개한 바 있는데 카라고데야쉬흐 무덤에서 출토된 장식판 자체가 삼각형이기도 했고, 거기에 표현된 여성도 같은 형식의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다.
포스팅(쌍두마차, 1224)
그럼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된 긴 네모꼴의 장식판(그림 8)은 어떻게 착용한 것일까?
미로시나는 이 납작한 장식판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미 우리가 본 적이 있는데 아르김파사 가운데 가장 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 여성은 마치 머리를 붕대를 감은 모습처럼 하고 있었다(그림 4). 그리고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또 다른 장식판에는 베일을 쓴 여성이 있는데, 이 여성의 머리스타일(그림 5)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여성과 거의 비슷하게 끝이 편평하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남녀가 등장하는 카펫속에서 여성의 머리장식 모습이 머리끝은 편평하지만 삼각형 장식이 있는 모습이었다(그림 6).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머리장식(기원전 4세기)
그림 5.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장식판
그림 6. 알타이 파지리크 5호(기원전 5세기)의 카페트
그림 7. 동유럽 스키타이 머리장식 티아라
그림 8. 사흐노프스키 쿠르간(기원전 4세기)
그래서 머리끝이 편평하며 모자같이 생긴 장식이 있고 그 아래 이마를 가로질러 띠처럼 두르도록 하는 장식이 필요한데 이때에 사용된 장식판(그림 8) 일 수 있다.
그런데 머리끝이 뾰족한 여성모자는 흑해지역에서는 기원전 5~4세기대에 나오지만,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의 여성에게서 이미 확인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Мирошина 1981 — Мирошина Т.В. Некоторые типы скифских женских головных уборов IV-III веков // СА. №4.(미로시나 1981, 기원전 4~3세기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의 황금유물 가운데는 금의 중량을 작게 사용한 유물들이 있는데, 문양이 남아 있다. 이는 얇은 금박지를 유기질제로 만들어진 원래 유물의 문양이 눌러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방법은 흑해지역에서는 드물지만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많이 발견된다. 목제굴레장식에 조각된 문양이 금박에 그대로 찍혀져서 문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법으로 제작된 유물은 알타이,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표트르 1세의 유물에서도 확인된다(그림 1). 일부 동물투쟁문양에서 발견된다. 이 유물의 뒷면은 기본틀을 만들고 그 위를 눌러서 만들서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 표트르 1세 황금유물컬렉션 동물투쟁문양
같은 동물투쟁문양 중에서는 뒷면을 무딘 송곳과 같은 도구(체이싱 기법)로 눌러서 앞면을 양각한 유물도 있다(그림2). 이러한 기법은 아무다리야 퇴장유물에서도 확인되는 방법이다.
그림 2 표트르 1세 황금유물컬렉션 가운데 동물투쟁문양
표트르 1세의 황금유물은 루덴코가 분석할 당시(1962)에 거푸집에서 주조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왜냐하면 유물 뒷면에 헝겊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은 주물틀에서 쉽게 꺼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조방법 뿐만 아니라 바스마 기법(러시아말 그대로...바뀔 수 있음(그림 1)과 체이싱 기법(그림 2)이 있다는 사실은 뒤에 밝혀진 것이다.
점토로 만든 거푸집에 직물을 깐 흔적이 유물에 남아 있는데, 2 가지 종류였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3, 4). 밀랍으로 물건의 모형을 만들어서 점토거푸집을 만든 후 그 곳에 금속액체를 부어서 주조한 것(그림 4)와 두 방향에서 점토거푸집으로 눌러서 제작한 것이다(그림 3).
점토로 된 거푸집은 남아 있지 않은데, 유물을 만든 후 거푸집을 깨고 유물을 꺼내기 때문이고, 돌로 된 거푸집은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종종발견된다. 더 세밀한 표현은 점토 거푸집이 더 유리하다.
그림 3.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렉션, 양면 점토 거푸집에서 제작된 유물
그림 4.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렉션, 밀랍 모형으로 만든 점토 거푸집에서 제작된 유물
그림 5 거푸집을 만들기 위해서 만든 밀랍 모형, 1-첫 번째 밀랍모형, 2- 두 번째 몸을 둥글게 말았음. 3-둥글게 감은 밀랍 모형의 뒷면을 파냄
그러나 거푸집을 이용해서 만든 유물이라고 해도 그림 3,4와 같이 모든 유물에 헝겊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
스키타이 유물에는 의인화된 사람들이 많이 표현되는데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들과 비교되었다. 그 중에서 여신인 아르김파사와 티파티는 각각 기원전 7세기 유물과 기원전 5세기~4세기 유물에서 드러났다.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여성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부터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갑옷 장식판, 귀걸이, 마면장식, 간두령 등 다양한 유물에 표현되었다.
티파티는 거울과 각배가 나오는 의식에서 등장한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 베일에 달려서 장식되었던 것이고, 이 유적의 주인공 역시 여성이다.
거울을 들고 있는 티파티는 측면이 표현된 것이지만,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전면이 표현된 머리장식이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되었다. 역시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이 유물은 10인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여성을 기준으로 양 쪽에는 남성 9인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성의 좌측에는 뿔잔으로 술을 마시며 의형제를 맺는 장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허리에 고리트를 차고 한손에는 지팡이와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이 있고, 그 옆에 하프켜는 사람, 가장 끝에는 커다란 항아리에서 술을 나누어 담는 장면이다.
그림 1. 사흐노프스키 쿠르간 출토 머리장식, 길이 36.5cm, 너비 9.8cm, 무게 64.58g
그림 2. 그림1과 동일
이 장면을 분석한 여러 연구자들은 크게 의례장면, 결혼장면, 장례식과 관련된 모습으로 해석했다. 오래된 연구일수록 의례장면(로스토프체프 1913),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포도주를 마시는 의례장면(아르타모노프 1961)으로 간략하게 분석했다. 왕과 여신 티파티의 신성한 결혼식 장면(라에프스키 2006) 혹은 결혼식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은 아르김파사일 수도 있다고도 한다(베스소노바 1983). 장례식 장면이라고 추정한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문화에 국한 하기 보다는 인도-이란 계통의 눈을 넓혔다. 먼저 쿠로치킨은 이란 청동기시대에 비슷한 도상학적인 표현이 있었음을 말했다. 베르티엔코는 인도-이란 장례식에서는 의식의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러지는 것을 고려해서 이 유물은 주인공의 좌측인 의형제를 맺는 장면부터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2009).
베스소노바가 아르김파사라고 추정한 이유는 체르토믈리크 고분의 티파티가 측면을 향하는데 사하노프스키 머리장식의 여성은 정면을 향해서 오히려 아르김파사와 더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각배를 들고 의식을 치르는 장면(아래 포스팅)은 솔로하 유적에서도 장식판에서 표현된 남성 2인과 매우 유사해서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판의 표현과 같은 의례장면 혹은 일부 일 수 있다.
결혼장면이든지 장례식장면이든지 의례 혹은 명절에 지내는 의식일 수 밖에 없다.술마시고,사람을 죽이고,다른 한쪽에는 악기를 켜는 장면이 함께 묘사된 머리장식판은 스키타이 의례와 관련된 것을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았다.그렇게 잘 만들어진(세밀한)유물은 아니어서 원래의 작품은 따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베스소노바1983)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는 여신이 등장하는 체르토믈리크 유적,노사키 유적의 장신판에는 가장자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는데,그림1의 유물은 하단에만 꽃 장식이 있고 상단과 그 옆에는 구멍만 남아 있어 마무리가 좋지 못해서 다른 방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또 이 유물은 편평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머리앞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 둥글게 제작되어야 한다.인물표현도 하고 둥글게 제작하려면 두꺼운 금판은 사용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게 가능한 유기물질로 원판을 제작한 후 이를 금박으로 마무리 했다면 얇은 금박(64.58g)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금박 아래에 원래 판이 따로 제작되고 거기의 조각이 금박에 남아서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금박 위의 표현은 그다지 세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비슷한 유물은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굴레장식이다.목판이나 가죽,뼈등 유기물질로 제작한 뒤에 금박을 싸서 만들었는데, 현재는 금박만 남아 있다. 금박에 남은 표현은 원판의 조각에서 찍힌 것이 남은 것이다.
Г. Н. Курочкин. Богиня с зеркалом и герой с секирой (к проблеме антропоморфизации скифского искусства) //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Материалы конференции памяти акад. М. И. Ростовцева. Новочеркасск, 1993.(쿠로치킨 1993, 거울든 여신과 도끼 든 영웅-스키타이 예술에서 인물상의 문제-)
С. С. Бессонова.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К., 1983. (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 종교의 표현
Д. С. Раевский. Мир скифской культуры. М., 2006. (라에프스키 2006,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
М. И. Ростовцев.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монархической власти в Скифии и на Боспоре // ИАК. 1913. № 49. (로스토프체프 1913, 보스포로스 해협 스키타이 군주의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