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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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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4. 09:25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는 여러 동물들이 합성되어 동물문양으로 사용되었다. 주체가 된 동물을 기준으로 독수리, 호랑이, 말의 변형이 있다.

독수리 변형은 날개를 편 상태인데, 호랑이의 귀와 다리가 표현된 것이다.

호랑이 변형은 호랑이가 날개를 달고 있는 단순한 형태와 머리까지 독수리 머리로 바뀌며, 날개를 달고 있는 모습이다. 호랑이 변형에는 표범도 포함된다. 나중에는 범 장식이라고 바뀌어야겠지만. 범은 호랑이와 표범을 통칭한 것이다.

말 변형은 가장 드라마틱한데, 몸통을 제외하고는 전부 변형되었다. 독수리 머리, 새 머리가 달린 사슴뿔이 장식되었다.

 

수많은 변형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만 추린 것이어서 여전히 개운치 않다. 그 중에 하나가 맹수 중에서 많이 사용되는 늑대이다. 동물장식을 오랫동안 연구한 페레보드치코바는 동물 부위의 개개의 특징이 중요하다고 했다. 호랑이나 표범과는 달리 늑대는 주둥이가 길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출토되는 늑대 장식은 5호분의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재갈멈치에 연결된 고삐 끼우개에 달려 있는 모습이다(그림 1-5). 함께 나온 호랑이 머리(그림 1-2~4)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 말의 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출토 늑대

 

또 같은 유적에서는 몸이 뒤틀린 채 표현된 늑대(그림 2)와도 귀의 표현이 다르다. 그림 2의 늑대가 좀 더 사실적이고, 그림 1의 늑대는 귀가 과장되어 있고 뿔도 달려 잇었다고 보고되었다. 늑대장식은 알타이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된다(그림 3,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그림 4)에서는 말 안장 장식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림 3. 알타이의 늑대장식 바샤다르 유적 1호(1,2) 파지리크 유적(3,5,9), 투엑타 유적(4,7), 표트르 1세 황금유물컬렉션(6), 에르미타주 소장(8)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의 늑대장식, 안장덮개에 수직으로 달았음

 

특히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의 늑대는 다리를 앞으로 하고 몸을 낮춘 자세인데,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유물컬렉션 가운데서 팔찌 장식, 버클 장식 등으로 이용된 것이 발견된다.

(아직 언급하지 않았지만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은 스키타이 시대 뿐만 아니라 사르마트 시기의 유물도 있는데, 그 속에서도 늑대는 발견된다. 물론 차이는 있다)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의 늑대는 펠트로 만들어진 것으로 몸통을 잘라내어서 근육을 표현한 특징이 있다.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유물 늑대(그림 5)도 몸통에 홈을 내어서 상감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5.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유물

 

그러나 늑대는 다른 동물과 심하게 변형된 모습은 잘 찾아 볼 수 없는데, 아마도 몸통까지 이용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일 것 같다. 대부분 늑대 머리가 주로 사용된다. 산림지대에 있는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도 늑대 장식은 대부분 머리만 사용되었다.

 

 알타이에서 언제 부터 늑대문양을 사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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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1.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해발 2500m 높이의 알타이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3 유적 여성미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물론 이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 2,5호분의 남성, 베르흐 칼쥔 II유적 남성도 문신이 있다. 바샤다르 유적에도 미라처리된 시신이 부장되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이를 제외하고는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미라는 대부분 문신이 있다.

 

아크 알라하-3유적의 여성에게는 우측 어깨부터 손목까지 문신이 남아 있는데, 아름다운 사슴형 그리핀 아래에 팔 관절과 손목 사이에는 3마리의 동물그림이 있다. 그 중에 한 마리는 맹수의 발톱과 꼬리(그림 1-3)로 처리되어서 맹수의 변형처럼 보인다. 이 외에도 큰뿔양(그림 1-1)과 점박이 표범(그림 1-2)처럼 보이는 동물이 남아 있다. 큰뿔양은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 우측팔에서도 발견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어깨부터 차례대로 내려오는 동물(그림 2-1~3)은 머리 방향이 같은데, 큰뿔양(그림 1-4)을 기준으로 그 아래 동물은 삼각구도를 이루고, 맹수(그림 1-6) 및 사슴형 그리핀(그림 1-5)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여성미라 우측 손목 위에도 세 마리의 맹수가 3마리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맹수 중에 호랑이와는 다른 점박이 표범(그림 1-7)이 발견된다. 아크 알라하-3유적 여성에게서 보이는 것과 같다.

 

그림 1. 파지리크 문화의 미라 우측손목 위에서 발견된 대립구도의 동물문양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 우측 팔 문신

 

그래서 파지리크 문화(알타이 지역 스키타이 문화)에서 우측 팔목부근에는 세 마리 혹은 그 이상의 동물이 대립하는 장면이 새겨져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왜 거기에 그 문양을 그려쓴지 무엇을 염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이니 오늘 저녁 먹거리를 기원하며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려져 있다. 어쩌면 활의 시위를 당기면서 보이는 부분일 수 있으니 특별히 그렸을 수도 있다.

 

 

예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파지리크 문화에서 유기물질이 잘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덤의 구조 때문에 생긴 무덤 아래 결빙층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사람들도 문신을 즐겼는지는 알 수 없다. 알타이의 추야 강 계곡에서 발견된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에서는 간단한 석관묘 유적에서 미라가 나왔다. 파지리크 유적이나 기타 대형 무덤에 비해서 대단히 소략한 무덤이지만 미라가 나와서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시신을 미라 처리하는 것은 그 이전 보다는 일반인?들에게도 퍼졌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피부는 남지 않아서 문신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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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최대 무덤중에 하나인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동물장식이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장식, 의례용 잔(각배)과 간두령 등에서 발견된다. 이 외에도 목제 그릇의 장식판으로도 확인된다.

사슴장식인데 모두 4판이고 같은 스탬프로 제작되었다고 비드질리야는 생각하지만 약간 씩 차이가 있다. 이 장식판은 4개가 미세하게 크기가 다르다. 1: 4,84,9 х 5,7 см, 2: 4,74,9 х 6,0 см, 3: 4,85,0 х 6,0 см, 4: 5,0 х 6,0 см

 

황금 장식판의 사슴은 간두령에 장식된 사슴과 뿔 모양(뿔의 방향)과 자세가 차이가 있다. 뿔 모양은 방향이 차이가 있는데, 끝이 둥글게 말렸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2021.09.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의 간두령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의 간두령

드네프르 강 유역의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인간을 형상화 한 물건 뿐만 아니라 동물문양장식도 발견된다. 동물문양장식은 말 그대로 다른 용도의 물건에 부속되어 장식된 것이지만 유라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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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황금 장식판

 

기원전 5~4세기 흑해지역 유적에서 목제그릇은 남아있지 않지만 금판이 발견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나온 사슴 장식판 유물은 매우 특별한데 그 이유는 이 유물이 출토된 무덤방의 연대가 기원전 365~350년 이라는게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비슷한 유물의 연대들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베스소노바는 바라트류보프스키 쿠르간에서 각배에 장식되었던 네모 장식판이 가이모노보바 유적과 거의 비슷해서 두 유적은 동시대라고 결론내렸다.

 

 

그림 2. 브라트류보프스키 쿠르간의 각배(1)와 가이모노바 유적의 장식판(2)

 

 

참고문헌

 

Бессонова С. С. Ритон из Братолюбовского кургана (к вопросу о датировкецентрального захоронения) // Эпоха раннего железа: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трудов к 60-летию С. А. Скорого. – К.; Полтава, 2009.(베스소노바 2009, 브라트류보프스키 쿠르간의 리톤(각배)의 연대에 대해서)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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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의 투바공화국에 위치한 곳에서는 일명 태양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울루그-호루움’ 이라는 명칭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곳에서는 직경 66m에 달하는 돌로 만든 둥근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제사유적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매장주체부가 없다.

그라치는 이 유구가 태양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2021.06.06 - [시베리아 투바와 몽골의 유적/투바의 유적] -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태양의 사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태양의 사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사글리 바쥐 VI유적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유구가 발견되었다. 무덤과 함께 발견되었지만 유적을 발굴한 그라치는 ‘울루그-호르움’이라고 따로 명명했다. 모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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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알타이에서도 평면형태가 비슷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유스티드 I유적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는데, 쿠바레프는 무덤 유적과 함께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의례복합체를 구성하는 제사유구에는 원형의 돌 쌓은 유구가 발견된다. 중앙에 원형은 돌로 채우고 그 외곽을 2열로 돌을 돌렸고, 가장 중앙의 원형 유구와 2번째 고리 사이를 직선의 돌로 열을 만든 것이다(그림 1-1~5, 6). 울루그-호루움과 원형의 모티브를 사용했고, 방사선으로 원형 사이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직경 66m의 투바 울루그-호루움에 비해서는 현저히 작은 크기(직경 1.2~1.3m)이다.

 

뿐만 아니라 원형의 제사 유구 사이에는 방형으로 돌을 돌린 그룹의 알 수 없는 유구도 발견되었다(그림 1-1). 원래는 키가 높은 석주(돌기둥, 높이:100cm)는 세워져 있었으나,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쓰러진 상태였다. 세워진 상태의 석주도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1. 유스티드 I유적의 의례복합체, 1: 방형제사유구, 2의 부분. 2: 유스티디 I유적의 의례복합체

 

그림 2. 유스티드 I유적의 방형제사유구

 

유스티드 I유적에서는 10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열을 이루는 무덤은 4기였고, 나무무덤방을 사용했지만, 말은 없는 무덤이었다.

 

투바의 태양을 상징하는 울루그-호루움 유적(기원전 5세기)와 비교하면 시간상으로는 알타이 유스티드 I유적(기원전 4세기)이 약간 늦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원형과 방형의 의례복합체를 만든 시기를 유스티드 I유적으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알타이에서 늦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투바에서 거대 유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저지대의 평원이고, 알타이에는 계곡마다 유적이 만들어지는 지형적 특징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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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태양, 금 등 반짝이는 것에 집착했을까?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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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기원전 7세기 쿠르간은 헴칙 강변에서도 발견된다. 헴칙 강은 예니세이 강의 지류이다.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가 있는 우육분지는 평면형태가 삼각형으로, 그 보다 남쪽에 만들어진 동서방향으로 길쭉한(좀 더 자세하게는 눈썹처럼 약간 굽은 형상) 분지를 따라서 여러 유적이 산재하는데 그 중에 한 곳이다.

 

헴칙-봄 III유적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1,2호 쿠르간의 9호묘이다. 유물이 가장 많이 출토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수께끼 동물장식(그림 1-1)’이 그려진 골제 빗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1. 헴칙-봄 III유적, 1,6: 1,2호 쿠르간의 9호묘 출토품, 3-1,2호 쿠르간의 13호묘, 4-1,2,호 쿠르간의 1호묘, 2: 헴칙 봄 V유적

 

그림2.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의 9호묘

 

그림 3. 헴칙-봄 III 유적, 1-퇴장지, 2-1호묘 출토품, 3-3호묘 출토품, 4-9호묘 출토품, 5-8호묘 출토품, 6-13호묘 출토품

 

9호는 왼쪽으로 누운 시신이 무릎을 굽힌 채 확인되었다. 머리는 서향이다. 청동제품은 칼(그림 2-7, 그림 3-4), 송곳(그림 2-28), 바늘(그림 2-22), 클립(그림 2-2, 18,19), 중앙에 꼭지 달린 거울(그림 2-26, 그림 3-4), 골제 빗(그림 2-13)이다. 금제품은 귀걸이(그림 2-21, 1-6)가 있고, 석제품(그림 2-6)과 터키석제 구슬 8점(그림 2-1,5,15,16,23,32), 칼세도니제 구슬 2점(그림 2-3,12), 구슬 8점(그림 2-4,9-11, 7,24,27,39), 석제 구슬 10점(그림 2-8,20,25,31,33), 목제 그릇편(그림 2-5)이 나왔다. 목제 그릇편은 인골의 우측 어깨뼈 부위에서 나왔고, 청동칼(그림 3-4)은 우측 골반뼈 옆에서 땅에 꽂힌 채 나왔다.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 아래에는 재갈과 재갈멈치 및 고삐를 장식한던 유물이 발견되었다(그림 4-1). 무덤시설이 남아 있지 않고, 인골도 거의 없어진 상태이다. 이곳을 퇴장지라고 생각했다.

 

그림 1. 헴칙-봄 III유적의 1,2호 쿠르간

 

헴칙-봄 III유적에서 발견된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3-1), 9호묘에서 나온 청동칼과 청동거울(그림 3-4) 등은 이미 아르잔-2호에서 나온 적이 있다(아래 포스팅 확인). 발굴된 순서로 하면 아르잔-2호(2000~20004년 발굴)가 헴칙-봄 III유적(1957년~1960년대) 보다 늦게 알려졌지만, 시간적 순서로 하면 헴칙-봄 III유적에서 축조된 무덤과 유물은 아르잔-2호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9호묘에서 나온 사람의 청동거울과 청동칼은 아르잔-2호의 석관묘에서 나온 유물과 유사한데, 서로 유사한 사회적 배경(계급?)에 있던 사람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동물장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큰 쿠르간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유물을 가지고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아르잔-2호 속의 남성보다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 알 수는 없다. 

 

2020.06.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두 명이었을까?

 

두 명이었을까?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직경 80m 안에 주인공 무덤을 제외하고도 무덤 25기가 함께 매장되었다. 주인공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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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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