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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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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 09:22 사르마트 문화

오늘날 우크라이나인 흑해 북쪽읜 초원지역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점과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에는 무덤이 아주 많아진다. 봉분이 있는 무덤, 혹은 없는 무덤 등 매우 많은 무덤이 생긴다. 그 중에 마마이-고라(Mamay-Gora)라고 불리는 유적에는 무덤이 317개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 12개가 여성무덤이었다. 남성은 110명, 여성은 135명이 확인되었고, 일부 여성들은 무기를 부장한 여성전사들이었다.

드네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스켈키 라고 불리는 유적은 봉분이 없는 무덤이다. 53개의 무덤에서 22명의 전사가 남아 있었다. 그 중에 절반은 여성인데, 11명 가운데 무기를 가지고 있는 여성은 4명이다. 팔코는 전사 22명 가운데 두 번째는 여성 전사이고, 세 번째는 무기를 소지한 여성전사로 계산하기도 한다. 스켈키 유적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돈 강 유역에서도 엘리자페토프스코예 유적에서 147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 35개는 여성의 집단 무덤이다(팔코 2010).

 

이 시점의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전사들은 연령도 다양했다. 절반은 25~25세의 여성이지만 가장 어린 여성은 16세 정도이고 가장 나이든 여성은 60세도 있었다. 젋은 여성가운데 어린아이와 함께 매장된 경우가 4명 정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혼으로 판명되었다.

 

여성전사들이 발견되는 유적은 주로 아조프 해 연안에서 많이 발견된다. 돈강 유역에 자리 잡았던 사르마트 사람들이 서쪽으로 몰려 오면서 처음 정착한 곳이 드네프르강 하류의 아조프해 지역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전사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헤로도투스에 따르면)

고고학적으로도 이곳에서 여성전사 무덤들이 집중되어서 기록과 비슷하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발굴이 많아지게 되면서 돈 강 유역에도 여성전사들의 무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팔코 2010). 그냥 여성들 무덤이 (남자들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질료니예 2 유적의 남녀합장 무덤 가운데 여성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여겨진다(그림 1). 남성보다 많은 부장품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여성가운데 권력자의 존재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유적 뿐만 아니라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매우 거대한 무덤 속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포스팅)

 

그림 1. 질로니예 2유적의 2호 쿠르간 2호묘, 북쪽이 여성무덤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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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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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군인으로써 전쟁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몸에 있는 상처이다. 크게 3가지 상흔이 남아 있다. 화살에 맞은 상처, 사자의 손실 또는 골절, 두 대골과 사지가 모두 잘린 상처 등이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주로 두개골의 관통상처가 치명적인 것이다.

무기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뼈에 남은 상처로 인해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군인으로써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팔코 2013)

 

흑해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전사들은 주로 기원전 7세기 초부터 발견된다. 여성전사는 주로 기원전 7말 혹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기원전 4세기경 무덤으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경계상에 있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여성전사 부족이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묘사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매우 혼란한 시점에 남성은 모두 전장에 나갔을 테지만 여성은 집(노인과 어린아이)을 지켜야 했다. 그 과정 중에 여성들은 똘똘 뭉쳐서 집단으로 대항했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역사가는 오해를 한 것은 아닐까. 혹은 여성들에게서 얻고 싶은 것을 못 얻었거나. 또 일부는 남성들처럼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를 용감한 여성대신 잔인한 여성으로 묘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초원인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이니 삐딱하게 보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Андрух С. И. 2001. Могильник Мамай-Гора. Кн. 2. Запорожье(안드루흐 2001, 마마이 고라 유적)

Фиалко Е. Е. Погребения амазонок из могильника Мамай-Гора // Stratum plus. Археология и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 2010. — № 3. — С. 187—196.(팔코 2010, 마마이-고라 유적의 아마조너스 여성무덤)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1.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에서 황금관은 호흘라치 유적의 유물이 잘 알려져 있다. 북방의 상징과 그리스 문화가 함께 결합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관의 상단에는 세계수를 중심으로 양쪽에 동물장식이 있는 모티프 인데, 같은 주제로 된 황금관이 코비야코프스키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포스팅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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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 [사르마트 문화] -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는 우랄 강부터 볼가 강 유역, 흑해북안까지 퍼져 있던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스키타이 문화와 여러 모로 연속된다.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유적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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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10호 무덤의 주인공

 

 

가죽으로 된 띠에 황금 장식판을 붙인 것이고 이 장삭판은 일종의 모자로 된 장식판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은 기원후 1~2세기부터 로마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11개의 무덤가운데 사르마트 문화의 것은 5개이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에서 화려한 황금관을 썼던 주인공은 호흘라치와 마찬가지로 여성이다. 이 무덤은 유적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았던 무덤이다.

이 여성은 매우 화려한 목걸이(그림 2)를 착용하고 있었다. 잠금장치가 있는 것으로 남성이 중심에 있고 양쪽에는 말의 머리를 하고 있는 용을 타고 있는 기마병이 창을 들고 있는 남성, 궁수가 싸우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중심에 있는 남성은 수염을 길렀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의복인 카프탄을 입고 있었다. 여밈이 있는 있는 상의이다. 남성은 앉아서 다리를 교차해서 앉아 있는데, 무릎에는 검이 들어 있는 검집이 놓여 있었고, 손에는 잔을 쥐고 있었다.

 

그림 2. 코비야코프스키 10호 무덤의 목걸이

 

 

 

다리를 교차해서 앉은 모습은 기원전 4000~3000년기로 이란에서 유래했다(자세츠카야 1986).그리고 기원전 1000년 후반 중앙아시아에 자주 등장한다(루덴코 1962). 그리고 로만 조각에서도 도상적 규범으로 등장인물들이 양반다리 자세를 하는 것이 자주 보인다.

 

남성이 들고 있는 잔은 스키타이 문화부터 전해져 온 잔과 같은 모습으로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잔 가운데 한쪽으로 된 손잡이가 달린 잔이다. 황금유물이 많이 출토된 기원전 2세기 무덤에서 나무로 된 잔이 발견된 유적도 있다. 스키타이 신화 혹은 문화는 고대 이란어를 사용하는 유목민들 사이에 신성한 의식 용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В.К. Гугуев Кобяковский курган (К вопросу о восточных влияниях на культуру сарматов I в. н.э. — начала II в. н.э.). // ВДИ. 1992. №4. С. 116-129.(구구예프 1992, 코비야코프스키 무덤(1000년기~2000년기 사르마트 문화에서 동쪽 영향에 대한 질문)

Засецкая И.П. Зооморфные мотивы в сарматских бляшках. // Античная торевтика. Л., 1986. С. 130-132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17.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4세기부터 발생한 사르마타 문화는 여러 요소에서 스키타이 문화를 뒤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동물문양장식이다.

호흘라치 무덤의 여성 주인공은 황금관도 썻지만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팔찌와 목걸이이다. 팔찌와 목걸이는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발견되는 유물이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 주인공 남녀도 모두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목걸이도 관(crown)과 마찬가지로 개폐가 가능하도록 된 것이다. 목걸이는 3개의 빈 금관(金管)을 쌓아 올렸고, 그 위아래에는 동물장식을 부착한 것이다. 동물이 싸우 것처럼 보이지만 공격자인 그리핀은 주둥이만 희생물에 대고 있고, 희생물인 엘크는 머리를 공격자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공격하는 동물은 부리가 맹금류이고 신체는 맹수류인 그리핀에 가깝고, 희생물인 엘크는 엘크와 같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보이는 동물문양의 종류와 표현방법에 차이가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특정부분이 과장되거나 간소하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호흘라치 유물에서는 사슴과 같지 않지만 그리핀이 공격하는 동물이니 사슴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한 차이다.

 

 

그림 1. 호흘라치 유적 여성 주인공의 목걸이

 

 

 

이 여성의 팔찌에도 비슷한 동물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3줄로 꼬인 팔찌로 빈 금관의 양 끝에 동물장식판이 부착된 것이다. 목걸이 보다는 좀 더 그리핀이 포식자인 엘크를 물어 뜯고 있다.

 

 

그림 2. 호흘라치 유적 여성 주인공의 팔찌

 

호흘라치 유적의 황금관만 놓고 본다면 그리스 여성의 얼굴이 상감되어 있어서 마치 그리스적인 요소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목걸이와 팔찌는 오래된 지역 전통의 장신구이다. 하지만 동물문양장식은 확실히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동물장식과는 차이가 있다. 주제와 구성은 비슷해 보이지만 표현방법은 훨씬 간략하다.

 

호흘라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중 많은 여러 요소가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그대로는 아니고 변화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Золотые украшения из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классические образцы сарматского полихромног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I — начала II в. н.э.//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 С. 29-43(자세츠카야 2008, 호흘라치 쿠르간에서 나온 황금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1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는 우랄 강부터 볼가 강 유역, 흑해북안까지 퍼져 있던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스키타이 문화와 여러 모로 연속된다.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유적이 발굴되었고, 도굴당한 무덤도 많다.

 

황금관으로 유명한 호흘라치 유적도 어제 소개했다. 그런데 이 황금관과 형태는 다르지만 유사한 컨텐츠로 만들어진 유물이 2점 더 있다.

 

호흘라치 유적과 가까운 로스토프 시 부근의 코비아코프스키(Кобяковский, Kobyakovsky) 유적에서는 무덤 10호에서 가죽으로 된 머리띠 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 거기에는 금판을 오려서 만든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었다. 가죽 머리띠 장식은 모자에 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에는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고 금판과 가죽띠만 남은 상태였다. 두개골의 머리위에서 발견되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수사슴이 양쪽으로 6마리가 배치되었고 사슴과 나무 사이에는 양쪽에 2마리씩 날개를 편 맹금이 표현된 것이다.

 

 

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무덤 10호 출토 머리띠 장식, 붉은 색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고, 복원한 것이다

 

또 다른 한 점은 크라스노다르 주의 우스트-라빈스크(Усть-Лабинская, Ust-Labinskaya )역 부근에서 발견된 유적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금판 아플리케 장식만 남아 있는 것이다. 7개의 가지가 표현된 것은 나무를 상징화 한 것이다. 사슴과 염소, 토끼(혹은 개)가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아마도 반대편을 향하고 있는 장식도 존재했을 것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금 판 뒤에는 고정장치가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머리띠 장식인지는 알 수 없고, 무덤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2. 우스트-라빈스카야 역 무덤 출토

 

나무를 중심으로 두고 양 쪽에 동물이 배치된 컨텐츠는 당시에 세계수에 대한 숭배사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스키타이 시대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의 탄생, 성장에서 모든 징후에서 삶에 대한 신화적 아이디어를 제공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의 두 점을 참고로 한다면 호흘라치 유적에서 발견된 황금관은 가장 상단부에 세계수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스키타이 문화 및 사르마트 문화의 세계관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하는게 더 맞다. 운 좋은 호흘라치 무덤의 주인공인 여성이 그리스이 끼어들었더라도..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CaFajXSFeSvu-7eu96jRe4TImmu5nqc&usp=sharing 

 

사르마트 - Google 내 지도

사르마트

www.google.com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Золотые украшения из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классические образцы сарматского полихромног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I — начала II в. н.э.//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 С. 29-43(자세츠카야 2008, 호흘라치 쿠르간에서 나온 황금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14.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1000년기(기원전 9세기~기원전 4세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권이 생기기 이전에 금속기시대 최초의 문화권인 얌나야 문화권(기원전 3300~3100년)과 안드로노보 문화권(기원전 2100~기원전1500/1200)을 그간 살펴보았다.

 

스키타이 문화권 이후에는 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가 볼가 강에서 번성해서 기원전 3~기원후 2세기 초 흑해 북안의 스텦지대로 이동한다. 볼가 강에서 생겨나서 흑해 지역으로 이동했던 것은 얌나야 문화권이었는데, 다시 한번 그 방향의 문화 흐름이 생기는 것이다.

 

사르마트 문화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이었던 볼가 강에서 다뉴브강까지 흑해 북안을 차지했다. 그러나 스키타이 문화권이었던 전(全) 지역은 아니었다. 동부 스키타이 문화권에는 기원전 4세기 이후에 흉노가 들어섰다.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분포

 

사르마트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를 몰아낸 것으로 러시아학계에서는 표현하지만 이는 헤로도투스가 두 민족을 다르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물질문화상으로는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동물문양장식을 이어 받았고, 이들이 흑해 북안에서 문화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기원후 1~2세기이다.

 

아주 유명한 유적은 노보체르카스크 혹은 호흘라치라고 불리는 무덤 유적인데, 화려한 금제 관과 청동솥, 팔찌, 금제 장식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1. 호흘라치 유적의 금제 관

 

 

우랄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이었던 필리포프카 유적은 기원전 6~기원전 4세기 유적이고, 스키타이 문화와는 약간 달라서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1기 혹은 사우로마트 문화라고 볼렀고, 이해 대해서 포스팅한 바 있다.

 

2021.08.0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우랄 남부~볼가 강 유역] - 우랄 강의 복잡한 쿠르간 내부

 

우랄 강의 복잡한 쿠르간 내부

스키타이 시대의 사르마트 문화(스키토-사르마트문화)는 볼가 강~돈강 유역과 우랄 강 하류에 주로 분포한다. 유럽쪽에 더 가까운 볼가~돈강 유역과 아시아쪽에 더 가까운 우랄 강유역의 무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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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남부 우랄 지역 스키타이의 사슴장식

 

남부 우랄 지역 스키타이의 사슴장식

남부 우랄 지역에서도 기원전 7세기부터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사우로마트 문화가 나타난다. 이 뒤를 이어서 기원전 5세기는 사르마트 문화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며, 기원전 4세기는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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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완전히 사르마트 문화이고, 스키타이 문화와 연속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 2기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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