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투바의 사글리 바쥐 II 유적에서는 유적 전체 평면도가 없어서 답답했다. 평면도가 있는 유일한 유적이 있는데 사글리 바쥐 VI유적(그림 1)이다. 지표상에 드러난 유구는 모두 27개이며 그 중에서 발굴된 무덤은 3기, 그 외에도 특이한 유구가 3개 발견되었다.
그림 1. 사글리 바쥐 VI유적의 유적 평면도
발굴된 무덤 가운데 도면이 남아 있는 곳은 2호이고, 1호와 4호는 남아 있지 않다. 사글리바쥐 II유적과 다른 점은 가장 상면 무덤의 가장자리에 호석을 돌렸고, 높지는 않지만 봉분을 약간 쌓았다.
1호 무덤은 지표상에 돌무더기는 원형에 가까운데 서쪽에 좀 더 돌무더기가 잘 남아 있다. 가장 바깥쪽에 고리 모양으로 돌이 돌아가고 중앙에 돌을 쌓았다. 가장 중앙 바닥에 통나무 나무방이 썩으면서 상부의 돌이 함몰되었다. 무덤의 서쪽에는 둥근 돌 고리 유구가 확인되었다.
상부의 돌을 제거하고 나자 검은색 흙위에 황토를 덮은 흔적이 나타났다. 무덤구덩이 바닥에는 통나무로 만든 나무무덤방이 있었다. 나무무덤방 위에는 빙토층이 발견되었다.
나무무덤방은 역시 3층의 나무판자를 쌓아서 만든 것이다. 남북방향으로 긴 통나무를 쌓았고 가장 바닥에는 동서방향으로 나무를 놓았다. 이곳에는 4기의 인골이 나왔는데, 3기는 심하게 흐틀어진 상태였고, 1기는 완전했다.
4호는 어떤 일이지 모르지만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2호 무덤은 1호와 외관상 거의 비슷하지만 무덤방의 상태는 좋지 않다. 무덤에는 5명의 성인과 1명의 십대 아이가 발견되었다.
그림 2. 사글리 바쥐 VI유적의 2호분
그림 3. 사글리 바쥐 VI유적의 2호분
유적에서는 사슴돌도 발견되었는데 그림 1-8,9가 사슴돌의 위치이고, 그 중에 한 점은 그림 4이다.
그림 4. 사글리 바쥐 VI유적의 사슴돌
사글리 바쥐 VI유적에는 둥근 집석 유구, 울루그-호루움, 돌 고리 유구, 석주 등이 발견되었다. 그림 1의 하단에 표시를 번역해 두었다. 유적은 사글리강의 좌인 지류인 시느 강의 우측강변에 위치한다. 사그리 마을에서 서쪽으로 24km 떨어진 곳인데, 정확한 지점은 찾지 못했다.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2호 인골: 11-청동제 전투용 도끼, 자루가 72.5cm로 매우 길다. 45-실크편, 47-청동제 거울과 모피주머니 조각, 모피외투조각, 48-구슬, 13-맹금류머리에 뱀의 몸통을 한 목제품, 18-맹금류 목제 장신구
3호 인골: 9-구슬, 10-구멍난 연옥, 16-청동제 나비모양 연결장식, 14,15-사슴 송곳니 2점, 17-가죽제 케이스, 그 외에 골제 화살촉(단면 삼각형, 1~4,6) 5점이 발견된다. 무덤방의 북쪽에는 토제 항아리(21,22)가 발견되고 가까운 곳에는 철제칼과 양의 엉덩이뼈(29)가 확인되었다.
말도 마구를 착장한 상태였는다. 1호 말: 청동제 재갈과 34-청동제 재갈과 세트인 재갈멈치, 목제로 S자형이고 끝에 그리핀 머리로 장식된 것이다, 철제 재갈, 39-목제로 된 안장 조각, 2호 말: 36-철제 재갈로 끝이 구버러진 것이다. 33-원형고리, 35-골제 장식판, 30-골제 나사모양의 원판제품
그림 1. 사글리 바쥐 II유적 1호 출토품
말이 부장된 1호 유적은 분명히 다른 무덤과는 다른 의미가 있지만 유물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핀이 발견되고, 실크로 된 옷, 모피코트 등은 분명히 있어보이는 유물이지만 늘 의심이 든다. 이게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비싼 물건의 기준인데 그때도 그랬는지.
예를 들면 청동기시대 주석과 같은 광물자원이다. 청동기시대 중앙아시아의 고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품은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그 중에 비중이 큰 유물은 주석이었다. 주석은 당시에 같은 무게의 은 10배 가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데이비드 앤서니 2015). 청동제작을 위해서 주석은 필수 품목이었다. 비소를 섞은 청동과 주석을 섞은 청동은 전혀 다른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말타는 사람에게 쉽게 찢어지는 실크가 얼마나 실용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허접한 무덤에도 실크가 들어있는거 보면 그냥 평범한 물건이었을지도.)
비슷한 시기로 멀지 않은 몽골의 울란곰 유적에서도 말을 매장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어쩌면 1호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알타이에서 무덤 만드는 장면을 보았던지, 혹은 어떤 비법처럼 전해져 온 것을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데이비드 W. 앤서니(저), 2015, 말, 바퀴, 언어: 유라시아 초원의청동기 기마인은 어떻게 근대 세계를 형성했나, 에코리브르.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에서는 사글리 바쥐 II 유적의 8호 유적에서는 울란곰 유적을 소개하면서 보여드렸던 인간형상물(여성)(그림 1)이 발견되었다. 북쪽벽(39)(그림 2)에서 나왔는데, 어떤 인골의 유물이라고 볼 수 없는 위치이다. 이 유물은 동검의 손잡이 끝장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염소머리와 말 몸통의 외곽선에 붙은 어떻게 보면 작은 공간에 빽빽하게 문양을 채운 유물이 발견된다. 그라치는 카자흐스탄의 타스몰라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비슷한 유물을 ‘수수께끼 같은 동물장식’으로 명명했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투바 지역의 특색이 남아 있는 유물이자, 카자흐스탄과의 관련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8호 무덤도 앞에서 보여드린 무덤과 같이 나무로 된 무덤방에 사람들이 한 방향을 보고 누워서 매장된 무덤이다. 7인이 매장되었는데, 아이는 3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라치의 저서에는 IV호 인골의 성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불분명하지만, 성인은 모두 남성이다.
그림 2. 사글리 바쥐 II유적 8호 무덤바닥
그림 3. 사글리 바쥐 II유적 8호의 무덤 가장 위 평면도(위)와 단면도
8호와 9호에는 골제로 된 말 장식이 나왔지만 1호에는 실제 말이 무덤 구덩이에서 출토되었다. 1호에는 2명의 성인남성과 1명의 아이가 함께 매장되었다. 이중에서 II호 인골은 자연적으로 미라화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의 북쪽에 말 2마리가 매장되었다. 이 무덤은 여러 모로 특이한데, 사글리 바쥐 II유적에서 무덤방을 통나무가 아닌 나무판으로 만든 무덤이며, 말이 매장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4. 사글리 바쥐 II유적 1호 무덤바닥
그림 5. 사글리 바쥐 II유적 1호 무덤덮개
그림 6. 사글리 바쥐 II유적 1호의 가장 윗면과 무덤구덩이 단면(아래)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하셨는지 모르겠다.
이 유적에서는 이상한 점이 발견되는데, 오늘 보여드린 8호, 1호 뿐만 아니라 13호, 9호에서도 확인된다.
바로 단면도 인데, 네모꼴(방형)이 아니다. 네모꼴은 위에서 아래로 정확하게 수직으로 팠을 때 남겨지는 것인데, 이 유적은 입구가 넓거나 바닥이 넓어서 단면에서 확인된 벽선이 수직이 아니다.
말이 부장된 1호는 사람과 말이 같은 레벨에 부장되지 않았고 말을 더 높은 단계에서 뭍은 것이다(그림 6)(말이 함께 부장된 파지리크 유적과 아크 알라하-3, 베르흐 칼쥔 II유적 등 알타이의 유적에는 말과 인간은 같은 레벨로 부장되었다).
8호도 무덤구덩이 입구 보다 바닥이 더 넓게 축조된 것이다(그림 3). 8호와 같은 무덤 구덩이 모습은 이 유적의 9호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기술력이 약했거나, 준비된 통나무가 생각보다 더 커서 우연히 바닥을 좀 더 팠거나)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여러 유적, 파지리크 유적 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투바 지역 무덤 특징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오늘은 5월에 출판된 필자의 책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의 내용은 서문(프롤로그)에 적은 글이고,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필자의 관심사 등을 간단하게 적어 두었다. 웬지는 모르겠는데 매우 어색하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문구가 있는데 '모든 책은 운명이 있다'.
1. ‘교과서 밖의 역사’의 시작은
어느 날 필자를 찾아온 검색어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강의는 몇 년 째 했지만 둘을 연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검색어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복원’이라는 검색어가 어느 날 집중되었고, 유라시아의 고대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몇 년 째 모아오고 있는 대학교 강의 자료를 블로그에 풀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는 우리가 배웠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고, 독자들에게도 거대한 공백과 같다고 여겨질 것이다. 특히 분단된 한국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이미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주제로 연구되고 있는데, 아직도 기초자료에 대한 정보는 역부족이다. 필자는 ‘인간형상물’과 그 출토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미약하지만 앞으로 여러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블로그에 글을 적으면서 전달을 쉽게 하기 위해서 풀어적으니 내용이 자세해 져서 독자에 따라서는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시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것이라고 믿는다. 연구자와 일반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필자는 선사시대 유적에 부장되는 인간형상물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커서 유학 당시부터 그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시작은 아무르강 하류의 극동전신상토우(김재윤 2008) 였지만 중국동북지방(김재윤 2019b)부터 최근에는 시베리아(김재윤 2019 a, 김재윤2021)와 흑해(김재윤 2019a)까지 넓히고 있다.
인류사 전체에 있어서 인간형상물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후기구석기시대 흑해와 시베리아 지역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까지 인간형상물이 이어지다가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지역에서는 인간 스스로 형상물이 된 미라가 이를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5장에서 설명하겠지만 미라를 연구한 학자들은 시신을 미라 처리하는 이유를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해석한다. 때문에 그 이전 시대 무덤에 부장된 인간형상물도 부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오랫동안 전통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스키타이 서부 지역인 흑해에서는 미라를 대신해서 여신상이 유물에 표현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부터 기원전 5~4세기 귀걸이, 장신구, 등에서 여신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동부 지역에서 미라가 발견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너스상 전통이 연속된다고도 볼 수 있다.
3. 글의 전개과정
이 책에서는 ‘스키타이’ 문화라고 명명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문화권을 잇는 스키타이 3요소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인 동물양식을 ‘스키타이 동물양식’이라고 부른다. 가뜩이나 어려운 러시아 지역명이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서 간략하게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자 한다. 실제로 이 책에 다루고 있는 아르잔-1호(그랴즈노프 1980, 스미르노프 2012)나 아르잔-2호(추구노프 외 2017)를 다룬 책이나 논문에서도 ‘스키타이’라고 간략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참고로 했다.
미라는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에서만 출토된다. 지리크 문화의 유적 가운데 아크 알라하-3 유적은 이미 국내에 번역서(N.A.폴로스막(강인욱 역) 2016)가 있다. 그러나 파지리크 유적에 대한 소개는 자세하게 없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알타이와 인접한 중국 신강성에서도 미라는 발견되지만 중국 자료는 러시아 자료에 비해서 이미 잘 알려져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제외했다.
이와 함께 스키타이 문화권의 기원지로 일컬어지는 아르잔-1호와 인접한 아르잔-2호 유적도 포함된다. 최근에 발굴되어서 도굴되지 않은 유적으로써 아르잔-1호와 다른 아르잔-2호의 무덤 구조는 파지리크 문화와도 일정정도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아르잔-1호는 그랴즈노프(1980)의 책과 아르잔-2호는 종합보고서 성격의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2017)를 참고로 했다.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인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및 파지리크 유적은 루덴코(1953, 1960)과 그랴즈노프(1950)의 책이 주요 원천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은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면서 가장 완성도 높은 미라가 출토된 유적이다. 필자가 촬영한 사진을 위주로 정리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폴로스막(2016)의 저서를 참고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라고 명명된 III절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랴즈노프(1980), 추구노프 외(2017), 루덴코(1953, 1960), 폴로스막(2001, 2016)의 책을 정리하고 필자의 의견을 붙인 것이다. 각 소절의 마지막에 참고문헌을 표기해 두었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권은 매우 넓은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알려져 있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은 흑해이다. 1859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설치 되기 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원래 스키타이 문화를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 지역에 관심을 두었던 이유는 미라가 출토되지 않지만,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어떤 지역보다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베리아와 함께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비너스상’이 출토되기 시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지인 시베리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문화적 공통성이 나타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적과 유물을 살펴볼 수 밖에 없었고, 학교 강의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 그 자료를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흑해지역의 무덤은 평지에 높은 봉분이 있는 외형으로 인해서 쉽게 눈에 띄어서, 고고학이란 학문이 자리를 잡기 전부터 도굴이 성행했다. 그래서 아르잔-2호 유적과 같은 수많은 정보를 알기가 힘들어서 가장 이른 유적으로 일컬어지는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위주로 설명했다. 기원전 5세기 이후는 인간형상물이 발견된 유적을 중심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시베리아 유적은 20세기에 발굴되어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지만, 이 지역의 자료19세기 이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해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정보의 내용도 흡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점이 많다.
심리적으로 섬나라인 한국에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먼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립운동을 했던 만주지역의 가장 끝인 대흥안령만 넘어 가면 바로 유라시아 초원이다.
끝으로 파랑새처럼 검색어로 나의 블로그에 찾아온 네티즌과 자신이 아는 바를 블로그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권유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2017년 이후는 필자가 매우힘들었는데, 바빠지고 정신없이 살면서 삶의 원동력을 찾았다. 책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 또 이 책을 엮는데 고생을 한 부산대학교 박사과정의 강나리 학생에게도 감사를 표시한다. 러시아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경희대학교 강인욱 선생님께도 감사를 표시한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진인진
시베리아 투바의 사글리 강 주위에는 많은 무덤 유적이 남아 있다. 기원전 5~3세기 유적이 집중되어 있다. 여러 유적 가운데 사글리 바쥐II유적은 남쪽의 몽골 울란곰 유적과 흡사하다. 이 유적도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한 곳이다.
사글리 바쥐 II유적은 다른 지역의 유적에 비해서 고도가 낮은 지역이지만 맹수장식이 발견되는데, 13호 유적에서는 청동거울의 손잡이 장식(그림 1-1)이다. 이 맹수장식은 이제까지 본 유물과는 좀 다르다. 보통 두 마리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머리의 측면이 보이도록 디자인 되었지만 이 유적의 유물은 한 마리 동물은 얼굴을 앞으로 하고 다른 동물은 측면을 표현했는데, 엉덩이를 물어 뜯는 장면이다. 잘 만들어진 동물투쟁문양과는 동물의 표현법(귀, 꼬리 등)이나 물어 뜯는 부위에도 차이가 있다. 맹수 치고는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그림 1. 사글리 바쥐 II유적의 청동거울, 1-13호, 2,3-9호, 4-6호, 5-4호, 6-큐즈렌기 I유적 1호
이 거울은 13호 주거지의 III호 남성의 물건이다. 이곳에서는 4인의 성인과 3인의 어린아이가 매장되었다. III호 남성은 가장 중앙에 있었고, 그의 오른쪽에 누운 사람(II호)도 남성이다. 가장 안쪽(I호)은 여성으로 추정된다. 이 세명과 약간 떨어져서 IV호가 있다. I호와IV호 인골 아래에 아이(V,VI,VII호)의 인골이 발견되었다.
13호에는 III호와 IV호 사이에 유물이 많이 발견되는데, III호 인골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2. 사글리 바쥐 II유적의 13호 무덤바닥
III호 인골 부장품: 19-송곳니로 만든 고리, 41-철제품, 17,42-사슴의 송곳니 2점, 16, 18- 사향노루(Кабарга) 송곳니, 46, 47-멧돼지 송곳니 2점, 4,8-고동껍질, 44-붉은색이 칠해진 토제항아리 12-청동검, 13-청동거울, 15-동물의 송곳니, 10-말 형상을 한 골제품(그림 3), 27-골제품, 두 마리 굽동물이 싸우는 디자인, 48-철제 검, 22,45-두개의 돌판 위에 놓인 붉은색 칠을 한 토기, 25-자작나무 껍질
사글리 바쥐 II유적의 말을 형상화한 장식판(그림 3)은 수수께끼 그림이 그려진 동물장식과 함께 기원전 5세기 투바의 유적을 상징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방법으로 그려진 것인데, 말의 어깨에는 날개와 같은 형상이 달려 있다. 그라치는 이 유물을 자신의 책(1980) 표지사진으로 썼을 만큼 크게 관심을 두었다.
그라치의 저서
뿐만 아니라 사향노루 송곳니와 고동의 껍질은 이제까지 보았던 유적에 없던 재료이다. 사향노루는 러시아에서도 ‘크라스나야 크니가(Красная книга России, Red book)에 기록된 동물이다. 러시아의 레드북은 멸종위기의 야생동물,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별로 식별하기 위해서 적어둔 데이터 기록물이다.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