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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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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남성 전사는 목걸이를 착용하고 묻힌 경우가 종종 있다. 해발 2500m 우코크 고원의 미라가 된 남성전사(그림 1), 아크 알라하-1의 1호분 45세 남성,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분 소년(그림 2) 뿐만 아니라 추야강 계곡의 유스티드 XII유적 무덤에서도 발견된다.

목제로 둥근 고리 끝에 동물장식이 달린 것이다. 고리 끝에 달린 동물장식은 대부분 맹수류 이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여성 목걸이는 동물장식을 여러 마리 달았지만, 남성은 이에 목제고리의 끝에만 달아서 심플하다.

 

그림 1. 베르흐-칼쥔 II유적의 남성전사 목걸이

 

그림 2.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분 소년 목걸이

 

그런데 베르흐-칼쥔 II유적의 남성전사 목걸이(그림 1)와 매우 유사한 금제로 만든 목걸이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그림 3)에도 있다. 눈과 귀, 갈기에 움푹들어가도록 만들어졌는데, 턱 모서리에 청록색의 터키석이 삽입된 점으로 보아서 같은 돌이 들어갔을 수 있다. 호랑이의 머리는 속이 비었고 일종의 수지로 채워진 것이다.

 

그림 3.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중에서 목걸이, 367.9g

 

위에서 언급한 알타이의 유적은 기원전 5세기 유적인데, 남성이 목걸이를 착용한 예는 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부터 발견된다. 1kg이 넘는 목걸이다(그림 4). 기원전 5세기 유적과는 달리 닫힌 모양이고 앞 부분이 두툼하게 장방형 판이 붙은 모양이다. 그런데 동물장식은 없지만 구조적으로 같은 유물이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5)에서도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동물장식도 없어서 매우 단순한 편이지만 다소 금이 많이 사용된 유물(941.8g)이라는 점 외에는 특징적이지 않았다. 아르잔-2호의 발굴로 이러한 스타일의 목걸이가 기원전 7세기 유물일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표트르 1세의 유물 가운데 맹수장식과 함께 이른 시기의 유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4. 아르잔-2호 5호묘 남성의 목걸이

 

그림 5.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중에서 목걸이, 직경 21.6cm, 941.8g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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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되는 동물문양장식은 청동으로 주로 제작되었고 주로 어떤 유물의 부속품인데, 무기를 장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는 청동거울과 버클 장식 등도 있다. 버클로 장식된 동물은 무릎을 굽힌 굽동물인데,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화려한 유물 중에 하나가 버클장식인데, 이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 컬렉션이다. 1716년에 시베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가가린이 표트르 1세에게 10점을 보내면서 유물이 수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보다도 먼저 시베리아 고분에서 황금 유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네델란드 과학자 Nikolas Witsen이다.

 1664년에 네델란드 대사관의 일원으로 러시아에서 근무했는데, 지리, 언어, 민족지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이었다. 러시아를 떠났지만 러시아 특파원?(스파이?)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수집했는데, 그 가운데는 도굴꾼이 획득한 금제품, 청동과 철제품도 포함되었다. 그는 1785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Cеверная и Восточная Тартария(타타르인의 북쪽과 동쪽)’에 자신이 모은 황금 유물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을 남겨놓았다(그림 1~3). 그가 죽은 후에 수집품은 경매에서 팔렸다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 알려진 사실은 없었다.

 

그림 1. 비트젠(1785)의 수집품, 루덴코 1962 재인용

 

그림 2. 비트젠(1785)의 수집품, 루덴코 1962 재인용

 

그림 3. 비트젠(1785)의 수집품, 루덴코 1962 재인용

 

 

 

하지만 19세기에 그의 책에서 본 그림과 비슷한 수집품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표트르 1세 컬렉션의 유물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버클 장식으로 늑대와 맹수가 싸우는 장면(그림 1의 하단)은 실제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4)로도 존재한다. 이 유물은 동일 유물이 아니라 ‘쌍’으로 제작되어서 한 점은 표트르 1세의 손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점은 Witsen의 손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비트젠이 남긴 편지에서 1714년에 인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표트르 1세에게 간 유물도 시베리아 총독이 수집해서 1716년에 보냈다. 당연히 같은 무덤에서 도굴된 것이다.

  비트겐의  사후 그의 수집품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했지만 상당수가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컬렉션이 되었다.

 

그림 4. 기원전 3~2세기,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그림 5. 기원전 5~4세기,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이 첫 번째 보낸 물품 중.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된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력션은 스키타이 시대만 국한 된 것은 아니고 기원전 3~2세기의 유물도 있다. 그림 4의 버클 장식도 기원전 3~2세기 유물로 생각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Федоровна K.E. 2006, Золото кочевников. О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НАУКА из первых рук(표드로브나 2006, 유목민의 황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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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서쪽 사면 해발 1000~1100m에 위치한 카자흐탄의 베렐 유적은 앞서 살펴본 실릭티 유적과 무덤 구조 뿐만 아니라 유물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실릭티 유적의 동물장식은 금판을 뒤에서 눌러서 앞쪽에 튀어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베렐 유적은 나무를 깍고 그 위를 금박으로 싸서 만든 것이다. 물론 금박이 잘 남아 있지는 않지만 몇 몇 유물에서 남겨진채 발견되었다.

 

베렐 유적은 이미 도굴당한채 발견되어서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대부분 말의 장식이 남아 있었다. 그 중에서 말의 굴레에 달았던 굴레장식 가운데는 사슴 장식이 남아 있다(그림 1). 그런데 이 사슴장식은 약간 어색하다.? 어색하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파지리크 유적과 비교하면 이제까지 없었던 사슴이다. 사슴이 입을 벌리고 표현된 경우는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 파지리크 유적에는 없었고, 대부분 호랑이나 표범 등 범 장식이 입을 벌리고 있다(그림 1). 두 동물이 대칭으로 표현되어도 얼굴을 서로 마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등을 뒤로 돌리는 표현도 없었다.

 

 

 

그림 1. 베렐 유적 11호분에서 출토된 사슴장식이 붙은 굴레

 

물론 두 동물이 대칭되도록 구성된 장식 중에는 엘크(그림 2)가 있다. 투엑타 유적 1호에서 굴레장식에 달린 사슴의 얼굴이 베렐 유적 11호분과 유사하기도 했다. 물론 뿔의 표현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투엑타 유적 1호분 사슴의 뿔은 초본류를 모방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슴의 원래 뿔일 가능성이 없다.(이것은 실제 엘크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위키백과 참고).

ko.wikipedia.org/wiki/%EB%A7%90%EC%BD%94%EC%86%90%EB%B0%94%EB%8B%A5%EC%82%AC%EC%8A%B4

 

말코손바닥사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무스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무스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말코손바닥사슴(학명: Alces alces)은 사슴과 말코손바닥사슴속에 속하는

ko.wikipedia.org

2020.07.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 - 2600년 전 하이브리드 동물문양

 

사슴 장식에서 서로 가슴만 붙인 것도 해발 1500m이상의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사슴의 자세이다.

 

그림 2. 베렐 유적 11호분 엘크

 

필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베렐 유적의 유물은 나무를 깎고 금박으로 싸서 만드는 방법은 알타이에서 이미 소개한 유물제작법과 관련이 있지만 동물표현에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알타이 그리핀의 상징인 독수리머리 그리핀, 말의 마스크로 추정되는 부속품도 발견되어 파지리크 유적을 닮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동물장식은 비율이 맞지 않고, 특정 부분만 강조되어 만들어져서 감쪽같지는 않다.

 

그림 3. 베렐 유적 11호분 독수리머리 그리핀

 

그림 4. 베렐 유적 11호분, 인간+동물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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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권은 인접한 지역과의 비교도 이루어지지만, 넓은 지역에 문화가 묶여 있는 만큼 각 지역간의 비교 연구도 활발하다.

초원 북쪽에 위치한 산림지대인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철제품은 널리 사용되고, 자신들의 제작기술이 있었어나, 스키타이 문화의 철제품 보다는 덜 정련된 철제품을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쿠즈미니흐 1983).

 

그럼 스키타이 문화의 주요 유물중에 하나인 황금 유물은 어떨까? 황금 유물은 주로 흑해지역과 카자흐스탄에서 두꺼운 금제품을 사용해서 시베리아 알타이의 유물보다는 잘 알려져 있다.

실릭티 유적에서는 흑해지역보다는 얇지만 금박보다는 두터운 금판으로 제작된 동물장식이 잘알려졌는데, 사슴장식(그림 1), 몸을 말고 있는 범 장식(그림 2), 새 장식(그림 3, 4), 멧돼지 장식이다. 앞의 두 유물은 면을 강조한 표현이라면 새 장식은 선이 강조되었다.

 

그림 1.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사슴장식

 

그림 2.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범 장식(1,2-앞면, 3,4-뒷면)

 

그림 3.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새 장식

 

그림 4.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새 장식의 실측도

 

그 중에서 사슴장식은 흑해지역의 코스트롬스카야에서 발견된 사슴장식(그림 4)과 비교된다. 두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은 자세는 같지만 몸통표현에 차이가 있다. 실릭티 유적의 유물은 몸통이 편평하게 표현되었고, 코스크롬스카야 유물은 앞서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양적으로 표현된 유물이다. 물론 뿔의 가지 수, 뿔의 모양, 눈과 콧구멍의 모양 등 세부적인 표현 차이도 있다. 그러나 두 유물이 전혀 다른 제작기술로 만들어지게 보이는 것은 몸통 표현의 차이 때문이다.

 

 

그림 5. 흑해(코카서스 북쪽)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의 사슴장식

 

코스트롬스카야 유물과 실릭티 유물의 제작기술 차이처럼 보이는 그 배경에는 소재의 차이도 있다.

실릭티 유적은 이미 도굴당하고 남은 유물은 전부 금제품이었는데, 원래는 엄청나게 많은 금제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금이 부족해서 금을 아끼기 위해서 얇게 금 장식을 만든 것 같지는 않고 얇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 수 있다.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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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10. 13:08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스타일과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으로 파악된다.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사 현미경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이다(Scythians 2017).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동물장식이 있는 개방형 금팔찌, 그리핀 장식, 반지, 활 통 장식물, 원판형 유물 3점(동물문양, 동물의 얼굴, 도깨비? 얼굴이 그려짐)이다. 그 중에서 어제 소개한 개방형 금팔찌는 주조해서(거푸집이용) 제작되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금판과 금으로 된 선(와이어)을 손으로 가공해서 만든 것이다. 금판은 원하는 모양과 두께로 망치질 되었고, 앞면과 뒷면 모두 잔 손질을 해서 납작한 금판을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만든 것이다. 금속은 해머링(망치질)과 가열냉각(annealing)을 통해서 모양이 변형되었다. 망치질에 의해서 생성된 내부 응력을 제거하기 위해 금속을 수백도까지 가열했다가 다시 식히는 것을 반복한 것이다. 그러면 금속은 연화되고 균열없이 금속의 형태가 변형되어 다른 형태로 보일 수 있다.

 

사자그리핀의 꼬리도 따로 부친 것이 아니라 두드려서 만든 것이다. 금판을 뒤에서 망치로 두드리는 금속작업을 reposse(push)라고 하는데, 체이싱 기법과 함께 결합해서 많이 사용된다. 체이싱(chasing)기법은 금표면을 따라 무딘 날이 있는 송곳을 이용해서 부드럽게 두드려서 윤곽을 만들고 장식을 하기 위해서 금속을 아주 얇게 깍아내는 방법이다. 이 체이싱방법은 스키타이 금제 유물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다.

 

그림 1. 아무다리야 유적의 사자 그리핀, 길이 6.16g, 금 77%, 은 20%, 구리 3%

 

 

 

또 하나의 기술은 유물을 더 세밀하게 보이도록 하는 펀칭방법이다. 펀칭 방법은 기원전 1천년 중반에 모든 금제 공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스키타이 유물에는 좀 더 특수한 방법을 이용했다. 예를 들면 맹수장식 묘사된 반지이다. 이 유물은 금판 자체가 은의 함량이 높아서 다른 원판형 유물에 비해서 더 두꺼운 판으로 앞면은 체이싱기법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서 금속을 절단해서 제작되었다. 이 유물은 뒷면에서 누르기 기법을 이용하지 않고 앞쪽에서 작업해서 동물모양을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가장자리는 날카롭게 절단되어 있다. 호랑이는 몸을 말고 있지만 날개가 있는 모습으로 그리핀이다. 날개부위에 절단한 흔적이 잘 남아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유적에서 출토된 반지, 몸을 말고 있는 날개 달린 호랑이, 그리핀, 직경 2.5cm, 무게 10.5g, 

아래의 사진에서 잘라내고, 깍아낸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

 

사자는 페르시아의 상징적인 동물이지만 이 유적에서 발견된 사자 그리핀은 스키타이 금속 기술로 제작된 유물이다. 사자 그리핀이 출토되었다고 모두 페르시아의 영향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이 유물은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여성 미라의 목제 목걸이 장식 그리핀과 특히 유사해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2020/03/2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알타이의 2500년 전 뿔 달린 그리핀

 

알타이의 2500년 전 뿔 달린 그리핀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2500년 전 파지릭 유적의 무덤에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도굴당했지만 상당히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1940년대 후반에 발굴된 이 유적의 무덤은 1990년대 발굴된 아크 알

eastsearoad.tistory.com

물론 초창기 연구들은 사자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해석되기는 했으나 최근에는 유물 자체의 제작기술을 살펴보면서 좀 더 다양한 시각이 생겨나는 것 같다.

사자 그리핀의 용도는 뒷면에 2개의 길다란 핀으로 보아서 여성의 머리장식으로 보았으나, 뒤에 달린 핀이 납땜으로 아주 단단하게 고정된 점으로 보아서 펠트제 고깔모자장식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12~319 p.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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