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우랄 강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봉분을 쌓아 만드는 쿠르간(봉분무덤)이 있고, 그 내부의 부장품도 철검(아키나크 검), 화살촉, 재갈, 재갈멈추개,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어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과 공통성이 있다. 물론 동물장식도 포함한다.

 

특히 필리포프카 유적의 사슴장식(그림 1~3)은 유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의 사슴 스타일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적에서 모두 5개가 출토되었는데 무덤의 입구 좌측에서 출토되었다(그림 4-16). 원래는 모두 세워진 상태로 부장되었을 것이다.

유물은 황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 청동, 은을 합금했고, 그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사슴의 원형이 남아 있다. 유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여러 조각을 이어붙인 것도 있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당시의 사슴

 

사실 뿔만 아니면 이 동물을 사슴으로 보기 힘들다. 지나치게 튀어나온 입과 사슴치고는 짧은 다리 때문이다. (알타이의 사슴과 비교해보면 세밀하지 않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사슴복원, 높이 49~51cm, 뿔의 너비 29~30cm, 몸통전체길이 39~41cm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사슴, 그림2의 옆 모습

 

그림4.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사슴이 출토된 무덤 1호의 평면도, 16번 자리에서 사슴이 출토되었다. 남쪽으로 난 길다란 계단복도가 입구이다.다시 설명드리겠다(Пшеничнюк А.Х. 2012)

 

 

 

황금사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목제 사슴을 감싼 부분이 금, 은, 청동으로 합금한 금속물질이다. 나무조각을 금으로 싸는 동물장식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문화의 동물장식 특징이다. 물론 사슴을 표현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이 유적에서는 알타이와 투바에서 출토되는 목제 잔이 출토된다. 물론 손잡이 모양은 다르다. 유적에서는 금과 합금한 금속판으로 만든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발굴할 당시인 1986년에는 흥분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현재의 자료로 보면 기원전 4?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당대에 존재하던 기술로 만든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기원전 7세기경의 시베리아 투바 아르잔-2 유적에서 훨씬 세련된 동물문양장식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프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바샤다르 유적은 앞서 살펴본 파지릭 유적 보다 대략 100년 정도 이른 유적으로 생각한다. 대체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를 일종의 지역문화로서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을 1947년에 발굴해서 이 유적에서 확인된 매장문화의 특징을 파지릭 문화(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라고 했다. 그런데 1950년에 바샤다르 유적을 발굴해 보니 ‘파지릭문화’의 특징이 이 유적에도 많이 확인되어서 이 유적도 파지릭 문화의 한 유적이 된 것이다. 바샤다르 유적이 파지릭 유적 보다 이르다고 해서 문화명칭을 쉽게 바꾸지는 않는다. 이미 다 잘 알려진 것이 ‘파지릭문화’이기 때문이다.

 

헤로도투스가 역사에 기록한 스키타이 사람들의 문화 중에서 왕의 장례식 치르는 장면에 미라처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재밌게도 19세기 말부터 아직 로마노프 왕조가 있을 때(혁명 전) 러시아제국고고학회가 발굴을 시작한(연구하기 시작한)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라고 믿던 유적에는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다.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내장을 발라내고 피부에 발삼(향료와 오일을 섞은 일종의 연고)처리를 한 미라처리 기법은 시베리아 알타이에서만 확인된다.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에 위치한 타가르문화에서는 미라 비슷한 기법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알타이 미라와는 다르다. (타가르 문화문화도 동물문양장식, 마구, 무기 등이 확인되어서 스키타이 문화권의 일부로 본다. 앞에서 살펴본 아르잔 유적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다.)

 

포스팅(표에서 타가르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astsearoad.tistory.com

 

바샤다르 유적의 2호는 직경이 58m 정도 된다. 1호는 직경이 40m이다. 가장 중심부의 높이는 1.85m,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2.7m가량이다. 구글 인공위성지도로 봉분이 보일 정도이니 도굴꾼들에겐 ‘어서 잡수셔’하는 의미로 보였을 것이다. 역시 도굴당한 흔적(그림 3, 그림 4)이 생생하다. [러시아의 알타이나 카자흐스탄, 몽골 등등 봉분이 있는 큰 무덤은 대부분 도굴꾼 들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금딱지 들을 주워가고 다른 것들은 남겨 놓고 가서 그나마 정보가 남아 있다]

그림 1의 봉분 위의 검은 색 표시는 도굴한 흔적은 아니다. 이는 근현대에 들어서 지역주민들이 봉분위에 자신들의 무덤을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그 옛날의 무덤 근처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분문에만 흙으로 덮은 흔적이 있어서 알아 보기 쉬웠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2호분, 돌로 덮은 부분의 아래에 있는 다른 물질은 땅에서 파낸 흙이다.(위: 평면도; 아래: 단면도)

 

봉분을 덮은 돌을 분해하면서 말의 재갈, 철제도구 및 목제 막대기와 석제로 된 곡물파쇄기(멧돌)?이 확인되었다.

 

 

 

그림 2. 바샤다르 유적 2호분, 돌을 분해하다가 발견된 석제품. 곡물파쇄기로 추정

 

무덤구덩이는 깊이 6.15m, 크기는 5.2× 6.3m이다. 무덤 구덩이는 돌 아래에는 수백개의 통나무로 채워져 있었다. 통나무 아래에는 덤불이 1m정도 눌려져서 확인되었다. 이 덤불은 ‘쿠릴 차’라고 하는 식물이다. 이 덤불은 무덤방 바깥에 매장된 말이 매장된 곳 위에도 16개의 통나무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그 아래에는 자작나무 껍질이 덮여 있었고, 역시 말이 매장된 곳에도 말 사이까지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바닥에는 두께 17~18cm의 나무 4개를 깔고 그 위에서 두께 6cm의 통나무를 세 개씩 세워서 무덤방의 한 벽은 통나무 4개를 세워서 만든 것이다. 무덤방의 덮개는 8개의 통나무로 아주 조밀하게 만들어졌다. 무덤방의 크기는 2.2×4.15m, 높이는 1.3m이다. 무덤구덩이에서 남쪽은 무덤방이 설치되고 북쪽에는 말이 매장되는데 14마리가 확인되었다.

 

 

 

 

그림 3. 바샤다르 유적의 2호분 단면도(위: 위도방향(남북), 아래: 자오선방향(동서)

 

 

 

그림 4. 바샤다르 유적의 2호분 무덤방의 평면도(위: 무덤방의 덮개와 말, 아래: 덮개를 연 후 무덤방의 바닥)

 

바샤다르 2호의 무덤방에는 통나무관이 2개였다. 가장 남쪽에 안치된 것은 남성의 관이고 그 옆에 여성의 관이 놓여 있었을 것이나 도굴당하면서 관은 제자리에서 확인되지 않고 엎어져서 확인되었다. 여성의 시신도 미라 처리되었는데, 난도질 당해서 무덤방 여기저기에서 확인되었고, 남성의 시신은 아예 없어진 상태였다.

 

 

통나무 덮개에는 1.7×3m의 도굴구멍(그림 4)이 있었다. 이곳을 통해서 들어온 도굴꾼은 높이가 1.3m밖에 되지 않는 무덤방에서 마음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도굴구멍 바로 아래에 위치한 통나무관의 뚜껑을 열고 통나무관을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이 관은 여성의 관이었다.

 

남쪽에 있는 두 번째 관은 나무로 된 못으로 고정된 것으로 제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굴꾼은 말을 매장한 곳도 손을 대었는데, 말 무덤 쪽의 북쪽벽에 구멍을 내었다. 말을 통째로 꺼낼 수 없으니, 말을 잘랐는데, 자른 뼈가 무덤방 안에서 확인되었다. 도굴꾼은 말의 굴레장식에서 금박만 벗겨내고 나머지 나무로 된 부분들은 바닥에 남겨 두었다. 청동제품은 그대로 두고 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유물의 위치는 거의 제자리가 아니었고, 말의 장식까지도 거의 많이 흩어진 상태였다. 미라에 대한 정보도 남아 있지 않다. 파지릭 2호분을 도굴한 놈 보다 더 한 놈이 도굴했던 것 같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알타이 지역의 일종의 지역문화를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이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아래에 나무방을 만들고 인간과 말을 함께 묻었다. 앞에서 살펴본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3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무덤마다 무덤방의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과 말을 멀리 묻지 않고, 같은 구덩이에 함께 묻었다.

 

그런데 스키타이문화라고 하면서 이 보다 더 오래된 아르잔-2호의 무덤방 안에는 주인공 남녀만 확인되었다. 어제 살펴본 돌판 위에 말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퉁’ 친것일까?

 

물론 아니다. 이미 무덤구조를 살펴볼 때 장례식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말의 의식이 있었고 말무덤이 따로 있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무덤방인 5호와 가장 가까운 곳인 2호에서 안장이 확인되면서 말이 묻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16호는 특별한 무덤이다. 왜냐하면 나무로 무덤방을 만든 경우가 주인공 무덤 5호, 무덤방 2호, 9달된 어린아이의 무덤 외에는 전부 돌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무덤방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나무가 특별한 소재 임을 알 수 있다. 아르잔-1호와는 전혀 다르다. 거기는 나무를 펑펑 썼고(통나무 6000개 이상), 여기는 아주 아껴서 나무를 썼다. 요즘도 곧게 뻗은 나무는 매우 비싸다. 가장 비싼 건축재료라고 들었다.(남대문 복원때 문제가 생긴것도 나무였다.  나무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자살하신 분도 있다.....)

 

주인공 무덤방 5호와 같은 건축재인 나무를 쓴 무덤방 16호에는 말이 14마리 묻혔다(그림 6). 무덤의 남동쪽에 위치하는데 남동쪽 구역에서는 유일하게 스키타이 시대의 구조물이다. 말무덤은 우선 돌판으로 만들어졌는데, 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상 위(그림 1, 2-2,3)에 올린 것이다. 돌판을 드러내자 나무덮개(그림 2-2, 3)가 드러났다.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구조는 대략 알 수 있었다. 우선 가로 방향으로 2~3m 간격으로 통나무를 배치하고 그 위에 세로방향으로 돌 상자를 채웠다. 나무덮개는 돌상자 전체를 덮었다(그림 3).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의 돌 덮개 및 16호의 단면도(2,3), 3번 그림에서 나무바닥은 만들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돌 덮개 개방 후

 

나무 덮개를 열자 14마리의 말이 배를 바닥으로 향하고 사지를 구분린 채 확인되었다(그림 4). 말 1,2는 가장 남쪽, 그 위쪽으로 2~5번 말 4마리, 그에 이어서 6~8번 말(그림 6-2), 가장 북쪽에는 9~14번 말이 배치되었다. 배치된 상태에 따라서 말의 장식이 차이가 있지 않고 모든 말이 같은 장식이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마구

 

청동재갈(그림 4-6)(길이 18.7 cm, 폭 2.8 cm, 두께 0.9 cm)과 재갈멈치(그림 4-7,8)(길이 15.8 cm, 너비 0.9 cm), 청동으로 된 원뿔모양의 장신구(그림 4-4,5; 9~14), 꼬리(그림 4-2, 그림 5-2)와 갈기(그림 4-1, 그림 5-1)를 장식하는 금판장식이다.

 

갈기장식(길이 12.7cm, 너비 4.5cm, 두께 0.03cm; 무게 8.92g)과 꼬리장식(길이 8.3 cm, 폭 2.3 cm, 두께 0.03 cm; 무게 3.88 g)을 제외하고 모두 청동제이다.

청동제 재갈과 재갈멈치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이다.

 

 

원뿔모양의 장식은 두 종류가 있는데, 재갈과 재갈멈치와 마찬가지로 가죽끈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원뿔모양 장식이 모든 말에서 확인되지만 위치가 제각각이어서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재갈과 재갈멈치에서 연결된 굴레의 끈을 연결부위를 이어주는 매듭 혹은 장식으로 생각해 볼 수 없다.

 

이외에도 말 머리에서 떨어진 채 확인된 청동제 장신구(그림 4-3)(길이 5.1cm, 너비 1.4cm, 두께 0.3cm)가 있다. 주몰로 제작되었고, 구멍이 있어서 어딘가에 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8번 말의 마구(그림 4와 동일)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말(1-말의 출토상태, 2-나란히 배치된 3마리 말, 3-말의 두개골과 주변에서 확인되는 말 장신구, 4-말의 엉덩이 부위, 꼬리를 장식했던 금판이 눈에 띈다)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말 14마리는 모두 같은 마구 및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이 점은 파지릭 5호분과 차이가 있다. 파지릭 5호분에는 가장 아래에 들어간 9번 말은 마면까지 썼고, 실크로 된 안장덮개가 세트로7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다른 말도 안장이 있는 말과 없는 말이 있었다.

 

2020/04/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 동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 동물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가운데서 해발 1500m 파지릭 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2500년 전 알타이에는 무덤 안에 말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도 예외가 아니��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는 2700년 전 시베리아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이다. (좀 더 정확하게 초기스키타이문화는 우육문화라고 한다. 유적이 위치한 고원의 이름이다. )앞에서 황금유물과 청동유물을 소개해 드려서 초기철기시대라는 점을 잠시 망각하셨는지 모르겠으나 철기시대이다. 금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장신구 혹은 의식용품이다. 철로 만들어진 것은  무기이다. 특히 무기 가운데서 검, 칼, 투부(전투용도끼)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어제 21살의 여성도 철제투부로 맞아서 머리에 구멍이 났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의 남성 우측 골반 부위에서는 철제검과 철제칼 2자루가 확인되었다. 검은 단검(짧은 검)으로 길이가 38.7cm가량(너비 7.5cm, 두께 2.5cm, 무게 930.06g)이다. 발굴당시에는 나무칼집에 들어가 있었으나 썩어 없어진 상태였고, 철 자체도 매우 부식이 심해서 손잡이와 손잡이 끝 장식은 변형이 심했다. 나무칼집은 뒷면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다. 부식 때문에 금속층이 분리되었다. 손잡이는 여러 겹을 붙인 것인데, 4겹으로 땜질해서 부착된 것이다. 손잡이와 검의 중간 부분은 금판으로 장식 된 것인데, 앞뒤면이 동일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이 복원과정에서 나타났다. 검의 날이 끝나는 부분(검날멈추개)와 손잡이 끝부분(검파두식)은 철에 홈을 내고 그 안에 금박을 상감한 것이다.

 

손잡이와 칼날에 붙은 금판 장식은 사실적인 동물문양장식과 추상적인 문양이 금판에 표현되었다. 추상적인 표현은 새의 날개를 풀어서 나선모양으로 묘사한 것이다.

검의 날이 끝나는 부분(검날 멈추개)에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2마리와 손잡이 끝부분(검파두식)에 같은 문양이 감입되어 있다. 호랑이는 몸에 난 줄 문양까지 아주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뿔이 있는 동물은 염소로 보이는데, 두 마리의 호랑이기 염소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손잡이 끝장식 아래에는 작은 호랑이 2마리가 염소를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손잡이 전체 측면(검날멈추개, 두식, 검파두식)에도 동물문양이 배열되어 있다. 손잡이(검파)는 3줄로 구성되었는데, 중앙선은 검날까지 이어지면서 동물문양도 연속되게 배치되었다. 위에서 검파두식 아래에 새겨진 문양 아래에는 염소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 그림이 검날의 중심부까지 5번 반복된다. 검날의 가장 끝 2장면은 크기가 작아진다. 검날중심판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는데, 새의 날개를 추상화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남성의 철제검, 철검의 금판에는 붉은색의 염료가 칠해진 것이 확인된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남성의 철제검(그림1과 동일유물)

 

 

철검이 발견된 곳에서 목제칼집에 붙어서 철제칼이 2점 출토되었다. 칼은 날이 한쪽으로만 있는 것이다. 부엌에서 쓰는 것은 칼이다. 두 철제칼은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둘 다 금판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손잡이 끝까지 금판이 붙은 것(그림 3-1)이 약간 더 크다(길이 28.9 cm, 손잡이 폭 3.5 cm, 날의 폭 2 cm, 두께 0.7 cm; 무게 58.74 g).손잡이의 앞뒤면은 같은 문양이고 측면은 다르다(그림 5-1,2). 앞 뒷면에는 기본적으로 곡선V자형 문양 7개가 번갈아 가면서 표현되었다.

 

철칼에는 동물문양이 있을까?

물어보는 것을 보니 있는 것 같다. V자형 문양은 2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뿔이 둥글게 말린 양 3마리, 다른 V자형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다. 측면에는 새의 날개를 추상화 한 문양이 한쪽에만 표현되었다. 금판에 붉은색의 색깔을 입힌 흔적(그림 3-2b)이 남아 있다.

 

 

다른 철검(길이 24.4 cm, 너비 3.4 cm, 너비 1.7 cm, 두께 0.7 cm, 무게 25.78 g)(그림 3-2)은 앞면의 손잡이에만 금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선문양인데, 붉은색 염료의 흔적이 있다(그림 3-2b).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그림3과 동일)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 손잡이 세부, 1은 측면에 붙은 금판이 달라서 앞뒤양측면을 모두 그린것이다.

 

아르잔-1호 유물과 같이 완벽하게 몸을 만 호랑이는 아니지만, 아르잔-2호에서도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이 철제검에서 확인된다. 호랑이가 줄무늬까지 표현된 방법은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장식으로 확인된 바 있다. 나선문양도 문양의 구성요소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문양에 대한 관념이 비슷하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의 철제무기는 장식성이 매우 심하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품, S자형 장식판

 

이 유물은 무엇일까? 무엇의 일부일까?

 

금으로 제작되었고 길이 4cm, 너비 2cm, 두께0.9cm, 무게는 20.45~23.83g이다. 흩어진 채로 확인된 것은 29개인데, 거의 크기와 무게가 비슷하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S자가 상하로 각각 2개씩 배치된 모습이다. 그 중에 6개는 S자의 상하단 중간에 리본장식(그림 1-가운데)이 있는 것도 있다.

 

아래가 유물이 출토된 모습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고리트의 벨트 끈 노출

 

 

 

 

 

이 유물은 벨트의 장식이다. 벨트는 검과 고리트(활통)과 연결해서 허리에 감아서 사용했던 것이다. 가죽은 남아 있지 않다.

 

유물이 출토된 위치는 무덤방 5호 평면도에서 37번이다.

 

2020/05/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전 시베리아 무덤 출토 검 집장식(호랑이모양)

 

2700년전 시베리아 무덤 출토 검 집장식(호랑이모양)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 무덤방 5번에서는 금, 철, 청동 등 다양한 금속재질로 제작된 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 그런데 유물 개개는 매우 세밀하고 정밀해서, 유물의 목록

eastsearoad.tistory.com

 

 

이 벨트의 끝에는 새머리장식판(너비 4.4cm, 높이 4.1cm, 무게 43.82g)이 붙어 있다. 새의 뒷머리가 서로 맞대도록 설계되어 있고, 새의 목이 붙어있다. S자 두개가 서로 등을 데고 있는 모양이다.

 

또 다른 벨트의 끝은 평면형태 반타원형(길이 4.4cm, 너비 2.4cm, 두께 0.3cm, 무게 19.92g)이고 그 안에 S자형 문양이 2단으로 3개씩 점차 작아지면서 표현되었다. 뒷면은 매끄럽다.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품, 고리트와 연결된 벨트 장식의 끝 부분, 그림1과 세트

 

유물이 출토된 곳은 무덤방 5호 평면도에서 40번이다.

 

벨트는 어떻게 주인공에게 착장되었을까?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