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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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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7.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일천년기 유라시아 초원의 문화는 비슷한 듯 하지만 차이가 분명하다. 특히 스키타이 문화권의 중심에 있었던 알타이에는 다양한 문화가 발견되지만 알타이에서 재해석 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앞에서 필자는 동물투쟁문양 가운데서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은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앗시리아 수입품 가운데 발견되기도 했고, 페르시아 문양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게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이미 이 문화권 내에 기원전 7세기경에 이러한 문양이 발견되었다면 이를 구지 페르시아에서 넘어왔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어제 설명한 양모에 표현된 여성들과 마찬가지이다.

 

페르시아에서 지속적으로 문화교류가 있었고 넘어 왔다고 해도 페르시아의 사자 변형동물과는 차이가 있다. 수사의 궁전벽에 그려진 날개 달린 사자 그리핀(그림 1)은 앞다리와 뒷다리 표현이 다르다. 뒷다리는 새의 다리이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투쟁문양의 맹수 혹은 그 변형은 전부 앞다리와 뒷다리가 같다. 말 발굽이나 맹수의 발을 하고 있다.

주로 안장덮개 장식으로 많이 이용되었지만 허리띠 장식(그림 3)으로도 사용된 것이 2호에서 발견되었다. 은제품으로 가죽 벨트에 장식했던 장식이다.

 

그림 1. 수사 궁전의 사자 변형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안장덮개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벨트 장식

 

그래서 파자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사자 변형동물 중에서 투쟁문양을 하고 있는 동물문양은 알타이에서 재해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완전히 페르시아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유물은 숫사자(그림 4)를 표현한 머리 장식과 같은 것인데 동물투쟁문양처럼 많지 않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1호 출토

 

2020.05.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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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5.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에서 기원전 5세기경의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신기하지만 페르시아의 유물들이 발견된다.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동물투쟁문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리엔트 지역에서 온 동물투쟁문양은 맹수가 피식자를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으로 두 동물이 서로 물어 뜯는 것과는 다르다.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벽화에서 발견되는데(그림1-a), 비슷한 모습이 파지리크 유적 2호분의 안장장식(그림 1-6, 그림 2)으로 발견되었다.

 

그림 1. 페르시아 계통의 동물투쟁문, 1: 페르세폴리스 궁전, 2: 켈르레메스 유적 금 그릇, 3: 쿨-오바 유적, 4: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5: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6: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안장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안장장식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도 피삭자의 뒤를 공격하는 포식자의 모습은 여러 유적(그림 1-1,3,5)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들 맹수의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알타이의 동물장식(그림 1-6, 그림 2)에서 보이는 기호표식은 없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에서도 발견된다(그림 1-4).

 

페르시아계통의 동물투쟁문양은 자세만 따른 것이고, 기호의 요소는 루덴코의 생각이 맞을 가능성이 많다. 맹수가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은 앗시리아에서 수입한 금그룻에 그려진 것(그림 1-2)이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이 자세는 앗시리아에서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알타이에서 생겨난 동물투쟁문양은 따로 있다.)

 

어찌되었던 코카서스 남쪽에 존재했던 우라르투의 사자에서 발견된 기호 표식은 주로 알타이에서 유통되었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금제품에도 특히 동물투쟁문양의 앞다리와 뒷다리에서 발견된다. 또 아무다리야 강 하류에서 발견된 퇴장지 유물(그림 3)에서도 같은 표식의 문양이 발견된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2020.12.1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스타일과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으로 파악된다.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사 현미경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이다(Scythians 2017). www.google.com/maps/d/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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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코(1961)는 사자 그리핀을(그림 4) 페르시아 유물로 보았다. 페르세폴리스의 사자 그리핀과 매우 흡사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사자 그리핀은 그림 3의 유물과 함께 스키타이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4의 사자 그리핀에 남아 있는 표식으로 보아서 알타이 혹은 부근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문양의 사자를 이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안장장식 가운데 비슷한 사정이 있는 유물이 있다. 머리가 독수리 모양이라서 독수리 그리핀으로 불리지만 귀 대신 달고 있는 산 양의 뿔, 힘줄이 강조된 앞다리 등은 페르시아 유물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2호분에서 발견된 유물은 순동판을 찍어서 표현한 것이지만 정확하게 용도는 알 수 없다.

 

그림 5.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순동판

 

생각해 보면 알타이에서 페르시아 유물 혹은 페르시아 문양이 있는 알타이 유물이 발견된 것은 별로 신기하지 않다. 2호분과 5호분의 남녀는 서로 다른 인종이 부부였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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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4.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고대 유라시아 초원에는 북쪽의 스키타이 사람들과 남쪽의 오리엔트 지역의 사람들은 서로 교류를 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유물과 유적에서 그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페르시아의 아카메니드 왕조 궁전벽에도 남아있고, 알타이의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는 카펫이나 가죽 아플리케 장식에서 외부세계에서 온 요소들이 있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페브릭

 

그림 2. 기원전 5세기 페르세폴리스 궁전

 

그림 3. 기원전 8세기 우라르투의 카미르-블루르 유적, 사르두리 II세의 청동방패

 

 

사자가 표현된 동물장식은 크게 별다를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사자의 존재는 알타이에서 서식하는 동물이 아니다. 특히 고대 오리엔트 지역(코카서스 남쪽)에서 유행하던 문양이다. 또한 이 사자의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가 표현되어 있다. 사자의 다리는 4개가 뚜렷하고 꼬리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이와 같은 사자가 페르시아에는 기원전 5세기경에 지어진 페르세폴리스 궁전벽에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인 기원전 8세기경의 우라르투 유적인 카미르-블루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뒷다리에는 보이지 않지만 앞다리에는 기호와 유사하며 비슷한 포즈로 걷고 있다.

 

이를 두고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동물장식에서 발견되는 기호와 같은 표식이 페르시아 보다 더 오래된 고대 오리엔트 지역일 것으로 루덴코는 추정했다.

 

하지만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특징들은 우라르투 보다는 페르시아와의 관련성을 더 보여주는 유물이 많다. 이 점은 기원전 5세기에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앗시리아와 우라르투의 문화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사자동물문양이나 반인반수는 분명히 우라르투도 사용했기 때문에 두 문양을 고대 앗시리아 특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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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3.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그리핀은 대부분 맹수와 맹금의 변형한 동물이다. 북방에는 호랑이류가 먼저 나타난 듯 하고, 남방의 페르시아에는 맹금류와 사자류가 변형된 그리핀이 존재했다.

 

그런데 알타이에서 발견된 맹수 변형가운데 앞다리와 뒷다리에서 발견되는 기호‘(○)’ ‘<○>’도 고민거리 중에 하나이다. 알타이 및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페르세아 아케메니드 왕조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페르시아 아케메니드 왕조의 영향일 것이라는 의견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그러나 알타이를 실제로 발굴한 루덴코는 아케메니드 왕조 보다는 더 오래된 고대 동방에서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타난 안장장식의 아플리케에서 보이는 것이 아케메니드 왕조의 장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럼 고대 동방이란?

예전에 코카서스 산맥 남쪽의 우라르투를 설명하면서 앗시리아 보다 더 강성했고 두 세계의 예술품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고 했다.

 

사실 우라르투와 앗시리아의 유물을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정신세계와 관련되어 있는데 당시 믿는 신(神)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라르투 유적과 유물은 20세기 초에 전쟁통에서 발굴된 유적들이 대부분이고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 아뭏튼 루덴코의 의견은 기원전 5세기 아케메니드 왕조 보다는 더 오래된 고대 오리엔트 지역의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에 있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굴레에 달았던 장식품을 떠 올릴 수 밖에 없다. 뼈로 깍은 것인데 양(羊) 그리핀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양머리의 입에 맹금 부리가 달린 모습이다(그림 1). 사실 이 유물은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대로 흑해지역에서 제작되었을 수 있지만, 남쪽의 우라르투 카미르-불루르(그림 2)에서도 발견되어서 약간 의문스럽다.

 

그런데 이 그리핀은 그렇기 인기가 없었다. 기원전 7세기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라르투처럼 사라져 버렸다. 물리적으로 고대 오리엔트 지역(우라르투와 앗시리아)의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다. 그래서 알타이에서 우라르투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쉽지만.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굴레장식, 뼈제품

 

그림 2. 카미르-불루르 유적의 재갈멈치. 뼈제품

 

 

호랑이 변형 스키타이 그리핀, 그리스 그리핀, 페르시아 그리핀이 기원전 5세기경에 대 유행했다. 페르시아에는 그리핀 보다는 반인반수가 전통적?으로 더 선호되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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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2.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여러 문화에서는 동물문양장식이 대유행했다. 시베리아에서 기원전 9세기경부터 청동으로 만든 유물을 쓰기 시작한 이후이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유라시아 지역 곳곳에서 발견된다.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각 지역의 특징은 있지만 사실적이지만 간략화되어 나타난다. 어떤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동물장식은 동 시대의 그리스, 페르시아, 우라르투에서도 제작되었고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내에서도 유통했다. 다들 무슨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을 변형한 물건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에서만 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중에서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의 유물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내에서 그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리스 문화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언뜻보면 맹수처럼 생긴 동물이 말을 물어 뜯고 있는 동물투쟁문양(그림 1)이 있다. 맹수는 S자로 몸을 꼬고 있고 작은 날개를 달고 있다.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 표식이 있다. 그런데 이 동물의 머리에는 산염소의 뿔이 달려 있다. 뿔을 제외하고는 몸통의 표식은 알타이 동물장식(그림 2), S자로 굽은 날개달린 맹수는 카자흐스탄 이식(그림 3) 유적에서 발견되어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기원전 5세기 맹수변형이다. 그런데 이 동물에 페르시아 그리핀(그림 4)에서 볼 수 있는 뿔이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그림 2.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출토

 

그림 3. 카자흐스탄 이식 유적의 맹수

 

표트르 1세의 수집품은 아마도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알타이)에서 누군가 동물투쟁문양을 만들었을 것이고, 페르시아의 그리핀도 알았던 사람이 두 문화의 결합을 상징하기 위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이 점은 무슨 뜻을 내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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