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화려한 유물이 남은 시기는 기원전 5세기이다. 이는 스키타이 문화권 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 경부터 화려한 문화가 확인되기 시작하니 다른 지역보다는 약간 이르다.
그 중에서 바샤다르 유적 2호 무덤에서 유일무이하게 동물문양이 장식된 통나무관이 발견되었다. 시베리아 잣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셀쿠프 족은 이 나무를 죽음의 나무라고 여긴다. 자작나무 등 낙엽송을 밝은 나무라고 여기고 부활의 의미를 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는 왜 이 무덤에만 자작나무가 아닌 잣나무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동물문양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주제 가운데서 동물투쟁문이라고 불리는 문양은 크게 2가지가 있다.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서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문양과 스키타이 지역에서 생산된 유물이다. 그 중에서 알타이에서 제작된 동물투쟁문양은 이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이 가장 시초가 되었을 것이다(페레보드치코바).
그림 1. 알타이 바샤다르 유적 2호 통나무관(아래)과 뚜껑(위)의 동물장식
호랑이가 열을 이루고 있으며 호랑이의 발 밑에는 굽 동물(산양, 말?)과 함께 멧돼지도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스키타이 동물장식으로 이용되었던 것은 맞지만 그렇게 많이 이용되지는 않았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예가 매우 적다.
아마도 그렇게 선호한 동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페르보드치코바는 야유베다를 인용해서 고대 이란 및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멧돼지를 두려운 존재로 여긴 것으로 이해한다.
2022.02.06 - [스키타이 동물장식] - 기원전 5세기 유라시아 동물문양부적
암각화 등에도 주로 사슴사냥을 하는 장면은 발견되지만, 멧돼지 사냥을 하는 장면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투쟁문양(그림 1)은 포식자와 피식자가 상하로 표현되었다. 옆으로 긴 통나무관에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상이 아닌 1: 1 혹은 1: M으로 표현된 동물투쟁문양은 대부분 허리띠 버클 혹은 안장에 사용되어서 수평적(그림 2)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수집품 동물투쟁문양
동물투쟁문양(1:1, 1:M)에 멧돼지가 소재로 들어간 적은 없다. 변형된 적도 없다. 대부분의 스키타이 동물은 서로서로 결합되어 변형되는데 멧돼지는 그렇지 않다. 페레보드치코바의 생각처럼 스키타이 사람들은 멧돼지에 대한 감정은 크게 좋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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