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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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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흐 칼쥔(Верх Кальджин, Verkh Kal'dzhin) II 유적은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해발 2500m)에 위치한다. 앞서 설명했던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지도2)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현재까지 발굴된 남성 미라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남성미라(2호분,5호분)는 해발 1500m인 파지릭 계곡에서 확인된 것이다.

 

지도 1. 스키타이 문화 중 파지릭문화의 유적

 

 

지도 2. 우코크 고원의 베르흐 칼쥔 II유적(푸른색)과 아크 알라하 3유적(오렌지색), 지도 1의 확대, 지도1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확인가능하다.

 

https://www.google.com/maps/d/drive?state=%7B%22ids%22%3A%5B%22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22%5D%2C%22action%22%3A%22open%22%2C%22userId%22%3A%22104839998633637810520%22%7D&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유적은 칼진(Кальджин, Kal'dzhin)강의 상류에 위치한다. 유적의 이름은 칼쥔 강의 베르흐(Верх: 상류)를 그대로 명명한 것이다. 러시아 지명은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이를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유명사로 그대로 부르는 것이 나중에 혼돈이 적을 것이다. 일본에서 나온 책들은 이를 일일이 번역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그 유적이 어떤 유적인지 알 수 없다.

 

베르흐-칼쥔 II유적에는 4개의 고분이 일렬로 설치되었는데, 3개를 발굴했다. 그 중 남성미라가 확인된 곳은 3호분이다. 1호분에서 11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무덤, 까맣게 칠한 것이 발굴된 무덤이다. 위의 화살표 옆에는 칼쥔 강 입구까지 50m. 가장 오른쪽 화살표C는 북쪽을 의미.

 

 

무덤은 앞에서 본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의 1,2,5호분과 마찬가지로 지표상에서는 큰 돌을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그림 2). 돌을 들어내자 무덤 가장자리를 둘러싼 호석(6~7.6m)(그림 3)이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표토를 벋겨내자 드러난 돌. 화산암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적석을 들어내고 남은 호석

 

그런데 이 무덤의 단면도(그림 4)를 보면 앞서 본 아크 아라하 3유적과는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나무 무덤방이 설치되는 가장 아래의 무덤구덩이를 한 번에 파지 않고 단을 만들어서 팠다는 점이다. 표토의 생토를 기준으로 50cm정도 들어가저 첫 번째 단인 확인되었다.

 

그림 4.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단면도

 

2020/0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얼음이 녹자 드러난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성샤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발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아크-알라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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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구덩이(2.6×2.2m)의 깊이는 2m이고, 구덩이 안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시신을 안치했다. 위에서부터 121cm정도 들어가자 무덤방의 덮개가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무덤방 덮개

 

무덤구덩이에 나무 무덤방을 만들고 무덤 방 바깥에는 말을 부장하는 구조는 앞에서 본 2500년 전 파지릭문화(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에서 보았던 것이다.

무덤방은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결구한 무덤방인데, 내부에 관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무덤방이 관의 역할을 한 것이다. 무덤방 바깥에는 말을 매장했는데, 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2 마리 이상이지만 정확하게 몇 마리를 매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잘 남아 있는 목제 굴레장식과 철제 재갈은 한 벌이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거의 한 달이 넘게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을 살펴보았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유적은 다시 2500년 전 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일명 ‘얼음공주’의 몸에 문신을 남긴 같은 타투이스트가 이 남성의 몸에도 타투를 남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성 미라의 무덤이다.

 

처음부터 이 유적을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사진 자료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신한 3인을 모두 소개해 드린다는 목적에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앞서 문신한 미라가 얼음공주와 파지릭 2호분의 남성 외에 베르흐 칼쥔 II 유적이 있음을 이미 말씀드린 바 있다. 사실 미라와 문신은 상당히 높은 계급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 산통을 깬 유적이 바로 이 유적이다. 그다지 많지 않은 유물이 출토되는 직업은 군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남성이 미라로 제작되었고 문신(아래그림)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미라’가 스키타이 문화에서 모든 무덤유적에서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현재는 알타이와 중국 신강성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미라가 된 사람들을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소략하더라도.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아크 알라하-3 유적의 미라에 비해서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문신은 간단한 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필자가 아침마다 듣는 뉴스공장에 타투이스트가 나왔는데, 문신비용은 시간당 계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복잡하고 문신의 너비가 넓을수록 많은 시간이 드니 비용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타투이스트가 가장 몸값이 높다는 이야기도.

 

관계없어 보이지만,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무사 어깨에 새겨진 문신도 앞의 2명보다는 간단한데, 문신 계급론에 대한 아쉬움을 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세 명의 미라는 모두 같은 타투이스트가 새겼을 것이라고 한다. 필적도 감정을 할 수 있듯이 그림도 누가 그렸는지 감정할 수 있다. 문신도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러시아 유학 당시에 잠깐 문신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목같은 곳에, 러시아여성들이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해서다. 머 그러다가 말았지만...

 

암튼 잠시 잊고 있던 얼음공주 생각도 해보고,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과는 어떤 관계인지 실마리가 있는지도 알아 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사실 아무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베르흐 칼쥔II유적의 남성미라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외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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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의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아르잔-2호는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무덤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장례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는 매장주체부의 나무방에 사용된 나이테를 분석해서 통계분석 결과 기원전 671~602년에 유적이 축조되었다. 그런데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절대연대 측정방법은 만년 이하의 자료는 탄소연대측정법이다. 아르잔-2호에서 남아 있는 유기물질 가운데 목제, 직물, 가죽, 펠트, 식물류 등을 샘플 채취해서 그라니겐, 웁살라와 애리조나 등지 여러 곳에서 연대분석을 했다. 그런데 탄소연대의 결과 이 유적은 기원전 790년~540년 사이에 존재했다고 한다( A.Yu. Alekseev 외 2002).

 

탄소연대의 결과에 따르면 이 무덤의 장례식을 250년간 행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주인공 남녀를 위해서 200년이 지나서도 계속 이 무덤을 축조하고 있었다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의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이양되었을 것이고 권력은 계속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200년 넘게 얼굴도 모르는 부부를 위해서 무덤을 계속 축조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필자는 이 경우는 나이테분석법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아르잔-2호에는 다행히 주인공 남녀의 뼈가 남아 있었다.

주인공 남성은 키가 170cm 정도이고 현미경 검사를 통해서 살펴본 결과 뼈에서 종양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악성 전립성 종양이 뼈 전체에 퍼졌다. 전립선 암이 주인공 남성의 직접 혹은 간접적 사망 원인이다.

 

주인공 여성의 키는 162cm 정도이다. 두개골에서 매우 작은 양성 종양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윗 앞니(upper incisors)에 좁은 홈이 있었는데, 여성이 3세 때 형성된 것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매장된 사람은 영양부족을 경험했거나 장기 질병을 겪었을 것이다. 여성의 팔다리 골격과 척추관절의 마모 징후가 확인되지 않아서, 뼈로서는 사망원인을 진단할 수 없었다.

 

아르잔-2호에서 심한 영양실조의 흔적이 남은 인골이 또 있는데, 22호 여성이다. 20~21세의 여성으로 두 어깨의 표면에 근육이 매우 발달했던 흔적이 있는데, 특히 오른족 쇄골에만 힘줄이 발달해서 물리적 변형이 있었던 것이 나타났다. 이 여성은 오른손 잡이로 키는 161cm로 큰 병은 없었다. 사망 몇 달 전에 양쪽 앞니가 모두 없어졌고, 나머지 치아에서는 가로줄무늬가 확인되는데, 어린 시절에 영양 부족을 경험했거나 혹은 심하게 아팠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치아에 남은 스트레스 흔적은 생후 3~7년 동안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과도하게 발달했던 오른쪽 쇄골의 근육 흔적으로 보아서 여성군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죽은 원인은 머리에 난 구멍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난 상처는 정수리 부근에 난 것으로 서 있는 여성을 체칸으로 가격했고, 그 이후에 등이 땅에 닿인 채로 넘어진 여성을 세 번에 걸쳐서 가격했을 것이다. 두 번째 가격은 왼쪽 눈 위에 나 있는 흔적이다.

 

22호 여성관련 포스팅-->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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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에 묻힌 남성은 50~59세이다. 그의 치아 상태는 고기와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한 흔적이 남아 있다. 키는 171cm가량이고, 팔과 다리 뼈에 근육자국이 남아 있어서 그의 근육이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쇄골에 깊은 근육자국이 남아 있다. 왼손잡이 경향은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허리, 손, 척골, 왼쪽 경골 등에 부상이 있었으나 치유된 흔적이 남아 있다. 죽기 전에 그는 수년간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이는 말을 타거나 이와 관련된 활동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24호 남성은 정수리 오른쪽에 큰 구멍(48×46mm)이 나면서 사망했다. 짧은 거리에서 내려 찍은 흔적인데, 무기에 의해서 제거된 두개골 뼈가 두개골 안에서 확인되었다.

 

그림1. 아르잔-2호 무덤방 24호 남성

 

스키타이 인들이 말을 오랫동안 타면서 생긴 병에 대한 이야기는 히포크라테스가 이미 언급한 바 있 바 있다.

 

2020/03/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히포크라테스가 본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

 

히포크라테스가 본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

키르기스스탄의 송쿨. 해발 3000m, 7월 모습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로 헤로도투스를 꼽는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실제로 보거나 방문해서 알아낸 기록이라기 보다는 전해들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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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사람의 병(病)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사람의 병(病)

러시아 스키타이문화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8살 남자아이의 무덤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된 평균수명은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낮다. 여성은 29.6세, 남성은 38.5세 라는 점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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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와 24호 모두 무덤의 경계벽 아래에 묻힌 사람들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살해된 사람들로 장례식 행위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성의 인골에서는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22호 여성과 주인공 여성에게는 어릴 때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 매우 궁금하다. 22호 여성이야 일반 군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주인공 여성 조차 영양실조였다니. 물론 사회적 여건 때문에 그럴 수 있었겠지만, 24호 남성과 주인공 남성에게는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아르잔-2호는 다행히 인골이 남아 있어서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했고, 여러분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A.Yu. Alekseev, N.A.Bokovenko, Yu. Boltrik, K.V.Chugunov, G.Cook, V.A.Dergachev, N.Kovaliukh, G.Possnert, J.van der Plicht, E.M.Scott, A.A.Sementsov, V.Skripkin, S.Vasiliev and G.I.Zaitseva. Some problems in the study of the chronology of the ancient nomadic cultures in Eurasia (9th - 3rd centuries BC) // Geochronometria - Journal on Methods and Applications of Absolute Chronology. Vol.21. pp 143 - 150, 2002

М. Шульц и др 2017, Палеопат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297-301c.(슐비츠 외 2017, 「고인류학 자료에 대한 연구」,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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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공화국의 우육 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한 무덤의 경계벽 안에 무덤 26기를 비롯해서 장례식에 관련된 여러 유구(퇴장지), 제단, 사슴돌 등이 발견된 곳이다. 의례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곳은 직경 80m에 이르는 거대한 제사장소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르다고 보는 아르잔-1호 유적보다는 늦지만 그래도 앞서 살펴본 2500년 전 알타이의 무덤 보다는 이르다.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우육고원에 위치한 초기스키타이문화는 우육문화라고 하는데 일종의 지역명칭이다. 기원전 5세기대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문화와는 무덤구조가 다르다. 말과 함께 매장한다는 기본 컨셉은 이 시절에도 있었지만 실제 무덤구조는 다른 것이다.

 

심지어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도 같은 동네의 무덤이지만 시간차에 따라서 사회도 변했을 것이고, 무덤도 변했다. 무덤의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곳)가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갔다는 점이 가장 크고, 무덤을 축조하는 재료, 구조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르잔-1호는 도굴이 심해서 아르잔-2호와 유물의 비교는 쉽지 않지만 있는 유물로 비교해도 특히 마구의 변화가 심하다.

 

유물 가운데서 동물문양장식에도 변화가 있는데, 맹수의 자세가 눈에 띄게 변했다. 아르잔-2호에서는 아주 작지만 그리핀이 확인되기도 했다.

 

장례식에 사슴돌을 이용했다는 점은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내용물에는 차이도 있다. 특히 낙타가 이 시점에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낙타털을 이용한 직조물은 파지릭문화의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는데 이 보다 더 이른 시점에 낙타가 이 지역에서 알려졌다는 것을 점판암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여성의 머리장식에서도 알 수 있다.

 

주인공 여성은 30~35세로 사후에 두개골의 덮개 윗부분과 아래턱 오른쪽 절반이 날아갔다고 한다. 여성의 키는 무릎을 굽힌채 측정했을 때 대략 160.3cm이다.

남성은 40~45세 혹은 50세 정도 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남성의 두개골은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서 두개골의 왼쪽 절반만이 확인되었다. 치아에 사후 손상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무릎을 굽힌 채 측정한 키는 166.3cm인데, 거의 170cm에 달했을 것으로 본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두개골, 위-남성, 아래-여성

 

형질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누신스크 분지에 분포했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문화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에 위치한 문화)와 몽골 서부의 울란곰 문화(역시 스키타이문화의 지역명칭)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울람곰문화는 이 유적 보다 늦은 기원전 5~기원전 3세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베리아 투바에서 몽골 서부로 문화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투바에서 확인되는 형질인류학적인 특성을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다면 남부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인 아파나시에보 문화에서 확인되는 유로포이드와 관련이 있다. 특히 여성은 현재 중앙아시아의 민족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치키세바).

 

그래서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의 주인공 남녀를 복원한 모습은 아래와 같다.

 

그림 2. 아르잔-2후 무덤방 5호 주인공 여성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

 

시베리아에서 인류학적인 특성에 대한 논란 혹은 논의의 시작은 구석기시대부터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알타이에서 있느냐, 없느냐로 계속 논쟁을 해왔고, 데니소바에서 화석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제3의 인류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2019/04/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구석기시대] - 동굴 속의 여자아이, Homo sapiens altaiensis

 

동굴 속의 여자아이, Homo sapiens altaiensis

앞서 데니소바동굴유적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검색을 참 많이들 하시는 듯 해서....조금더 정보를 올린다. 유적의 위치 및 내가 알고 가진 정보.. 데니소바인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알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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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구석기시대] - 데니소바 인, 제3의 인류

 

데니소바 인, 제3의 인류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연구에서 가장 쟁점 중에 하나는 과연 시베리아에 무스테리안 석기문화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무스테리안 석기문화는 유럽의 중기 구석기시대 문화를 일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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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질인류학은 뼈를 정밀하게 계측해서 그 생김새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DNA분석법이 발견되기 전에는 대단히 유용했으나, 현재는 DNA 분석법이 있다. 그러나 또 문제점이 고고자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DNA방법도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필자가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반드시 co-work이 필요한 분야이다.(그렇다고 위의 형질인류학적 분석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정확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연구가 진행중일 수도 있다)

 

2018/01/16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한민족의 기원과 DNA연구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몽골로이드와 유로포이드가 함께 확인된다.

우리나라에는 감정없는 AI판사가 필요한데, 비슷한 분야가 인류학이다. 형질인류학 보다는 DNA분석법이 더 정확할 것이다.

 

참고문헌

Т. Чикишева , Палеоантропологические материалы,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257-296c.(치카세바 2017, 「고인류학 자료에 대한 분석」,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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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 혹은 의례복합체 였던 아르잔-2호 무덤경계석 안에는 26기의 무덤이 확인된다. 주인공의 무덤방처럼 2인이 매장된 곳은 20호, 25호, 14호 등이 있었으나 모두 남성 무덤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한 구덩이 안에 2명을 묻은 경우는 14호 뿐이다. 20호는 인골 1호 이후에 벽석을 새롭게 설치해서 인골 2호를 넣었다. 두 인골의 부장품 차이가 있어서 같은 입장에서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5호도 20호와 비슷한 설정이다. 20호에는 인골 1기 외에 손만 들어갔다.

 

20호와 25호는 주인공 남성의 무기세트와 비슷한 갖춤새의 유물이 부장되었다. 이들 다인장 무덤은 모두 남성무덤이다. 하지만 주인공 여성이 지녔던 물건인 목제 그릇이 출토되기도 했다.

 

여성 3명이 매장된 무덤도 발견되었다. 13호이다. 모두 3명의 여성이 한 무덤 구역 안에 두 칸에서 확인되었다.

 

무슨 소리냐고?

 

우선 그림 1을 보시면 돌상자 주변을 둘러서 무덤구덩이를 지지하고 있는 충전돌은 한 구덩이 안에서 한 번에 지지하고 있어서 하나의 무덤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덤 바닥의 높이차이(그림 2-2)도 있고, 무덤벽석은 13B를 먼저 만들고 13A를 후대에 만들었다(그림 2-3)는 점이 확인된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13호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13호.

 

그래서 13호는 애매한 무덤 번호로 나누어 놓았다. 완전히 별개의 무덤으로 보기도 힘들고 같은 무덤으로 보기도 힘든 것이다. 13B는 20~25세 여성, 13A 중 좌측 인골은 18~19세, 우측 인골은 45~50세 여성이다.

 

아르잔-2호의 모든 무덤에서 확인되는 인골은 같은 자세로 매장되었다. 무릎을 구부리고 한쪽으로 누운자세이다. 필자가 예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어머니 뱃속의 자세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시베리아에서 이런 자세는 신석기시대 무덤부터에서 확인된다.

 

13A 무덤의 18세 여성은 청동칼(그림 3-1), 청동송곳(그림 3-4), 청동바늘(그림 3-3), 청동제 거울(그림 3-7), 화살촉(그림 3-2), 목제 빗(그림 3-6), 석제 펜던트(그림 3-5), 각 종 구슬(그림 3-8,9,15~19)과 함께 부장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의 13A 18세 여성

 

 

같은 무덤의 45세 여성은 청동칼(그림 5-1), 골제 칼집 장식(그림 5-9), 청동제 송곳(그림 5-2), 청동제 거울(그림 4-7), 황금 귀걸이(그림 5-1,2), 머리장식(그림 5-5,6,7), 목제 빗(그림 4-6), 사슴이빨로 만든 펜던트(그림 5-4,5), 팔찌(그림5-12~17), 머리장식(그림 5-3), 양모로 만든 주머니, 양모로 만든 허리끈, 각 종 구슬(그림 6-1~41)( 터키, 유리, 호박, 루비, 사슴이빨, 섬록암제)이 있다.

 

그 외에도 13A에는 양탄자가 확인되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의 13A 45세 여성의 유물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의 13A 45세 여성의 유물2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의 13A 45세 여성의 유물3

 

13B여성은 청동칼(그림 7-1), 청동송곳(그림 7-6), 청동제 거울(그림 7-7), 동물뼈제 펜던트(그림 7-5), 황금제 귀걸이(그림 7-2,3), 목제 귀걸이(그림 7-4), 구슬(그림 7-8~24), 직조물이 있었다.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의 13B 여성의 유물

 

13호에는 남성의 무덤에는 없었던 목제 빗, 송곳, 바늘, 양탄자 등이 출토되었다. 목제 빗은 주인공 무덤인 5호 여성도 소유했던 물건이다.

 

아르잔-2호 무덤 의례복합체에서는 주인공 무덤방 5호를 제외하고는 남녀가 함께 매장된 무덤방은 없었다. 남성과 여성은 성별이 철저히 구분되어서 매장되었다.

 

아르잔-2호 보다 늦은 시기의 유적인 파지릭 2호, 파지릭 5호도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최상급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다. 물론 시기도 늦고 무덤양식도 차이가 심해서 바로 등가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남녀를 함께 매장하는 관습은 생각보다 모두에게 허락된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르잔-2호에서는 여성이 혼자 단독으로 묻힌 경우는 머리에 구멍 4개 난 채 죽임을 당한 22호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하지 않았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는 매우 특별한 여성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면 또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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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덤방 13호의 여성 3인은 서로 무슨 관계였을까? 

 

 

참고문헌

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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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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