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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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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2700년 전 무덤인 아르잔-2호는 직경이 80m나 되는 거대한 무덤이다. 무덤을 둘러싼 경계석 아래에서도 무덤이 발견되었다. 22호 무덤에서는 여성의 두개골에 구멍이 4개나 뚫린 채로 매장된 것이 확인되었다. 호석아래의 무덤은 24호를 포함해서 5기인데, 24호에서도 투부에 머리를 맞아서 구멍뚫린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주인공 무덤방 5호외에도 유적에는 여러 시설물이 무덤 경계석 안에 있다.

 

그림 2에서 아르잔-2호의 평면도에는 호석 담벼락을 따라서 특히 동쪽벽에 노란색 점들이 발견된다. 그 곳은 호석 사이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매납지 혹은 ‘퇴장’지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주로 마구가 출토되었다.

 

 

 

그림1. 아르잔-2호 출토 유물퇴장지1호

 

 

아르잔-2호는 매우 간단하게 구조를 설명하면 무덤구덩이를 파고 벽을 두른 후, 점토로 단을 쌓고, 가장 마지막에 돌을 쌓아서 채운 구조이다. 그림 2에서 각 지점의 벽 구조를 알 수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 경계석의 구조

 

5호 무덤을 중심으로 무덤의 경계에 두 줄로 높이 1m가량의 벽을 쌓았다. 그림 1-2~6에서 각 지점의 벽 단면도인데, 벽을 쌓는 방법을 알 수 있다. 그림 1-4는 그림 1-3과 같은 지점의 사진이다.

 

그림 2-6은 A-G라인을 찍은 사진인데, 납작한 판석을 빼곡히 채워서 무덤을 덮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3-2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아르잔-1호와 비교해보면, 무덤방을 지상으로 쌓은 점은 아르잔-2호와 가장 큰 차이점 이지만, 납작한 판석을 채워서 무덤상부를 덮었다는 점은 같다.

 

그런데 그림 2에서 보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필자가 아직 모든 무덤을 다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은 말무덤과 무덤방 13호, 무덤방 20호 등은 좀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주인공 5호 뿐만 아니라 구조상 알아야 할 부분은 다 설명을 했다.

 

왜 이렇게 빈 공간이 많을까?

 

아르잔-1호에서는 주인공 무덤방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부분 무덤과 관련된 시설물이 있고 그 위를 판석(납작한 돌)으로 덮었다. 아르잔-2호는 무덤의 경계 안에 주인공 무덤 및 여러 무덤을 제외하고 공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그림 3-1에는 필자가 붉은색 화살표와 주황색 화살표를 표시해 놓은 곳이 있다. 붉은색 화살표가 가르키는 곳은 점토가 짙은 색을 띄고, 주황색 화살표는 흙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무덤평면도를 보면, 무덤 평면도 안에는 점선으로 된 라인이 있는데, 1번은 점토가 바닥에서 확인된 라인이다. 2번 라인은 무덤의 단면상에서 확인된 점선라인이다. 1과 2번 점토라인이 다른 이유는 무덤경계벽이 무너지면서 점토로 채운 구조물이 허물어지면서 생기게 된 차이로 볼 수 있다.

 

 

 

그림 3.아르잔-2호, 무덤의 구조

 

즉, 무덤은 단순히 무덤경계에 벽을 쌓고 납작한 돌을 채워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점토를 쌓았던 구조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굴책임자인 추구노프가 생각하는 무덤의 완성된 모습은 그림 4의 첫 번째이다. 기억하시겠지만 무덤 경계벽 바깥에 있던 동그랗게 돌아가는 돌도 무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1단계에서는 북쪽 가장 안쪽에 위치한 주인공 무덤이 만들어졌다.

 

2단계에서는 만들어진 무덤방 안으로 주인공이 들어가고 이때 많은 무덤이 동시에 만들어졌다. 무덤방 9호와 무덤방 10호도 같이 만들어졌다. 무덤방 9호와 10호는 아직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아르잔-2호에서 도굴되었던 무덤이다. 이 곳의 위에는 사슴돌이 있었는데, 아마 도둑에게는 표지석처럼 보였을 것이다. 원래 사슴돌은 마운드의 중앙에 있었고, 무덤벽이 무너지면서 사슴돌도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방 9호에는 남서쪽에 복도처럼 터널이 있고, 무덤방 10호 부근에서 인골과 호박제 구슬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 인골은 무덤 15호의 것으로 도굴당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그림 4. 아르잔-2호 의례복합체의 장례식 단계 및 복원도(추구노프)

 

 

3단계는 장례식이 끝나는 단계로 무덤의 중앙에 직경 45m로 점토구조물을 쌓아올렸다. 가장 높은 사슴돌을 중앙에 배치했고, 중앙의 제단을 둘러싸나 원주모양에도 다른 사슴돌을 세워서 표시했다. 이 단계에서 무덤방 11호의 9달 된 아이의 매장(순장)이 이루어졌다. 추구노프는 어린유아는 희생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3단계에서 여러 무덤방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네 번째 단계에는 말이 의식이 있었는데, 이 위해서 남동쪽 벽을 일부 허물어뜨리고 다시 재건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말을 매장을 위한 무덤방 16호를 만들었다. 내부는 나무로 된 무덤방이고 그 위를 점토와 돌로 덮었다. 말 매장을 끝낸 후에 무덤전체를 판석으로 둥글고 납작한 모양이 되도록 채웠고, 그 위를 점토로 덮고, 다시 돌로 마지막에 마무리했다(그림 5-1). 그 중앙 상부에는 사슴돌을 배치했다. 아르잔-2호는 이후의 시대에도 무덤으로 이용되었다(무덤배치도의 녹색 점은 이후의 시대 무덤이다.) 하지만 후대의 무덤이 스키타이 시대 무덤을 파손하지는 않았다.

 

 

 

그림 5. 아르잔-2호의 단면도

 

아르잔-2호는 단계별로 장례를 치뤘던 흔적이 확인되고, 단순히 무덤 뿐만 아니라 의식과 관련된 구조물(제단)이 발견되어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쓴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 В. “Аржан-2: реконструкция этапо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я погребально поминального комплекса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его хронологии.” 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ежегодник .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СПб ГУ, 2011, С. 262-335(추구노프 2011, 아르잔-2호: 무덤의 축조과정 복원과 절대연대에 대한 질문)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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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 무덤의 무덤방 5호 남성은 무기 3종 세트를 지녔다.

1-검과 칼, 2- 활과 화살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체칸'이라고 불리는 투부로 전투용도끼이다.

 

어제 소개한 고리트의 오른쪽 옆에서 확인되었다. 고리트와 함께 벽에 걸려있었을 것이다.

도끼의 날 부분과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로 만들어졌고, 손잡이(길이 62cm)는 나무이다. 날 앞부분은 원통형(단면은 각이 짐)에 포인트 부분은 매우 날카롭다. 날의 뒷 부분은 납작한 장방형으로 끝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도끼의 신부(몸체)와 손잡이 끝에 전체적으로 나선형 문양이 묘사되었다. 무덤 주인공 남성의 철제검과 철제칼, 여성의 철제검과 가슴장식, 모형솥에서 확인되는 나선형 문양이다. 도끼의 날 아래에 호랑이 머리(그림 1의 화살표)가 달려 있다.  이 부분은 도끼날을 손잡이에 끼운 후 은제 못(그림 1-2, 2-1)으로 고정한 후에 별도로 마지막에 추가되어 달렸다.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 끼우개(그림 2-6)에 금박을 덧입힌 것으로 홈을 내서 상감한 것은 아니다.

 

그림 1.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2.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1과 동일

 

철을 상감하거나 다른 물질로 입히는 기술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아파다나 궁전 벽에 묘사된 스키타이 무기를 들고 있는 페르시아인은 스키타이인들에게 입수한 것을 들고 있는 것이다. 스키타이 투부는 페르세폴리스의 ‘백 기둥 홀’ 바닥에서도 발견되었고, 스키타이 문화권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에서도 많이 확인된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이 아닌 곳에서도 금박은 없지만 철제 투부(그림 6)가 많이 확인되어서, 일반적인 무기라고 볼 수 있다. 아르잔-2호가 위치한 곳과 인접한 지역에서 사슴돌(장방형의 입석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슴 없는 사슴돌도 있다)이라고 불리는 입석에 무기가 달린 무사의 벨트가 그려져 있다(그림 3,그림 4).

 

 

그림 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출토, 사슴돌, 이 사슴돌에는 사슴이 없다. 직사각형으로 세워진 입석에는 대부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이 없는 사슴돌도 있다. 유적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래에 링크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그림 4. 아르잔 출토, 사슴돌, 그림 3과 동일, 투부, 검, 고리트(화살통)가 벨트에 달려 있다. 아래 지도에서 사슴돌이 발견된 위치를 알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ll=52.0966411900486%2C93.56780343358592&z=1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투부는 직접전투에서 사용되었다. 도끼의 전단부의 단면이 원형이고, 끝이 뾰족한 형태가 기원전 4세기까지 계속 이 형태가 유지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머리에 투부로 맞은 상처가 3곳이 있었다. 시베리아 남부에서 현재 우크라이나(흑해북안)(그림 7)까지 무덤에서 투부에 맞아 머리터진 사람들이 묻혔다. 뿐만 아니라 말을 죽일 때도 투부를 사용한 흔적이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스키타이 투부는 그 당시에 치명적인 개인 무기였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투부 복원도(그림 1을 복원)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출토, 투부

 

 

 

그림 7. 흑해 북안의 체르도믹 유적, 투부,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동물문양이 금박에 찍혀 있다. 날과 손끝에 같은 문양이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활은 고리트(그림 11)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이에 대해서 스키타이문화를 기록한 헤로도투스도 언급한 바도 있고, 페르시아의 아파다나 궁전벽(그림 12)에도 새겨졌다. 뿐만 아니라 이미 소개한 바 있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의 유물 중에서도 말을 타면서 활을 쏘고 있는 남성전사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에서는 고리트가 실제로 출토되어서 스키타이 활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이 가득 담긴 모습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을 제거한 후 드러난 모습,

 

남성의 좌측 어깨 부위에서 출토되었으나 원래는 무덤방의 북동쪽벽에 매달려 있었고 나중에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데, 활이 고리트에서 빠진 채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고리트(그림 3-4)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가죽은 이미 썩어서 없어진 상태이다. 나무는 금박 혹은 금판(크기누락, 필자가 금판으로 부르는 이유는 아주 소형의 유물에 덮힌 금박보다는 두꺼울 것이기 때문이다)으로 덮였다(그림 3-1), 금으로 고리트의 바닥(그림 3-2)도 만들어졌다, 길이 50cm 나무뼈대에 새겨진 비늘 모양이 금판 위에 그대로 찍혔다. 나무 뼈대가 누르면서 금판의 비늘도 만들고, 고리트도 단단하게 했을 것이다. 나무 뼈대의 반대면은 매끄러운데, 고리트에 연결했던 장식판이 눌러진 흔적이 남아 있다. 나무판에는 24개의 구멍이 있어서 나무핀으로 금판과 연결된 흔적이 남아 있다. 금판은 고리트의 앞면에만 장식되었고, 금판의 한쪽 끝은 직각이 되게 하단부가 만들어지고, 따로 제작된 금판(그림 3-3)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고리트에는 앞서 남성과 여성의 윗옷에 달린 적이 있는 황금 멧돼지 장식판(두 종류 크기)(그림 12)이 세 곳(그림 4-26,27,28)에 312점이 나눠서 부착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그림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유물평면도, 우측은 남성, 좌측은 여성이다.

 

고리트 위쪽에서는 활이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의 모습

 

활(그림 5, 그림 6-7)은 나무를 세로로 네 조각으로 잘라서 만들어서 단면이 각(그림 5)이 졌다. 그 위를 자작나무 껍질을 비스듬하게 감아서 만들어졌다. 활의 윗부분에는 붉은색 염료가 칠해진 금박(그림 7-1~4)이 장식된 것이 있다. 활은 가장 긴 것은 24cm가량이고, 막대는 20개 정도 확인되었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7)과 부속품, 1~4: 활대에 붙은 금박, 5,6:용도미상, 5는 40개, 6은 3개출토되었음, 그림 5에서 가장 우측에서 나란히 놓인 채로 확인되었다.

 

화살은 앞에서 촉은 소개해 드린 바 있다. 활대는 대부분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처음 제작당시의 길이는 60cm이다(단면은 0.6~0.8cm). 횡단면은 타원형이고, 끝은 둥그스럼하고 틈을 파서 제작되었다. 어떤 화살대에는 빨간색 세로 줄무늬가 파란색 바탕에 그려졌거나 혹은 그 반대도 칠해진 것이 있다(

 

 

 

 

그림 8.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1,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많이 휘어진 상태인데 화살대이다.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활 아님.

 

 

 

그림 9.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2,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0.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활 아님) ,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활과 화살통) 복원도, 활은 화살통에 넣어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그림 12.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아파다나 궁전 북벽, 페르시아인이 스키타이 고리트를 들고 있다. 

 

스키타이 활은 나무판을 덧 붙인 복합궁이라고 불리면서 아주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론-쿠린-고레-10(Олон-Курин-Голе-10)유적에서 출토된 활은 나무판을 여러겹 덧붙여서 제작된 것이다. 보다시피 아르잔-2호와는 차이가 있다. 그림 6과 그림 6-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검은 짧은 단검으로 보통 허벅지에 착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크 알라하-1유적의 남성전사도 목검이 있었는데, 허리가 아닌 바지주변, 허벅지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전사를 복원한 모습을 앞서 포스팅한 바 있다(아래 포스팅참고). 필자는 손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어서 가장 빨리 꺼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곳에 달았다고 생각한다. 허리에 매단 단검은 꺼내기가 쉽지 않다.

 

2020/02/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기원전 5세기의 시베리아 군인

 

기원전 5세기의 시베리아 군인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두 명의 남성무덤으로 전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서 살펴보았던 아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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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잔-2호 주인공은 화려하게 금으로 장식된 철제 검을 허리에 달고 다녔던 것 같다. 고리트와 연결되는 벨트에 달렸을 것이다. 별로 쓸일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성의 철제 검에 장식된 동물문양장식 외에는 새의 날개를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이는 나선형 문양이 있다. 철제 칼에는 곡선의 V자형 모티브 안에 양과 나선문양이 채워져 있고, 이 문양이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어딘가에서 본적이 있지 않은가? V자형 모티브.

 

여성의 가슴장식 혹은 목걸이라고 불리는 장신구의 모티브 문양과 같다.(얼마전에 포스팅 했음)

 

남성 철제 칼의 문양은 여성의 가슴장식과 같은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의 여성도 철제검과 칼을 지녔다.

얼핏보면 비슷하지만 남성의 것과는 제작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남성의 검은 거푸집에서 철물을 부어서 한 번에 만들어내고, 금장식은 그 후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여성의 검은 날과 손잡이가 따로 제작되어 착장된 것이다. 손잡이((손잡이 : 7.8 cm, 폭 3.8 cm, 1.3 cm 두께; 무게 112.46 g)는 완전히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날(길이 : 15.2 cm , 폭 3.2 cm, 두께 0.5 cm; 무게 83.50 g)은 철로 만들고 금판을 부착한 것이다. 손잡이는 앞뒤면이 같은데, 땜질로 붙인 것이고, 손잡이와 날부분은 금으로 된 리벳(대갈못)으로 고정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1-여성의 검, 2,3-여성의 팔찌

 

손잡이가 시작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에는 호랑이가 다리를 직각으로 뻗고 있는 모습인데, 시작부분의 동물이 크다. 얼굴과 손이 맞닿고 있다. 어깨와 몸통에 구멍이 있는데, 뒤가 뚫려 있어서 다른 물질을 감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아래의 손잡이에는 3줄로 동물문양이 구성되었다. 가장 중앙은 뿔이 둥글게 말린 산양(그림 2-2의 세 번째)과 양쪽에는 뿔이 없는 염소(그림 2-2의 첫 번째), 뿔이 직선인 염소kozel(козел)(그림 2-2의 두 번째)가 3마리씩 열을 짓고 있다. 눈물 방울 모양의 함몰 2곳에는 원석이 감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날의 중앙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된 금판이 부착되었다. 검의 집은 삼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칼의 날 뒷면에 흔적만 남아 있고 거의 썩어서 없어진 상태였다.

 

여성도 철제검 뿐만 아니라 2개의 철제칼(그림3-7,8)도 지녔었다. 목제 검집에 함께 들어 있었던 것이다.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린 달린 형태인데, 남성의 칼과 달리 금장식은 없었다. 고리에 가죽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가죽으로 된 주머니 밖에 꺼내진 상태로 목제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날이 직선인 칼(길이 20.3 cm, 너비 1.0 cm, 두께 0.15 cm)은 끝이 뾰족한데, 섬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날이 곡선인 칼(길이 17.3 cm, 너비 1.1 cm, 두께 0.12 cm)은 끝이 부러지고 무딘 상태였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여성의 칼

 

 

여성의 검과 칼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우측 골반뼈 옆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런데 남성의 검과 칼이 출토된 곳 바로 옆에서 아주 흥미로운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소형의 솥이다. 출토위치(그림 4, 유물평면도의 71)가 남성과 여성의 사이에서 출토되어서 애매한 유물인데, 발굴자는 솥에 날린 체인의 모양이 여성 팔찌와 같아서 여성의 것일 확률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남성의 검집에 달려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여성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에 달려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높이 3.5cm의 작은 솥((지름 4cm, 높이 3.5cm, 길이 4.2cm; 무게 70.78g)에는 뿔이 둥글게 말린 숫산양 5마리와 호랑이 1마리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다.

황금으로 제작된 다른 유물과 마찬가지로 밀랍을 녹여만드는 주조기법을 사용했고, 그릇 안과 다리바닥의 빈 부분은 거푸집에 금물을 부은 후, 토제로 만들어진 U자형 물체를 넣어서 빈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리바닥안에 체인을 연결하기 위해서 막대기를 삽입한 후 땜질했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532

 

2700년전 시베리아 무덤 출토 검 집장식(호랑이모양)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 무덤방 5번에서는 금, 철, 청동 등 다양한 금속재질로 제작된 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 그런데 유물 개개는 매우 세밀하고 정밀해서, 유물의 목록

eastsearoad.tistory.com

포스팅에서 유물배치도 확인할 수 있음.

 

그림 4.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여성의 다리와 모형 솥 출토 모습

 

그림 5.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모형 솥

 

모형 솥에 표현된 동물문양과 나선형장식은 여성의 검, 남성의 검과 칼에 표현된 방법과 같다. 누구의 것일까요?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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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는 2700년 전 시베리아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이다. (좀 더 정확하게 초기스키타이문화는 우육문화라고 한다. 유적이 위치한 고원의 이름이다. )앞에서 황금유물과 청동유물을 소개해 드려서 초기철기시대라는 점을 잠시 망각하셨는지 모르겠으나 철기시대이다. 금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장신구 혹은 의식용품이다. 철로 만들어진 것은  무기이다. 특히 무기 가운데서 검, 칼, 투부(전투용도끼)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어제 21살의 여성도 철제투부로 맞아서 머리에 구멍이 났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의 남성 우측 골반 부위에서는 철제검과 철제칼 2자루가 확인되었다. 검은 단검(짧은 검)으로 길이가 38.7cm가량(너비 7.5cm, 두께 2.5cm, 무게 930.06g)이다. 발굴당시에는 나무칼집에 들어가 있었으나 썩어 없어진 상태였고, 철 자체도 매우 부식이 심해서 손잡이와 손잡이 끝 장식은 변형이 심했다. 나무칼집은 뒷면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다. 부식 때문에 금속층이 분리되었다. 손잡이는 여러 겹을 붙인 것인데, 4겹으로 땜질해서 부착된 것이다. 손잡이와 검의 중간 부분은 금판으로 장식 된 것인데, 앞뒤면이 동일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이 복원과정에서 나타났다. 검의 날이 끝나는 부분(검날멈추개)와 손잡이 끝부분(검파두식)은 철에 홈을 내고 그 안에 금박을 상감한 것이다.

 

손잡이와 칼날에 붙은 금판 장식은 사실적인 동물문양장식과 추상적인 문양이 금판에 표현되었다. 추상적인 표현은 새의 날개를 풀어서 나선모양으로 묘사한 것이다.

검의 날이 끝나는 부분(검날 멈추개)에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2마리와 손잡이 끝부분(검파두식)에 같은 문양이 감입되어 있다. 호랑이는 몸에 난 줄 문양까지 아주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뿔이 있는 동물은 염소로 보이는데, 두 마리의 호랑이기 염소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손잡이 끝장식 아래에는 작은 호랑이 2마리가 염소를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손잡이 전체 측면(검날멈추개, 두식, 검파두식)에도 동물문양이 배열되어 있다. 손잡이(검파)는 3줄로 구성되었는데, 중앙선은 검날까지 이어지면서 동물문양도 연속되게 배치되었다. 위에서 검파두식 아래에 새겨진 문양 아래에는 염소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 그림이 검날의 중심부까지 5번 반복된다. 검날의 가장 끝 2장면은 크기가 작아진다. 검날중심판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는데, 새의 날개를 추상화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남성의 철제검, 철검의 금판에는 붉은색의 염료가 칠해진 것이 확인된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남성의 철제검(그림1과 동일유물)

 

 

철검이 발견된 곳에서 목제칼집에 붙어서 철제칼이 2점 출토되었다. 칼은 날이 한쪽으로만 있는 것이다. 부엌에서 쓰는 것은 칼이다. 두 철제칼은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둘 다 금판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손잡이 끝까지 금판이 붙은 것(그림 3-1)이 약간 더 크다(길이 28.9 cm, 손잡이 폭 3.5 cm, 날의 폭 2 cm, 두께 0.7 cm; 무게 58.74 g).손잡이의 앞뒤면은 같은 문양이고 측면은 다르다(그림 5-1,2). 앞 뒷면에는 기본적으로 곡선V자형 문양 7개가 번갈아 가면서 표현되었다.

 

철칼에는 동물문양이 있을까?

물어보는 것을 보니 있는 것 같다. V자형 문양은 2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뿔이 둥글게 말린 양 3마리, 다른 V자형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다. 측면에는 새의 날개를 추상화 한 문양이 한쪽에만 표현되었다. 금판에 붉은색의 색깔을 입힌 흔적(그림 3-2b)이 남아 있다.

 

 

다른 철검(길이 24.4 cm, 너비 3.4 cm, 너비 1.7 cm, 두께 0.7 cm, 무게 25.78 g)(그림 3-2)은 앞면의 손잡이에만 금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선문양인데, 붉은색 염료의 흔적이 있다(그림 3-2b).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그림3과 동일)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 손잡이 세부, 1은 측면에 붙은 금판이 달라서 앞뒤양측면을 모두 그린것이다.

 

아르잔-1호 유물과 같이 완벽하게 몸을 만 호랑이는 아니지만, 아르잔-2호에서도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이 철제검에서 확인된다. 호랑이가 줄무늬까지 표현된 방법은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장식으로 확인된 바 있다. 나선문양도 문양의 구성요소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문양에 대한 관념이 비슷하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의 철제무기는 장식성이 매우 심하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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