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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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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거대한 무덤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 처음 발굴된 아르잔-1호를 보고한 그랴즈노프는 이 우육고원에 위치한 분지를 ‘왕들의 무덤 계곡’이라고 부를 정도 였다. 그 중에서 아르잔-2호는 가장 최근에 발굴된 유적이다. 이를 발굴하고 보고한 추구노프는 무덤을 넘어서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주인공을 위해서 장례식은 4단계에 걸쳐서 행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덤의 가장 상부에 위치한 것은 ‘사슴돌’이라고 불리는 입석(立石)이다. 입석이라는 용어는 어렵게 생각하실필요가 없고, 그냥 서 있는 돌이다. 장방형으로 길게 우뚝솟아 있는.

 

사실 사슴돌은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 청동기시대부터 카라숙문화 혹은 판석묘문화라고 알려진 문화에서 주로 많이 사용된 무덤의 의례품? 의례장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도 다들 의심한다. 이전부터 있던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에 그려진 것인지. 명칭이 ‘사슴돌’이니 사슴이 그려져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사슴이 그려졌다고 해도 전면(그림2, 3)에 그려진 것도 있고 아주 일부에 그려진 것도 있는 등 다양하다.

 

아르잔-2호에는 사슴돌이 4점 확인되었는데, 1점은 발굴하기 이전에 지표조사 당시에 발견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사슴돌

 

산양과 멧돼지가 그려진 돌(그림 1-1)은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22m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4에서 확인). 사암제(길이 120cm)로, 위에서 70cm떨어진 곳에 사방에 둘러가면서 홈을 만들었고, 사슴돌 상단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바닥은 거의 다듬은 흔적이 엇다. 넓은 면에 산양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멧돼지가 있다. 돌의 하단부가 무덤의 바닥에 위치하고 있어서 원래 세워진 장소였고, 무덤의 마운드 건설중에 파 묻혔던 것이다.

 

무사의 벨트가 그려진 돌(그림 1-2)는 A지점의 남서쪽(유적평면도에서 노란색 글씨로 2)에서 발견되었다. 무덤의 북쪽에서 확인되는 석주(돌기둥)와 같이 녹색돌로 제작된 것이다. 상단이 부러진 채 확인되었는데, 벨트 이미지만 남아 있다. 넓은 면에는 고리트(화살통)과 방패 다른 면에는 단검이 달려 있다. 아르잔 -2호에서 출토된 무기 중에 방패는 없지만 고리트와 검은 출토되는 것이다. 목제방패가 유적에 있었을 수도 있다. 방패그림은 앞서 본 돌판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아르잔-2호에서 나온 사슴돌에는 없지만 사슴돌 무사의 벨트에는 투부(전투용도끼)가 있는 것도 있다.  달려 있는 무기의 위치는 실제 착장 방식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림 1-2에서 방패그림과 염소문양 사이에 있는 것을 사람형상이라고 보고되었으나, 필자는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돌의 하단부는 가공 흔적이 없는 쐐기 모양이다. 이 돌은 하단부와 함께 확인되어서 무덤의 가장 중앙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슴돌의 파편(그림 1-3)에는 귀걸이(길이 23.0 cm, 폭 10.0 cm, 두께 7.0 cm)가 그려진 것이다. 이 돌이 확인된 곳은 A지점에서 남동쪽에 위치하며 돌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넓은 면에는 양쪽에 귀걸이 이미지가 있고, 좁은 면에는 비스듬한 직선이 3줄 그려진 것이다. 사암제이다. 이 돌은 크기가 매우 작고 파편이어서, 사슴돌의 하단부가 확인되지 않아서 발견된 지점이 원래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1998년 지표조사 당시에 발견된 것은 무덤 경계밖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점’ 사이에서 확인된 것이다. 열을 잇고 있는 점은 돌을 고리모양으로 두른 것인데, 장례식때 의식을 치루던 일종의 제단 시설이다. 이 사이에서 사슴돌이 발견된 것은 원래의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고리들을 발굴할 당시에는 정작 사슴돌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슴돌에는 3줄의 줄무늬와 원뿔모양의 치레걸이가 달린 귀걸이인데, 남아 있는 길이가 50cm가량이다. 이 유물은 도면은 소개되지 않았다.

 

앞에서 스키타이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마치 기호와 같은 특성이 있다고 했다. 기호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서 통용될 수 있었다고. 사슴돌의 그림을 포함한 것이다.

사슴돌은 청동기시대부터 제작되었기 때문에 동물문양이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던 것도 청동기시대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사슴돌에 그려진 그 의미는 현재는 알 수 없다.

 

아래 그림이 사슴이 그려진 ‘사슴돌’인데, 이제까지 사슴이 많지 않은 것만 보여드리는 것 같아서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림 2. 알타이의 사슴돌. 몽골의 아르한가이 아이막, 샤바르틴 암 계곡 출토품.(볼코프 2002)

 

 

그림 3. 알타이의 사슴돌(몽골)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Волков В.В. 2002 : Оленные камни Монголии. М.: Научный мир. 2002. 248 с.(볼코프 2002, 몽골의 사슴돌)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의례복합체라고 불리는 아르잔-2호에는 주인공 5호의 남녀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의 의례에 참가한 여러 사람의 무덤이 함께 하나의 무덤 경계벽 안에 들어 있다. 이 복합체의 직경은 80m이다. 무덤의 경계벽 직경이 80m라는 것이다.

 

약간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왠지 마을을 그대로 무덤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선사시대에 마을에는 경계벽이 있었는데, 나무로 세우기도 했고, 흙으로 세우기도 했고, 돌로 쌓기도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성으로 변하게 된다.

 

필자가 예전에 신석기시대 집이 무덤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포스팅한 바 있다.

삶의 공간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화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2018/01/13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죽음과 고고학

 

죽음과 고고학

지난 해 여름에 중국 산서성에서 발굴된 송나라 어느 귀족의 무덤을 보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바 있다가 적어본다. 그림1. 송나라 벽화무덤 http://www.fnnews.com/news/201708281009572832 뉴스 에서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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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호의 경계벽은 마을의 경계벽, 각 무덤방은 묻힌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해보면, 마을과 같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은 활(+화살), 검(+칼), 투부(전투용도끼)를 지니고 묻혔는데, 3종세트라고 생각된다. 기본소재는 철제였으나, 금박으로 장식되어서 의례품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 걸로 실제 썼을까?

 

그럼 다른 무덤에서는 무기 3종 세트가 발견된 바가 없을까? 실제로 썼을 것 같은..

 

필자가 이미 약간 스포일러 한 적이 있는데, 주인공 남성 무덤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호랑이 동물문양장식을 청동제로 제작한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무덤 20호이다.

 

무덤방 20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선 무덤방 20호에는 남성 2인이 매장되었다. 둘 다 22~25세의 남성이다. 한 무덤방에 묻혔는데, 돌(1.8 × 2.2m, 깊이 1.1m)로 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매장시점이 다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2: BB'라인 단면도, 3: AA'라인 단면도)

 

무덤방의 동쪽에 위치한 인골 2호라고 불리는 남성은 1호 남성의 무덤방(그림 2)을 연장하고 묻힌 것이다. 원래 1호 남성만 매장되었다가 무덤의 동쪽을 연장하면서 벽석도 세로 세우고, 구덩이도 좀 더 파서 만든 것이다. 발굴당시의 덮개돌(그림 1-1)은 인골 2호를 매장한 후에 생긴 것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의 인골

 

 

그런데 그림 2에서 확인되는 2호 남성(우측)은 먼가 좀 부자연스럽다. (사진이 있으면 좋겠지만, 20호 출토 사진은 출판되지 않았다).

뼈는 해부학적으로 순서대로 매장되었으나, 팔의 상완골과 하완골이 겹쳐졌고, 갈비뼈도 무질서하다. 뼈가 해체된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2호 남성의 머리 위에는 목기그릇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청동물체 아래에서도 유기질의 흔적이 약간씩 남아 있었다.

 

1호와 2호 남성은 함께 부장된 유물이 차이가 있다. 2호 남성은 청동칼 1자루(그림 7-3) 뿐이었지만 1호 남성은 투부(청동)의 머리(그림 3-1), 고리트(청동)와 그 부속품(그림 5-3,4), 화살촉(청동) 11점(그림 4-3~13), 칼(청동)(그림 5-5), 귀걸이(금제)(그림 5-1) 등 금속제품과 투부자루(목제) 2자루(그림 3-3,4), 구멍이 4개 뚫린 굽은 장식판(목제)(그림 4-2), 목제그릇의 손잡이(뿔)(그림 4-1), 화살촉(뿔)(그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옷으로 보이는 직조물이 확인되었다. 1호 남성의 부장품은 좌측 골반뼈 주변에 놓아 두었던 것 같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실측도를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유물 사진만으로는 각 부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실측도에는 제작방법도 함께 알 수 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재질

유물

그림번호

금속

청동

투부 대가리

3-1

6-1

고리트와 그 부속품

(그림 5-3,4)

7-2

화살촉

4-3~13

6-4,5

5-5

6-2

귀걸이

5-1

 

나무

투부자루 2자루

3-3,4

6-3

장식판

4-2

 

목제그릇의 손잡이

4-1

7-1

화살촉

4-14,15

 

표1. 아르잔 2호 무덤방 20호 1호 인골의 부장품

 

 

2호 남성의 청동칼(그림 7-3)은 손잡이가 없는데, 유기물질(나무 혹은 뿔)로 제작되어서 따로 끼워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호 남성의 칼(그림 5-5, 6-2)은 손잡이가 날과 함께 거푸집에서 만들어졌다.

 

 

1호 남성은 투부, 칼, 활(+고리트)라는 기본 3종 세트는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인공 무덤방 5호 남성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철제가 아닌 청동제이고, 칼은 있지만 검은 없다. 20호에서 출토된 무기도 청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전투에서 썼을 것을 것 같지는 않다.

 

아. 그리고 앞에서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이 포스팅만 보신분들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린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에는 이미 철제 무기가 출토된다. 혹시 청동기시대라고 생각하시고 무슨소린가 하실까봐 말씀드린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1,2)와 2호인골(3); 1-뿔, 2,3-청동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알타이 지역의 일종의 지역문화를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이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아래에 나무방을 만들고 인간과 말을 함께 묻었다. 앞에서 살펴본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3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무덤마다 무덤방의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과 말을 멀리 묻지 않고, 같은 구덩이에 함께 묻었다.

 

그런데 스키타이문화라고 하면서 이 보다 더 오래된 아르잔-2호의 무덤방 안에는 주인공 남녀만 확인되었다. 어제 살펴본 돌판 위에 말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퉁’ 친것일까?

 

물론 아니다. 이미 무덤구조를 살펴볼 때 장례식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말의 의식이 있었고 말무덤이 따로 있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무덤방인 5호와 가장 가까운 곳인 2호에서 안장이 확인되면서 말이 묻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16호는 특별한 무덤이다. 왜냐하면 나무로 무덤방을 만든 경우가 주인공 무덤 5호, 무덤방 2호, 9달된 어린아이의 무덤 외에는 전부 돌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무덤방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나무가 특별한 소재 임을 알 수 있다. 아르잔-1호와는 전혀 다르다. 거기는 나무를 펑펑 썼고(통나무 6000개 이상), 여기는 아주 아껴서 나무를 썼다. 요즘도 곧게 뻗은 나무는 매우 비싸다. 가장 비싼 건축재료라고 들었다.(남대문 복원때 문제가 생긴것도 나무였다.  나무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자살하신 분도 있다.....)

 

주인공 무덤방 5호와 같은 건축재인 나무를 쓴 무덤방 16호에는 말이 14마리 묻혔다(그림 6). 무덤의 남동쪽에 위치하는데 남동쪽 구역에서는 유일하게 스키타이 시대의 구조물이다. 말무덤은 우선 돌판으로 만들어졌는데, 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상 위(그림 1, 2-2,3)에 올린 것이다. 돌판을 드러내자 나무덮개(그림 2-2, 3)가 드러났다.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구조는 대략 알 수 있었다. 우선 가로 방향으로 2~3m 간격으로 통나무를 배치하고 그 위에 세로방향으로 돌 상자를 채웠다. 나무덮개는 돌상자 전체를 덮었다(그림 3).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의 돌 덮개 및 16호의 단면도(2,3), 3번 그림에서 나무바닥은 만들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돌 덮개 개방 후

 

나무 덮개를 열자 14마리의 말이 배를 바닥으로 향하고 사지를 구분린 채 확인되었다(그림 4). 말 1,2는 가장 남쪽, 그 위쪽으로 2~5번 말 4마리, 그에 이어서 6~8번 말(그림 6-2), 가장 북쪽에는 9~14번 말이 배치되었다. 배치된 상태에 따라서 말의 장식이 차이가 있지 않고 모든 말이 같은 장식이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마구

 

청동재갈(그림 4-6)(길이 18.7 cm, 폭 2.8 cm, 두께 0.9 cm)과 재갈멈치(그림 4-7,8)(길이 15.8 cm, 너비 0.9 cm), 청동으로 된 원뿔모양의 장신구(그림 4-4,5; 9~14), 꼬리(그림 4-2, 그림 5-2)와 갈기(그림 4-1, 그림 5-1)를 장식하는 금판장식이다.

 

갈기장식(길이 12.7cm, 너비 4.5cm, 두께 0.03cm; 무게 8.92g)과 꼬리장식(길이 8.3 cm, 폭 2.3 cm, 두께 0.03 cm; 무게 3.88 g)을 제외하고 모두 청동제이다.

청동제 재갈과 재갈멈치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이다.

 

 

원뿔모양의 장식은 두 종류가 있는데, 재갈과 재갈멈치와 마찬가지로 가죽끈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원뿔모양 장식이 모든 말에서 확인되지만 위치가 제각각이어서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재갈과 재갈멈치에서 연결된 굴레의 끈을 연결부위를 이어주는 매듭 혹은 장식으로 생각해 볼 수 없다.

 

이외에도 말 머리에서 떨어진 채 확인된 청동제 장신구(그림 4-3)(길이 5.1cm, 너비 1.4cm, 두께 0.3cm)가 있다. 주몰로 제작되었고, 구멍이 있어서 어딘가에 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8번 말의 마구(그림 4와 동일)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말(1-말의 출토상태, 2-나란히 배치된 3마리 말, 3-말의 두개골과 주변에서 확인되는 말 장신구, 4-말의 엉덩이 부위, 꼬리를 장식했던 금판이 눈에 띈다)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말 14마리는 모두 같은 마구 및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이 점은 파지릭 5호분과 차이가 있다. 파지릭 5호분에는 가장 아래에 들어간 9번 말은 마면까지 썼고, 실크로 된 안장덮개가 세트로7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다른 말도 안장이 있는 말과 없는 말이 있었다.

 

2020/04/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 동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 동물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가운데서 해발 1500m 파지릭 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2500년 전 알타이에는 무덤 안에 말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도 예외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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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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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에는 2700년 전  무덤(혹은 의례복합체)인 아르잔-2호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초기 스키타이문화로 생각된다. 아르잔-1호는 기원전 9세기 정도의 유적이고, 아르잔-2호는 이 보다 늦다. 스키타이 문화권은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흑해 북쪽까지 아주 넓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유물 때문에 하나의 문화권역으로 설정된 것이다. 동물문양장식, 무기, 마구를 일컬어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는 점을 이미 여러분은 알고 있다.

 

아르잔-2호에서 나오는 동물문양장식은 호랑이, 염소, 산양, 양, 사슴, 멧돼지가 있다. 염소는 뿔의 모양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금속제품에 새겨졌다. 하지만 금속판 뿐만 아니라 돌판에도 동물이 그려졌다. 

 

돌판?

사슴돌인가? 사슴돌은 대체로 생긴 모습을 ‘비석’을 생각하시면 된다. 비석에는 글이 적혀 있지만 그 대신해서 사슴돌에는 여러 그림들이 그려진 것이다. 아르잔-2호에는 사슴돌도 확인되지만, 더 흥미로운 유물이 발견되는데 그것이 동물문양이 그려진 납작한 돌판이다. 돌판에는 박트리아산 낙타, 사슴, 말 그림이 발견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4번이 그림1과 동일)

 

낙타는 기원전 3천년기 초반에 중앙아시아에서 길드여졌으며 운반에 아주 유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트리아산 낙타는 최대 250kg까지 운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한번에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양이 다른 동물과는 비교불가이다. 뿐만 아니라 낙타털과 우유, 고기도 제공하는 아주 유용한 동물로 알려졌다.

사실 낙타는 무덤방 5호 여성의 머리장식에도 새겨진 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차를 끄는 장면도 확인된다. 바퀴가 달린 전차 혹은 마차를 세 마리 말이 앞과 뒤에서 끄는 장면이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돌판의 상단이 결실되어서, 전차의 운전석 모습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의 알타이 파지릭 유적 5호에서는 실제로 마차가 통째로 들어갔다. 아르잔-2호의 돌판 그림으로 보아서도 이 시기에도 마차가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베리아에서는 이미 청동기시대 후기인 카라숙문화의 암각화에서 마차그림이 확인되어서 스키타이문화 이전에 이미 마차는 존재했다.

설마 없는 물체를 상상해서 그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아르잔-2호의 마차그림(그림 3-3 그림 4-3)도 카라숙문화 암각화와 그리는 방법이 같아서 아르잔-2호 이전에 이미 그려진 유물을 설치했을 수 있다.

 

 

그림3.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 3

 

 

그림4.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 4(3번이 그림 3과 동일유물이다)

 

그림이 그려진 돌판은 모두 15점 확인되는데, 무덤에서 동쪽 구역에서 가장자리 부위에서 확인되었다. 돌판에 그려진 암각화는 낙타처럼 동물의 면을 쪼아서 표현한 것(그림 2-4)과 선을 쪼아서 그린 것(그림 2-2~5)으로 구분된다. 면을 쪼은 것 보다 선을 쪼아서 그린 그림이 더 이른데, 이는 신석기시대부터 내려오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르잔-2호에서 확인된 그림 돌판은 최소 아르잔-1호 시기에 제작된 것과 그 보다 더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잔-1호와 유사한 시기라고 하는 것은 그림 가운데서 사슴의 등에 난 혹이 그려진 그림이(그림 4-4) 있는데, 이것은 아르잔-1호에서 확인된 사슴돌 그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것은 선을 쪼아서 그린 산양(그림 2-2)멧돼지(그림2-3), 사슴(그림 2-5) 등이 있다.

 

2020/05/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는 거울 속의 사슴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는 거울 속의 사슴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무덤에서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보다는 말과 관련된 유물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파지릭 1호분은 주인공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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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암각화가 확인되는데, 특히 영남에서는 독특한 주제가 확인된다. 검파형이라고 불리는 방형계통의 암각화 이다. 검파는 동검이나 석검의 손잡이와 유사해서 붙인 명칭이다. 검파라고 해석하면서 청동기시대에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형계통(검파형)의 암각화와 함께 확인되는 것이 동심원문양인데, 안화리 유적에서는 방형문양 보다 먼저 동심원문양이 그려졌다. 동심원문양이 단독으로 확인되는 유적도 있는데 그 중에서 지석묘 유적인 밀양산인, 진천동 유적에서 확인되면서 동심원문양도 청동기시대에 그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안화리 유적의 예를 보면 동심원문이 이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석묘에 그려졌다고 해도 지석묘를 만들면서 이미 그려진 문양이 있는 돌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동심원문양을 반드시 청동기시대로 볼 수는 없다(김재윤 2019).

 

암각화는 절벽과 같은 곳에 그려지기도 하지만, 작은 돌에도 새겨지기 때문에 유적의 연대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절벽과 같은 큰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도 아주 오랫동안 그려지기 때문에 그린 방법을 통해서 연대를 추정한다.

그러나 작은돌에 그려진 그림은 유적의 연대와 일치하면 안되고, 유적의 연대를 가장 마지노선으로 삼아야 된다. 이 유적이 만들어진 이후에 그림이 그려졌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유적보다 먼저 작은 돌에 그림이 그려졌고, 유적이 만들어지면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암각화의 연대추정에서 좀 유연하게 대처하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유적의 연대와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하다. 사실 이 정도만 되도 다행이다....너무 허무맹랑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어서...화가 날 때도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에서는 직경 80m의 거대한 무덤이 축조되었다.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제례의식을 알 수 있는 제단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인공의 무덤방인 5호에는 금속제로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되는데, 금, 청동, 철제품이 모두 확인된다.

 

특히 주인공 남녀 모두 철제로 만들어진 철검과 철칼이 있고 남성은 체칸이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도 사용했다. 여성무덤에서 투부와 활과 화살이 발견된 경우는 없다. 그런데 철검과 철칼에는 주로 새의 날개를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이는 소용돌이 문양 혹은 나선형 문양이 금으로 장식되었다. 투부와 화살촉에도 나선형 문양은 장식되었다.

 

나선형문양이 새의 날개를 형상화 했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새가 필요하다.

 

그럼 실제 새 모양과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 곳은 없을까?

 

무덤방 5호는 아니지만, 나무방을 만든 또 다른 무덤인 2호에서 출토된다. 무덤의 북쪽에 위치하고 구덩이 안에 나무 무덤방(1.4 × 1.8m, 깊이 1.2m)을 설치했다. 통나무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를 직경 15~20cm의 통나무로 덮고 다시 그 위를 석판으로 덮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방과 구덩이 사이에는 수직으로 돌을 세워서 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의 빈공간을 채웠다(그림 1-1,2).

 

무덤방 바닥은 납작한 나무판을 깔아서 만들었다. 무덤에서는 인골은 확인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나무판을 드러내자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점이다(그림 1-6).

 

그림1.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대부분 금판으로 제작된 유물인데, 새의 머리모양(그림 2-2), 물고기모양(그림 2- 1,3), 을 형상화 한 것, 긴 막대 모양의 금판(그림3-1)이 출토되었다. 나무로 제작된 유물들도 확인되는데 청동조각이 붙은 것(그림 3-4)과, 금판이 붙은 유물(그림 4)이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1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2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3

 

모든 유물이 상태가 매우 않 좋지만 특히 목제품(그림 3-2, 그림 4)은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런데 이 유물은 무엇이었을까? 나무로 된 유물은 목제 안장의 일부로 생각한다. 목제품 가운데서 금판이 남아 있는 유물(그림4-1)은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출토된 안장덮개에 부착되었던 물고기의 장식에서 비늘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고기모양 장식은 파지릭 유적 뿐 만 아니라 아크 알라하 1 유적에서 모두 안장덮개의 장식이었다. 또 다른 예는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우측 다리에 문신이 물고기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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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그림 2-1과 동일)

 

새(그림 2-1, 그림 5-1)(높이 3.8cm, 길이 3.8cm, 너비 4.9cm, 두께 0.03cm, 무게 5.78g)는 머리를 날개쪽으로 뒤돌리고 있는 상태이다. 어떤 새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스키타이문화에서 가장 일반적인 새는 독수리이다. 새머리모양의 금박은 그 아래에 목제로 된 구조물이 따로 있었고 이를 덮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에 금속제였다면 남아 있었겠죠? 새머리 금판 덮개의 형태로 모아서 아래에는 어떤 원판형의 용기와 같은 물체가 아닐까?

 

 

필자가 무덤 2호는 애매하다고 한 부분이 인골과 동물뼈가 없는 상태에서 무덤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발굴자들은 일단 유물을 안장의 구조물로 해석하면서 말이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나무로 무덤구조물을 만들었다면 인간도 함께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무덤의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설치류 때문이라고 한다. 쥐가 파 통나무 목재를 손상시킨 흔적이 많다.

수수께끼 같은 무덤방이다...나무바닥아래에 유물을 두다니...예나 지금이나 바닥 아래에 뭔가 넣어두는 것은...계획된 일이다. 

 

아르잔-2호 무덤방 2호의 바닥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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