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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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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알라하-3, 아크 알라하-1, 아크 알라하-5 유적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쿠투르군타스 유적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해발 약 2000m정도 되는 곳이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무덤은 매우 큰데 직경이 27.7m(동서방향)이며, 높이는 0.95m가량이다. 이 크기는 무덤을 덮은 돌의 범위인데, 중앙에는 돌이 없어진 지점이 있는데 도굴의 흔적이다.

 

무덤 구덩이의 주변을 2줄의 호석으로 둘렀는데, 그 사이에는 호석과 크기가 다른 돌이 채워진 상태였다. 이 무덤에서 가장 특이한 사항? 즉 인접한 아크 알라하 유적 군과 다른 점은 무덤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복도(연도, 그림 1-2)가 있다는 점이다.

 

연도가 있는 무덤은 주로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서부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연도가 있는 무덤 시설이 이 지역에서 일정하게 만들어졌다면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연도가 있는 무덤시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유적 외에는 아직까지 연도가 있는 무덤은 보고되지 않았다.

 

 

이 연도는 무덤구덩이 바닥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말과 사람을 매장하는데 용이하게 위해 만든 것이다. 특히 연도를 통해서 구덩이 안쪽으로 돌을 굴려 넣은 것이 발견되어서 주로 돌을 굴려 넣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구덩이 바닥은 3.3m 정도 되는데, 무덤구덩이 바닥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그 상부를 돌로 누르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다.

 

그림 1.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무덤평면도와 단면도

 

아마도 무덤의 범위를 두른 호석 부분이 넓기 때문에 연도와 같은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흑해지역에서 연도가 있는 무덤은 높은 봉분이 있고, 봉분의 측면에 연도 입구가 설치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무덤과 같이 보수적인 구조에 실용성을 띠는 장치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뭔가 아크 알라하 유적군과는 달라 보인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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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알라하-5 유적은 해발 2500m 가장 높은 곳에서 발견된 일렬로 무덤이 있는 곳이다.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알타이 지역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의 특징을 보이는 유적이다.

 

이 유적의 5호는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직경은 8m정도이다. 무덤크기는 2.35×2.43 정도이고, 나무방의 크기는 1.6×1.1m가량이다. 나무방은 2열 통나무로 만들어졌으나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도굴꾼이 덮개를 잘라낸 흔적이 뚜렷하다.

 

남성의 위에는 큰 돌이 놓여 있었고, 남성은 오른쪽 상태로 누운 상태이다. 남성의 다리 사이에는 목제로 된 방패 같은 것이 있었고 북벽에는 토기편이 남아 있었다. 말은 한 마리가 부장되어 있는데, 재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5유적의 5호

 

아크 알라하 5유적에서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부장된 유물은 1호이다. 여성 무덤이지만 남벽에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허리띠 버클 장식, 칼집에 담긴 철검, 목제 사슴과 말 장식, 동경 등이 발견되어서 궁금증을 유발했다. 이 여성은 시신의 일부가 미라화된 것이 발견되었지만 유적 아래에 동토층이 남아 있지 않아서 상태는 좋지 않았다. 특히 1호 유적에서 나온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3유적(얼음공주)의 말 장식과 유사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아크 알라하 5유적의 4호에서는 투부와 칼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발견되어서 많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유일하게 남녀가 합장된 무덤인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남녀합장무덤이다.

 

그에 비해서 이 유적의 3호분은 무덤 자체는 크지만 2 남성은 모자도 쓰지 않았고, 무기도 변변하게 없었다. 유적을 보고한 폴로스막은 이 두 남성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하지만...

5호묘 남성도 아무런 무기 없이 매장되었다.

 

여러모로 이 유적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가운데서 알타이의 지역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 속하기는 하지만 앞에서 보여드린 유적에서 보이는 무덤양상과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다르지 않은 것은 어린아이의 무덤인 2호 뿐인 듯 하다.

 

그래도 일렬로 선 공동묘지 속에 묻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대단히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고 볼 수 있다고 무덤을 발굴한 폴로스막 박사는 생각한다.

 

또 흥미로운 것은 추야 강 계곡의 일렬로 선 스키타이 무덤에서는 꼭 1~2기씩 후대의 투르크 시대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는 그렇지 않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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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해발 2500m 우코크 고원에도 일렬로 늘어선 스키타이 무덤이 발견되었다. 아크 알라하 5유적이고, 앞에서 설명한 알타이의 추야강 계곡의 유적, 울란드리크 강, 바르부르가지 강, 우루술 강의 유적에서 발견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아크 알라하 5유적의 4호에서는 이 유적의 5기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남녀가 합장된 무덤이다. 직경이 8.7m가량으로 무덤구덩이의 크기는 3.05×2.5m, 깊이 2.4m 정도이고, 중심부에 장방형으로 파진 것이다. 도굴되지 않은 무덤이고, 깊이 1.45m에서 북쪽에 배장된 말의 무덤이 드러났다. 2마리가 부장되었는데 포개지게 누워 있었고 머리는 동쪽을 향했다.

 

나무방의 크기는 1.8×1.35m로 바닥에는 푸른색 자갈이 깔려 있었다. 1열의 통나무로 벽을 돌렸고, 바닥에는 6개의 나무판자를 깔았다. 덮개는 7개의 통나무로 만들었는데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기에는 2명이 매장되었는데, 25~40세 남성과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이다. 남성은 남쪽벽에 가깝게 근접했고 무릎을 굽힌 채 안치되었다. 그 옆의 여성은 덜 굽힌 편이다. 남성의 우측 허리근처에는 철제 투부, 왼쪽 허리에는 동경과 의복의 잔편인 천 조각 및 금박 조각등이 흩어진 채 발견되었다. 이 여성의 허리 부근에도 투부와 칼이 놓여 있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5유적 4호분

 

 

아마도 이제 까지 발견된 여성 가운데 투부를 가지고 부장된 경우는 없었다. 검과 칼은 있었으나 투부는 처음인 듯하다.

묘광의 북벽에는 2점의 토기가 깨진 채 발견되었고 그 주변에서는 양의 꼬리뼈와 철제 칼도 발견되었다. 칼과 고기가 목제 쟁반 위에 놓여 있었던 흔적이다.

 

아마도 해발 2500m 고도에서 확인된 유일한 남녀합장무덤인 듯하다. 현재까지는.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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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가장 높은 곳의 무덤은 해발 2500m에 위치한다. 홀로 매장되었고, 미라로 처리된 두 유적(아크 알라하 3유적/베르흐 칼쥔 II유적)을 제외하고, 아크 알라하 1유적과 아크 알라하 5유적이 있다.

 

아크 알라하 5유적에는 무덤 5기가 발굴되었고 그 중에 가장 큰 무덤은 3호로 직경이 14m이다. 무덤 구덩이의 크기는 4.7×4.2m이고, 묘광을 덮은 돌이 완전하게 남아 있지 않아서 도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림 1-1, 1-2). 그러나 매장주체부는 도굴되지 않았다.

말은 모두 4마리 부장되어 있는데 철제 재갈이 채워진 상태였다. 두개골은 투부에 맞아 구멍이 뚫려있으며, 서로 포개져 있었다. 중앙에는 3열의 통나무로 쌓아 올린 나무방이 있다. 덮개는 8개의 통나무를 댄 것으로 높이가 약 1.9m이다.

 

그림1. 아크 알라하 5유적 3호의 평면도와 단면도

 

그림 2. 아크 알라하 5유적 거울

 

그림 3. 아크 알라하 5유적의 바닥

 

그런데 이 무덤에 안치된 시신은 이제까지 본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의 무덤과는 달랐다. 어떤 점이 다를까?

 

대부분의 무덤에서는 두개골은 무덤벽과 거리를 두고 석침 위에 안치되었다. 석침이나 두개골 위에는 금박과 목제 동물장식이 발견되었으나 이 무덤에서는 그렇지 않다(그림 1-4). 그리고 고기가 담긴 그릇도 발견되지 않았다.

 

25~30세 남성(좌)과 20~22세 남성(우) 2명인데, 허리춤에서 동경(그림 2)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한 명은 바닥에 나무 조차 깔리지 않은 상태였다. 6개의 나무판자로 된 무덤 바닥 아래에는 큰 강돌로 푸른빛을 띠는 돌이 깔려 있었다(그림 3). 의도적이었다면 두 사람은 같은 무덤속에 매장되었으나 뭔가 다른 조건에서 구분되었다. 그래도 부장유물이 청동거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점은 유사하다.

 

무슨 이유로 모자도 없이 매장되었을까?

그리고 왜 두 사람은 다른 조건에서 매장되었을까?

자료들을 살펴보면 유구는 매우 보수적이고 유물은 유구보다 자유롭다. 어떤 특정 유적에서 A 구조를 가진 유구에서 ‘가’ 라는 유물이 나온다는 고정관념이 있을 수 있지만, 가 라는 유물은 반드시 A구조 유구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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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500m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5 유적은 아크 알라하 1유적과 불과 몇 m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아크 알라하 1유적에는 2기의 무덤이 있었고 1호에는 남성전사 2명, 2호에는 소년이 매장된 채 발굴되었다.

아크 알라하 5 유적에서는 남북방향으로 5기의 무덤이 열을 이루고 확인되었다(열을 이룬 모습이 평면도를 구하지는 못했다)(그림 1).

 

그림1. 아크 알라하 5유적, 북쪽에서 본 모습

 

그림2. 아크 알라하 5유적의 2호

 

1호는 수수께끼 같은 무덤이었는데, 여성이지만 남성 모자와 유물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잘 얼지 않은 채 발견되어서 주인공 뿐만 아니라 목제로 제작된 유물들이 잘 남아 있지 못했다.

 

1호 옆 2호는 직경 6m가량으로 크지 않은 무덤이다. 무덤구덩이의 크기도 1.65×1.5m가량으로 내부에는 방형의 나무방이 있었다. 덮개는 5개의 목판을 연결한 것으로 그 위에는 커다란 돌이 놓여 있었다. 8개의 목판으로 바닥이 만들어졌는데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다리를 굽힌 채 오른쪽으로 뉘운 채 발견되었다. 가슴에는 물고기 모양의 작은 목제품이 있었고 금박장식편 들이 발견되었는데, 옷에 달렸을 것이다. 석침도 발견되었고, 다리 부근에서는 양의 엉덩이뼈(고기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이미 살펴본 유스티드 유적군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의 무덤과 같은 모습이다.

크게 별다를 것 없어보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어른 무덤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본다면 어른과 아이가 크게 차별되지 않았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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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해발 2500m의 우코크 고원 아크 알라하 5 유적의 1호는 직경 12m이고, 높이는 15cm 정도로 거의 편평하다. 무덤의 상부에는 이 시기의 다른 무덤과 마찬가지로 무덤구덩이 상부를 돌로 덮은 것이었다. 덮은 돌을 제거하자 중앙에 깊이 2.5m에 달하는 무덤구덩이가 드러났다(그림 5).

 

무덤구덩이 속에서 먼저 발견된 것은 말과 무덤방의 덮개이다(그림 5-2). 무덤방의 덮개 위에 말2마리가 포개진 채로 묻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2마리(그림 5-3), 가장 바닥에 2마리가 매장되어서 (그림 5-4) 3층으로 매장되었다. 말 머리는 동쪽이고, 앞다리는 뻗었고 뒷다리는 배쪽으로 접었다. 말은 철제 재갈이 물려져 있으며 마구가 완전히 채워진 상태였다. 그러나 목제로 된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3유적처럼 많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처음과는 다른 모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덤에서 유기질제 유물이 많이 남지 않은 이유는 결빙층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닥에서만 약간의 얼음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남아 있는 굴레장식은 팔메트 형태의 굴레장식, 그리핀 장식(그림 1, 2), 새 머리(그림 3)고양이과의 맹수 장식(그림 4)등이 발견되었다. 목제 방패(그림 4-2)와 펠트로 된 안장덮개(양머리 장식)도 출토되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5유적 1호 굴레장식

그림 2. 아크 알라하 5유적 1호 굴레장식

그림 3. 아크 알라하 5유적 1호 굴레장식

그림 4. 일아크 알라하 5유적 1호 굴레장식과 방패(2)

 

나무무덤방은 통나무 3열로 쌓은 것으로 작은 크기이다(2.2×1.1cm). 덮개는 5개의 통나무를 덮은 것인데,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 여성은 일종의 침상시상대 위에 누워 있었는데, 여성의 다리를 굽힌 상태의 크기와 같다. 여성의 시신은 미라로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는데,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침상의 위쪽에는 돌로 된 석침(그림 5-3)이 놓여 있었고 목제로 된 머리장식과 이를 덮은 금박 잔편들이 남아 있었다. 여성의 오른손 쪽 끝에는 뉴가 달리 동경(청동거울, 그림 6)이 발견되었다. 바닥의 유물을 수거한 후에 통나무를 제거하자 바닥에 시상석이 깔린 것이 발견되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5유적의 1호분 무덤 평면도, 2: 무덤덮개와 말, 3: 무덤 덮개를 열고 난 후, 4: 무덤바닥의 통나무를 치운 후

 

그림 6. 아크 알라하 5유적의 청동거울

 

북동쪽 무덤 바닥에는 고기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 목제 쟁반과 그릇(그림 5-3) 등이 놓여 있었지만, 얼음 때문에 박살이 나서 발견되었다. 이 여성의 복장은 양모로 된 붉은색 치마와 흰색 상의를 입어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과 비슷했지만, 소재는 차이가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여성의 상의는 인도산 실크로 된 것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무덤에는 여성 1인만 매장되었지만 남성 유물이 나온다는 점이다. 목제로 된 허리띠 버클 장식과 단검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펠트제 모자를 장식한 목제 동물장식(그림 7)도 남아 있었는데, 이는 베르흐 칼쥔 II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등 남성 무덤에서 발견되는 남성모자의 부속품이다.

 

 

그림 7. 아크 알라하 5유적의 모자 장식

 

무덤의 규모로 보아서 남성을 실제로 매장하지는 않았는데, 왜 그녀가 남성 유물도 함께 매장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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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해발 2500m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유적 중에 아크 알라하 1 유적에는 2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이 유적과 매우 인접한 몇 m되지 않은 곳에 아크 알라하 5 유적으로 명명된 같은 시대의 무덤도 발굴되었다. 5기의 무덤이 일렬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유스티드 무덤군, 울란드리크 유적(1~5)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미라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여성 2명, 아이 1명, 남성 4명 그리고 말 13마리가 매장된 곳이다.

유적은 1990년에 발견되었고, 아크 알라하 3유적(얼음공주무덤)이 발굴된 다음해(1994~1995년)에 발굴되었다.

 

자료가 양호하게 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우코크 고원에는 일렬로 선 무덤유적이 없었다고 생각한 필자의 생각을 깨는 유적이기 때문에 있는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무덤구조나 출토유물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무덤마다 차이는 있다. 특히 무덤 내부에는 관이 없이 나무방이 관을 대신하고 있어서 베르흐 칼쥔 II유적과 유사하다.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처럼 통나무 관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5 유적 1호의 무덤 속

 

 

우코크 고원과 추야 강 계곡의 무덤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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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9. 09:22 고깔모자와 코트

 

해발 2500m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묻힌 남성(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은 시신이 미라로 처리되었으며 새머리 고깔모자를 썼다. 인접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와 2호에서도 인골은 발견되었으나 미라로 처리된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이들 모자를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퉁쳐서 말하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들면 다르다.

2021.10.18 - [고깔모자] -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모자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모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의 알타이에 묻힌 남성들은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오늘은 머리에 쓴 모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해발 2500m의 가장 높은 곳에 매장된 남성들은 필자가 이전 포스

eastsearoad.tistory.com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모자는 새머리를 펠트로 조각내고 그 상단에 굽동물장식을 세운 것이지만, 아크 알라하-1 유적의 모자는 새머리 자체가 목제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유적에서 나온 유물을 바탕으로 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추야 강, 바르부르가지 강, 우르술 강의 유적등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머리 맡에서 출토된 유물을 살펴본다면 좀 더 뚜렷해질 것이다. 이미 쿠바레프가 이들 유적을 보고 할 당시에 모자장식이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모자는 2종류가 있었고 그 중에서 요란한 장식이 붙은 모자(그림 1)는 매우 유니크 한 것이다. ‘ㄱ’ 자로 꺽어지는 맹금의 목에는 새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맹금은 입에 사슴머리를 물고 있는 있는 모습이다. 펠트로 만들어진 모자에 부착해서 장식되었다고 추정한다.

어린 소년의 무덤에서 기본 틀이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모자 만큼 화려하지 못하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모자 1

그림 2.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오른쪽)와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왼쪽)

 

또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모자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펠트로 제작된 것으로 고깔형태는 아니다. 대신 정수리에 사슴뿔을 상징하는 펠트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모자

 

그림 4.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1호 남성모자

 

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 남성에게도 비슷한 모자(그림 4)가 있었는데, 고깔 부위가 없는 것으로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모자와 비슷하다. 이들 모자를 투구와 흡사하다고 해서 투구형이라고 불렀다.

 

현재로써 알 수 있는 기원전 5세기 알타이 남성의 모자는 대략 3종류 정도 된다. 물론 더 있었을 수 있지만 남아 있고 발굴조사로 알 수 있는 것은 이것 정도이다. 가장 실용적인 것은 마지막에 소개한 것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들 모자를 알 수 있는 것은 실제 남아 있는 유물 외에도 각종 유물에 남아 있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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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를 할 때 내편과 니편을 표시하는 방법은 유니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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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8. 09:22 고깔모자와 코트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의 알타이에 묻힌 남성들은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오늘은 머리에 쓴 모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해발 2500m의 가장 높은 곳에 매장된 남성들은 필자가 이전 포스팅에서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지칭한 모자를 쓰고 있다. 고깔의 가장 꼭대기 부분에 새머리가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자 자체는 펠트제이고 동물장식은 목제만 남아 있지만 금박으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지칭했지만 자세히 보면 새머리 위에는 산염소 혹은 사슴장식이 더 위에 있다. 굽동물의 뿔이 없어진채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동물로 특정하기는 힘들다. 새머리 고깔모자가 발견된 무덤은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같은 유적 1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와 2호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는 소년의 무덤인데, 새머리 대신에 황소가 달려 있지만 모자 자체는 거의 같은 형식이다. 이 중에서 미라로 시신이 처리된 것은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

 

그럼 이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것일까?

추야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예를들면 울란드리크 IV유적의 2호분 출토품 가운데 말을 장식한 유물은 아크 알라하-1 유적과 유사하다고 이미 이야기 했다.

 

 

2020.10.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 울란디르크 계곡의 가장 오래된 무덤

 

알타이 울란디르크 계곡의 가장 오래된 무덤

알타이에서 고대 자연도로 역할을 한 추야 강의 지류인 울란디르크 강 주변에는 현재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8개가 알려져 있다. ‘울란디르크’라는 명칭을 쓴 유적은 I~V번이고, 타샨타 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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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무덤은 남녀가 매장되었는데, 머리맡에서 목제 동물장식들이 발견되었는데, 아크 알라하 1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알라하 3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같다.

 

그림 4. 울란드리크 IV유적 2호분, 상단 남성 하단 여성

 

특히 이 여성의 머리 장식은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발견된 복잡한 가채에서 발견된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머리 복원

 

울란드리크 IV유적 2호의 남성은 위에서 말한 해발 2500m의 남성들과 같은 모자를 착용했을 것이다.

 

다시 파지리크 유적으로 돌아가서 파지리크 2호에는 남녀가 매우 특이한 모자 혹은 머리장식이 발견되었다. 변형된 동물이 장식된 것은 남성, 원통형 머리장식 끝에 말총이 달린 것으로 매우 유니크 하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7.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 발견된 무덤 가운데 가장 높은 곳 중에 한 곳인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는 문신이 오른쪽 어깨에 남아 있다. 2개로 추정되는데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것을 머리가 지워진 말형 그리핀이다. 인접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 파지리크 유적의 2호, 5호 남녀 모두에게서 발견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등쪽에 남아 있는 날개의 흔적(그림 1)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미라의 문신 중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날개가 있는 동물표현은 없다.

 

합리적인 추론은 같은 시기의 남성무덤에서 발견된 동물문양 중에서 찾아 본다면 주로 투엑타 유적에서 발견되는 호랑이 얼굴 및 몸통에 독수리 날개가 붙은 그리핀(그림 2)일 수 있다. 또 다른 것은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 찾은 것인데 단순히 호랑이에게 독수리 날개만 붙은 것이 아니다. 얼굴은 독수리이고, 독수리 날개를 달고 있지만 몸통은 길게 늘인 것이고, 다리는 맹수의 다리이다(그림 3).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에 비해서 훨씬 더 복잡한 문양이다.

 이 그리핀의 날개표현(그림 3)이 문신의 날개 표현과 유사하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이 기원전 5세기 임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호랑이 그리핀(그림 2) 보다 파지리크 유적 안장덮개의 그리핀(그림 3)이 연대로는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남성

 

 

그림 2. 투엑타 유적의 호랑이형 그리핀

 

 

 

그림 3. 파지리크 유적의 안장덮개, 복잡한 그리핀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남성은 문신을 새긴 사람들 중에 문신의 수가 작은 편이다.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과는 대비된다. 이 남성의 좌측 가슴과 우측 무릎 아래에서 발견된 ‘심한동물문양’과 비교할 수 있다. 이 동물변형은 늑대머리를 달고 있었는데, 파지리크 유적의 안장덮개에 장식된 동물은 독수리 머리와 날개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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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