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이제까지 보여드린 스키타이 여신인 거울을 들고 있는 여신인 티파티가 표현된 네모꼴의 장식판은 여성의 베일에 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거울을 들고 있으면서 몸을 돌리고 있는 여성이 있는 긴네모꼴의 장식판은 머리를 장식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착장했을까?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장식판은 긴 베일에 장식된 것으로 모두 58기가 출토되었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매장자는 여성인데, 그녀는 장식판에 표현된 모습과 흡사하게 치장되어 매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나온 장식판

 

그림 2. 무덤에서 나온 장식판, a- 크라스느이 페레콜 22호 쿠르간 2호묘, b-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 여성피장자와 출토유물(부분 복원), c-노보셀라흐 쿠르간 4호(기원전 4세기)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고, 베일을 쓰고 있으며 관자놀이에 둥근 장식을 달았고,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착장했고 거울도 발견되었다. 베일에 붙은 장식판에 자신과 닮은 여성이 표현된 있었다(그림 1). 앞머리와 베일 사이에는 삼각형 장식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른 유적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아래포스팅 참고).

 

그림 3.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복원

 

그림 3에서 이용된 머리장식은 이미 소개한 바 있는데 카라고데야쉬흐 무덤에서 출토된 장식판 자체가 삼각형이기도 했고, 거기에 표현된 여성도 같은 형식의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다.

포스팅(쌍두마차, 1224)

 

그럼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된 긴 네모꼴의 장식판(그림 8)은 어떻게 착용한 것일까?

 

미로시나는 이 납작한 장식판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미 우리가 본 적이 있는데 아르김파사 가운데 가장 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 여성은 마치 머리를 붕대를 감은 모습처럼 하고 있었다(그림 4). 그리고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또 다른 장식판에는 베일을 쓴 여성이 있는데, 이 여성의 머리스타일(그림 5)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여성과 거의 비슷하게 끝이 편평하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남녀가 등장하는 카펫속에서 여성의 머리장식 모습이 머리끝은 편평하지만 삼각형 장식이 있는 모습이었다(그림 6).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머리장식(기원전 4세기)

 

 

그림 5.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장식판

 

그림 6. 알타이 파지리크 5호(기원전 5세기)의 카페트

 

그림 7. 동유럽 스키타이 머리장식 티아라 

 

그림 8. 사흐노프스키 쿠르간(기원전 4세기)

 

그래서 머리끝이 편평하며 모자같이 생긴 장식이 있고 그 아래 이마를 가로질러 띠처럼 두르도록 하는 장식이 필요한데 이때에 사용된 장식판(그림 8) 일 수 있다.

 

그런데 머리끝이 뾰족한 여성모자는 흑해지역에서는 기원전 5~4세기대에 나오지만,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의 여성에게서 이미 확인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Мирошина 1981 — Мирошина Т.В. Некоторые типы скифских женских головных уборов IV-III веков // СА. №4.(미로시나 1981, 기원전 4~3세기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의 황금유물 가운데는 금의 중량을 작게 사용한 유물들이 있는데, 문양이 남아 있다. 이는 얇은 금박지를 유기질제로 만들어진 원래 유물의 문양이 눌러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방법은 흑해지역에서는 드물지만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많이 발견된다. 목제굴레장식에 조각된 문양이 금박에 그대로 찍혀져서 문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법으로 제작된 유물은 알타이,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표트르 1세의 유물에서도 확인된다(그림 1). 일부 동물투쟁문양에서 발견된다. 이 유물의 뒷면은 기본틀을 만들고 그 위를 눌러서 만들서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 표트르 1세 황금유물컬렉션 동물투쟁문양

 

같은 동물투쟁문양 중에서는 뒷면을 무딘 송곳과 같은 도구(체이싱 기법)로 눌러서 앞면을 양각한 유물도 있다(그림2). 이러한 기법은 아무다리야 퇴장유물에서도 확인되는 방법이다.

 

 

그림 2 표트르 1세 황금유물컬렉션 가운데 동물투쟁문양

 

표트르 1세의 황금유물은 루덴코가 분석할 당시(1962)에 거푸집에서 주조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왜냐하면 유물 뒷면에 헝겊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은 주물틀에서 쉽게 꺼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조방법 뿐만 아니라 바스마 기법(러시아말 그대로...바뀔 수 있음(그림 1)과 체이싱 기법(그림 2)이 있다는 사실은 뒤에 밝혀진 것이다.

 

점토로 만든 거푸집에 직물을 깐 흔적이 유물에 남아 있는데, 2 가지 종류였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3, 4). 밀랍으로 물건의 모형을 만들어서 점토거푸집을 만든 후 그 곳에 금속액체를 부어서 주조한 것(그림 4)와 두 방향에서 점토거푸집으로 눌러서 제작한 것이다(그림 3).

점토로 된 거푸집은 남아 있지 않은데, 유물을 만든 후 거푸집을 깨고 유물을 꺼내기 때문이고, 돌로 된 거푸집은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종종발견된다. 더 세밀한 표현은 점토 거푸집이 더 유리하다.

 

그림 3.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렉션, 양면 점토 거푸집에서 제작된 유물

 

그림 4.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렉션, 밀랍 모형으로 만든 점토 거푸집에서 제작된 유물

 

그림 5 거푸집을 만들기 위해서 만든 밀랍 모형, 1-첫 번째 밀랍모형, 2- 두 번째 몸을 둥글게 말았음. 3-둥글게 감은 밀랍 모형의 뒷면을 파냄

 

그러나 거푸집을 이용해서 만든 유물이라고 해도 그림 3,4와 같이 모든 유물에 헝겊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

 

 

참고문헌

 

Р.С. Минасян. Металлообработка в древности и Средневековье.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4.//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4. (미냐샨. 고대부터 중세까지 금속제작방법)

Руденко С.И. 19621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 금제 장식은 시베리아(알티이의 파지리크 문화)에서 발견되는 유물보다 훨씬 많은 금을 사용해서 잘남아 있다. 많은 양의 금을 사용해서 동물의 근육을 잘 표현한 켈레르메스 유적의 사슴장식은 흑해지역 스키타이 황금유물을 잘 표현한 유물로 일컬어진다. 반면에 시베리아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의 황금장식판은 금이 주요하지 않고 목제품을 아주 얇은 금박으로 싸서 마무리해서 금제품이 잘 남아 있지 않다. 물론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아르잔-2호의 금제품은 이 편견을 깨는 것으로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흑해지역 금제품도 매우 얇은 금박지 정도의 금으로 제작된 것이 기원전 5세기 이후에 발견된다.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출토된 말의 볼 가리개 장식(그림 1-2)과 비슷한 형태가 볼샤야 침발카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볼사야 침발카 유적(그림 1-1)은 돌고래 형상이지만 비늘이 새의 깃털과 비슷하게 표현되어서 변형된 돌고래 모양이다. 이 유물과 가이모노바 유적의 유물은 비슷한 형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다르게 제작된 것이다. 침발카 유적의 유물은 금판으로 제작되었고 가이모노보바 유적의 유물은 원판은 유기질제(나무, 뼈로 추정)이고 그 위를 금박(10.37g, 9.62g)으로 눌러서 제작한 것이다. 무게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침발카 유적의 돌고래 표현은 매우 뚜렷한데 그 이유는 볼록하게 융기된 부분과 들어간 음각 부분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인데, 주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돌고래의 눈의 음각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림 1. 볼사야 침발카 유적과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볼 가리개

 

 

비슷한 방법으로 제작된 유물은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과 체르토믈리크 장식판이다.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은 매우 얇은 금박을 사용해서 둥글게 말 면서 주름이 생겼다(표시된 부분). 그래서 여성의 머리(그림 2-2)와 남성의 머리 부분(그림 2-1)은 체르토믈리크 장식판과 달리 경계선의 표현이 뚜렷하지 않다.

그림 2.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과 체르토믈리크 장식판

 

반면에 금판을 이용한 유물(그림 1-1, 그림 2-1,2)은 금 표면을 따라 무딘 날이 있는 송곳을 이용해서 부드럽게 두드려서 금속을 깍아내는 방법인 체이싱 기법(아래포스팅참고)을 사용해서 문양의 표현이 매우 뚜렷하다.

흑해지역에서 기원전 4세기경에 목제 조각품을 금박으로 싸는 알타이 제작방법을 이용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흑해지역 및 페르시아 제품으로 생각되는 유물들이 일방적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20.12.1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스타일과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으로 파악된다.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사 현미경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이다(Scythians 2017). www.google.com/maps/d/edi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12~319p.

Р.С. Минасян. Металлообработка в древности и Средневековье.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4.//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4. (미냐샨. 고대부터 중세까지 금속제작방법)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신화는 아시다시피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는 스키타이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그리스 신과 비교되어 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

eastsearoad.tistory.com

 

 

스키타이 유물에는 의인화된 사람들이 많이 표현되는데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들과 비교되었다. 그 중에서 여신인 아르김파사와 티파티는 각각 기원전 7세기 유물과 기원전 5세기~4세기 유물에서 드러났다.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여성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부터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갑옷 장식판, 귀걸이, 마면장식, 간두령 등 다양한 유물에 표현되었다.

티파티는 거울과 각배가 나오는 의식에서 등장한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 베일에 달려서 장식되었던 것이고, 이 유적의 주인공 역시 여성이다.

거울을 들고 있는 티파티는 측면이 표현된 것이지만,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전면이 표현된 머리장식이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되었다. 역시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이 유물은 10인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여성을 기준으로 양 쪽에는 남성 9인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성의 좌측에는 뿔잔으로 술을 마시며 의형제를 맺는 장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허리에 고리트를 차고 한손에는 지팡이와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이 있고, 그 옆에 하프켜는 사람, 가장 끝에는  커다란 항아리에서 술을 나누어 담는 장면이다.

 

그림 1. 사흐노프스키 쿠르간 출토 머리장식, 길이 36.5cm, 너비 9.8cm, 무게 64.58g

 

그림 2. 그림1과 동일

 

이 장면을 분석한 여러 연구자들은 크게 의례장면, 결혼장면, 장례식과 관련된 모습으로 해석했다. 오래된 연구일수록 의례장면(로스토프체프 1913),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포도주를 마시는 의례장면(아르타모노프 1961)으로 간략하게 분석했다. 왕과 여신 티파티의 신성한 결혼식 장면(라에프스키 2006) 혹은 결혼식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은 아르김파사일 수도 있다고도 한다(베스소노바 1983). 장례식 장면이라고 추정한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문화에 국한 하기 보다는 인도-이란 계통의 눈을 넓혔다. 먼저 쿠로치킨은 이란 청동기시대에 비슷한 도상학적인 표현이 있었음을 말했다. 베르티엔코는 인도-이란 장례식에서는 의식의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러지는 것을 고려해서 이 유물은 주인공의 좌측인 의형제를 맺는 장면부터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2009).

 

베스소노바가 아르김파사라고 추정한 이유는 체르토믈리크 고분의 티파티가 측면을 향하는데 사하노프스키 머리장식의 여성은 정면을 향해서 오히려 아르김파사와 더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각배를 들고 의식을 치르는 장면(아래 포스팅)은 솔로하 유적에서도 장식판에서 표현된 남성 2인과 매우 유사해서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판의 표현과 같은 의례장면 혹은 일부 일 수 있다.

 

2020.02.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기록과 솔로하 유적의 2.5cm 황금 장식판

 

기록과 솔로하 유적의 2.5cm 황금 장식판

헤로도투스의 역사 제4권 70장에는 스키타이 인들이 맹약을 하는 장면이 소개되었다. ‘스키타이족은 누구와 맹약을 하든 다음과 같이 한다. 큼직한 토기 항아리에 술을 붙고 거기에 계약 당사

eastsearoad.tistory.com

 

결혼장면이든지 장례식장면이든지 의례 혹은 명절에 지내는 의식일 수 밖에 없다. 술마시고, 사람을 죽이고, 다른 한쪽에는 악기를 켜는 장면이 함께 묘사된 머리장식판은 스키타이 의례와 관련된 것을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세밀한) 유물은 아니어서 원래의 작품은 따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베스소노바 1983)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는 여신이 등장하는 체르토믈리크 유적, 노사키 유적의 장신판에는 가장자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는데, 그림 1의 유물은 하단에만 꽃 장식이 있고 상단과 그 옆에는 구멍만 남아 있어 마무리가 좋지 못해서 다른 방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또 이 유물은 편평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머리앞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 둥글게 제작되어야 한다. 인물표현도 하고 둥글게 제작하려면 두꺼운 금판은 사용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게 가능한 유기물질로 원판을 제작한 후 이를 금박으로 마무리 했다면  얇은 금박(64.58g)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금박 아래에 원래 판이 따로 제작되고 거기의 조각이 금박에 남아서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금박 위의 표현은 그다지 세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비슷한 유물은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굴레장식이다. 목판이나 가죽, 뼈등 유기물질로 제작한 뒤에 금박을 싸서  만들었는데, 현재는 금박만 남아 있다. 금박에 남은 표현은 원판의 조각에서 찍힌 것이 남은 것이다. 

 

2021.09.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목제 스키타이 굴레장식의 흔적

 

목제 스키타이 굴레장식의 흔적

동유럽 가이모노바 쿠르간은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4개의 무덤방이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인 말이 매장된 곳은 2번 무덤방으로 피장자가 안치된 곳의 입구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 И. . 1961,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1961. Вып. 2. (아르타모노프 1961,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의인화 된 신)

Вертиенко А.В. 2009, К интерпретации семантики золотой пластины из Сахновки // Боспорский феномен. Искусство на периферии античного мира. Мат-лы

МНК. – СПб., 2009. – С.515-522.(베르티에넨코 2009, 사흐노프키 금판의 해석)

Г. Н. Курочкин. Богиня с зеркалом и герой с секирой (к проблеме антропоморфизации скифского искусства) //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Материалы конференции памяти акад. М. И. Ростовцева. Новочеркасск, 1993.(쿠로치킨 1993, 거울든 여신과 도끼 든 영웅-스키타이 예술에서 인물상의 문제-)

С. С. Бессонова.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К., 1983. (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 종교의 표현

Д. С. Раевский. Мир скифской культуры. М., 2006. (라에프스키 2006,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

М. И. Ростовцев.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монархической власти в Скифии и на Боспоре // ИАК. 1913. № 49. (로스토프체프 1913, 보스포로스 해협 스키타이 군주의 표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각배는 무덤 뿐만 아니라 동유럽 초원의 전사석인상에서도 확인된다. 실물자료 보다는 석제 전사상에서 표현된 것이 더 많다. 그런데 각배는 또 다른 상황에서도 발견된다.

 

기원전 4세기 여성무덤인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황금장식판에는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과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이 표현되었다.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은 긴 머리로 바지를 입고 있으며 여성은 머리에 베일을 쓰고 앉아서 거울을 들고 있다. 여성은 스키타이 신화 속에 나오는 티파티로 보고 있다.

같은 유적에 나온 철제검(그림 2)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는데 어깨를 드러낸 채 얇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 작은 장식판의 여성과 남성은 그리스인이 아니라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스키타이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거울 들고 있는 여성과 각배 든 남성이 있는 장식판은 쿨 오바 유적, 로가치카, 노사키 유적 등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어서 기원전 5세기에 유행한 문양이며, 특정한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티파티가 장식된 판(그림 1)은 모두 57개가 발견되었는데, 체르토믈리크 유적(포스팅)의 주피장자의 보라색 베일에 달렸던 장식이다. 그래서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은 사제 혹은 피장자였을 수 있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황금 장식판(3.5×3.5cm)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철제 검

 

 

그림 3. 노사키 유적 4호 출토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astsearoad.tistory.com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이탈리아의 꽃 병과 빌라의 벽에도 비슷한 구도가 발견되며 아프로디테의 형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에 스키타이 지역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베스소노바 1983).

 

동물문양(사슴) 장식, 쿠르간 뿐만 아니라 인간형상물도 스키타이 외부에서 매우 유행했다.

 

참고문헌

Бессонова С. С.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 К., 1983.(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의 종교적 믿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동유럽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큰 스키타이 고분 중에 하나인 가이모노바 유적은 드네프르강 유역에 위치했다. 기원전 4세기 유적으로 스키타이 전통의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유적이다.

봉분의 직경이 70m이고 무덤방이 4개나 확인되었지만 무덤방 자체는 작다. 주요 매장부인 2번 무덤방은 센터에 위치하며 연도를 통해서 매장주체부로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 지상의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면 바로 무덤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도(복도)를 통해서 매장주체부로 갈 수 있는 구조이다. 체르토믈리크 유적,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등 대형고분에서는 기본적으로 확인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무덤평면도 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흑해 지역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원전 5~4세기 무덤은 그림 1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유적에 따라서 입구는 봉분의 사면에 위치하거나 무덤의 꼭대기에 위치하는가에 따라서 연도의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그림 1은 대체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각배를 들고 고리트를 차고 있는 석인은 무덤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그림 1. 드네프르강 유역의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무덤 복원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쿠르간은 기원전 7세기와 비교해 볼 때 외형은 유지되지만 내부 구조는 차이가 있다. 기원전 7세기에는 봉분 안에 목조구조물을 만들었다. 

또한 같은 문화권에 있는 시베리아의 쿠르간과 비교해 볼 때도 외형은 비슷하다. 봉분과 꼭대기에 석상(사슴돌)을 세웠던 모습은 시베리아 투바, 알타이에서 관찰가능하다.

 

스키타이 전통의 쿠르간(그림 1)은 그리스식 건축양식의 무덤구조와 스키타이 봉분이 결합된 유적(그림 2)과는 대비된다.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세계와 그리스가 서로 상호작용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반대로 그리스 사람들이 시베리아에서부터 당시에 유행하던 스키타이 무덤양식을 차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림 2. 흑해 북안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동유럽 가이모노바 쿠르간은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4개의 무덤방이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인 말이 매장된 곳은 2번 무덤방으로 피장자가 안치된 곳의 입구와 가까운 곳에 매장되었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무덤 평면도

 

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의 2번 무덤방

 

그림 3. 가이모노바 유적의 2번 무덤방과 말 무덤

 

말은 2필 매장되었는데 말 옆에는 굴레장식과 재갈과 재갈멈치 등의 마구가 발견되었다(그림 2,3). 그 중에 굴레장식은 원판형과 동물장식이 표현된 것이 발견되었는데, 원판과 동물장식은 제작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원판은 두터운 금판으로 제작된 것이고 동물장식판(그림 5)은 얇은 금판을 이용한 것이다. 원래는 목제로 제작된 기초부분이 있었고 그 위를 금판으로 감싼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4.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무덤 굴레장식

 

그림 5.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무덤에서 나온 굴레장식, 4.0~5.4×9.9cm

 

솔로하 유적에서도 목제판을 감싼 굴레장식이 출토되었다고 베셀로프스키도 이 점을 지적했다. 만세비치(1987)는 솔로하 유적의 굴레장식의 기초가 된 유기물질을 나무 혹은 천, 가죽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굴레 장식의 금판은 얇아서 목제조각의 흔적이 그대로 찍혀서 문양으로 남은 것인데, 이러한 기법은 투바 아르잔-2호의 고리트를 제작할 때도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목제로 조각을 한 굴레장식을 금박으로 감싼 것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리크 문화 특징이다.

동유럽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금으로 굴레장식을 제작할 경우 주로 중량감이 있는 금판으로 제작되어서 목제굴레장식판은 알타이의 특징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흑해지역에서도 이런 특징이 발견된다. 물론 많은 유적은 아니지만 일부 유적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이모노바 유적의 굴레장식판은 전체 모양은 나뭇잎 모양이지만 세부표현은 물고기 장식이다. 나뭇잎 모양의 굴레장식은 볼쇼야 침발카 유적, 노사키 유적, 츠미레바 유적 등에서 출토되어 기원전 4세기 흑해지역 굴레장식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Манцевич А. П. Курган Солоха: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 Л., 1987.

(만체비치 1987, 솔로하 쿠르간)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발견된 사슴장식판은 목제그릇을 장식한 것이다. 목제그릇은 스키타이 고유의 유물로 시베리아에서는 목제에 장식판을 달지 않지만 흑해지역에서는 금속제 장식판을 많이 달았다. 대형 쿠르간에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황금제이다.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발견된 사슴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 혹은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과 비교해 볼 때 몸통과 눈의 표현 등이 사실적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이나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의 사슴장식은 몸통, 뿔 등이 비현실적으로 표현되었으나 가이모노바 유적의 사슴은 몸의 근육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비현실적으로 크고 뿔은 오히려 더 과장되었다. 뿔의 끝이 둥글게 말리도록 표현 한 것이나, 뿔의 크기가 동물 몸체 만큼 커지게 표현한 것은 비사실적이다.

 

스키타이 연구자들은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특징이 양식화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르게 말하면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반복하고 변용했다는 의미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사슴장식은 누가 봐도 사슴이지만 정밀한 사슴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늘 등장하는 그리스 유물은 매우 사실적이다. 예를들면 인간표현을 보아도 그리스 유물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인간은 특징만 간략하고 매우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가이모노바 유적의 사슴판은 이 보다 이른 스키타이 유물보다는 사실적으로 발전한 면도 있지만 더 과장된 뿔은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 극대화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시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소개한 동물장식은 대부분 1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것이었고 여기서는 그리스토기와 함께 나왔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 그리스와 상호작용한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장인이 만든 유물에서도 스키타이 동물양식을 채용한 유물도 발견되는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패식 장식이다(그림 1). 전통적인 스키타이 동물장식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그림 2.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의 사슴장식

 

그래서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나온 동물장식은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장식에 그리스 장식이 가미된 것과 반대의 경우가 혼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특히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나온 사슴장식은 이 유적 뿐만 아니라 인접한 유적에서 나타난다(그림 3). 여러장인이 만들었기에 완전 100%같지는 않지만 앞다리와 뒷다리의 자세, 크게 과장된 눈과 뿔은 규칙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3. 기원전 4세기 사슴장식, 1-아크 메세치, 2-자바드스카야 모길라, 3-솔로하, 4-야스노오제로예 1호 쿠르간, 5-야스노 오제로예 2호 쿠르간, 6-페소치 32번 쿠르간, 7-말라야 레페티하 9호 쿠르간 무덤 4번

 

참고문헌

Бессонова С. С. Ритон из Братолюбовского кургана (к вопросу о датировкецентрального захоронения) // Эпоха раннего железа: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трудов к 60-летию С. А. Скорого. – К.; Полтава, 2009.(베스소노바 2009, 브라트류보프스키 쿠르간의 리톤(각배)의 연대에 대해서)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최대 무덤중에 하나인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동물장식이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장식, 의례용 잔(각배)과 간두령 등에서 발견된다. 이 외에도 목제 그릇의 장식판으로도 확인된다.

사슴장식인데 모두 4판이고 같은 스탬프로 제작되었다고 비드질리야는 생각하지만 약간 씩 차이가 있다. 이 장식판은 4개가 미세하게 크기가 다르다. 1: 4,84,9 х 5,7 см, 2: 4,74,9 х 6,0 см, 3: 4,85,0 х 6,0 см, 4: 5,0 х 6,0 см

 

황금 장식판의 사슴은 간두령에 장식된 사슴과 뿔 모양(뿔의 방향)과 자세가 차이가 있다. 뿔 모양은 방향이 차이가 있는데, 끝이 둥글게 말렸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2021.09.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의 간두령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의 간두령

드네프르 강 유역의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인간을 형상화 한 물건 뿐만 아니라 동물문양장식도 발견된다. 동물문양장식은 말 그대로 다른 용도의 물건에 부속되어 장식된 것이지만 유라시아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황금 장식판

 

기원전 5~4세기 흑해지역 유적에서 목제그릇은 남아있지 않지만 금판이 발견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나온 사슴 장식판 유물은 매우 특별한데 그 이유는 이 유물이 출토된 무덤방의 연대가 기원전 365~350년 이라는게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비슷한 유물의 연대들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베스소노바는 바라트류보프스키 쿠르간에서 각배에 장식되었던 네모 장식판이 가이모노보바 유적과 거의 비슷해서 두 유적은 동시대라고 결론내렸다.

 

 

그림 2. 브라트류보프스키 쿠르간의 각배(1)와 가이모노바 유적의 장식판(2)

 

 

참고문헌

 

Бессонова С. С. Ритон из Братолюбовского кургана (к вопросу о датировкецентрального захоронения) // Эпоха раннего железа: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трудов к 60-летию С. А. Скорого. – К.; Полтава, 2009.(베스소노바 2009, 브라트류보프스키 쿠르간의 리톤(각배)의 연대에 대해서)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은 간두령, 머리장식에도 사용되었고 각배라고 불리는 뿔잔에서도 장식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2점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었다.

 

뿔이나 금속제로 제작된 스키타이 각배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유적은 가이모노바 유적의 큰 각배와 이 외에도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의 4호와 타라예프스키 유적에서 알 수 있다.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큰 유물과 작은 각배가 있는데 그 중에서 작은 각배(전체 길이 27cm, 구부러진 부분은 6.2×6.9cm, 끝 부분의 길이는 4.9cm, 양 머리 길이는 2.1cm)는 양머리가 장식된 가장 끝 부분과 그 반대의 가장자리가 남아 있었다(1/3가량). 은제품이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1번 무덤방 출토 작은 각배

 

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의 1번 무덤방 출토 1: 큰 각배와 작은 각배, 2: 큰 각배의 금판 문양

 

 

 

그림 3. 가이모노바 유적의 큰 각배의 세부

 

 

큰 유물( 전체길이 41.8cm, 금판 길이 15.5cm, 은판길이 21cm, 입구길이 6cm) 세 부분으로 나눠져서 만들어진 것인데 가장 큰 부분은 금판, 중간부분은 은판이고 중간에 두 부분을 연결하는 부위가 따로 있다. 이 중에서 금판에는 동물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남성, 새, 나무가 수평적으로 3개 물체가 층위를 이루며 그려져 있다. 비드질랴는 이 유물이 당연히 스키타이 장인이 제작했는데, 다만 덩굴문양인 팔메토는 그리스 문양으로 이를 혼합해서 제작한 것으로 보았다.

 

각배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흑해 및 카프카스 북안(흑해 좌안), 트라키아 지역에서만 제작되었고 동쪽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유물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말 그래도 뿔로 제작되었고 ‘뿔 모양’으로 생긴 것이다. 주로 흑해지역에서만 확인된다(막시모바 1956).

 각배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기원전 7세기 부터 발견되지만 실제로 유물은 드물지만 전사가 그려진 석인상에서 볼 수 있다.  

 석인상 137점 가운데 40여점에서 각배가 조각된채 발견되어서  매우 애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6세기 석인상도 있지만 기원전 5세기 유물이 대부분이다.  기원전 4~3세기가 되면서 크림지역에서도 유행하게 되고, 흑해 북안의 초원지역(크림 반도 북쪽)에서는 크림반도나 코카서스 지역보다는 실제 각배 보다는 석인상에서 많이 발견되고(올호프스키 2005) 금속제가 이 시점에생기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모노바 유적(드네프르강 유역, 흑해북안 초원지역)에서 발견된 특히 스키타이 장인이 제작한 각배는 실제로 남아 있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더보기

트라키아에서 유행한 각배는 가장 빠른 것이 기원전 5~4세기 전반이고 늦은 유물은 기원전 4세기도 있다. 하지만 트라키아에서 발견되는 각배는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참고문헌

Ольховский В. С. Монументальная скульптура населения западной части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эпох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 М., 2005. (올호프스키 2005, 유라시아 초원 철기시대 서부지역의 기념 석인상)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