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2021. 11. 7.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울산 대곡천변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배 그림은 아마도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서 낚시를 했던 증거로 볼 수 있다.

다만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에서는 마스크형 그림과 함께 발견되고, 울산에서는 고래와 함께 그려진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

 

그런데 같은 강에 위치하지만 천전리 암각화에는 많이 다른 양상이다. 선사시대만 국한되지 않고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의 글 까지 남아 있어서 제작연대도 차이가 있다. 왜 천전리에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겼는지 모르겠다.

 

또 수수께끼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할 동물문양이나 사람도 아닌 동물도 아닌 반인반수의 표현등 괴기한 문양 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같은 주제이지만 반구대암각화에서는 볼 수 없는 형상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 1. 동일주제이지만 반구대 암각화와 다른 표현의 천전리 암각화

 

필자는 천전리 암각화 중에 몸통이 선처럼 표현된 동물문양과 손을 말고 있는 사람은 시베리아 카라숙문화의 사슴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시베리아 카라숙 문화는 기원전 14~10세기에 존재했던 문화로 그 문화의 청동 유물은 연해주에서 발견된다. 연해주의 그 문화(시니가이 문화)는 한반도에서 발견된다. 한반도에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카라숙문화의 흔적이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오쿠네보 문화의 그림도 있지만(그림 2) 오쿠네보 문화가 존재했던 시기는 카라숙 문화 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25~19세기로 이때 우리나라에는 신석기시대이다. 시대성을 떠나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오쿠네보 문화의 존재가 발견된 바 없다. 그래서 천전리 암각화에서 오쿠네보 문화의 그림은 어떻게 남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카라숙문화와의 직접적인 관련성도 좀 더 근거가 필요하다.

 

 

그림2. 천전리 암각화에서 발견된 시베리아 암각화의 요소

 

 

 

그럼 천전리의 그림은 누가 그린 것일까?

 

천전리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은 대부분 영남에 살던 청동기시대 사람이었을 것이지만 어떻게 시베리아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발견된 그림이 천전리에 남아 있는지 아직은 확언하기 힘들다. 누군가 보고 와서 머릿속에 남은 기억으로 그린 것인지, 그 누군가가 시베리아에서 온 사람인지 아니면, 영남에 살던 청동기시대 사람이 보고 들은 바를 그린 것인지 불분명하다. 앞으로의 연구성과를 기다려 볼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필자는 울산 대곡천의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는 같은 강변으로 근거리에 위치하지만 매우 성격이 다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김재윤, 2021, 「시베리아 청동기시대와 천전리 암각화의 비교고찰-오쿠네보 문화와 카라숙문화 암각화를 중심으로」, 『고고학』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6. 09:22 책소개

 

다시 돌아가서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동물장식처럼 인간형상물은 이 문화의 상징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보셨듯이 인간형상물의 전통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철기시대에 극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부지역 여신상인 미라는 부활을 기원하면서 제작되었다. 반면에 서부지역의 여신상은 기원전 7세기는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기원전 5세기 이후는 실용적인 벽사의 개념으로 바뀌는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념들이 갑자기 생겨났을까?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이전에도 시베리아에서는 무덤 속에 뼈로 제작된 인간형상물을 무덤속에서 지속적으로  부장해 와서 매우 정신적인 영역의 유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고, 부활의 의미가 미라 이전부터 있었을 수 있다.

반면에 흑해지역에서는 특정기간에 제작되며 주거지와 무덤에서 모두 발견된다.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부적이나 벽사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인간형상물은 일상생활용품과 달리 그 변화는 천편일률적이 아닐 수도 있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무덤 혹은 주거지에 부장되는 그 행위가 지속적으로 보존된다는 것으로 보아서 동물문양 처럼, 유라시아 초원 선사문화의 상징물로써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의 동서비교

 

*위의 글은 11월 5일에 개최된 제 45회 한국고고학대회의 필자 발표문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국고고학회 (kras.or.kr)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교과서 밖의 역사, 진인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5. 09:22 책소개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이전에도 인간형상물은 발견된다.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인 오쿠네보문화에서도 인간형상물이 무덤 속에서 발견된다. 청동기시대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방형 혹은 원형의 호석 안에 석관묘가 여러기 들어가는 무덤이다. 여성과 남성이 구분되어 발견된다. 골제로 제작되었다.

 

그림 1. 오쿠네보 문화의 인간형상물

 

순동시대의 글라스코보 문화에서도 역시 인간형상물이 발견되는데, 토광묘 속에서 맘모스 상아로 제작된 인간형상물이 토광묘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글라스코보 문화의 인간형상물

 

신석기시대에는 키토이 문화와 세로보 문화에서 각각 발견된다. 토광묘 속에 맘모스 상아로 만든 유물이 발견된다. 인간형상물과 동물이 합체된 모습으로 무덤 속에 부장되었다.

 

그림 3. 세로보 문화의 인간형상물

 

인간형상물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제작되었다. 말타와 부레티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맘모스 상아로 제작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었다. 말타 유적은 집자리 15동이 발굴되었는데 대부분의 집에서 발견된다. 그 중에서 원형 주거지의 화덕자리에는 인골과 함께 인간형상물이 발견되어서 집 속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이곳에서 인간형상물이 발견된다.

 

그림 4. 후기 구석기시대 인간형상물

 

반면에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서부지역에서는 그 이전에 순동시대인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사바티니프카 II유적과 베르나세프카 유적이 있다. 사바티니프카 II유적에서는 주거지 가장 안쪽의 제단 위에서 32점의 토제로 된 여성상이 발견되었다. 또한 베르나세프카 유적에서도 7개의 주거지가 발굴되었고 그 중에 한 곳에서만 소의 두개골과 여성상이 발견되었다. 생활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비트바틴트시유적은 앞의 유적보다는 늦은 연대로 9~10세의 소녀의 무덤이다. 이곳에서 3점의 여성상이 발견되었다.

이 문화에서는 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인간형상물의 변화가 보이는데, 전기의 앉아 있는 모습으로 둔부가 강조된 형태에서 서 있는 모습으로 변화된다. 하반신의 여성성이나 이해할 수 없는 얼굴표현은 공통적이다.

 

그림 5.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의 사바티니프카 II 유적의 주거지와 복원도

 

 

그림 6. 사바티니프카 II유적의 인간형상물

 

그림 7. 비트바틴트시 유적의 여성형상물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 이전에는 후기구석기시대 그라베트 문화에서 인간형상물이 발견된다. 여러 유적이 있지만 코스텐키 1유적이 가장 대표적인데 주거지 1기에서 43점의 여성형상물이 출토되었다. 모두 여성상이며 맘모스 상아 혹은 이회암으로 제작된다. 눈코입의 표현이 없고 가슴과 엉덩이를 매우 강조한 형태이고, 일부러 신체의 부분을 훼손하는 행위도 있다.

 

그림 8. 후기구석기시대 그라베트 문화의 인간형상물

 

그래서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시베리아와 흑해지역은 인간형상물을 부장행위는 발견되지만, 부장양상은 다르다. 시베리아에서는 무덤속에서 부장되며 뼈라는 한정적 소재로 여성과 남성 형상물이 발견되지만, 흑해지역에서는 뼈와 돌로 제작되며 특정 집자리에 집중되고, 여성형상물만 제작된다.

 

* 이 내용은 11월 5일 45회 한국고고학대회 발표문을 발췌한 것입니다.

www.kras.or.kr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제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교과서 밖의 역사, 진인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4. 09:22 책소개

인간형상물은 유라시아 초원 선사문화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

 

인간형상물이 가장 극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철기시대이다.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는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동물장식, 마구, 무기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을 집합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것은 동물장식이다. 동물장식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게 될 만큼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원형맹수장식으로 인해서 그 이전까지 알려진 카자흐스탄의 스텦지역과 흑해지역의 원형맹수장식이 시베리아에도 존재했고 심지어 더 이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동물장식의 특징으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으로 구분한다. 동물의 주제는 공통적이지만 표현방법과 자세 등이 차이가 있는 현상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형상물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에서 구분되어 나타난다.

 

스키타이 문화를 최초로 기록한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왕의 장례치르는 방법에서 미라처리에 관한 내용을 서술했는데, 실제 발견되는 곳은 알타이이다. 반면에 서부지역에서는 신화속의 인물로 생각되는 인간형상물 등이 발견된다.

 

그림 1. 알타이(아크 알라하 3유적)의 미라

 

그림 2. 흑해(켈레르메스 유적)의 여신상

 

동부지역에 속하는 알타이에서는 미라가 해발 1200m이상의 무덤에서 발견되고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바사댜르 유적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 바 있다.

미라를 만드는 이유는 파지리크 문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 부활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무로 된 무덤방과 통나무관, 내부까지 흙과 풀로 채워진 인간형상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에 서부지역에서는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 이후로 여러 유적에서 신화 속의 아르김파사로 여겨지는 여성상등이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 까지 지속적으로 출토된다. 무덤 뿐만 아니라 성곽(벨스크) 유적에서도 출토된다.

서부지역에서는 무덤 구조가 변화되어도 인간형상물이 발견되며, 사용방법도 거울이나 각배와 같은 의례품에서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실용적인 유물에 부착되는 변화가 있다. 재질도 변화된다. 신화와 같은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벽사의 개념을 지닌 부적과 같은 역할로 변화되었다.

 

그럼 인간형상물은 갑자기 생긴 것일까?

 

*이 글은 내일 필자가 한국고고학대회에서 발표할 내용을 간략하게 추린 글이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제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한국고고학회 (kras.or.kr)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3.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에서 배 그림은 고래와 함께 그려진다. 그럼 배 그림은 고래와 같은 연대 일 수 있다. 그러나 그도 간단한 것이 아닌 것이 고래는 58마리나 등장하며, 다양한 종류의 고래가 그려졌다. 그 중에서 고래가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장면 및 고래가 수평으로 놓인 장면 에 나오는 고래는 종류가 다르다. 그래서 반드시 고래도 같은 시기에 그려졌다고 볼 수 없다. 앞의 것은 북방긴수염고래로 페그티멜 암각화에 등장하는데 기원전 10세기경에 그려진 것이다(김재윤 2017b). 그 외 배와 함께 그려진 고래는 귀신고래, 범 고래(그림 2)등인데 북방긴수염고래(그림 1-A)와는 다른 종류이고 그려진 방향도 달라서 그려진 시점도 따로 생각 해 볼 수 있다(김재윤 2021).

 

그림 1. 반구대 암각화의 북방긴수염고래

 

 

 

그림 2.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와 배

 

 

실제로 우리나라의 8000년 전 비봉리 유적에서는 배(그림 3)가 발견되었고, 동삼동 유적에도 배를 모방한 토기(그림 4)가 확인되어서, 신석기시대에 배는 존재했다. 그렇다면 반구대 암각화의 배도 신석기시대의 그림일 수 있다.

 

그림 3. 창녕 비봉리 유적

 

그림 4. 동삼동 유적에서 발견된 모형 배

 

 

다시 돌아가서 사카치 알리안의 호랑이와 사슴, 페그티멜 암각화의 사슴과 고래는 반구대에서 확인되는 같은 방법으로 그려진 문양이다. 여기에 환동해문화권의 배 그림도 그들이 이동한 바닷길을 말해주는 것 같다(김재윤 2021).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암각화가 발견된 것 만이 아니라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신석기문화가 남부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김재윤 2017a).

 

 

 

참고문헌

 

김재윤 2017a, 『접경의 아이덴테티: 동해와 신석기문화』, 서경출판사

김재윤, 2017b, 「반구대암각화의 비교고찰-부산경남의 선사시대 지역성」,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8권 제4호

김재윤, 2021,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2.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암각화 유적에서는 여러 곳의 유적에서 배 그림이 발견된다.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유적 및 우수리강변의 칼리노프카 유적, 세레미체보 유적 등에는 배 그림이 발견되었다. 특히 칼리노프카 유적에는 마스크형 암각화와 함께 그려져서 배 그림의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아무르강 하류에서 마스크형 암각화(그림 1)가 그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9000년 전으로 판단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쌍탑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 편에 똑같은 그림(그림 3)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1.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의 마스크

 

그림 2. 사차키 알리안 암각화

그림 3. 눈강 유역의 쌍탑 유적

 

마스크형 암각화는 동심원을 기반으로 한 그림이다. 그래서 동심원문양도 마스크형 그림과 동시기에 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만강 유역에서 발견된 지초리 유적에서는 동심원문양만 잔뜩 그려져 있다.

 

그림 4. 세레미체보 유적

 

그림 5. 지초리 유적

 

우수리 강변의 세레미체보 유적에서도 마스크형 문양과 동심원문양이 함께 그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세레미체보 유적이나 두만강 유역의 지초리 유적 등에서 발견된 동심원문양은 9000년 전까지 올려 보기 힘들다. 이 때의 신석기시대 유적 자료 특히 마을 유적이 발견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리노프카 유적, 세레미체보 유적이나 지초리 유적은 연해주의 뚜렷한 신석기문화인 루드나야문화의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김재윤 2019). 배 그림도 이 시기에 그려졌을 수 있다. 대략 6500~6000년 전 이다(김재윤 2021).

 

 

 

참고문헌

 

김재윤, 2019, 「선사시대 동심원문 암각화를 통해서 살펴본 환동해문화권의 범위와 교류영역 - 고아시아족과 퉁구스족문제를 겸해서」, 『한국상고사학보』,제 104호

김재윤, 2021a,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1.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아무르강 하류 사카치 알리안 유적의 배 그림은 그린 기법으로 신석기시대와 중세시대의 것이 있다. 신석기시대 배 그림(그림 1)은 16척이 6개의 바위에서 발견되었다. 배는 중앙이 둥글게 처리되어 휜 것이 있고, 편평하게 표현된 것이 있지만 대부분 호선을 이루는 형태가 많다. 모두 승선인원이 그려져 있는데, 가장 많은 인원이 탄 것은 18인이고, 15인승과 10인승, 9인승이 있으며 7인승이 4척으로 가장 많다. 3~4인승이 가장 작다. 10인승의 배를 그 뒤에 사슴으로 새로 고쳐서 그린 것도 있다. 암각화 그림 가운데는 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알타이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1.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배 그림(김재윤 2021a)

 

배 그림은 아무르강의 사카치 알리안 유적 외에도 칼리노프카(Калиновка, Kalinovka)(그림 2-3), 키야(Кия, Kiya) (그림 2-4)유적 등이 있고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 강의 세레미체보(Шереметьево, Sheremetyevo)(그림 2-1, 2)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2.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의 배 그림 암각화(김재윤 2021a)

 

칼리노프카 유적에는 바위 전체(130×96cm)에 사람의 얼굴을 닮은 마스크형과 배 12척(그림 2-3)이 그려져 있다. 마스크형에는 귀가 없고 사카치 알리안, 세레미체보 유적 등지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한 마스크형으로 볼 수 있다.

 

배 그림은 승선한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5인부터 34인까지 다양하며, 배는 양쪽 끝이 약간 부채꼴처럼 구부러지게 표현되었다(그림 2-3).

 

 

세레미체보 유적(그림 2-1,2)은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의 강가에 위치하며, 마을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한 절벽을 따라서 5개의 지점에 암각화가 남았다. 제 2지점에 2척의 배가 그려져 있는데, 중앙이 활처럼 휘도록 그린 것이고 19명과 20명의 사람이 탄 모습이 나란히 수평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그림 2-1). 3 지점에서는 마스크형 아래에 배가 그려져서 발견되어서 배와 함께 구성되었다(그림 2-2). 마스크형 암각화는 사카치 알라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스크형 암각화(그림 2-2).는 눈이 째진 모양이고 얼굴 주위로 방사선이 달린 채로 표현된 것인데, 사카치 알리안 유적과 세레미체보 유적에서 발견되는 암각화이다. 그렇다면 이 얼굴과 함께 그려진 배도 동 시기의 표현물로 볼 수 있다.

 

상기한 유적에서는 마스크형 암각화와 배가 함께 그려지는데, 배의 그림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김재윤 2021).향토사학자인 졸로타레프는 암각화가 세워진 칼리노프카 마을은 울치족이 살던 지역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화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사자의 영혼이 저승세계로 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았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JEV8r-umyEoSl94ERNtzWwvr7cDReYf9&usp=sharing 

 

배그림 - Google 내 지도

배그림

www.google.com

 

참고문헌

김재윤, 2021a,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Окладников А.П., Петроглифы нижнго Амура,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Лениград, 1971, 333c.(오클라드니코프 , 『아무르강 하류의 암각화』, 197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31.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하며, 동시에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중부지역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 곳에는 시베리아 호랑이 즉 백두산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유적에서 반구대암각화에 그려진 방법과 같은 기법의 호랑이와 배 그림 등이 발견된다.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마을에서부터 상류쪽으로 말리셰보 마을까지 아무르 강가의 5km 범위 내에 화산암 바위 위에 그림이 남겨져 있다. 아무르 강 하류에서 직선거리 560 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내만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페그티멜 유적과 반구대가 절벽위에 그려져 있다면, 사카치 알리안은 강가에 바로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은 좋지만 유적파괴도 극심하다.

 

6지점에서 103개의 화산암 돌(그림 1)에서 1~12개의 표현물이 확인되었다(그림 1, 아래 사이트 참고). 암각화의 기법에 따라서 선쪼기 기법과 선 긋기(세선)로 구분되는데 각각 신석기시대와 중세시대에 그려졌다.

 

이곳의 바위그림은 인간의 얼굴 혹은 마스크를 쓴 얼굴, 뱀, 사람, 배, 사슴-배, 사공이 탄 배, 새, 원심원 및 동심원 문양 등 기하적인 것도 백 여점 이상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원형의 문양이나 동심원문인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인간의 얼굴모양(그림 2-3~7)을 표현했다는 생각이다.

 

그림 1.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그림 2.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김재윤 2021b)

 

동물문양 중 사슴은 대단히 다양한 표현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 사슴으로 추정되는 동물가운데, 몸통의 내면이 격자로 표현된 사슴(그림 2-2)과 호랑이(그림 2-3)표현은 반구대(그림 3-D,E)도 볼 수 있다(김재윤 2021b)

 

그림 3. 반구대 암각화(암각화보존연구소2020, 김재윤 2021b)

 

반구대 암각화에도 다양한 사슴표현이 있기 때문에 사카치 알리안과 다른 사슴표현도 많다. 그래서 더 눈이 가는 것은 ‘배(boat)’이다.

 

사카치 알리안의 암각화는 아래에 소개해 드린 사이트로 들어가면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영문도 있음). 강가의 큰 돌에 그림이 있어서 접근하기 쉽지만 그만큼 유실도 많다. 사이트에서 잘 찾아 들어가면 3D로 암각화가 있는 돌을 돌려 보면서 그림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Ласкин А.Р. ПЕТРОГЛИФЫ СИКАЧИ-АЛЯНА: ИСТОРИКО-КУЛЬТУРНЫЙ КОНТЕКСТ И СОСТОЯНИЕ СОХРАННОСТИ :Автореф. дис...канд.ист.нук., Москва, 2015 (라스킨, 『사카치 알리안 유적: 역사문화적 접촉과 보존상태』, 2015, 15면)

김재윤, 2021a,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2021.

김재윤 2021b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한국의 암각화』, 2020.

https://aurockart.ru/

 

Петроглифы Нижнего Амура и Уссури

Трехмерное моделирование петроглифов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aurockart.r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30.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반구대암각화는 1971년 12월 25일에 발견되어서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라고 불리며, 많이 회자된다.

울산의 대곡천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근거리(직선거리 1.75km)에 위치한다. 울산은 사실 부산과 같은 생활권역으로 신석기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을 대표하는 신석기시대 영도의 동삼동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조각에 사슴문양(그림 3)이 그려졌는데, 반구대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이다(하인수 2012).

 

 흥미로운 점은 두 암각화는 매우 가깝게 위치하지만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반구대암각화는 주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제의 장소로 먹거리였던 사슴과 고래가 주요한 소재이고, 동물의 종을 구분할 정도로 매우 사실적이다. 반면에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오랫동안 주민들이 남겨 놓은 흔적이 남아 있다. 사실적이지만 반구대 암가고하에서 보지 못하는 동물표현과 동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괴기한 문양이 나타나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우리나라 암각화가 주로 기하학적인 문양이 많은 데, 그에 비해서 두 암각화에서 사실적인 그림이 많다는 점은 유라시아 암각화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와 호랑이, 배 그림 등은 아무르강 하류 및 연해주 등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유적(그림 2)에서 관찰된다.

반구대암각화와 가까운 석장리 암각화에도 배 그림이 남아 있다(그림 1).

 

그림 1. 반구대암각화(1~4)와 석장리 유적(5)의 배 그림(김재윤 2021)

 

 

 

그림 2.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알리안 유적 배 그림(오클라드니코프 1971, 김재윤 2021a 재인용)

 

환동해문화권은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 한반도 두만강 북쪽에 위치한 연해주와 우리나라 중부지역이 서로 일정한 문화적 특징이 나타나는데, 각 지역의 문화를 엮어서 명명한 것이다.

러시아의 연해주와 아무르강(Амур, Amur) 하류를 포함하는 북부지역과 우리나라의 영동지역 및 영서지역과 동남해안을 포함하는 남부지역으로 구분된다. 그 범위는 고정된 것은 아니며 시간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데, 문화권이 형성되고 가장 넓은 범위를 보이는 것은 신석기시대이다(김재윤 2021b).

 

그림 3. 동삼동 유적의 토기조각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JEV8r-umyEoSl94ERNtzWwvr7cDReYf9&usp=sharing 

 

 

배그림 - Google 내 지도

배그림

www.google.com

 

참고문헌

김재윤, 2021a,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연구, 22-2

Окладников А.П., Петроглифы нижнго Амура,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Лениград, 1971, 333c.(오클라드니코프 , 아무르강 하류의 암각화, 1971.).

 

--> 아무르강 하류와 우수리강의 암각화

https://aurockart.ru/

 

Петроглифы Нижнего Амура и Уссури

Трехмерное моделирование петроглифов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aurockart.r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29. 09:22 고깔모자와 코트

 

 

해발 2000m의 쿠투르군타스 유적 남성은 이중으로된 나무방 속에 통나무관에 안치되었다. 통나무관이 매장되는 경우는 파지리크 문화에서 드물어서, 계급이 높은 신분에서 확인된다고 보았다. 통나무관이 발견되는 경우는 바샤다르 유적이 처음으로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에서 주로 발견된다. 도굴 때문에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남성도 해발 2500m위에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과 비슷한 사회적 역량이지 싶다. 이 유적에서도 모피조각이 발견되어서 남성은 모피로된 코트를 입었을 수 있다. 그나마 잘 남아 있는 남성의 모피코트는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와 3호 남성이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모피코트이다. 특히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남성은 꼬리 달린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그림 2).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여성 모피는 통으로 발견된 예가 없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을 수 있고(포스팅 참고),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다.

 

2021.07.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탁사이 1 유적] - 카자흐스탄 탁사이-1 여성의 스타일

 

카자흐스탄 탁사이-1 여성의 스타일

카자흐스탄 서부의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금으로 된 십자형 그리핀이 표현된 장식판과 산양머리 장식판이 고깔모자와 상의에 부착되었다고 추정된다. 발굴당시에 고깔모자와 상의는 남아 있

eastsearoad.tistory.com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은 통나무관에서 꺼내진 상태로, 미라로 처리된 시신은 찢겨진 상태로 발견되어서 몸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코트는 발견되었는데, 가죽으로된 아플리케 장식(그림 3,4)과 그 위에는 둥근 금박이 씌워진 화려한 코트이다.

 

그림 3.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코트

 

 

그림 4. 그림 3의 디테일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인 것은 쿠트르군타스 유적에서도 발견된 바 있는데, 주머니의 조각으로 보고 되었으나, 코트의 조각 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도 모피코트를 입었던 경우가 울란드리크 1유적 2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역시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된 스타일이고, 여러 번 고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쿠바레프는 그 흔적이 여러 아이들이 돌려 입으면서 생긴 것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