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남쪽에 있었던 기원전 9세기부터 존재했던 우라르투는 기원전 8세기경에 세워진 에레부니 성곽과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테이시바이니 성곽을 남겨둔채 멸망했다. 테이시바이니 성곽을 무너뜨린 것은 스키타이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우라르뜨가 완전히 망한 것은 기원전 585년 메디아 인들의 침략에 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흑해 북안에 살던 스키타이 사람과 키메르치 사람들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복잡한 지형만큼이나 민족도 다양하고 역사도 그랬던 것 같다. 우라르트가 있었던 지역은 기원전 6세기 이후에 아케메니드 왕조의 영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레부니 유적에는 기원전 5~4세기 문화층에서 아케메니드 왕조의 은제 각배 등도 발견되고, 칼디 신의 사원도 방형으로 개축되어서 사용되었다.
우라르트는 3신을 믿었는데, 칼디 신, 테이시바 신, 시비니 신이다. 칼디 신은 믿음의 신이고, 테이시바 신은 전쟁의 신이며, 시비니 신은 태양의 신이다. 그의 다른 이름은 아르티니스 이다. 아리티니스는 현대 아르메니아 언어에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칼디 신은 사자를 타고 있고, 테이시바 신은 소를 탄 모습이지만, 시비니 신은 머리에 청동으로 된 솥을 얻고 있다(그림 1). 유물에서 청동 솥(그림 2, 3)에 붙은 날개 달린 인간의 모습을 한 사람들은 시비니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라르트 종교의 대부분 요소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차용되었다. 시비니 신은 앗시리아 신 샤마쉬와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다. 투실라는 시비니 신의 사원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실라는 우라르투의 기원전 735~675년의 수도였는데, 반 호수를 마주보는 반 절벽에 세워진 도시이다.
그림 1. 시비니 신의 모습
그림 2. 청동솥에 표현된 시비니 신
그림 3. 청동솥
그림 4.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사르두리 2세의 헬멧에 표현된 사람들
사실 필자가 이렇게 우라르투를 파고 있는 이유는,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있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거울과 철검의 검집에 새겨진 문양 때문이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신(神)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 중에 와이너리, 맥주 양조장, 참기름 제조공장 등 어마어마 한 곳을 발견하기는 했다.
세상에는 신이 너무 많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신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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