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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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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22.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기원전 5세기 유적은 대부분 무덤이고, 나무로 된 방 안에 통나무관을 넣어서 매장했다. 통나무관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극히 일부이다. 이 외에도 유물도 나무를 사용해서 깎아서 만들었다. 대부분 무덤방을 만드는 나무는 자작나무로 만들었지만, 현재까지 바샤다르 유적 2호에서 발견된 통나무관만 잣나무(시베리아 소나무)로 된 것이다. 이 통나무관은 호랑이가 열을 이루는 음각으로 매우 아름답다.

 

그림 1. 뱌사다르 유적 2호 통나무관

 

시베리아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밝은 나무’로 인식했고 셀쿠프 족은 인생의 나무로 그 안에서는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잣나무는 ‘죽음의 나무’로 인식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은 속을 파낸 잣나무로 된 통나무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실제 셀쿠프 족의 통나무관은 배처럼 만들었다.

 

 

그림 2. 셀쿠프 족의 무덤

 

하지만 통나무관을 제외하고 잣나무는 매우 많이 사용되었다. 매우 부드럽고 쉽게 가공할 수 있고 가볍지만 수축되지 않는다. 그래서 굴레장식과 같은 복잡한 유물도 제작이 쉽다. 이 나무는 매우 넓게 분포하지만 알타이의 기원전 5세기 사람들 만큼 이를 널리 이용한 지역도 없다.

 

 

참고문헌

Прокофьева Е.Д. Некоторые религиозные культы тазовских селькупов // Памятники культуры народов Сибири и Севера. / МАЭ. Вып. 33. Л.: Наука, 1977. С. 66-79.(프로코피예바 1977, 셀쿠프 사람들의 신앙관습과 관련해서)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추야 강의 계곡을 따라서 무수히 존재하는 무덤 중에서 쿠바레프는 ‘울란드리크’ 유적을 조사했다. 이 명칭으로 불리는 유적은 찾은 순서에 따라서 번호를 붙였다. 그 중에서 울란드리크-1 유적에서는 물싸리 꽃이 실제로 매장된 것이 분석되었다. 물싸리 꽃은 늦 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이때 무덤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투르크 전통에 ‘절벽 위에 노란 꽃이 피었을 때, 죽은 사람을 매장한다’는 어록이 전해진다. 아시다시피 알타이의 무덤은 늦봄이나 늦가을에 축조되지만. 그 중에서 많은 무덤은 특히 늦 봄에 집중해서 무덤을 축조했을 것으로 폴로스막은 생각했다. (아크 알라하-3유적을 발굴조사한 연구자).

 

꽃이 활짝 핀 물싸리 줄기는 약초로 사용된다고 한다. 또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물싸리 꽃이 의미하는 바는 부활을 상징한다. 물싸리꽃은 '쿠릴차' 라고도 불리는데 시베리아 서부의 산악지대에서 주로 바위절벽, 산악의 계곡에서 자란다. 장 안에 박테리아가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고 신진대사를 정상화 하는 작용이 있다고 전해진다.

 

또 알타이의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는 '고수씨앗'이 발견된 바 있다. 해발 2500m에서 발견된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여성미라와 함께 부장된 석제 그릇에는 담긴 채 였다. 파지리크 유적의 2호와 5호에서도 고수씨앗이 발견되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석제 그릇과 고수풀

 

알타이에서 발견된 고수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진귀한 풀로 한정된 사람들만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루덴코 1953). 실제로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향을 맡기 위한 도구(청동솥과 천막)등이 그대로 출토되어서 향을 맡는 의식 혹은 향을 맡는 치료 등은 있었다.

고수씨앗을 이용하는 이유는 향을 맡고 신과 접신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치료 혹은 시신 부패 냄새를 없애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현존하는 시베리아와 극동의 소수민족들은 치료의 목적으로 여러 향기나는 풀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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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2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의 해발 1500m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고대 오리엔트 지역(아케메니드 왕조)의 문양으로 의심케 하는 유물들이 있다. 그런데 앞서서 밝혔지만 대게 그 보다 이른 앗시리아에서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발견되었다. 그 이 후에 기원전 5세기경에 알타이에서 발견되었다. 이 시점에는 이미 흑해지역부터 시베리아, 몽골서부까지 스키타이 문화권이 서로 공유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문양이 구지 고대 오리엔트 지역일까 싶다. 더욱이 그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재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연꽃 문양(그림 1)이 확인된다. 대부분 펠트 소재로 정교하게 재단된 것으로 양모로 된 제품(의복, 안장덮개)등에 붙여서 사용되었다. 특히 2호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루덴코는 이 문양도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알타이에서 고쳐서 사용한 것으로 보았다.

기원전 4세기 흑해 지역의 유적인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철제 검의 손잡이에도 연꽃 문양이 발견되었다. 특히 이 유물은 스키타이 단검과는 다른 것으로 아케메니드 왕조와의 관련성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포스팅했다(포스팅참고).

 

2020.12.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함께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흑해에서도 종종 출토된다. 그림 1의 검은 손잡이와 검신의 제작지가 다르다. 손잡이(그림 1)는 페르시아 단검에 원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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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 발견된 연꽃

 

 

알타이에서 발견된 기원전 6~5세기 무덤에서는 주로 물싸리 꽃이 발견된다. 파지리크 유적, 바샤다르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등에서 실제로 발견된 바 있다. 폴로스막은 투엑타 유적과 파블로프 유적에서 발견된 굴레장식 가운데는 실제 식물을 모델링한 유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추야강 계곡에 무덤에서 발견된 피장자의 머리맡에는 금박 장식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모자장식으로 물싸리 꽃을 형상화 했거나 동물장식이다. 실제로 울란드리크-1 유적에서도 물싸리 꽃이 분석되었다(포스팅 참고).

 

2020.10.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통나무관과 부활의 의미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통나무관과 부활의 의미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자연교통로가 된 추야 강에는 북쪽으로 유스티드 강, 남쪽방향으로는 울란드리크 강이 흐른다. 울란드리크 강 유역에는 8개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그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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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베갯잎을 채운 식물 가운데는 타임과 지지포르(Ziziphora interrupta)가 있다. 후자가 향이 훨씬 강한데 멘솔향과 가깝다고 한다. 타임은 알타이 전 지역에서 자라고 지지포르는 알타이에서는 딱 한 곳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알타이의 무덤에서 발견된 동물과 식물은 알타이의 자연을 반영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꽃 문양은 어떻게 된 것일까?

 

실제로 연꽃은 무덤 안에서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물 속에는 남아 있다. 특히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여성 물건(신발, 의류, 주머니)과 무덤 벽을 장식한 일종의 프리즈에도 있다.

알타이의 모든 유적에서 발견되는 문양은 아니기에 또 흥미롭기도 하다. 연꽃이 유적 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는데, 유물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문양이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갈기가 표현된 사자머리와 같이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온 문양이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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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9.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무덤에는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사용되었다. 주로 맹수와 맹금류 그리고 그들의 먹이가 되는 굽동물이 소재이다. 단순하게 표현되는 동물장식은 많지 않고 변형된다. 사실적이지만 간략화 되며, 2마리 동물 이상이 합성된다. 주로 맹수와 맹금류의 변형을 그리핀이라고 한다. 그리핀은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변형된 동물은 사실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4~3000년기 청동기시대에도 돌에 그려진 채 발견된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의 연구를 대부분 존중하지만 필자에게는 약간 다른 생각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동물장식으로 사용된 ‘수탉’이다.

 

파지리크 유적의 1호의 통나무관(그림 1)과 1호의 말의 장식으로도 사용된 동물장식 중에 ‘수탉’이라고 명명된 것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맹금류의 변형일 것이다. 2호에서 발견된 안장장식 중에는 수탉처럼 생긴 동물이 거대한 큰 사슴을 공격하는 장면이 안장덮개 장식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그림 2, 3). 동물투쟁문양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그린 것으로 수탉이 굽동물을 공격한 장면은 있을 수 없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1호 통나무관 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1호. 안장덮개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1호. 안장덮개, 그림2와 동일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1호 안장덮개

 

 

그림 5. 파지리크 유적 2호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안장덮개 장식(그림 5)과 비교해 보면 수탉이라고 불린 동물의 입모양이나 발모양(그림 1)은 거의 비슷하지만 목의 갈기가 표현되지 않아서 수탉처럼 보일 수 있었다. 1호에서 나온 다른 안장덮개 장식의 동물도 수탉(그림 4)의 입 모양, 발과 밝톱 표현이 같지만 갈기가 있고 없음에 따라서 수탉(그림 1~3)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림 1)은 수탉이라기 보다는 맹금의 변형인데 약간 표현력이 약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특히 1호에서만 (먼가 빠진 듯한) 맹금그리핀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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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8.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해발 1500m 무덤에는 매우 다채로운 물질문화가 발견되었다. 알타이에서 제작된 유물도 있지만 흑해지역이나 고대 오리엔트에서 들어온 문화도 있었다. 특히 흑해지역에서 들어와서 재해석한 문양은 양모천에 사용되기도 했다. 페르시아 계통의 동물투쟁문양도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재해석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파지리크 5호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는 벽을 장식한 캐노피인데, 그곳에는 반인반수가 발견되었다. 다양한 색을 사용한 것으로 앞다리와 뒷다리의 모양도 다르고, 날개, 꼬리 표현 등 일반적인 알타이 유물과 다르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중에서 반인반수

 

반인반수의 전통은 기원전 2000년기(기원전 14세기경)에 고대 오리엔트에서 처음 나타난다. 히타이트 도시의 조각품에 발견된 바 있다. 비슷한 주제는 앗시리아와 우라르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우라르투에서는 청동상 등 다양한 유물이 있고 앗시리아의 인장 및 시리아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시리아(그림 2)에서 발견된 반인반수는 동물의 자세가 파지리크 5호품과 유사한 편이다. 또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그림 3)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2. 시리아의 반인반수

 

그림 3.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르투에서도 반인반수가 상당히 유행했고, 기원전 7세기경에는 이미 흑해지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반인반수도 고대 오리엔트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흑해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던 문양의 재해석일 수 있다.

 

그런데 반인반수가 문양이 그려진 카페트에는 동양인 얼굴을 한 여성과 서양인 얼굴을 한 남성이 만나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남성은 스키타이 무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복장은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남성의 복장과도 달라서 전혀 다른 민족이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재해석 된 유물과 함께 복합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20.03.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계곡의 2500년 전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필자가 어제 공개한 유물은 2017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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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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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7.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일천년기 유라시아 초원의 문화는 비슷한 듯 하지만 차이가 분명하다. 특히 스키타이 문화권의 중심에 있었던 알타이에는 다양한 문화가 발견되지만 알타이에서 재해석 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앞에서 필자는 동물투쟁문양 가운데서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은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앗시리아 수입품 가운데 발견되기도 했고, 페르시아 문양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게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이미 이 문화권 내에 기원전 7세기경에 이러한 문양이 발견되었다면 이를 구지 페르시아에서 넘어왔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어제 설명한 양모에 표현된 여성들과 마찬가지이다.

 

페르시아에서 지속적으로 문화교류가 있었고 넘어 왔다고 해도 페르시아의 사자 변형동물과는 차이가 있다. 수사의 궁전벽에 그려진 날개 달린 사자 그리핀(그림 1)은 앞다리와 뒷다리 표현이 다르다. 뒷다리는 새의 다리이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투쟁문양의 맹수 혹은 그 변형은 전부 앞다리와 뒷다리가 같다. 말 발굽이나 맹수의 발을 하고 있다.

주로 안장덮개 장식으로 많이 이용되었지만 허리띠 장식(그림 3)으로도 사용된 것이 2호에서 발견되었다. 은제품으로 가죽 벨트에 장식했던 장식이다.

 

그림 1. 수사 궁전의 사자 변형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안장덮개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벨트 장식

 

그래서 파자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사자 변형동물 중에서 투쟁문양을 하고 있는 동물문양은 알타이에서 재해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완전히 페르시아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유물은 숫사자(그림 4)를 표현한 머리 장식과 같은 것인데 동물투쟁문양처럼 많지 않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1호 출토

 

2020.05.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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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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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경 알타이에는 독특한 파지리크 문화가 존재했다. 이 문화는 필자의 생각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문화 중에 한 곳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주로 사용되었던 동물문양은 파지리크 문화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알타이의 파자리크 유적에는 지역문화만 발견되지 않고 꽤 멀리 있는 지역의 유물도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페르시아 지역에서 보이는 것들이 발견된다. 그 중에 하나가 카페트나 패브릭 종류인데 알타이에서 페르시아 문양을 차용해서 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페르시아로부터 가져왔을 것이라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는 유물을 상세하게 관찰하는 연구자인데, 5호에서 출토된 패브릭의 문양(그림 1) 중에서 앗시리아의 향로를 발견했다. 앗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궁전(현대의 이라크 Kuyunjik)과 사르곤 II세(현대 Khorsabad)의 궁전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양모 패브릭

 

그림 2. 아슈르바니팔(a)과 사르곤 II세(b)의 궁전

 

아슈나팔 궁전에 그려진 부조에는 제단에 불꽃이 타오르고 옆에 향로 속에 신성한 횃불이 타오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옆에는 두 명의 사제 혹은 숭배자가 손을 들고 있어서 신을 향해서 기도하는 장면인 것을 알 수 있다. 사르곤 II세의 궁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돋을 새김으로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도 향로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해 보인다.

 

가장 비슷한 향로는 클레르크가 수집한 실린더 모양의 도장에 새겨진 것이다. 아나히트를 묘사한 것으로 기원전 5세기 전반의 유물로 알려졌다(그림 3).

 

그림 3. 클레르크 수집품. 실린더 모양의 도장중에 일부.

 

 

필자는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발견된 양모천은 앗시리아의 궁전벽화보다는 흑해지역의 켈르레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과 더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다시피 켈레르메스 유적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내에서 흑해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철제 검의 검집을 주목하고 있다. 이 유물은 우라르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라루투 신(칼디 신)이 그려진 채 발견되었다. 중앙에 생명의 수를 향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 집 중에 일부

 

2021.12.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에 발견된 칼디 신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양모 천에 그려진 여성들도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어떤 물체를 들고 있으며 아래를 향한다. 이 모습은 칼디 신이 그려진 우라르투의 사르두우리 II세의 헬멧에서 발견된 것과 더 흡사하다(포스팅 참고).

중앙에 숭배의 대상을 두고 서로 마주보는 구도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우라르투 제작의 검에서 보는 것이 더 흡사하다. 하지만 향로나 여성의 복장은 아나히트와 비교된다. 그런데 이 여신은 아케메니드 왕조 뿐만 아니라 우라르투가 있던 아르메니아에서도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양모천의 그림은 어느 것과도 완전히 일치 하지 않는다. 때문에 기원전 7세기경에 우라르투로 부터 전해진 문양과 아나히트 문양을 적절하게 다시 재해석 했을 수도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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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5.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에서 기원전 5세기경의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신기하지만 페르시아의 유물들이 발견된다.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동물투쟁문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리엔트 지역에서 온 동물투쟁문양은 맹수가 피식자를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으로 두 동물이 서로 물어 뜯는 것과는 다르다.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벽화에서 발견되는데(그림1-a), 비슷한 모습이 파지리크 유적 2호분의 안장장식(그림 1-6, 그림 2)으로 발견되었다.

 

그림 1. 페르시아 계통의 동물투쟁문, 1: 페르세폴리스 궁전, 2: 켈르레메스 유적 금 그릇, 3: 쿨-오바 유적, 4: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5: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6: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안장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안장장식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도 피삭자의 뒤를 공격하는 포식자의 모습은 여러 유적(그림 1-1,3,5)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들 맹수의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알타이의 동물장식(그림 1-6, 그림 2)에서 보이는 기호표식은 없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에서도 발견된다(그림 1-4).

 

페르시아계통의 동물투쟁문양은 자세만 따른 것이고, 기호의 요소는 루덴코의 생각이 맞을 가능성이 많다. 맹수가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은 앗시리아에서 수입한 금그룻에 그려진 것(그림 1-2)이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이 자세는 앗시리아에서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알타이에서 생겨난 동물투쟁문양은 따로 있다.)

 

어찌되었던 코카서스 남쪽에 존재했던 우라르투의 사자에서 발견된 기호 표식은 주로 알타이에서 유통되었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금제품에도 특히 동물투쟁문양의 앞다리와 뒷다리에서 발견된다. 또 아무다리야 강 하류에서 발견된 퇴장지 유물(그림 3)에서도 같은 표식의 문양이 발견된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2020.12.1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스타일과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으로 파악된다.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사 현미경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이다(Scythians 2017). www.google.com/maps/d/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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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코(1961)는 사자 그리핀을(그림 4) 페르시아 유물로 보았다. 페르세폴리스의 사자 그리핀과 매우 흡사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사자 그리핀은 그림 3의 유물과 함께 스키타이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4의 사자 그리핀에 남아 있는 표식으로 보아서 알타이 혹은 부근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문양의 사자를 이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안장장식 가운데 비슷한 사정이 있는 유물이 있다. 머리가 독수리 모양이라서 독수리 그리핀으로 불리지만 귀 대신 달고 있는 산 양의 뿔, 힘줄이 강조된 앞다리 등은 페르시아 유물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2호분에서 발견된 유물은 순동판을 찍어서 표현한 것이지만 정확하게 용도는 알 수 없다.

 

그림 5.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순동판

 

생각해 보면 알타이에서 페르시아 유물 혹은 페르시아 문양이 있는 알타이 유물이 발견된 것은 별로 신기하지 않다. 2호분과 5호분의 남녀는 서로 다른 인종이 부부였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4.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고대 유라시아 초원에는 북쪽의 스키타이 사람들과 남쪽의 오리엔트 지역의 사람들은 서로 교류를 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유물과 유적에서 그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페르시아의 아카메니드 왕조 궁전벽에도 남아있고, 알타이의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는 카펫이나 가죽 아플리케 장식에서 외부세계에서 온 요소들이 있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페브릭

 

그림 2. 기원전 5세기 페르세폴리스 궁전

 

그림 3. 기원전 8세기 우라르투의 카미르-블루르 유적, 사르두리 II세의 청동방패

 

 

사자가 표현된 동물장식은 크게 별다를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사자의 존재는 알타이에서 서식하는 동물이 아니다. 특히 고대 오리엔트 지역(코카서스 남쪽)에서 유행하던 문양이다. 또한 이 사자의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가 표현되어 있다. 사자의 다리는 4개가 뚜렷하고 꼬리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이와 같은 사자가 페르시아에는 기원전 5세기경에 지어진 페르세폴리스 궁전벽에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인 기원전 8세기경의 우라르투 유적인 카미르-블루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뒷다리에는 보이지 않지만 앞다리에는 기호와 유사하며 비슷한 포즈로 걷고 있다.

 

이를 두고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동물장식에서 발견되는 기호와 같은 표식이 페르시아 보다 더 오래된 고대 오리엔트 지역일 것으로 루덴코는 추정했다.

 

하지만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특징들은 우라르투 보다는 페르시아와의 관련성을 더 보여주는 유물이 많다. 이 점은 기원전 5세기에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앗시리아와 우라르투의 문화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사자동물문양이나 반인반수는 분명히 우라르투도 사용했기 때문에 두 문양을 고대 앗시리아 특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3.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그리핀은 대부분 맹수와 맹금의 변형한 동물이다. 북방에는 호랑이류가 먼저 나타난 듯 하고, 남방의 페르시아에는 맹금류와 사자류가 변형된 그리핀이 존재했다.

 

그런데 알타이에서 발견된 맹수 변형가운데 앞다리와 뒷다리에서 발견되는 기호‘(○)’ ‘<○>’도 고민거리 중에 하나이다. 알타이 및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페르세아 아케메니드 왕조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페르시아 아케메니드 왕조의 영향일 것이라는 의견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그러나 알타이를 실제로 발굴한 루덴코는 아케메니드 왕조 보다는 더 오래된 고대 동방에서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타난 안장장식의 아플리케에서 보이는 것이 아케메니드 왕조의 장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럼 고대 동방이란?

예전에 코카서스 산맥 남쪽의 우라르투를 설명하면서 앗시리아 보다 더 강성했고 두 세계의 예술품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고 했다.

 

사실 우라르투와 앗시리아의 유물을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정신세계와 관련되어 있는데 당시 믿는 신(神)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라르투 유적과 유물은 20세기 초에 전쟁통에서 발굴된 유적들이 대부분이고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 아뭏튼 루덴코의 의견은 기원전 5세기 아케메니드 왕조 보다는 더 오래된 고대 오리엔트 지역의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에 있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굴레에 달았던 장식품을 떠 올릴 수 밖에 없다. 뼈로 깍은 것인데 양(羊) 그리핀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양머리의 입에 맹금 부리가 달린 모습이다(그림 1). 사실 이 유물은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대로 흑해지역에서 제작되었을 수 있지만, 남쪽의 우라르투 카미르-불루르(그림 2)에서도 발견되어서 약간 의문스럽다.

 

그런데 이 그리핀은 그렇기 인기가 없었다. 기원전 7세기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라르투처럼 사라져 버렸다. 물리적으로 고대 오리엔트 지역(우라르투와 앗시리아)의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다. 그래서 알타이에서 우라르투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쉽지만.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굴레장식, 뼈제품

 

그림 2. 카미르-불루르 유적의 재갈멈치. 뼈제품

 

 

호랑이 변형 스키타이 그리핀, 그리스 그리핀, 페르시아 그리핀이 기원전 5세기경에 대 유행했다. 페르시아에는 그리핀 보다는 반인반수가 전통적?으로 더 선호되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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