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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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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0. 09:22 사르마트 문화

오늘 날 돈강 유역 및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황금유물에 화려한 색깔의 돌을 감입하는 것이 특징적인 유물이다. 몇몇 유명한 유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다차 유적에서 발견된 황금단검이다.

 

다차 유적은 역시 봉분이 있는 쿠르간이다. 직경은 35m정도 되고 높이는 0.9m로 높지 않다. 무덤방은 깊이 3.3m아래에 무덤 중앙에 설치되었다(3.1×3.2m). 무덤이 발견되었을 때 이미 무덤방은 완전히 파손된 상태였는데, 남아있는 상태로 보아서 도굴은 1번 이상 자행되었다. 무덤방의 바닥에는 성인의 뼈조각과 양의 다리뼈가 발견되었다. 무덤방에 남아 있는 유물은 암포라 라고 불리는 그리스 토기와 그릇 조각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무덤방이 이렇게 파손되었는데, 황금검은 어떻게 찾았을까?

 

 

그림 1. 다차 유적의 무덤 평면도, 왼쪽에 검은 점이 감실이다. 중앙의 네모칸은 무덤방이다.

 

 

무덤방 옆에 별도의 공간인 감실에서 발견되었다. 감실은 잘 보이지 않게 점토로 덥힌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황근 검 뿐만 아니라 보석으로 장식된 마구, 황금으로 된 끝장식, 버클 장식과 황금장식이 달렸던 말 덮개가 발견되었다. 말 덮개는 가죽끈으로 그물처럼 엮은 마디마디 마다 8개 종류의 황금장식을 달아서 만든 것이다.

 

 

그림 2. 감실에서 발견된 유물

 

그림 3. 다차 유적에서 출토된 말 덮개

 

그림 4. 말 덮개의 황금장식판

 

말 덮개의 황금 장식판 가운데서 피라미드 형태는 호흘라치 유적의 여성 주인공 옷장식과 같다. 그리고 나뭇잎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장식판도 있는데,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문양이다. 기원전 6세기 알타이 유적에서는 말의 굴레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하이드리드 0719)

 

이 나뭇잎을 도식화 한 문양이 이 지역(돈강 유역)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요소들은 사르마트 문화의 기원이 스키타이 문화임을 가르키고 있다.

 

참고문헌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사르마트 인들의 富, 2008)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9.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지역 가운데 돈강 유역부터 서쪽은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사르마트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를 뒤이었다. 역사에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몰아내고 사르마트 문화가 점령한 것 처럼 표현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연결되는 특징들이 많다.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생기니 기원전 4세기 정도 되면 300년 동안 문화의 특징들이 그대로 있었을 리가 없다. 조금씩 변화되기도 하고, 유목민의 특징적인 문화 대신에 주변의 여건들이 바뀌면서 초원 지역의 문화들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몰아냈다는 표현은 좀 맘에 들지 않는다. 어찌 되었던 스키타이 문화를 이어 받은 것은 사르마트 문화이고 이들 역시 동물문양장식을 사용했다. 물론 도상학적인 변화는 있다. 예를 들면 사실적이면서 부분적으로 강조된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 대신에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알 수 없는 동물들이 많아진다.(괴기스럽게 변했다.) 몸통이 길어진 말은 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자들은 스키타이 유물과 사르마트 유물을 구분할 때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가 상감기법을 꼽는다. 특히 금으로 제작된 유물에는 유색의 돌을 잘라서 감입하는데 이러한 유물들을 모두 기원전 4세기 이후, 사르마트 문화의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이 사르마트 문화의 늦은 시기인 기원후 1세기 유적인 호흘라치 유적에서 발견된 관(crown)이다.

사르마트 문화의 이른시기에는 터키석 등 푸른색 계열의 돌을 많이 썼지만 후기로 갈수록 홍옥수를 특히 많이 사용했다.

 

아조프해와 연접한 다차 유적은 기원후 1세기 유적으로 이곳에서는 아주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유물 중에 한 점은 검인데, 손잡이와 검집은 황금과 유색돌로 치장되어 있고 검날은 철제이다. 전체 길이는 40cm가량이고 검날 부분만 25cm가량의 단검이다.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다차 유적, 기원후 1세기

 

이 검을 보면 생각나는 유물이 있다. 나만 특별하게 그런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들을 떠올린다. 아프카니스탄 틸랴테페 유적에서 발견된 북방초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철제 단검으로 역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검집의 형식이나, 검의 모습등이 상당히 비슷하다. 사르마트 문화의 호흘라치 황금관, 다차 유적의 철제 단검은 틸랴 테페 유적과 관련성이 큰 것으로 연구되었다.

 

2022.01.08 - [이름없는 왕의 무덤:틸랴-테페유적] - 아프카니스탄 이름 없는 왕의 검과 칼

 

아프카니스탄 이름 없는 왕의 검과 칼

아프카니스탄에 남아 있는 틸랴-테페 유적은 북방 유목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북방유목문화는 기원전 5세기경의 스키타이 문화와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사르마트 문화가 모두 남아 있다. 특히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И.П. Засецкая, Р.С. Минасян. Золотые ножны кинжала из кургана Дачи — уникальное произведение древнего ювелирного искусства//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 (자세츠카야, 미냐샨, 2008, 다차 쿠르간의 황금단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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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8.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 이후에는 기원전 4세기 경에 사르마트 문화로 변환된다. 이 두 문화는 여러모로 문화적 특징이 이어지지만 새로운 유물들도 생긴다. 그 중에 하나는 그릇의 재질에 변화가 있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발견된 그릇의 재질은 토제, 목제, 청동제 등이 있다. 금과 은으로 된 그릇은 기원전 4세기경부터 나타나서 사르마트 문화 까지 이어진다. 기원전 4세기 이전의 그릇에도 금이 사용되기도 한다. 나무그릇에 금판을 붙여서 사용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경에 금과 은으로 된 그릇이 생겨난다. 유명한 유물이 스키타이 신화가 표현된 쿨 오바 유적에서 나온 금제 항아리와 차스티예 유적의 은제 항아리가 이 시기의 유물이다.

 

 

그림 1.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의 금제 항아리

 

 

그림 2. 기원전 4세기 차스티예 유적의 은제 항아리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토기에 동물장식을 붙이는 모양이 생기는데,동물장식은 금과 은으로 된 그릇에도 부착이 된다.

 

그림 3. 호흘라치 유적의 금제 그릇

 

그림 4. 주토보 유적의 은제 그릇

 

사실 무덤 속에 가장 오래된 부장품은 그릇이다. 스키타이 시대 이전, 청동기시대, 신석기시대 무덤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재질과 그릇의 모양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릇은 가장 오래된 장송의례품이고 이를 신성시 하는 문화는 각 지역마다 있었을 것이다. 사르마트 문화의 대표적인 무덤인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에서 나온 목걸이에도 그릇을 소중히 손에 쥐고 있는 가부좌를 튼 남성이 표현되어 있다. 일종의 그릇 숭배라고 보고 있다.

 

 

참고문헌

Засецкая И.П. 2011 :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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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경계에 있는 유적인 질료니예 2유적의 2호 쿠르간에는 남녀합장묘가 발견되었다. 북쪽 방에 안치된 여성에게는 무기 뿐만 아니라 나무상자안에는 안에서는 pyxids(그림 1-1,2)라고 불리는 원통형 나무병도 나왔다. 뚜껑을 덮을 수 있는 구조로 매우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었는데, 주로 화장품이나 향수를 보관하는 용도이다. 나무 가운데는 회양목을 사용했는데, 흑해 북부에서는 뼈로 된 제품들도 발견되었다.

 

 

그림 1. 질료니예 2유적 쿠르간 2호의 2호묘 출토품, 나무상자 안의 유물

 

 

그림 2. 질료니예 2유적 쿠르간 2호의 2호묘 출토품, 황금목걸이

 

크림 반도의 푸룬제 마을 근처의 여성 무덤(기원전 4세기 1/4분기 유적)에서도 커다란 나무상자 안에서 나무로 된 픽시스가 발견되었다. 뼈로 된 pyxids는 블레즈네츠-2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는 뼈 제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 원통형 용기의 부분도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것은 한 점은 검은색과 붉은색, 다른 한 점은 검은색칠 된 것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5세기 말에 해당된다(로바쉬코, 스크로이 2009).

 

질료니예 2유적의 것은 고전시의 유물과 가장 비슷한 것으로 보통 기원전 5~3세기 유물로 편년되는 것에 속한다. 이 유적은 전체적으로 기원전 4세기 후반의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인간의 머리를 구슬모양으로 만든 황금 목걸이도 출토되었다.

 

이 여성과 함께 매장된 남성도 청동가마솥, 철제 갑옷(찰갑) 등으로 보아서 중간 계급 이상이고, 그녀도 비슷한 지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인접한 앗시리아, 우라루투, 그리스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는 외교품이었다(김재윤 2021). 하지만 기원전 4세기경에 스키타이 유적에 그리스 수입품이 들어가는 경우는 전리품, 어떤 댓가, 무역품 혹은 결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팔코 2012). 질료니예 2유적의 경우는 군인 부부임이 틀림없고 수입품은 전리품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Ромашко В.А., Скорый С.А. Близнец-2: скифский аристократический курган в Днепровском правобережном Надпорожье. Днепропетровск, 2009 (로마시코, 스코로이, 2009, 블리즈네츠-2 유적)

Фиалко Е.Е. Скифский курган с античными импортами у с. Зеленое// Боспор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 Вып. XХVI. /Отв.ред. В.Н.Зинько. –Симферополь-Керчь., 2012 (피알코 2012, 질로니예 마을의 스키타이 쿠르간 속의 그리스 고전기 수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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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현재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지구에 질레노예(Зеленое, Zelenoye, 녹색이라는 뜻)마을에서는 기원전 4세기경 쿠르간이 발굴되었다. 질레노예 2유적 가운데서 2호 쿠르간의 2호묘는 부부합장무덤이다. 부부합장이라고 하는 것은 무덤 구덩이 입구가 하나여서 그렇고, 사실 부부는 각각 다른 방에 매장되었다. 북쪽에는 여성, 남쪽에는 남성이 안치되었다.

2022.06.29 - [사르마트 문화] - 우크라이나의 고대 여성전사 무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CaFajXSFeSvu-7eu96jRe4TImmu5nqc&usp=sharing 

 

북쪽에 매장된 여성(21~35세 가량)은 매우 다양한 유물과 함께 부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기원전 5세기에는 없던 물건이 있다. 나무 상자인데, 비슷한 시기의 다른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보다 크다.

 

그림 1. 질료니예 2유적 2호 쿠르간의 여성 부장품.(34.0 x 22.0 cm, 높이 12.0 cm)

 

 

1990년대 발견된 기원전 4세기 말(기원전 4세기 3/4분기) 유적인 불가코보 마을의 쿠르간 2호에서 있던 5호묘에서도 나무관이 발견되었다. 2개가 발견되었는데 크기가 작고(8.0 x 6.0 x 6.0 cm), 채색까지 된 것이다. 검은색과 노란색을 사용한 일종의 락커 칠이다. 뚜껑의 중간에 여성이 쪼그려 앉아서 있는데,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목욕하는 한 장면으로 추정한다(그림 2-1). 다른 상자는 13.0 x 7.0 x 2.0cm 크기로 납작한 모양인데, 뼈로 된 패스너가 닫힘장치 역할을 한다. 그리스 문자 12자가 세열로 배열되어서 남아 있었다(그림 2-2).

 

 

그림 2. 기원전 4세기경 나무상자. 1~2. 불가코보 마을의 쿠르간 2호 내부의 5호묘에서 출토. 3.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4. 푸시킨 박물관 소장

 

그리스 문자가 남아 있는 나무상자는 그리스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자에는 여성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 외곽에는 네모난 칸을 그려 넣었다. 사실 이것은 스키타이 무덤 오구즈 유적에서 나온 상자(그림 3)를 참고로 할 수 있다(피알코, 불리크 1986). 이 상자에는 뼈로 된 네모난 장식판을 붙여서 장식했다. 질로니예 2유적의 유물(그림 2-1)도 스키타이 나무상자들처럼 골제 장식판을 흉내 낸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그려진 상자(그림 2-1)은 스키타이 사람 뿐만 아니라 그리스 사람들도 썻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가코보 유적은 기원전 4세기 말이지만, 올리비아의 그리스 공방에서 발견되는 상자들은 기원전 4세기 초의 유물들도 있다(피알코 2012).

 

그림 3. 오구즈 유적의 나무상자에 붙인 골제 판, 두께는 0.15~0.25cm가량. 흑해북부지역에서도 나무로 된 유물은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나무 상자는 그리스에서만 사용되지 않았다. 남이탈리아 화병(푸시킨 미술관)속에는 한 여성과 청년의 그림이 있는데, 여성의 손에는 나무상자가 있었다. 뚜껑에는 네모장식판이 붙여진 것이었다(그림 2-4). 또 다른 꽃병에는 다리우스의 제단장면(기원전 350~325)(그림 2-3)이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견된 암포라이다. 두 유물은 각각 푸쉬킨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꽃 병 속의 상자는 그리스 상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스키타이 쿠르간에서 나오는 유물과도 흡사하다.

 

 

 

그림 4. 질료니예 2유적 쿠르간 2호의 2호묘 출토 나무상자안의 유물

 

흑해 북부의 아마조너스 여성전사 무덤에는 왜 이런 물건들이 들어가 있었던 것일까?

 

참고문헌

 

 

Фиалко Е.Е., Болтрик Ю.В. Ларец из кургана Огуз // СА. – № 2. – 1986. С. 241-247.(피알코 1986, 오구즈 쿠르간에서 나온 나무상자)

Фиалко Е.Е. Скифский курган с античными импортами у с. Зеленое// Боспор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 Вып. XХVI. /Отв.ред. В.Н.Зинько. –Симферополь-Керчь., 2012 (피알코 2012, 질로니예 마을의 스키타이 쿠르간 속의 그리스 고전기 수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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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1. 09:22 사르마트 문화

오늘날 우크라이나인 흑해 북쪽읜 초원지역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점과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에는 무덤이 아주 많아진다. 봉분이 있는 무덤, 혹은 없는 무덤 등 매우 많은 무덤이 생긴다. 그 중에 마마이-고라(Mamay-Gora)라고 불리는 유적에는 무덤이 317개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 12개가 여성무덤이었다. 남성은 110명, 여성은 135명이 확인되었고, 일부 여성들은 무기를 부장한 여성전사들이었다.

드네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스켈키 라고 불리는 유적은 봉분이 없는 무덤이다. 53개의 무덤에서 22명의 전사가 남아 있었다. 그 중에 절반은 여성인데, 11명 가운데 무기를 가지고 있는 여성은 4명이다. 팔코는 전사 22명 가운데 두 번째는 여성 전사이고, 세 번째는 무기를 소지한 여성전사로 계산하기도 한다. 스켈키 유적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돈 강 유역에서도 엘리자페토프스코예 유적에서 147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 35개는 여성의 집단 무덤이다(팔코 2010).

 

이 시점의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전사들은 연령도 다양했다. 절반은 25~25세의 여성이지만 가장 어린 여성은 16세 정도이고 가장 나이든 여성은 60세도 있었다. 젋은 여성가운데 어린아이와 함께 매장된 경우가 4명 정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혼으로 판명되었다.

 

여성전사들이 발견되는 유적은 주로 아조프 해 연안에서 많이 발견된다. 돈강 유역에 자리 잡았던 사르마트 사람들이 서쪽으로 몰려 오면서 처음 정착한 곳이 드네프르강 하류의 아조프해 지역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전사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헤로도투스에 따르면)

고고학적으로도 이곳에서 여성전사 무덤들이 집중되어서 기록과 비슷하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발굴이 많아지게 되면서 돈 강 유역에도 여성전사들의 무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팔코 2010). 그냥 여성들 무덤이 (남자들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질료니예 2 유적의 남녀합장 무덤 가운데 여성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여겨진다(그림 1). 남성보다 많은 부장품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여성가운데 권력자의 존재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유적 뿐만 아니라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매우 거대한 무덤 속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포스팅)

 

그림 1. 질로니예 2유적의 2호 쿠르간 2호묘, 북쪽이 여성무덤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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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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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군인으로써 전쟁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몸에 있는 상처이다. 크게 3가지 상흔이 남아 있다. 화살에 맞은 상처, 사자의 손실 또는 골절, 두 대골과 사지가 모두 잘린 상처 등이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주로 두개골의 관통상처가 치명적인 것이다.

무기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뼈에 남은 상처로 인해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군인으로써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팔코 2013)

 

흑해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전사들은 주로 기원전 7세기 초부터 발견된다. 여성전사는 주로 기원전 7말 혹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기원전 4세기경 무덤으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경계상에 있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여성전사 부족이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묘사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매우 혼란한 시점에 남성은 모두 전장에 나갔을 테지만 여성은 집(노인과 어린아이)을 지켜야 했다. 그 과정 중에 여성들은 똘똘 뭉쳐서 집단으로 대항했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역사가는 오해를 한 것은 아닐까. 혹은 여성들에게서 얻고 싶은 것을 못 얻었거나. 또 일부는 남성들처럼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를 용감한 여성대신 잔인한 여성으로 묘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초원인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이니 삐딱하게 보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Андрух С. И. 2001. Могильник Мамай-Гора. Кн. 2. Запорожье(안드루흐 2001, 마마이 고라 유적)

Фиалко Е. Е. Погребения амазонок из могильника Мамай-Гора // Stratum plus. Археология и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 2010. — № 3. — С. 187—196.(팔코 2010, 마마이-고라 유적의 아마조너스 여성무덤)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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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30.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 동유럽의 고대 여성 전사들의 유적은 드네프르강 유역 하류, 돈강 하류, 우크라이나 초원, 코카서스 지역 등에서 발견된다.

일찍이 부냐탼(1982)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1/4이 여성무덤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성전사로 판명된 사람들은 270명 가량이다. 물론 이 숫자는 우크라이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여성전사 들은 형질인류학적으로나 무덤의 장례방법으로나 그간 스키타이 인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과 동일하다(팔코 1991).

 

여성전사들의 무기는 활과 화살(그림 1-1~5)세트 혹은 창, 투석이다. 질료니예 2유적의 5호에서는 활통이 여성의 왼쪽에 놓여 있었다. 비슷하게 활통이 발견된 유적은 니크로폴 유적의 20호 쿠르간 내의 2호 분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많은 화살이 부장된 무덤(류비모프카 유적 38호 쿠르간)은 135개까지 있었다.그런데 화살의 양에 대한 규칙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활과 화살세트가 매장된 경우는 여성, 남성 통틀어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사 무덤에는 창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창의 자루에 철제깃봉(그림 1-8)을 달아서 사용했는데, 출토될 당시에 그 장식의 위치로 나무자루의 길이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여성 무덤에서 나온 창의 길이는 유적(노비예 쿠르간과 스테블레브스키 무덤)의 예로 보아서 대략 2.07~2.1m인데, 스키타이 남성 전사의 창 길이와 비슷하다. 여성 무덤에서 창은 대부분 1~2자루 부장되었으나 3자루가 나온 경우도 있다.

 

 

그림 1.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출토된 여성 무덤의 무기

 

 

 

투석(슬링)(그림 1-11)은 1~5개가 무덤에서 발견된다. 투석기는 발견되지 않고 같은 크기의 동근 돌만 확인된다. 아마도 이 무기는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근접무기인 전투용도끼와 검은 2~3곳을 제외하고는 여성 무덤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청동이나 철제 갑옷이 있는 무덤도 여성 무덤에는 거의 없다. 물론 어제 소개한 질로니예 2유적의 5호의 십대소녀의 예는 제외한다.

 

 

여성의 무덤에 근접무기와 갑옷 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이 경무장한 기병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9. 09:22 사르마트 문화

 

헤로도투스는 여성전사들의 집단 혹은 부족인 아마존의 존재를 기록했다. 좀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키타이 혹은 사르마트 문화 속의 여성전사들은 매우 유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헤로두트스 뿐만 아니라 스트라보, 히포크라테스 등도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는 주로 흑해 북쪽,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있는 유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 흑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시베리아에서도 기록속의 장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팔코는 자신이 발굴한 유적인 질료니예 유적에서 2호 쿠르간의 존재에 주목했다. 2호 쿠르간에는 모두 3개의 무덤이 설치되었다. 무덤은 구덩이를 수직으로 파고 다시 벽쪽을 파들어간 형태인데, 3개의 무덤 구덩이가 있었다(그림 1).

그 중에 2호는 남성과 여성이 각각의 무덤방에 안치되었다. 구덩이의 입구는 하나인데 북쪽에는 여성, 남쪽에는 남성이 별도로 매장되었다. 두 무덤방은 남분과 북분이 떨어진 것은 아니고 연결된 형태이다. 수직으로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나무판으로 막아서 무덤방을 폐쇄했다.

 

남성은 바닥에 자신이 입던 철제갑옷을 벗어서 깔고 그 위에는 유기질제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자신의 물건을 부장했다.

 

여성은 철제 갑옷을 깔지는 않았지만 유기질제 깔개를 깔고 주변에 자신의 물건을 두었다. 그 중에는 철제 창(그림 1-31)과 화살통(그림 1-39)을 왼쪽에 두었다. 물론 그 이외에도 각종 장신구 등이 그녀의 옆에 놓였다. 깔개 바깥에는 목제 쟁반위에 칼이 놓여 있었고(그림 1-22,23), 그 아래에는 석제도 놓여 있었다.

 

그림 1. 질료니예 유적의 2호 쿠르간

 

그림 2. 질료니예 유적 2호 쿠르간의 2호묘 평단면도

 

그림 3. 질료니예 유적 2호 쿠르간의 여성 유물(2~18). 어제는 잘못 표기했음.

 

그녀는 목제 상자(그림 3-7)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는 거울(그림 3-13), 구슬(그림 3-15), 송곳, 화병(그림 3-16), 목제 화병(그림 3-5)인데 원통형모양의 유물도 있었다. 이 유물은 pyxis라고 부른다. 목제 상자의 출토위치는 철제 창 바로 옆이다(그림 2-32~34).

 

질료니예 2 유적의 2호 쿠르간 내의 2호묘는 어찌되었든 부부합장묘이기 때문에 여성들만 살았다고 전해지는 아마존으로 보기에는 애매하다. 2호의 여성이 철제 창과 화살을 쏜 것은 맞지만...

 

그런데 질료니예 2유적 5호 쿠르간 내부에는 3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매장방법은 2호 쿠르간과 같았다. 그런데 그 중에 2호묘의 여성은 철제갑옷, 창, 유리구슬, 칼, 거울 등이 함께 매장되었다(그림 4). 나머지 2개의 무덤은 주인공 여성보다는 지위가 낮은 여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은 십대의 여성이다.

 

그림 4. 질료니예 유적 5호 쿠르간

 

여성무덤에서 철제 갑옷이 발견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흥미로운 자료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가장 마지막 시기, 혹은 사르마트 시기의 시작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팔코는 스키타이 시대라고 보고했다.

 

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8. 09:22 사르마트 문화

동유럽에서 스키타이 문화 이후 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봉분이 있는 무덤이 만들어진다. 땅에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을 동굴처럼 파들어간 형식이 많다(그림 1).

 

 

그림 1. 질료니예 마을 부근의 2호 쿠르간, 기원전 4세기, 1: 무덤 평단면도, 2~11: 여성무덤 부장품, 12~18: 남성무덤 부장품

 

 

무덤은 여성, 남성 무덤이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부장품도 다르다. 주로 여성 무덤에는 거울, 귀걸이, 구슬 및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장신구와 화장도구 들이 발견된다. 또 그릇이나 생활용 송곳, 바늘 등도 있다. 남성무덤에는 주로 무기와 마구 및 남성의 장신구(목걸이 및 반지)등이 부장되었다. 무기에는 활과 창, 갑옷, 굴레장식 등이 있고 간혹 청동솥도 매장되었다. 남성여성할 것 없이 나무접시나 쟁반에 고기와 쇠칼을 올려두었고 다양한 그릇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들 부장품 가운데는 여성용품과 무기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성이 무기와 함께 부장되는 무덤을 두고 기록 속의 ‘아마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팔코 2013). 여성들만 사는 부족의 명칭으로 알려진 이들은 헤로도투스 뿐만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스트라보, 등등 여러 사람들의 작품에서 아마존의 존재가 전해진다.

 

아마존은 매우 아름답고 재능있던 존재로 묘사된다. Kallisthenes(그리스 역사가)에 따르면 Alexander Macedonsky가 그의 어머니에게 아마존이 키가 크고, 아름답고, 매우 건강하고 날카롭고, 재치있다는 편지를 썼다. 또 Diodorus Siculus도 아마존의 힘, 지능, 기술,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런데 헤로도투스와 스트라보, 히에로니무스가 묘사한 그들의 복장은 일치하지 않았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들이 남자들이 입는 것과 같은 매우 화려한 복장을 입은 것으로 기록했다(IV, 116). 스트라보는 야생동물의 가죽으로 헬멧, 외투, 벨트를 만들어 입은 것으로 묘사했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 II, 37)는 아마존이 가슴을 드러내고 팔과 다리로 남성 적을 유인했다고 적었다.(팔코 2013).

(아마 히에로니무스는 아마존 여성에게 당한경험을 적은게 아닐까..ㅋㅋㅋ, 뭐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한 듯. )

 

 

공통적인 점은 활, 화살, 전투도끼, 창, 창과 올가미로 무장했고, 방패도 사용한 것은 동일하다. 사실 이 무기들은 스키타이 시대부터 전해져온 전통적인 무기이다. 여성 무기를 위해서 따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그냥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흑해 북안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후반~기원전 6세기경 여성의 무덤에서 남성 무덤에 보이는 무기들이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이런 무덤은 사르마트 시기인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대로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상흔이 남아 있는 여성 인골과 무기의 존재는 흥미롭다.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아르잔-2 유적에서도 여성전사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매장된 예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녀의 어깨 근육이 비대하게 발달해서 궁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녀의 두개골에는 죽음으로 갈 수 있는 뚜렷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헤로도투스가 왕의 장례식에 묘사한 미라와 같이 여성전사의 존재는 시베리아에서도 확인된다(포스팅참고).

 

2020.06.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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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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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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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가 흑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스퍼러스 왕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기원전 5세기 경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이 국가는 그리스 문화의 색채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스 문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포스팅 참고).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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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의 지도자 이름 가운데 아스푸르그, 파르조이 등 이란 출신의 이름이나 사브로마트라고 하는 민족명도 있었다. 아마도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1세기에는 특히 보스포러스 왕국 인구의 인종 구성은 크게 혼합되었던 것고 생활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유목생활방식과 흑해 북안의 대초원의 호전적인 성향이 유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된 벽화는 유르트를 묘사하고 있다. 또 케르치 해협에서는 이 시기의 4바퀴의 수레 점토모형도 발견되었다(그림 1). 유목민의 텐트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마차에 부착되었고, (그림 2) 소는 텐트 주변에서 풀을 뜯고 치즈와 우유를 먹었다.

 

사르마트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축업을 했는데 특히 유목생활을 했다. 지리학자는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동했던 것으로 기록했다. “ 그들은 무리를 따라가며 항상 가장 좋은 목초지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데 여름에는 평야, 겨울에는 아조프 해 근처의 늪에서 지낸다.

 

 

그림 1. 기원전 1세기경 보스포러스 지하의 벽화 그림

 

 

 

그림 2. 기원후 1~2세기 케르치반도. 수레모형, 토제품, 1900년도에 구입함.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유사성은 쿠르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로는 무덤이 일렬로 늘어져서 언덕 위에 축조되거나 가장 높은 지역 주위에 그룹화되어서 발견되었다. 사르마트 사람들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고대 무덤에 개인 소지품,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음식(고기 및 음료) 등을 넣었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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