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마트 문화가 흑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스퍼러스 왕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기원전 5세기 경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이 국가는 그리스 문화의 색채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스 문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포스팅 참고).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그런데 이들의 지도자 이름 가운데 아스푸르그, 파르조이 등 이란 출신의 이름이나 사브로마트라고 하는 민족명도 있었다. 아마도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1세기에는 특히 보스포러스 왕국 인구의 인종 구성은 크게 혼합되었던 것고 생활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유목생활방식과 흑해 북안의 대초원의 호전적인 성향이 유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된 벽화는 유르트를 묘사하고 있다. 또 케르치 해협에서는 이 시기의 4바퀴의 수레 점토모형도 발견되었다(그림 1). 유목민의 텐트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마차에 부착되었고, (그림 2) 소는 텐트 주변에서 풀을 뜯고 치즈와 우유를 먹었다.
사르마트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축업을 했는데 특히 유목생활을 했다. 지리학자는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동했던 것으로 기록했다. “ 그들은 무리를 따라가며 항상 가장 좋은 목초지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데 여름에는 평야, 겨울에는 아조프 해 근처의 늪에서 지낸다.
그림 1. 기원전 1세기경 보스포러스 지하의 벽화 그림
그림 2. 기원후 1~2세기 케르치반도. 수레모형, 토제품, 1900년도에 구입함.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유사성은 쿠르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로는 무덤이 일렬로 늘어져서 언덕 위에 축조되거나 가장 높은 지역 주위에 그룹화되어서 발견되었다. 사르마트 사람들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고대 무덤에 개인 소지품,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음식(고기 및 음료) 등을 넣었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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