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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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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9. 10:43 책소개

첫 번역서가 나왔습니다.

원전의 내용이 100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제가 셀렉했다면 좀 더 낳은 걸 골랐을 수도 있겠죠.

암튼 처음이라서 애뜻한 마음입니다.



옮긴이의 글
 
본서는 러시아극동의 선사시대 고고자료에 관한 논문집이다. 연해주부터 아무르강 하류 및 사할린, 추코트카 반도까지 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우리에겐 극동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러시아에서 극동은 러시아 영역의 가장 동쪽 지역이라는 뜻이다.
201311월에 개최된 학술대회의 자료를 논문집으로 2015년에 정식출판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그 사이에 하바로프스 시의 셰프코무드 박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2015615일에 바실리예바 안드레예바 박사가 작고하셨다.
안드레예바 박사님은 자이사노프카-1 유적을 발굴한 안드레예프 박사의 아내이다. 그리고 기념학술대회와 이 책을 주도적으로 집성한 클류예프 박사의 선생님이고, 역자의 박사논문에도 여러 조언을 하였고, 평가서를 써 준 인연이 있다.


안드레예프와 안드레예바 선생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각 각 1954년과 1955년부터 연해주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하였다. 안드레예프 박사는 1970년에 갑자기 돌아가셨고, 안드레예바 박사는 1987년 까지 계속 연해주를 조사하였고 국가박사까지 취득하였다. 많은 저작물을 남겼는데, 지역학계 연구자들에게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자이사노프카-1 유적이 많이 알려져서 안드레예프 박사 이름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지만 실상 안드레예바 박사가 오랫동안 연구했고 제작들을 많이 두었기 때문에 학계에서 미치는 영향은 아주 컸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름이 알려진 대부분의 학자들은 모두 안드레예바 박사의 제자이다.
여담이지만, 두 분의 성이 비슷한 이유는 러시아에서도 결혼을 하면 남편을 따라서 여자는 성을 바꾸게 되는데, 러시아어의 어법에 따라서 여자는 ‘a’를 부치게 된다. 최근에는 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특히 연구자들은 결혼 전부터 써온 논문과 헷갈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많이 하지 않는 다고도 한다.


본서는 자신이 실제 발굴한 내용을 토대로 분석한 것이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발굴이 학술발굴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대부분의 조사가 자신의 연구분야와 관련된 학술조사이며, 연구비로 이는 충당되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분야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 연구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유적의 전면발굴은 많지 않다. 더욱이 손으로 발굴을 한다는 점은 더 그러하다. 물론 최근에는 여러 가지 국가경제개발정책으로 송유관이나 가스관 사업으로 생기는 용역발굴도 있다. 본고의 야스노예-8 유적도 그런 과정에서 발굴된 것이다.
학술발굴은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유적을 찾는 것이 급선무인데 지표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형적인 성격을 고려해서 인간이 살았던 흔적을 찾는데 강과 해안의 단구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수목이 아직 울창해 지기 전에 유구나 유물의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봄과 가을에 중점적으로 이루어진다.
지표조사에서 고려되는 것은 유적의 입지로서 가능한가 여부와 육안으로 수혈이 관찰되는 지를 살핀다. 두 요소가 모두 충족이 되 던가 그렇지 않고 한 가지만이라도 충족이 되면 1×1m로 시굴괭을 파고 문화층의 여부를 조사한다. 육안으로 수혈이 관찰되면 유적범위도 추정하게 되고 수혈의 개수도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낯 선 개념인 육안으로 수혈이 관찰된다는 것은 수혈이 폐기된 후에 흙으로 채워진 면이 현재의 지표면과 높이 차이를 보이면서, 수혈의 흔적이 발굴하지 않고도 눈으로 관찰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연해주, 아무르강 하류, 삼강평원, 사할린, 홋카이도에도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홋카이도는 직접 역자가 관찰하지 못했으나 다른 지역은 직접 지표조사나 답사를 통해서 보았다.
이런 점이 가능한 이유는 부식토층이 얇다는 물리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러시아가 광대한 영토를 지녔지만, 상대적으로 인구가 작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만큼 문화재를 손대지 않은 채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역자는 본고를 번역하면서 가장 주안에 둔 점은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번역을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저자들의 러시아식 표현들도 그대로 손대지 않은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지그재그 문양 같은 것인데, 한국고고학계에서는 이미 역자가 자신의 논문에서는 어골문으로 논지를 전개하였지만 본고에서는 역자의 소임대로 있는 그대로 번역하였다. 진주알 문양토기, 우아한 토기 등등 여러 표현들이 있는데, 역자의 주로 보충설명도 달아두었다.
또한 러시아논문에는 학위논문이 아니면 대부분의 논문에는 장과 절을 구분하지 않는다. 본고에서도 최대한 그대로 번역하였는데, 일부 글은 도저히 한국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역자가 약간 장과 절을 구분한 부분도 있다.


러시아어는 문체가 연구자 마다 다르다. 유려한 미사여구를 활용하는 사람, 딱딱한 용어를 선호 하는 사람, 문장의 순서를 뒤집어서 역설적인 표현을 즐기는 사람, 비꼬는 말을 우습게 쓰는 사람들 자칫 하면 뜻을 오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는 초창기에는 오히려 신문처럼 일반화 되고 표준적으로 쓰는 글들이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논문은 필자들 마다 문체가 다르다. 본고도 논문이 15개인 만큼 각양각색이었고 논문도 차이 있다.


역자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린샤의 논문인데, 극동 고고학자 대부분을 비판한 내용이지만, 아주 열혈 고고학자라는 것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몇 몇 글은 도면이 부족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또 추코트카 같은 곳에도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중국에 비해 비교적 이른 철기시대는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일수록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서 글은 아주 간단하지만 도면이 많은 논문은 시도렌코의 논문이다. 아주 많고 오랫동안 연구된 내용을 축약해서 적어서 약간 안타까움도 있지만 도면이 많아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야 할 부분도 분명이 있었다.
러시아에도 융합이라는 주제가 뜨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논문도 있는데, 사실 이는 소베에트 시절인 1960년대부터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고고학에 많이 도입하였다. 대표적인 연구자가 세르게이 세묘노프인데, 현미경을 이용해서 석기의 날을 치밀하게 분석해서 사용흔적의 대상물을 찾아내는 것으로 미세사용흔적분석이라고 하며(세묘노프 1968), 미국에서 더 발전시켰다(T. 더글라스 프라이스, 2013).

그리고 현재 역자가 가장 쓰고 싶은 내용과 관련된 것은 바타르세프의 공동논문이다. 역자가 학위과정 중에도 마르가리토프카 문화는 청동기시대라고 생각했으나 박사학위 주제에는 넣지 않았다. 2013년에 흥성 유적의 토기를 관찰한 적이 있는데, 그 때부터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와 비교해서 적색마연토기와 돌대문토기에 관한 논문을 적고 싶었으나 아직까지 미진하다.
 
역자는 본고가 한국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생경한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유롭게 독자의 몫으로 돌려두고 한다. 마지막으로 역자에게는 첫 번째로 나오게 될 역서인데, 이를 권유하고 지원해주신 한강문화재연구원 신숙정 원장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세묘노프 1968, С. А. Семенов,1968, Развитие техники в каменном веке, НАУКА Ленинградскре отделение, Ленинград
T. 더글라스 프라이스(이희준 옮김), 2013, 고고학의 방법과 실제, 사회평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분소 역사고고민속학 연구소 편(김재윤 역) 2017, 러시아 연해주와 극동의 선사시대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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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이 복도를 지나서 지하로 가면 고고학실이 있다.
그래 고고학은 땅속이지...ㅋ
사람들은 잘 모른다. 고고학실이 있다는 사실도..


위의 사진은 현재 아프카니스탄에 위치한 곳에서 발굴된 거다.

사실 그 땐 유물이 너무 많아서 영혼없이 찍은 사진도 많다. 나의 전공은 아니지만 하면서 찰칵.
스키타이 유물은 다음 포스팅으로...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말 그대로 박물관이다.
고고학 유물 부터 근현대 미술품까지...너무 많아서 피곤하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 진품을 소장하고 있는 몇 개 안되는 박물관으로 알고 있다.













구관을 떠나서 신관으로 들어가면,,,모두를 앞도하는 사이즈

앙리 마티즈의 댄스.

에르미타주에서 주문한 거로 들었다.




앙리 마티즈와 칸딘스키





지하에서 유물 보다가 지치면 올라와서 그림을 보았다.


에르미타주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려면 한 일년은 필요하다고 느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박물관이다.
표트르 대제의 겨울궁전을 박물관으로 이용했다.



내부도 멋있고...
다시 가고 싶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고고학은 발굴로 발견되는 고고학 자료의 성격과그들사이의관계를객관적으로조사하여, 그것을 만든 과거의사회문화에 대한 성격을 이해하려는 학문, 물증을 통하여 과거를 이해하려는 학문.
물증을 통하여 과거를 이해하려는 학문.
 
 
고고학(考古學): 옛날을 생각한다.
Archaeology: 과거, 고대 등을 뜻하는 archaeos와 학문, 논리체계 등을 뜻하는 logos.
 
유럽의 고고학: 호고주의에서 비롯된 자연사에 대한 관심의 한 표현으로서 시작된 체계적 고물수집과 분류에서 근대고고학 발생, 역사학의 성격 강하다.

한국과 일본: 역사학

미국: 백인 진출 이후 원주민 집단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위한 식민지 학문으로서의 인류학.
고고학은 원주민 집단의 과거를 이해하려는 수단을 제공하는 인류학의 한 분야.
 
고고학을 연구하는 방법, 유적과 유물 등의 정보를 얻는 방법은
발굴조사.(역사학과는 가장 차이가 큰 부분)
 
학술발굴: 순수 학문적 목적, 경비는 연구비로 조달
구제발굴(용역발굴): 유적파괴 사유가 발생, 그대로 방치할 경우 유적이 말살될 위기에 처한 경우에 행하게 되는 발굴.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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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여러분은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질문을 달리해서 고고학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영화 인디애나 존스 1편 포스터)

(영화 툼레이더 1편의 포스터,  라라라고 하는 여성 고고학자가 등장)


인디아나 존스, 툼레이더 등 영화를 떠 올리는 분도 있을 겁니다(그러나 실상은 많이 다릅니다. 이 부분은 다음 포스터에서..)

고고학은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단지 역사학은 사료를 통해서 역사를 연구하지만 고고학은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는 역사서가 많지 않음으로 그 중요성이 큽니다 유적과 유물을 통한 연구라면 고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유적은 무엇일까요? 옛 사람이 남겨놓은 것 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절터, 무덤군, 마을과 같은 것들입니다(그림 1).







(그림 1. 틸리아 테페 유적(현재 아프카니스탄에 위치, 박트리아시대로 추정).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지 내에서 박트리아 시대의 무덤이 확인되었습니다(상단). 이 무덤 내에서 시베리아에서 활동하던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면서 학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유물은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옛 사람들이 남겨 놓은 것 중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제일 쉬운 예가 토기일 것입니다. 그 외에도 왕관, 도자기 등등 너무나 많습니다.


(그림 2. 틸리아 테페의 6호 무덤에서 출토된 왕관. 옛 사람이 남겨 놓은 것 중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유물이라고 합니다. 일부학자들은 이 왕관이 신라의 황금 왕관의 조형(祖型)이라고 합니다.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죠. 물론 반대의견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문화재법이 있고 발굴회사 등이 많이 생기면서 선사시대나 삼국시대 같은 고대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무덤도 발굴되기 때문에 고고학의 범위는 구석기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아주 넓혀져 있습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8. 21:30 카테고리 없음

8월 초대장을 배포합니다.

7장 남았습니다.

참신한 주제로 열심히 할 분들이면 좋겠네요.


어떤 주제로, 할 예정이신지 받으실 메일 주소와 함께 댓글 부탁합니다.

내일 오후 12시까지 배포하겠습니다.

-마감-


방금 초대장 모두 발송했습니다.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시길 바라면서....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8. 16:1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내용은 2017년도 복천동박물관에서 특강한 내용입니다.
 
아래 본문에 나오는 페그티멜 암각화(http://eastsearoad.tistory.com/33)
사카치알리안 암각화(http://eastsearoad.tistory.com/34)
반구대암각화(http://eastsearoad.tistory.com/35)는 이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바위그림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구석기시대부터 남겨진 선사인의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극동에서만 확인되는 바위그림의 주제가 있는데, 추코트카 페그티멜 바위그림, 울산반구대 바위그림에만 있는 고래이다. 바위그림이 많이 남아 있는 알타이, 앙가라 강 유역,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에는 없는 주제이다. 고래가 그려진 것은 이를 그린 사람들이 고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극동지역이라도 앞 서 살핀 사카치 알리안에는 없고, 추코트카와 울산에서만 확인될까?

 이것은 바위그림이 위치한 곳의 입지와 관련이 있다. 추코트카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동시베리아해와 직선거리가 50km 정도이며, 반구대는 울산만과 약 25km거리이다. 바다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반구대 바위그림은 동해안의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했다면 바위그림이 그려질 당시는 바다와 반구대가 좀 더 가까웠을 가능성이 있다(황상일 윤순옥 1995). 실제로 동해안에는 지금 보다 해수면이 높았던 시기가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7000~5000 년 전과 4000~3500년 전이다(카로트키 외 1996). 페그티멜 바위그림도 기온변화로 인해서 현재보다 더 바다가 더 가까웠을 때 그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에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하지만 동해까지의 거리가 대략 500km 정도 되기 때문에 고래가 살 수 있는 환경 혹은 고래를 생업에 이용했을 것은 아니기다. 즉 고래는 바다와 인접한 지역의 바위그림에서 그려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고래 중에서 물을 뽑는 모습을 표현한 주제는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반구대 바위그림이 유사하다 (그림 4 , 그림 1-A ).
 하지만 반구대 바위그림은 바위그림의 가장 큰 주제가 고래와 사슴이며, 고래가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모습을 주로 그렸다는 점은 페그티멜 바위그림과는 차별이다. 하지만 유라시아 전 지역의 바위그림에서 고래가 확인되는 반구대 바위그림과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극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북유라시아 바위그림 가운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사슴이며 어디에서든지 확인된다. 극동의 추코트카의 페그티멜 바위그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 반구대 바위그림 모두 주요 주제이다.
 
 그러나 극동 바위그림의 사슴 표현법은 각양 각색이다. 추코트카의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의 사슴 그림은 그리는 방법이 다르다. 추코트카의 사슴은 선각 혹은 전면을 쪼아서 음각한 것(그림 1:3:4)인데, 사슴의 내면에 따로 문양을 그리지는 않는다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은 몸통을 전면 음각하지 않고 내면에 문양을 표현 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내면을 격자문으로 표현한 것(그림 3-2)과 동심원 등의 곡선(그림 3-1)으로 표현 한 것이 있다. 반구대 바위그림은 페그티멜 바위그림처럼 전면을 음각한 것도 있고(그림 1-A), 사카치 알리안의 사슴표현처럼 내면을 격자모양(그림 1-B)으로 그려 놓은 것도 있다.
사카치 알리안의 사슴 중에서 내면이 동심원 문양으로 그려진 것은 알타이의 사슴바위그림에서 자주 확인되는 표현법이다. 또한 극동의 바위그림에 사슴그림이 있다는 것은 공통적이고 일부 사슴표현도 같은 방법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사슴의 뿔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이것은 극동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위도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사슴의 종류에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상대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의 사슴은 사슴과의 순록(숫컷)이며, 이들은 그들의 뿔이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사슴과보다는 훨씬 수려하다. 추코트카 바위그림의 사슴 그리는 방법은 반구대의 것과 유사하다.

주지하다시피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하며 동시에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다. 아무르강은 하류에서 급격하게 강의 방향이 바뀌는데 이는 오른쪽에 시호테 알린 산맥이라는 대 산맥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시호테알린 산맥 중 중부지역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 곳에는 시베리아 호랑이 즉 백두산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유적에서 호랑이 주제도 확인된다. 이 유적의 사슴표현 중 내면을 격자로 표현한 것은 호랑이에도 그대로 표현된다(그림 3-3). 그런데 반구대 바위그림 호랑이 그림(그림 3-B)과 꽤 유사하다.

또한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에는 배 그림이 상당히 많으며, 반구대바위그림에도 있다. 특히 배에 탄 사람의 수도 차이가 심해서 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반구대 바위그림과 같은 동해안변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죽변유적이나 오산리 유적에서 배로 추정되는 목제가 출토되었고, 위치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창녕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도 배가 출토되었다. 기원전 6000년 전의 것인데 소나무를 파서 만든 환목주(丸木舟)에 속한다. 신석기시대 배의 이용이 실제로 있었음을 이야기 해 준다.

극동의 암각화는 서로 유사한 면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고래라는 주제가 그려지고, 사슴을 그리는 방법 등은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반구대 암각화가 유사하지만, 사카치 알리안의 사슴과 호랑이 그리는 방법도 반구대에서 확인된다. 뒤에서 좀 더 설명하겠지만 암각화가 마을이나 부족의 제의적인 장소라면 원거리지만 극동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림은 어떤 아이덴티티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5. 15:39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 내용은 2017년도 복천박물관에서 특강한 것입니다.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은 태화강의 상류에 위치하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의 암각화가 유라시아에 비해서 적은편이지만 바위그림 가운데 가장 사실적으로 고래, 인간, , 어로도구, 사슴, 호랑이, 멧돼지, , 토끼, 여우 등 300여점의 도상이 아주 잘 묘사가 되어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  많다. 한국의 바위그림은 가운데서 가장 사실적인 표현으로 다른 바위그림이 기하학적인 문양이 주를 이루는 것과 차별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만과의 거리는 직선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울산대학교 박물관의 조사(울산대학교 박물관 2000)에 따르면 그림 중에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동물상(65.2%)이고, 확인되지 않는 미상의 것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인물상(4.7%) 등의 순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동물상 중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이 고래(30%)이며,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사슴(29.5%)도 그려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래는 무리를 지어서 그려져 있는데, 위에서 내려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등 그림의 관점도 다양하며, 표현된 고래도 물을 뿜는 고래의 모습(그림 1-A), 새끼를 업고 이동하는 모습, 작살이 몸속에 박힌 고래 등 여러 모습을 그렸다(그림 1). 고래는 주로 쪼기 기법으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한 것이 대부분이다(김호석 2008, 이상목 2011).

사슴은 쪼아서 전면을 음각한 것(그림 2-A)과 외곽을 선 새김 한 후 내면에도 모양(그림 9-B)을 그려 넣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가 우세하다. 하지만 후자의 방법으로 그려진 것이 사슴 뿐만 아니라 멧돼지(그림 3-C), 호랑이(그림 3-A·B) 등 여러 동물을 그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


고래는 무리를 지어서 그려져 있는데, 위에서 내려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등 그림의 관점도 다양하며, 표현된 고래도 물을 뿜는 고래의 모습(그림 1-A), 새끼를 업고 이동하는 모습, 작살이 몸속에 박힌 고래 등 여러 모습을 그렸다(그림 1). 고래는 주로 쪼기 기법으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한 것이 대부분이다(김호석 2008, 이상목 2011). 


사슴은 쪼아서 전면을 음각한 것(그림 2-A)과 외곽을 선 새김 한 후 내면에도 모양(그림 2-B)을 그려 넣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가 우세하다. 하지만 후자의 방법으로 그려진 것이 사슴 뿐만 아니라 멧돼지(그림 3-C), 호랑이(그림 3-A·B) 등 여러 동물을 그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





반구대 바위그림의 인간 그림이 모두 14점 있는데, 그 중 12점은 전신상이며 2점인 인면문이다. 그 중 전신상(그림 1-B)을 샤먼으로 본 견해(장석호 2007, 이필영 1988)와 샤냥꾼(정동찬 1988)으로 본 견해로 나눌 수 있다. 샤먼으로 본 견해는 남성의 상징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은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일치하지 않으며, 샤먼의 특수한 무복이라고 보거나, 바다사냥 중 물을 담은 물통이거나 비상식량주머니를 허리에 찬 모습으로 고래사냥하는 샤먼이라는 것(이필영 1988)이다. 반면에 이를 완전 배제하고 허리에 튀어나온 부분이 성기가 아닌 사냥꾼의 활과 같은 도구를 허리에 찬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박정근 2001).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호주 등 전 세계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림의 주요 주제는 성(), 식량, 영토이며(엠마누엘 아나티 2003), 알타이,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림에도 남자와 여자의 성기, 성교장면 등은 늘 등장하는 주제이다.
반구대 바위그림은 다른 바위그림 등과 마찬가지로 제작 연대의 문제, 제작 집단 등 여러 가지 논쟁이 되는 것이 많다. 반구대 바위그림의 제작 연대는 신석기시대 설과 청동기시대 설이 있는데, 주변에서 이를 증명할 만한 유적이 없는 점이 안타깝다. 러시아의 바위그림은 주변에서 바위그림과 관련된 유적 등이 확인되어서 연대 추정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반구대 바위그림의 가장 주요한 소재는 고래와 사슴인데, 앞서 살펴본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에서도 본 듯 하지 않은가? 공통점과 차이점을 추출해 보자.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4. 19:45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 내용은 2017년도 복천동박물관 특강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2.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마을에서부터 상류쪽으로 말리셰보 마을까지 아무르 강가의 5km 범위 내에 화산암 바위 위에 그림이 남겨져 있다. 페그티멜 유적과 반구대가 절벽위에 그려져 있다면, 사카치 알리안은 강가에 바로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은 좋지만 유적파괴도 극심하다. 이곳은 아무르 강 하류에서 500 km 떨어진 곳으로 바다보다는 훨씬 내만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의 바위그림은 인간의 얼굴 혹은 마스크를 쓴 얼굴, , 사람, , 사슴-, 사공이 탄 배, , 원심원 및 동심원 문양 등 기하적인 것도 백 여점 이상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원심문양이나 동심원문인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인간의 얼굴모양(그림 2)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설이 크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메드베제프 2005) 또한 태양 주술과 관련되었다는 형상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인면문은 다양한데, 얼굴만 그린 것과 몸통까지 다 표현한 것이 있다. 얼굴형만 그린 것은 얼굴의 기본형태가 타원형, 하트형, 역삼각형, 그 내부를 눈, 입만 표현한 것, ··입 다 표현한 것이 있다. 또한 얼굴에 마스크를 쓴 얼굴을 표한한 것도 있는데, 마스크의 표현방법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공이 탄 배도 사람의 수가 4~9명 등 다양해서 선사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차키 알리안 암각화의 사슴은 외곽의 선 새김을 내면에도 선을 새겨서 내면에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또한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에는 맹수도 그려져 있는데, 호랑이로 추정된다(그림 3-3). 호랑이는긴 꼬리를 치켜들고 있고, 앞 다리를 들고 있으며, 귀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몸통에는 격자문양이 시문되어는 모습이다. 호랑이와 함께 그려진 동물 역시 격자문으로 몸통이 그려져 있고, 다리는 4개이다(그림 3-2). 




이곳의 바위그림은 인간의 얼굴 혹은 마스크를 쓴 얼굴, , 사람, , 사슴-, 사공이 탄 배, , 원심원 및 동심원 문양 등 기하적인 것도 백 여점 이상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원심문양이나 동심원문인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인간의 얼굴모양(그림 2)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설이 크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메드베제프 2005) 또한 태양 주술과 관련되었다는 형상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인면문은 다양한데, 얼굴만 그린 것과 몸통까지 다 표현한 것이 있다. 얼굴형만 그린 것은 얼굴의 기본형태가 타원형, 하트형, 역삼각형, 그 내부를 눈, 입만 표현한 것, ··입 다 표현한 것이 있다. 또한 얼굴에 마스크를 쓴 얼굴을 표한한 것도 있는데, 마스크의 표현방법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공이 탄 배도 사람의 수가 4~9명 등 다양해서 선사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차키 알리안 암각화의 사슴은 외곽의 선 새김을 내면에도 선을 새겨서 내면에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또한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에는 맹수도 그려져 있는데, 호랑이로 추정된다(그림 3-3). 호랑이는긴 꼬리를 치켜들고 있고, 앞 다리를 들고 있으며, 귀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몸통에는 격자문양이 시문되어는 모습이다. 호랑이와 함께 그려진 동물 역시 격자문으로 몸통이 그려져 있고, 다리는 4개이다(그림 3-2).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