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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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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도프카 문화의 석기

  

석검은 비대칭 날이며, 중앙에 능이 없는 석검(그림 3-28,29)과 중앙이 능이 있는 것(그림 3-30,31,32)이 있다. 전자는 병부 없이 경부가 짧게 형성된 것이고, 후자는 경부가 전체 길이의 1/3가량을 차지하며 끝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어서 병부로 볼 수 있다. 등날이 없는 석검은 리도프카 문화에서 최초로 출토되었고, 등날이 있는 석검도 시니가이 문화의 석검에 비해서 크기가 크며, 병부가 확연하게 처리된 점, 비대칭날 등이 차이가 있다.

부엌칼형 석도(그림 3-5~14)는 신부와 경부의 길이 비 차이에 따라서 형식 설정을 할 수 있다. 신부와 경부의 길이차이 및 병부의 끝 장식을 확실하게 처리한 것(그림 3-6,9)과 병부가 간단한 것(그림 3-5~14)으로 구분된다.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의 자형 석도(김재윤 2018, 그림 6-14,15)는 인부가 직선이고, 인부의 반대면이 사선으로 올라가는 형태였다. 리도프카 문화의 부엌칼형 석도는 인부는 비스듬하고, 그 반대편이 편평하며, 신부가 길어지고, 병부가 확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것과는 다르다. 시니가이 문화의 리도프카 문화 마제석부는 단면이 장방형이며, 양인(그림 3-24,25)이다. 유사한 석부가 시니가이 문화에도 존재했으나, 리도프카 문화에서는 장단비가 작아진 특징이 있다. 반월형 석도(그림 3-15~18)와 장방형 석도(그림 3-19)도 확인되는데, 중앙에 구멍이 하나이다. 블라다트노예-3 유적은 곰배괭이(그림 3-33~35)가 대량으로 확인되었으며, 갈돌(그림 3-26, 27)도 확인된다.

리도프카 문화의 석촉은 경부가 없는 무경식 석촉있는데(그림 3-1~4), 경부가 들어간 것(그림 3-2)과 들어가지 않은 것(그림 3-1,3,4)으로 구분된다. 중앙에 홈이 있는 것(그림 3-3,4)은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2유형에서 무경식석촉으로 홈이 있는 것(그림 6-39) 보다 신부가 길어진 것이다. 흑요석제 석촉(그림 4-1), 단면이 장방형인 원판형석제품(그림 4-6), 단면이 장타원형인 토제 고리(그림 4-4,5),단면 삼각형의 방추차(그림 4-7,8), 이 외에도 대롱옥(그림 4-20,21)도 출토된다.


그림 3. 리도프카문화의 석기(1~4,8,11~14,20,21,24,25,28,29: 모나스트르카-2, 5~7,9,10, 17~19, 22,26,36: 리도프카-1 유적 상층, 16,27,33~35,37: 블라고다트노예-3 출토)


사진 1. 리도프카문화의 석검(상단)과 석도(하단)


사진 2. 리도프카문화의 석촉



  사진3. 리도프카문화의 석부(하단)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서포항 유적의 청동기시대 층을 이해하기 전에 연해주 청동기시대에 대한 설명부터 하고자 한다. 앞서 시니가이문화에 대해서 몇 번에 걸쳐서 포스팅한 바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41?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2?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3?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4?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5?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6

http://eastsearoad.tistory.com/147?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8 

  



리도프카 문화는 연해주 동해안의 유적을 중심으로 설정되었고 시니가이 문화 이후 2500년 전부터 존재한 청동기시대 문화이다. 토기, 석기, 그 외의 유물이 많이 확인되었다.

그 중 토기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마연된 호형토기 및 옹형토기, 마제석검과 석도, 석촉과 인물형토우가 대표적인 리도프카 문화의 유물이다.

장경호는 마연된 것으로, 시니가이 문화 동부 2유형의 호형토기 보다 경부가 더 길어지고, 이중구연이었던 구연부는 홑구연화(그림 2-5) 된 것이 집중된다. 견부에 돌대(그림 2-7,9,12,15, 17) 혹은 침선(그림 2-2,4,5)이 여러 줄 돌아간다. 이 문화에서는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 2유형에서 관찰되었던 구연단에 각목, 공열문, 등을 새기지 않지만, 전면이 마연된 특징은 유지된다(그림 2-4,5). 뿐만 아니라 경부가 긴 적색마연토기(그림 2-1,3,6)도 있다. 시니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동부 2유형의 이중구연과는 약간 달리 구연단 끝을 접어서 그 상단에 가로방향으로 2줄 침선해서 홈을 판 것(그림 6-10,11)도 출토되는데 리도프카 문화의 이중구연토기이다. 또한 발형토기로 구연부를 이중으로 처리한 것도 확인된다(그림 2-18). 구연단에서 문양은 시문되지 않았다.



 사진. 리도프카문화의 호형토기




그림 2. 리도프카문화의 토기(1~2: 모나스티르카-2, 3~11: 리도프카-1 유적 상층, 12~21: 블라고다트노예-3, 22: 사이온-2(2,3,5 필자 )(축척부동)



<간략한용어설명>  

*구연: 토기의 입술부위

*이중구연: 토기의 입술부위를 점토로 덧붙인 것

*홑구연: 한겹 토기 구연

*돌대: 점토띠를 붙인 것.

*견부: 토기의 어깨부로 호형토기의 목과 동체부 사이를 일컬틈.

*적색마연토기: 붉은색으로 색칠한 후 도구로 토기를 문질러 광을 낸 것.

*발형토기: 구연부가 넓고 저부가 작은 토기의 종류

*침선: 시문구로 그어서 문양을 그리는 방법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북한의 서포항 유적

 

북한의 서포항 유적은 두만강 하구에 위치하고,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까지 오랫동안 유적에서 사람이 산 흔적이 확인되어 두만강 유역 및 인접한 연해주의 선사시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남한 연구자들이 북한 유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남한의 유적들이 대거 발굴되었는데, 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자료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필자가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북한 및 인접한 지역에 대한 자료의 호기심으로 인해서 러시아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자료가 60년대 이후 새로운 자료가 나오지 않았고, 절대연대가 측정(탄소연대측정법은 미국에서 1960년대 이후 개발되어 그 이후 자료에만 적용됨)되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 자료의 연대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인접한 지역과의 비교가 필수이다.

 

필자는 이미 서포항 유적의 신석기시대 연대를 인접한 연해주 신석기문화와 비교해서 두만강 유역의 문화영역 및 연대를 밝힌바 있다. 이 논문은 그래도 한국에서 최고권위에 잡지인 한국고고학보에 실렸다(아래에 첨부함,,정말뿌듯했음. 유학당시에). 그리고 연해주고고학의 신석기시대 부분에서 설명한 바 있다.

01김재윤OK.PDF

 

 

올해 새롭게 쓴 논문은 이 유적의 청동기시대층과 관련된 것이다...이에 대해서 설명할 것인데,,어떻게 쉽게 설명할 것인지가 또 어렵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지난 봄에, 경남 진주시 대평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을 소개한 바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29


이 유물은 출토될 당시에 발굴정황상 많은 사람들이 청동기시대의 것을 의심스러워 했으나, 최근에 여러 정황상 이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것이 맞으며, 한국에서 비파형동검 보다 빠른 시기에도 청동기유물이 있음을 입증하는 유물임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연해주의 청동기 문화인 시니가이 문화와 관련이 있고, 시니가이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은 시베리아의 카라숙문화에서 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된 링크는 참고하시면 좋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30?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1

http://eastsearoad.tistory.com/142?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3?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4?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5?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6?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7?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8?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9?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0?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1?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2?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3?category=744369


논문은 올해 5월에 영남고고학보에 실렸다.




혹시 필요하신 분이나 의심스러워 하시는 분을 위해서 첨부해 두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티스토리는 10메가 밖에 안올라가서 두 덩어리로 잘라서 첨부합니다. )


2.김재윤-1-0.pdf

2.김재윤-1-1.pdf

2.김재윤-1-2.pdf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4. 바닷길



필자는 고대의 바닷길은 바다와 만나는 강 하류에 항구로 사용하기 좋은 곳에 축조된 성곽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판단한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중부지역에서 확인된 고대 성곽을 지도에 표시하면 제르칼나야 강에서부터 사마르강 강의 하류까지 600~650km에 가까운 바닷가 길을 복원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바닷길은 바다에서 해안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이야기 한다. 극동의 동해 바다를 따라서 교통로를 복원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지만 앞으로도 해결할 것이 매우 많다(그림 135).

  

그림 135. 연해주 청동기시대 해안로와 

 

 

1). 청동기시대의 교통로


 동해의 제르칼나야 강에서 타타르 해협의 사마르가 강까지 모두 15기의 토성 및 석성(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클류치, 미스 스타라시느이, 우스티-벨렘베,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우툐스노예, 미스 알렉산드라, 소프카 류브비이, 쿠댜, 데두시킨 클루치, 미스 테플리이(중간층), 소욘스코예(아래층), 지보피스노예, 사마르가-6(댜코바 2005) 유적이 확인된다


 모두 강의 하류에 축조되는데, 이는 리도프카 문화 가운데서 쿠날레이스코예 그룹으로 드물게 확인되는 것이다. 가장 남쪽은 제르칼나야 강 하류의 우스티-제르칼노예 성곽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80~90km 떨어진 곳에 두브로빈스코예 성곽이 위치한다.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80~90km 떨어진 곳에 디지기토프강 하류에 클류치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데, 상층은 발해시기, 아래층은 청동기시대이다. 클류치 성에서 북쪽으로 55~60km 떨어진 곳에 세레브랸카 강의 하류에 미스 스타라시니이 토성이 있는데, 항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30~40km 더 가면 타요시나야 강의 하류의 우스티-벨렘베 성곽이 있다. 20~30km 떨어진 곳에 켐스코예-스탈리스토예 석성, 20~25km 떨어진 곳에 페르바야 우툐스나야 강과 페세라 강의 하류에 우툐스코예 토성과 미스 알렉산드라 2중벽이 있다. 북쪽으로 70~80km떨어진 암구강 하류의 소프카 류브비(아래층), 쿠댜 토성, 데두시킨 클류치 성벽이 축조되었다. 미스 테플리이 토성은 암구 강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아주 작은 만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10~15km 떨어진 곳에 소욘스코예 토성(아래층)이 있다. 해안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지만, 육로로부터 강의 하류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북쪽으로 6~7km 떨어진 곳 타타르 해협 방향으로 사마르가-6 토성이 위치한다. 바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만 성곽에서는 사마르가 강의 하구와 해안교통로를 잘 지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보피스나야 강과 사마르가 강 사이에는 새로운 성곽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현재까지 조사된 바는 없다.


 위의 성곽유적은 곶 위에 위치하면서 해안로와 강의 하류를 모두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대체적으로 단일 문화층이다. 우스티-제르칼노예 성곽과 가까운 곳에 제르칼노예-4 유적이 있는데, 두브로빈스코예 성곽으로 리도프카-1 유적을 방어한다. 미스 스트라시느이 토성 뒤에는 세레브랸카 평지성이 있고, 암구 강 유역에는 리도프카 문화 유적이 있으며, 사마르가-6 토성은 사마르가-5 마을 유적을 조망하기 위에 높은 곳에 축조되었다(그림 135).

 가장 중요한 것은 방어와 감시 기능으로 해안로와 항구를 감시하는 것이다. 대치상황은 적 뿐 만 아니라 해적의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해적 활동을 한 종족에 관해서 역사 기록이 남아 있다. 그들은 바다에서만 활동하지 않고 육지에서도 해적질을 하였다. 우스티-제르칼노예, 클류치, 미스 스트라시느이,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소프카 류브비, 미스 테플리이, 지보피스노예, 사마르가-6 유적은 해안로와 해로 모두를 감시한다. 당연히 상업적 항구에는 지역생산물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수입물품 등이 있었을 것이고, 이는 고고학적 유물로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이 지역에서 유명한 녹색 마노의 석재를 사고 팔았을 것이다. 항구 역할을 하는 성은 앞서 방어역할을 하는 성곽 중 클류치 토성을 제외하고 모두 해당된다.

 특히 연해주의 남부 바다가를 얀콥스키 문화인등이 장악했을 것인데, 내륙에 리도프카 문화인들과는 차이가 있는데, 고고학 유적에서 이러한 정황이 발견된다. 얀콥스키인은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데 아주 능하였다. 시호테 알린 중부의 영동지역 해안가에는 리도프카 문화인들이 거주하고, 얀콥스키 문화인들은 살지 않았다.

하지만 쿠날레이코예 그룹의 유적들은 기원전 10세기 가량에 양 문화의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발굴된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에 얀콥스키 문화 중기와 리도프카 문화 특징이 함께 발현되기 때문이다.

 리도프카 문화인들이 해안로를 자신의 교통로로 이용했다는 것은 이 시기의 토성이나 석성으로 입증되지만, 직접 건조한 배는 확인된 바 없다. 하지만 아마도 얀콥스키 인들의 배를 이용했으며, 혹은 다른 문화도 배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리도프카 문화 중에는 일본 구주 지방에 리도프카 문화 토기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들이 건너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거주한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기원전 10세기 가량 연해주의 동해와 타타르 해협에서는 정확하게는 제르칼나야 강의 하류에서 사마르 강 하류까지 교통로 역할을 하는 해안로가 있었다. 강으로부터 들어가고 나가기 쉬운 항구시설이 있어서 편지한 장소에 위치한 토성과 석성이 이를 입증하며 그 곳과 주변 지역을 모두 통제하였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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