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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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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 해발 1500m가량 되는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에 만들어진 공동묘지가 있다. 크고 작은 무덤이 있는데, 지상에 무덤을 덮은 돌이 남겨져서 쉽게 눈에 띈다.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을 봉분이라고 하는데, 봉분이 있는 무덤을 러시아에서는 ‘쿠르간()이라고 부른다. 파지릭계곡에는 5개의 대형 쿠르간이 있고, 소형 쿠르간도 존재한다. 1호 무덤은 1929년에 그랴즈노프가 발굴했고, 2~5호는 루덴코가 1947~1949년까지 발굴했다.

 

특히 파지릭 5호분은 남녀미라와 함께 4륜의 바퀴가 있는 마차가 확인되어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무덤구덩이에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무덤방이 2중으로 설치되었고 통나무관이 1개 존재했다. 남성과 여성을 함께 묻었다. 파지릭 2호는 도굴이 심해서 남녀 미라가 관 밖에서 확인되었지만, 관은 1개만 확인되어서 같은 방법으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 묻힌 남녀는 55~60세 가량의 남성과 40대의 여성으로 몽골로이드이다. 남녀모두 미라처리된 것이다. 미라 처리는 뼈와 피부만 남기고 인간을 인간형상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복잡한 처리과정을 거치고 피부에 일종의 송진과 기름을 발라서 보존처리했다. 5호의 미라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지 않다. 2호에서는 남성에게 문신이 새겨져 있다. 남성은 키가 175~176cm가량이었다.

파지릭 5호분의 미라처리에 사용된 송진은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채취된 것이었다. 미라는 온몸에 절개면이 아주 많았는데, 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미라처리에서 가장 관건은 근육과 지방은 제거하면서 관절은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절이 유지되어야 골격이 흐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지릭 5호분에서는 말도 9마리나 확인된다. 무덤방의 바깥공간에 차례대로 부장되었다.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을 제외하고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 외에도 굴레, 안장 등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은 가장 옵션이 좋은 말이었는데, 머리장식까지 있었다. 마차의 선두를 이끌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은 아무것도 착장되지 않았다.

 

말의 머리장식은 같은 시점에 만들어진 알타이에서도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말의 옵션이다.

 

말을 부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재갈과 재갈멈치는 고삐로 연결된다. 그러나 기능적인 것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지만 말의 얼굴에는 굴레가 씌워지는데, 대부분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말의 이마와 콧잔등 뿐만 아니라 귀 아래와 귀에서 입으로 연결되는 부위에는 사슴, 맹수 등이 전신, 두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맹수는 독수리와 합체 되어서 이 세상에는 없는 동물이다. 그리핀이라고 부른다.

파지릭 5호분에는 굴레장식 뿐만 아니라 안장 및 안장덮개가 출토된다. 특히 가장 나중에 들어간 머리장식이 있던 1호 말은 안장덮개로 중국산 실크가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펠트로 제작된 대형 벽걸이 캐노피가 확인되는데, 남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남녀의 얼굴형태가 다르고, 남성은 알타이에서 확인되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지만, 말과 관련된 도구와 고리트(활과 화살을 함께 담는 통)는 알타이 식이다.

마차는 4개의 바퀴가 있는데, 살이 있는 바퀴이다. 마차에는 차양덮개가 있었으며 꼭대기에는 새모양의 펠트로 만든 인형 4마리가 붙어있었다. 백조의 모습이지만, 날개는 독수리이다.

특히 화려한 1호말, 마차, 대형 벽걸이 캐노피에서 확인되는 외래적인 요소(페르시아적인 요소)들 덕분에 파지릭 고분은 특히 5호분은 러시아학계에서는 당대의 가장 높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생각한다.

 

페르시아적인 요소는 안장의 덮개 중 일부인 고들개에 표현된 그리핀이 사자머리 그리핀이 확인되는데,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적 요소와 그리스적인 요소는 흑해북안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자주 확인되는 특징인데, 이곳 알타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인간과 말이 상주하는 무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이름해서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에서 유래되었다. 파지릭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의 일원이다.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북쪽부터 시베리아 남부지역까지 동물문양을 상징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좀 더 넓게는 중국의 황하상류 지역인 오르도스 및 만주의 일부인 요서지역까지 그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유적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된다. 그쪽에서 수입한 것이든, 이미테이션 했던 어쨌든 접촉이 있었다.

 

이제까지 저의 블로그를 계속 읽으신 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직업에서 오는 노파심에서 정리해보았다(선생님들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 아직도 파지릭 유적에는 더 소개해야 할 무덤이 남아 있고(파지릭 1호분), 파지릭 유적 보다 백여년 빠른 바샤다르 유적과 약 삼백 년 정도 더 빠른 아르잔 1유적도 소개해 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도 많이 빽빽거렸던 했던 흑해 북쪽의 유적도 소개하고 싶은데,,.

 

앞으로는 좀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다(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중 파지릭 유적과 흑해북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컬렉션 등은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구경하실 수 있다. 꼭 가보시기 바란다. 워낙 크고 화려한 박물관이라서 그림만 보다 오실수 있으나 고고학방은 지하에 있다. 고고학 유물이 싫으면 다빈치 그림 부터 근현대 화가의 그림까지 그리스, 이집트 등등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비행기 값만 빼면 루블값이 거의 바닥을 기고 있어서 크게 비싸지 않다. 운하에서 배를 탈 수 있는 여름이 좋다..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음으로 유럽의 휴가철이 끝나는 8말이 더 좋을 듯도 하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미라는 고르노-알타이 시 박물관에 있는데, 진열을 해 놓았는지는 모르겠다..워낙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서..)

 

 

김재윤의 고고학광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유적의 5호에서는 마차가 해체된 채 무덤에 부장되었다. 마차는 4바퀴가 달린 마차이다. 해체되었지만 마차는 대부분 복원되었다.

 

그런데 파지릭 5호분의 무덤 단면도를 다시 보시기 바란다. 무덤 단면도에 있는 유물은 대부분 필자가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설명하지 않은 유물 가운데서 펠트로 만든 백조모양의 새인형이 있다(그림1). 모두 4점 출토되었고, 분해된 마차 위의 대형 벽걸이 캐노피 위에 놓인 채 출토되었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백조모양인형. 펠트제. 

 

위와 같은 유물,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아즈벨레프 2019)

 

 

백조모양 새 인형은 펠트를 꿰매어 만든 것으로 속은 사슴털로 채워졌다. 처음에 백조는 흰색 몸통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누렇게 변했다. 꼬리는 붉고, 날개의 끝은 검고 아래로 쳐지게 표현했다. 모두 4점이 출토되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실크로 만든 안장 덮개와 함께 중국기원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유물로 인해서 마차도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 것이다. 무덤 전체가 스키타이문화의 것이지만, 이렇게 백조 때문에 다른 것들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루덴코(1953)는 이 유물을 마차의 장식품으로 마차의 지붕위에 부착했던 유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랴즈노프는(1958) 무덤의 가장 높은 곳을 장식하던 유물로 생각했다(그림 2). 그리고 두 사람의 의견은 현재까지도 지속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백조인형이 마차와 관련있다는 설득력이 더 큰 힘이 실리게 되었다(아즈벨레프 2019)

 

 

그림 2. 그랴즈노프가 생각한 파지릭 5호분의 내부, 필자의 전 포스팅에서 무덤방 크기와 벽걸이 캐노피의 크기가 맞지 않음을 언급했다.

 

그랴즈노프가 주장한 백조가 벽걸이 장식의 상단을 차지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벽걸이 캐노피를 지지 하는 막대기의 각 때문이다. 약간 안으로 기울어져서 기둥을 세워서 착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림 2).

 

 

그림 3. 그래픽 복원에 의한 파지릭 5호분 벽걸이의 착장복원(국, 니콜라예프 2011)

 

그런데 파지릭 유적의 5호분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남아 있는 캐노피를 3D 그래픽 복원한 결과 캐노피가 직각으로 그림2와 같이 직각으로 서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국, 니콜라예프 2011), 펠트(벽걸이 캐노프)를 지지하는 막대기는 피라미드 구조와(그림 3)과 비슷해서, 무덤 천장의 꼭대기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아즈벨레프 2011).

 

백조인형은 벽걸이 장식과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벽걸이 캐노피가 아닌 펠트 조각 중에서 검은색 펠트가 있었는데, 이는 마차의 천장덮개 크기와 일치한다. 백조모양 새 다리에 긴 막대기(그림 1의 하단)가 연결된 것이 있는데 , 백조를 천장에 착장하기 위한 장치로 판명했다(니콜라예프 ,국 2017). 결국 백조모양 펠트인형은 마차의 상부덮개에 달렸던 유물이다(그림 4)

 

 

그림 4.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의 복원(아즈벨레프 2019)

 

 

그리고 ‘백조모양’은 말 그대로 백조모양이다. 앞에서 백조는 원래 흰색펠트로 제작되었다고 말씀드렸다. 흰색백조의 날개는 완전한 순백색이고 저렇게 길지 않다(그림 1). 그림 1의 새 날개는 백조날개가 아닌 독수리 날개이다 독수리의 날개는 아주 길고 갈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 1이 백조이고,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드문유물로 생각했다면, 아니다. 이 새 조차도 독수리와 합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지릭 5호분 보다 더 이른 기원전 7세기 아르잔 2 유적에서는 마차가 그려진 암각화가 무덤 내에서 출토되었고, 기원전 13~8세기의 카라숙문화(시베리아 청동기시대)에서 마차의 부속품이 출토되어서, 이미 시베리아에는 마차가 존재했다.

 

참고문헌

아즈벨레프 2011, Азбелев П.П. 2011,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экспозиц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Методическое пособие.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1. 32 с.(아즈벨레프 2011, 에르미타주 박물관 파지릭 5호분 특별전)

아즈벨레프 2019, Азбелев П.П. 2019 : Пазырыкские лебеди. // Актуальн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ыргыз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шлое, настоящее и будущее. Сб. статей в честь 70-летия кыргызского историка и востоковеда Мокеева А.М. Бишкек: 2019.(아즈벨레프 2019, 파지릭 유적의 백조)

국, 니콜라예프 2011, Гук Д.Ю., Николаев Н.Н. Замечания к реконструкции погребального шатра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Методика междисциплинарных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Омск: 2011. С. 49-61.(국, 니콜라예프 201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 캐노피의 복원)

니콜라예프, 국 2017, Николаев Н.Н., Гук Д.Ю. 2017, Проверка гипотезы на 3D модели находок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V (XXI) Все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съезд [Электронный ресурс]. / отв. ред. А.П. Деревянко, А.А. Тишкин. Электрон. текст. дан. (36,739 Мб). Барнаул: ФГБОУ ВО «Алтай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2017(니콜라예프, 국 2017, 파지릭 5호분 출토 유물을 3D그래픽 복원으로 검증)

그랴즈노프 1958 Грязнов М.П.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1958(그랴즈노프 1968, 알타이의 고대 예술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는 인간의 무덤에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말은 화려하게 치장되었는데, 주로 동물문양을 장식했다. 대상이 된 동물은 사슴과 같은 굽동물, 호랑이와 같은 맹수와 독수리로 보이는 맹금류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다 조합한 유물이 있는데, 이름해서 그리핀이다. 앞에서 그리핀의 모습에 대해서 설명했다. 주로 맹수와 굽동물이 결합되거나, 맹금류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맹수의 입에 독수리 부리를 붙이기도 하고, 독수리 머리와 목에 말의 갈기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보여드린 그리핀 가운데서 날개를 펴고 있는 그리핀을 보여 드렸다. 바샤다르 유적은 같은 알타이 산에 위치하는데, 파지릭 유적 보다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서쪽으로 약 151km 떨어져 있다(직선거리).

 

https://drive.google.com/open?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파지릭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파지릭문화의 유적

www.google.com

 

지도 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현재까지 언급된 유적이 다 있음. 바샤다르 유적은 지도에서 가장 왼쪽 점(주황색)이다. 지난 번에 아르잔 유적(보라색)은 지도 사진만 제공했으나, 위의 링크를 보시면 좀 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구글에 사진도 소개되어 있다. 구글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름 재밌다. 필자는 러시아 연해주의 발해성이나 여진 성을 구글 지도로 찾아본다...요즘은 시간이 없지만.....

 

이곳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파지릭이나 아크 알라하 유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의 그리핀이 확인되었다.

바로 보면 독수리라고 알아 차릴 수 있으나, 자세히 보면 독수리와는 다르다. 조류에는 없는 귀와 독수리 다리라기에는 매우 두꺼운 다리의 표현 때문이다. 새의 머리는 오른쪽을 향하고 날개를 활짝 폈다. 귀가 매우 큰데, 소용돌이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새의 몸통 표현도 새라기 보다는 물고기의 비늘표현과 같다. 실제로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말의 안장에 장식한 유물 가운데서 물고기가 있었다. 이 유물은 모두 4개가 확인되었는데,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14× 24.4cm이고, 안장의 장식판이다. 안장 앞에 2점, 뒤에 두 점 달도록 되어 있다. 이 유물은 편평해 보이지만 실제로 단면은 약간 굽어서 안장의 곡면에 맞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바샤다르 유적의 그리핀(그림1)은 한국에도 1991년에 온 적이 있다. 알타이의 목제 마구 장식은 모두 금박을 입혔다. 쉽게 찢어져서 남아 있지 않지만.

 

바샤다르 유적은 파지릭 유적 보다 약간 이르다고 생각해서 기원전 6세기 가량으로 생각한다.

파지릭 유적(2호분, 5호분)과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1호분, 2호분)에서는 그리핀이 독수리 머리를 그리핀으로 많이 표현했지만 주로 두상을 표현했고, 전신을 표현한 경우는 맹수가 중심이 되었다. 독수리 전신을 합성 시킨 그리핀이 파지릭 2호분(가죽용기)에서 확인되기는 하지만 그리핀의 날개가 접혀진 모양이어서 바샤다르 유적과 같이 날개를 편 유물과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된 말 안장 장식. 목제.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https://youtu.be/Dij6QpK_ho4

 

이 동영상은 얼음공주 무덤으로 알려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발굴과정과 여러 분석 및 보관처리까지를 BBC에서 만든 것이다.  필자는 러시아어 나레이션 된 것을 우연히 찾아서 필자에게 영문 동영상은 없다. BBC에서 촬영한 것도 있을 테고 촬영을 노보시베리스크 과학아카데미에서 하고 제공된 영상도 편집되어 보인다. 지난번 보다는 길고(48분 가량) 없던 부분도 포함되어서 필자에게는 무척 흥미로웠다. 러시아어 지만 간간히 영문자막도 있다. 혹시 BBC에서 찾으면 좀 더 구체적인 영문동영상도 있을 지 모르겠다.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나라의 TV는 점점 커지고 벽에 딱 붙일 수 있게 개발되고 있다. 그냥 TV라기 보다는 벽을 장식한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주변의 환경도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바란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 였던 것 같다. 2500년 전에도 확인된다.

 

우리는 앞에서 파지릭 5호분에 한 통나무관 속에 남녀가 함께 묻혔고, 미라 처리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표현된 캐노피가 확인되었다. 펠트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4.5×6.5m이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은 이 무덤만으로 단독으로 특별전을 열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데, 마차와 함께 이 벽걸이 덕분이다.

 

그림 1. 2010년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 사진. 벽걸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펠트제품.

 

그런데 캐노피는 무덤방의 바깥에 마차 위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무덤방이 2개인데, 외부의 무덤방 크기가 3.4×6.42m, 내부는 2.3×5.2m였다. 이 캐노피는 무덤방 크기보다 좀 더 크다. 아마도 살아생전에 자신의 집에 걸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랴즈노프는 실제로 무덤방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았다(그림 2).

 

그림 2. 그랴즈노프(1958)가 복원한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내부, 그런데 이 복원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붙어 있는 백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벽걸이에는 말을 탄 남성과 의자에 앉은 여성이 한 쌍으로 두 단으로 나누어져서 반복해서 표현되었다(그림 1, 3).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 (1958)

 

 

 

말탄 남성과 여성은 머리가 불규칙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남성의 코가 크며, 검은 곱슬머리이다. 여성의 얼굴은 상당히 다르다. 어떻게 보면 여성스럽지 않지만, 코에 수염을 표현하지 않고, 머리를 민 것으로 보아서 여성이다. 복장도 그렇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표현된 점은 또 다른 곳은 귀이다. 남자의 머리 아래에 귀가 가려져 있고, 여자는 귀의 바퀴가 반대로 표현되었는데, 루덴코는 우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림4). 앞에서 설명드린 파지릭 5호분에서 남성과 여성의 두개골 측량치가 다르다는 점을 알려드렸다.

 

그림 4.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상세(그림1,3의 상세).

 

말탄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망토와 좁은 바지, 꽉 맞는 목이 높은 칼러 자켓이다. 그러나 말은 알타이에서 볼 수 있는 말의 꼬리 장식, 안장, 굴레장식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왼쪽 다리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대표적인 무기류 가운데 하나인 고리투스를 착용하고 있다. 고리투스는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통을 일컫는다.

여성은 발목까지 오는 긴 일종의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삭발한 채로 머리장식을 착용한 상태이다. 이 여성이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는 무덤에서 확인되는 목제 상의 다리와 같은 모습이다(그림 4). 흥미로운 점은 여성의 오른손과 왼손은 모습이 다른데, 한 손은 꽃 다발을 쥐고 있고, 다른 손은 입을 가리기 직전 혹은 가리는 모습을 표현했다(그림4).

 

그림 1과 그림 3에서 가장 오른쪽의 모퉁이 하단은 그림이 다르다는 점도 눈에 들어오시는지?

 

위의 주제는 불사조인 피닉스(그림 5의 왼쪽)이고, 아래 주제(그림 5의 오른쪽)는 남성이 사슴뿔이 달린 머리장식을 달고, 사슴 옷을 입은 모습이다. 스핑크스라고 괴물이라는 주장(루덴코 1953)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남성은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은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머리장식은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확인된 모자 장식에서 확인가능하다.

아무튼 이 주제는 스키타이문화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학자들의 주장대로 피닉스의 발 아래에 표현된 꽃이 페르시아지역에서 유래된 문양이라고 해도 컨텐츠만 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루덴코도 이 캐노피의 해석은 알타이적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인 요소와 내면적인 요소가 잔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 5.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오른쪽 하단 부위의 피닉스?(왼쪽)와 반인반수(오른쪽)

 

 

참고문헌

Грязнов М.П.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1958. 96 с.(그랴즈노프 1958, 알타이의 고대 예술)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В Эрмитаже открылась экспозиция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Дни Эрмитажа начались в Северной столице. Одно из главных событий в череде мероприятий - открытие в музее новой постоянной экспозиц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памятников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Она рассказывает об истории и культуре племен скифс

rg.r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된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을 중심으로 기원전 5세기 가량에 확인되는 문화는 ‘파지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파지릭 유적을 기념하는 성격이 강하다. 1920년대부터 발굴되었으며, 1947~1948년에 대부분의 대형고분이 발굴되었다. 파지릭 5호분은 계곡의 입구에 위치하며 대형고분이다. 남녀 미라 2구와 마차, 말 등이 확인되어서 특별한 무덤으로 생각된다.

 말은 9마리 부장되었고 그 가운데 굴레장식이 있는 말은 모두 4마리이다. 아직 말과 관련된 유물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굴레장식 중에는 다른 유적에서 보이지 않는 유물이 있다. 아시다시피 말은 재갈을 채워야 부릴 수 있는데, 입에 물리고 고삐를 연결하기 위해서 재갈멈치가 필요하다(링크된 첫번째 포스팅 참고). 사실 재갈멈치와 굴레는 화려한 장식이 필요 없지만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재갈멈치와 굴레는 장식이 없는 유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앞에서 살펴본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도 그리핀이 주요한 굴레장식의 컨텐츠였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은 위의 유적과는 달리 대형고분이 대부분 도굴된 채 발굴되었기 때문에 굴레장식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2호분도 그러했다. 파지릭 5호분에는 재갈멈치와 굴레를 연결하는 부위는 대부분 Y자형으로 조각되어 있다. 우코크 고원에서는 대부분 선을 조각하는 정도 였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는 늑대가 조각된 ‘Y’형 고리(그림 1-5)가 확인된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5호분의 굴레장식. 이 그림을 이해하시려면 이미 포스팅(아래참고1) 된 아크 아랄하 3유적의 말 굴레장식을 보시면 됩니다.호랑이(표범)과 늑대의 구분은 주둥이가 긴 것을 늑대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림 1-5의 늑대는 귀에 뿔이 달려 있어서 흥미롭다. 동물문양장식에서 동물의 눈과 귀 표현은 규칙성이 있는데, 이 유물은 늑대의 귀가 아니다.

 

다시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필자가 스키타이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의 표를 제공해 드린바 있다. 아주 광대한 지역에 넓게 퍼져 있었다(아래 포스팅-그리스장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

 

2020/01/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천장 위에서 카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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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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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문화권에 대한 포스팅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은 단독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기와 마구의 어느 부위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의복류에 부착되는 종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 어떤 동물이 대상이 되었을까?

크게 우제류 라고 불리는 굽이 붙은 동물, 맹수류, 맹금류로 구분된다. 굽동물은 사슴, 말, 산양, 염소가 자주 확인되고, 야크와 낙타도 드물지만 있다. 맹수류는 표범 혹은 호랑이, 늑대가 있다. 곰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필자는 보지 못했다. 맹금류는 독수리이다. 또 한 동물이 있는데, 깍두기 같은 멧돼지이다.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맹수류와 굽동물을 조합하고 독수리 날개를 붙이면 그리핀이 된다. 멧돼지는 그리핀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한 마리가 전신, 반신, 두상으로 표현되지만 두 마리가 한 번에 표현되기도 한다. 크게 두 스타일로 구분되는데, 두 마리가 물고 뜯고 싸우는 주제와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전자를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서로 물고 있는 경우도 있고, 한 마리가 공격하는 장면만 있는 것도 있다. 전자는 주로 평면적으로 표현되고, 후자는 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금속으로 제작되고 벨트의 장식이 된다. 후자는 사람이나 말의 모자장식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은 평면형태는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직사각형 모양(그림 2-1)이거나 한쪽은 직사각형이고 다른 쪽은 원형(그림 2-3~8)에 가깝게 표현된다.

스키타이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아주 자유분방하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새로워 보이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규칙이 있다. 필자는 그런 규칙성은 대상 동물의 선정, 용도에 따른 표현방법, 용도에 따른 평면형태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2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가 그림 2-7,8이다.

 

그림 3.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콜렉션. 길이 12.3cm, 너비 151.2g. 그림 2-8과 같은 유물.

 

그림 3에서 보시다시피 이 유물은 대칭으로 구성된 또 다른 장식판과 쌍(그림 2-7)을 이룬다. 뒷면에는 4개의 고리가 땜질로 부착되어 있었다. 동물의 몸체에 있는 삼각형과 원형에는 색깔이 있는 보석류를 끼워넣었다. 이 유물은 벨트 장식으로 보기도 하고, 마구장식, 칼집장식, 옷의 장식 등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두 동물은 자세가 S로 하반신이 뒤틀리게 표현되었다. 말을 공격하는 동물은 사자몸통 및 얼굴+날개+영양의 뿔이 조합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그리핀 가운데 호랑이나 표범이 아닌 사자얼굴이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원래 서양미술에서 알려진 그리핀은 페르시아 혹은 그리스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졌으나, 기원전 4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졌고, 이미 시베리아 알타이에서는 그리핀은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된다. 물론 이 그리핀은 호랑이 혹은 표범과 굽동물이 결합된 것이다. 그렇지만 알타이에서도 사자의 모습을 한 그리핀이 확인되는데, 재지의 컨텐츠가 아닌 수입된 것이다. 매우 먼? 거리와 서로 통했다고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던 시기의 페르시아에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위의 링크된 포스팅의 표에서 확인된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2,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포그레보바 1948, Н.Н. Погребова 1948, Грифон в искусстве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в эпоху архаики. // КСИИМК. Вып. XXII. 1948. С. 62-65.(고대 흑해북안의 그리핀연구)

시쿠르코 1982,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По следам древних цивилизаций). (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 유라시아 스텝의스키타이 시대 예술에 대한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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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