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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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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에는 동물문양장식이 조각된 활집 장식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활집 옆에는 화살통이 놓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살촉이 소년의 관에는 5점, 남성의 관에는 7점 출토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두 관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뼈로 제작된 것이었고, 활대가 붙어 있었다. 화살촉의 촉 부분은 단면이 삼각형(그림 1-1)이고, 자루를 끼우는 부분의 단면은 긴 네모꼴이다. 활촉의 길이는 6.5cm이다.

활대도 남아 있었는데, 활에 현을 끼우기 위한 부분(그림 1-7)과 활의 라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침선문양이 3줄씩 2군데 남아 있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화살과 활의 부속품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투엑타 1호분의 예를 보아서도 화살과 활집은 가죽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한번 이미 언급했는데,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가죽부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화살 부근에서 평면모양은 꽃 모양이고, 단면은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중앙에 구멍이 있는 활집에 달았던 벨트의 일부로 생각되는 목제 장식판(그림 1-6)이 출토되었다.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알타이 산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의 유적 무덤에서는 뼈로 만들어진 화살은 10개 내외로 확인된다. 간혹 청동제가 있기는 하지만 뼈로 제작된 것이 훨씬 많다(쿠바레프 1992, 코체프 1987).

아크 알라하 1유적은 기원전 4~5세기이지만, 이미 앞서 포스팅 한 바와 같이, 철제로 제작된 재갈이 이 유적에서 확인되었고, 이 유적과 비슷하게 생긴 철제 재갈은 아르잔 고분의 26호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그랴즈노프 1980).

 금속제를 사용했지만, 무덤에 부장된 화살촉은 골제를 사용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두 남성관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실제로 사용한 유물을 넣었기 때문에 무덤부장품으로 골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살던 집도 뜯어서 무덤방으로 제작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싸움에 능한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정작 무덤에는 뼈로 제작된 화살을 10개가 되지 않게 무덤 속에  넣었다.

 

그림2.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의 시베리아 황금 콜렉션 중에서..

 

참고문헌

 

쿠바레프 1992,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무덤 유적)

코체프 1987, Кочеев В.А. О костяных наконечниках стрел эпох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из курганов Горного Алтая // Проблемы истории Горного Алтая. Горно-Алтайск: Алт. кн. изд-во. Горно-Алт. отд., 1987. С. 55-60.(코체프 1987, 초기 철기시대 산악 알타이의 골제 화살촉에 대해서)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Аржан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Наука, 1980. 61 с.(그랴즈노프 1980, 아르잔-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차르 고분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고 있다. ‘스키타이문화’라고 불리는 초원의 철기시대문화로 스키타이문화에서도 알타이 산맥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이 유적은 이 문화의 일원이다.

 

‘얼음공주’이라고 알려진 여성미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이 여성의 직업과 관련된 유물을 설명한 바 있다. 여러 유물이 있지만 거울과 그녀의 목걸이는 상반된 특징이라고 했다. 거울은 다소 소박했고, 목걸이는 최상급 무덤이라고 하는 파지릭 유적에서 나온 목걸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유물은 목제라고 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물론 청동과 금박을 덧입혔지만.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이 여성의 무덤에는 없었던 유물이 말무덤을 상세하게 쳐다보셨다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말무덤에서 가장 상부에 튀어나와 있던 유물 중에 하나는 방패이다(그림 1).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방의 1차덮개 노출 후, 현재 보이는 장면은 말무덤을 덮은 흙과 일부 삐져나온 유물 및 2차 무덤방의 덮개와 무덤방의 부속품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설명할 것이다.

 

오늘은 그  방패에 대해서 약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방패가 말 무덤에서 확인되는 이유는 평소에 안장에 달았기 때문이다. 현재 파지릭문화에서는 가죽제에 나무가 달린 것과 목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방패는 목제인데, 투엑타 유적의 1호분, 타산타 유적 출토품과 생김새가 유사해서, 가죽방패를 목제로 모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크기는 27.5×38cm이다. 방패의 손잡이 면은 매끄럽게 마연되었고, 문양이 새겨진 면에는 선을 그어서 문양을 표현했다. 가장 바깥의 테두리는 위아래는 2.5cm, 양쪽은 1cm의 여백을 두고 그 안에 28개의 선을 그어서 표현했는데, ‘×’자 모양이다(그림2).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방패, 마구옆에서 출토된 목제 방패

 

투엑타 유적과 타산타 유적에서도 목제로 제작된 방패가 확인된 바 있다.

파지릭문화가운데서 가장 먼저 방패가 확인된 것은 투엑타 1호분의 것이다(그림 3). 유적을 발굴한 후 루덴코는 목제방패는 가죽방패에 나무막대기를 댄 것과 같은 형태여서, 알타이 인들은 아마도 가죽방패를 사용했다고 확신했다(루덴코 1960).

투엑타 1호 출토품은 42×50cm(그림3의 왼쪽), 46×50cm(그림 3의 오른쪽), 타산타 유적의 1호분도 44×35cm이다(그림5-9).

타산타 유적의 두 유물은 네모방향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안을 수직으로 표현한 것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것과 다르다. 그리고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남성전사의 것이 약간 작다.  또한 투엑타 유적의 출토품은 네모틀에 그 안은 가죽을 나무막대기에 꼬아서 만들고 틀에 넣어서 만든 것이다(그림 3, 4).

 

그림3. 투엑타 유적 출토 방패, 너비 1cm가량의 가죽과 37개의 나무막대기에 꼬아서 방패 앞부분을 장식. 가장자리에는 턱이 있음. 원래는 이정도만 남아 있었으나 가죽의 원래모양을 복원(그림 3)했다.

 

그림4. 투엑타 유적 출토 방패 복원도, 필자는 1960년에 나온 책이라고 믿기지가 않았다.

 

 

 

그림5. 타산타 유적 출토 방패,  9번 유물이 방패이다.

 

 

타산타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1987)는 소형과 목제의 방패는 무덤에 매납하기 위해서 만든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을 발굴한 폴로시막은 고렐리크(1987)의 의견을 인용했다. 고렐리크는 파지릭 문화에서 출토되는 방패는 모두 작은데, 보병용 전사의 것이라면 가능하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솔로하(흑해 북쪽, 지금의 우크라이나 국경내)라고 하는 유적의 유물 때문이다.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크기 12.6×10.2cm의 황금 빗이다.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5~4세기 가량으로 평가된다. 세 명의 전사가 싸우는 장면을 가장 꼭대기에 배치해서 조각했다. 중앙에는 말탄 전사, 오른쪽과 왼쪽에는 보병의 전사가 싸우는 장면이다. 그 중에서 네모 방형의 방패를 든 이가 스키타이 전사자이다(그림 6~8).

 

그림 6.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네모방패를 들고 있는 보병을 스키타이 전사로 본다.

 

그림 7.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세부사진

 

그림 8.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스키타이 남성전사의 다른 면

 

 

참고문헌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고렐리크 1987, Горелик М.В. Вооружение народов Восточного Туркестана // Восточный Туркестан в древности и раннем средневековье.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5. С. 359-430.(고렐리크 1987, 투르케스탄 동부 민족의 무기에 대해서)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을 이동하며 살던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살아움직였던 파지릭문화의 유적 가운데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피고 있다.

우리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의 무덤구조를 보았는데, 앞써 포스팅한 ‘얼음공주’무덤과 달리 이 무덤속에는 ‘말무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말무덤을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무덤방을 덮은 천장을 보아야 한다.

 

깊이 1.8m에 이르자 무덤방을 덮을 정도의 규모로 무덤 천정부에 해당하는 목제들이 드러났다. 무덤방의 덮개는 집을 해체해서 얻어낸 낙엽송 통나무들이다.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통나무 2개가 이어 붙은 것도 있고 이유없이 모서리에 홈이 남아 있기도 했다(그림 1). 이런 부분은 무덤의 무덤방을 만드는데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통나무의 직경은 15~20cm가량으로 통나무 38기가 놓여있었다. 이제 까지 주거지의 통나무를 무덤 천정부로 사용한 예가 없다(앞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1993년 발굴)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크 알라하 1유적은 1990년에 먼저 발굴되었기 때문에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1차 천장부, 그림에서 가장 위쪽인 부분의 통나무를 살펴보면 홈이 파인채로 통나무가 놓인 것을 알 수 있다.

 

 

무덤의 동북쪽에는 나무로 만든 덮개가 없고 큰 돌과 흙으로 채운 말무덤이 있었다. 말무덤은 파지릭 유적의 1호, 4호, 5호분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말무덤은 1차 무덤방을 통나무로 두르고 그 안에 말무덤을 설치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말무덤의 크기는 3.7×0.9m구역 안에 9마리의 말이 부장되었다. 모든 말은 투부라고 하는 쇠도끼로 말의 이마를 내리쳐서 죽였는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말은 두 층으로 묻었다. 7 마리는 머리가 서쪽이고, 2마리는 동쪽으로 향했는데, 말 그대로 빽빽하게 묻었다. 말의 뼈를 분석한 결과 말은 봄에 묻혔다(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말은 9마리이지만 말을 장식하고, 말에 착장한 마구는 모두 7벌이 확인되었다. 5벌은 말에 채워졌고, 2벌은 그 옆에서 확인되었다. 모든 마구는 목제로 제작되었다. 그 중 네 마리에는 철제로 된 재갈이 채워진 채로 확인되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말무덤, 그림1에서 나무로 덮은 곳이 아닌, 돌과 흙으로 덮인 곳의 아래부분에서 말무덤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Гребнев И.Е., Васильев С.К. Лошади из памятников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Южного Алтая / Приложение // Полосьмак Н.В.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Новосибирск: Наука, 1994. С. 106-111.(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알타이 남쪽의 파지릭문화에서 출토된 말)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도 알타이 산맥 중에서 우코크 라고 불리는 고원에 위치한 무덤을 살펴보는 중이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확인되는 문화를 파지릭 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의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지난 달에는 별명이 얼음공주라고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무덤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무덤을 살피고 있다.

우코크 고원의 위치는 어제 포스팅에서 찾으실 수 있다.

 

이 무덤은 얼음공주 무덤보다 3년 일찍 발굴되었다. 무덤을 절개한 면은 그림1과 같다.

무덤의 제일 윗 부분은 움푹들어 갔는데, 원인은 가장 바닥에 있는 무덤방인 목관의 천정부가 내려앉아서이다. 주로 목재가 썩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언제가 공개하게 될 파지릭 유적에서는 천정부가 완전히 내려앉아서 무덤의 최상부가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무덤방은 얼음으로 차 있다고 보고서에도 적혀 있고, 실제로 그림 1에도 얼음이 표시되어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단면도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계속 얼음이 차 있었다면, 무덤방이 내려 앉았을 이유가 없다. 도굴일가능성? 도굴되었다면 무덤방의 뚜껑 및 그 아래의 관도 모두 도굴당했을 것이다.

외부의 요인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상부는 가장 중간이 약간 씩 내려앉은 모습이다.

무덤구덩이는 무덤방 위와 무덤방이 아닌 말무덤 위를 채운 공간의 돌은 크기가 다르다. 말무덤 위는 2.6m까지 큰 돌로 채웠고, 무덤방 위에는 무덤구덩이를 만들 때 퍼 낸 흙으로 다시 덮었고, 깊이 1m가 되어야 큰 돌이 나오기 시작했다. 얼음층은 깊이 0.5m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무덤구덩이의 깊이는 2.9m 가량이다. 구덩이를 파자 9줄의 통나무가 양쪽으로 쌓여진 것이 확인되었다. 길이 4.6m두께는 9cm정도이다(그림2). 무덤구덩이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서 쌓았다. 발굴할 때도 이곳이 무너지지 않게하기 위해서 철제 사다리를 받쳐두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그림1을 좀 더 자세하게 확대.

 

무덤 단면도를 공개했으나, 이제 여러분은 모두 다 눈치챘을 것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2명이라는 사실을,,

통나무관이 2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상상하시나요?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고분 중 가장 최상급이라고 여겨지는 파지릭고분을 발굴한 루덴코는 남성이나 여성의 상의가 거의 일치한다고 했다. 여밈없는 셔츠 스타일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의 1호분 고분에 묻힌 여성이 입은 셔츠는 매우 길어서 무릎까지 내려온다. 등쪽 길이는 113cm, 앞쪽은 110cm, 넓이는 80cm이다. 소매는 어깨끝을 기준으로 60cm가량으로 손을 덮을 정도로 내려온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셔츠는 앞과 뒷부분은 각 각 다른 천으로 기운 것이다. 목과 어깨, 소매끝, 셔츠의 중앙은 붉은색 양모로 꼬은 끈을 달았다(그림1).

 

그림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얼음공주의 상의, 필자촬영

 

상의를 만든 천은 넓이가 130cm이상이다. 이 제품은 실크제품이다. 그런데 현재 알려진 고대 중국의 실크는 너비가 48~50cm정도이다. 이 너비는 실크를 짜는 직조기의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이 보다 넓은 실크는 당대가 되어서라고 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것을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와 스위스의 Abegg-Stiftung에서 독자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산 실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실크는 1㎠를 기준으로 그 치밀도가 80(날실)×33.5(씨실)의 조직으로 짜여졌다. 실크섬유조직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양잠용인 아닌 야생누에에서 뽑아낸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나방고치에서 뽑은 것이다. 당연히 중국 실크는 양잠용에서 뽑아낸 것임으로 중국산이 아니다.

 

이 비중국적 실크는 동투르케스탄(현재의 중국 신강성)혹은 인도 동북부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동투르케스탄에서는 기원전 2~1세기가 되어서야 나옴으로, 이 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5세기 임으로 맞지 않다. 그래서 인도의 야생실크를 뽑는 기술(Dhamija 1995)에 주목을 했다. 현재까지도 아쌈과 인도의 동쪽 일대에서는 야생실크를 만드는데 누에고치가 아니라 식물의 잎을 파먹는 벌레로부터 뽑아낸다(드자야크리쉬난 1987).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는 하의는 양모로 직조한 천 3단을 이어붙였다. 전체평면형태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길이는 144cm, 위쪽의 넓이는 90cm, 하단의 넓이는 112.5cm이다. 상단과 하단은 붉은색, 중단은 흰색이었으나 현재는 황색으로 퇴색되었다. 가장 상단의 너비는 52cm, 중앙부의 너비는 51cm, 하부의 너비는 39cm이다. 옆부분의 솔기는 한쪽이고 한쪽으로 겹치게 해서 입었다(그림 2). 

*양모를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가 아닌 직조로 한 것이다. 앞의 포스팅에서 양모로 하의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펠트가 아닌 직조한 천이다. 양털을 실로 만들고 날실과 씨실을 교차해서 만드는 직조한 양모천이 얼음공주의 치마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와 유사한 치마는 2번 더 발견되었는데, 알타이 산맥에서와 중국 신강성에서이다. 알타이 산맥에서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가 붉은색 천과 녹색의 양모펠트를 번 갈라 꿰매어 붙인 것이다. 중국신강성 유적은 수바쉬 유적 6B고분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거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와 거의 복제한 듯 이 똑같은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중국 수바쉬 유적의 6B고분출토품도 탄소연대측정한 결과 기원전 4세기대로 측정되었다(Mair 1995)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치마

 

 

참고문헌

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Лубо-Лесниченко Е.И. Китай на шёлковом пути.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332 с.(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중국 실크의 길)

Джаякришнан Ш. Ткачество // Индия. М.: Прогресс, 1987. С. 67-73.(드자야크르쉬난 1987, 직물//인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Dhamija J. The woven silk of India. Marg Publications, 1995. 156 p.

Mair V.H. Mummies of the Tarim Basin // Archaeology. 1995. March/April. P. 28.3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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