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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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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17. 21:26 실크로드, 교역의 역사

https://blog.naver.com/eastsearoad/223386390269

 

 

위대한 선우는...

필자가 읽고 있는 러시아의 역사가가 쓴 책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흉노의 국가 구조에 대한 작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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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 씀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여성들이 썼던 원통형 모양의 티아라는 이웃한 지역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라르투와 페르시아 등지에서도 주로 남성과 그리핀이 쓰고 있다. 아마도 당시에 유라시아에 매우 유행했던 모자였다고도 여겨진다.

 

고깔모자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주로 쓰고 다니던 모자이다. 흑해지역의 대형무덤에서 나온 것들은 유기질제 모자(가죽, 천)에 금장식을 붙여서 만들었고 양 옆으로 베일을 달았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고깔모자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발굴되었다. 베일과 장식판의 위치 남은 유물로 보아서 고깔모자를 썼다고 밖에 볼 수 없다(그림 1).

 

그렇다면 삼각장식판으로 고깔모자를 만든 유물은 매우 드문경우이다. 그래서 아마도 트라키아 문화와 매우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깔모자는 남성들도 썼다. 실제로 유물로 발견되지 않는데 대부분 썪어서 없어져서다. 대신에 유물 속에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이 관찰된다.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의 남성, 이웃한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궁전벽화에도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이 나온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출토 예

 

그림 2.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벽화

 

하지만 이들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물이다.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여성은 사슴장식을 한 고깔모자를 착용하고 있었고, 기원전 5세기에도 그 전통은 이어진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가 흑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스퍼러스 왕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기원전 5세기 경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이 국가는 그리스 문화의 색채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스 문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포스팅 참고).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astsearoad.tistory.com

 

그런데 이들의 지도자 이름 가운데 아스푸르그, 파르조이 등 이란 출신의 이름이나 사브로마트라고 하는 민족명도 있었다. 아마도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1세기에는 특히 보스포러스 왕국 인구의 인종 구성은 크게 혼합되었던 것고 생활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유목생활방식과 흑해 북안의 대초원의 호전적인 성향이 유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된 벽화는 유르트를 묘사하고 있다. 또 케르치 해협에서는 이 시기의 4바퀴의 수레 점토모형도 발견되었다(그림 1). 유목민의 텐트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마차에 부착되었고, (그림 2) 소는 텐트 주변에서 풀을 뜯고 치즈와 우유를 먹었다.

 

사르마트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축업을 했는데 특히 유목생활을 했다. 지리학자는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동했던 것으로 기록했다. “ 그들은 무리를 따라가며 항상 가장 좋은 목초지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데 여름에는 평야, 겨울에는 아조프 해 근처의 늪에서 지낸다.

 

 

그림 1. 기원전 1세기경 보스포러스 지하의 벽화 그림

 

 

 

그림 2. 기원후 1~2세기 케르치반도. 수레모형, 토제품, 1900년도에 구입함.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유사성은 쿠르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로는 무덤이 일렬로 늘어져서 언덕 위에 축조되거나 가장 높은 지역 주위에 그룹화되어서 발견되었다. 사르마트 사람들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고대 무덤에 개인 소지품,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음식(고기 및 음료) 등을 넣었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22. 09:22 책소개

 

인쇄 중인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에서 아직 블로그에 공개되지 않은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 한 부분은 환동해문화권 고고자료와 고아시아족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오클라드니코프가 자신이 발굴한 고고자료를 민족과 접목하면서 생긴 것이다. 그가 민족지자료로 고고자료를 해석하려 한 점은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토제 인간형상물의 용도가 민족지 자료로 보아서 집과 관련된 제의적인 유물일 수 있다는데 동의한 부분이다. 또한 무덤에서 나온 자료를 민족지자료와 비교해서 얻은 성과도 상당하고 필자도 한국고고학에서 이러한 부분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1. 바이칼 유역의 글라스코보 문화와 민족지자료의 비교, 1~23: 우스티 우다 4호 출토품, 24: 나나이족 샤먼의 모습

 

하지만 정정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여러 논고를 통해서 고아시아족을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사람들로 생각했다가 고고학 자료가 증가하면서 기원전 일천년기의 철기시대 폴체문화와 관련시켰고, 다시 만주-퉁구스족으로 정정했다.

그가 최초로 언급한 고아시아족인 나나이족, 울치족은 현재는 만주퉁구스어군으로 분류되고, 고아시아족 혹은 고시베리아족 혹은 니흐브족이 해당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연구성과가 쌓이면서 생긴문제이기 때문에 오클라드니코프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는 당시에 충실하게 연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클라드니코프는 아무르강과 연해주의 신석기시대 주민이 고아시아족의 원류임을 전하면서 한국을 언급했는데, 동삼동 유적의 토기 및 패총을 들어서 연해주와 한국의 신석기시대 주민이 밀접하게 접촉했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65).

문제는 이 연구관점이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져서 한국민족의 원류가 퉁구스 및 예맥인이 아닌 고아시아족이라는 관점일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고아시아족으로 예를 든 바이칼 유역의 글라스코보 문화는 신석기시대가 아니고 순동이 확인되는 시대이며, 한국동삼동 유적과 연해주의 신석기문화는 관련성이 크지 않다. 물론 연해주와 강원도는 환동해문화권이지만 동해안의 양양 오산리 이남의 자료인 죽변, 세죽과 같은 출토품은 오산리 유적과 관련성이 더 많다.

오클라드니코프의 논저 당시에는 알려진 동삼동 유적의 예는 미국인 샘플이 조사한 것을 주로 참고했을 것인데, 그 이후에 동삼동 유적은 다섯 번에 걸쳐서 재조사되었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연해주 신석기인과 한반도 신석기인의 ‘관련성’을 ‘접촉’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를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원류로 파악하고, 더 나아가 고아시아족으로 해석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한반도 소백산맥 이동의 남부지역에는 독자적인 신석기문화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남부지역 신석기문화가 단계적으로 발전된 사실은 자명하다.

따라서 환동해문화권의 동심원문 암각화가 소백산맥 이동에서 확인된다고 해도 이는 환동해문화권 사람들과의 교류 흔적이며, 환동해문화권이 고립적인 지역이 아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반도 남부지역 신석기문화 전체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할 수 없고, 더욱이 아무르강 민족문제와도 관련시키기도 힘들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서 가장 늦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는 막대기 끝 장식으로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르김파사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발굴품은 아니고 유적에서 우연히 무덤의 봉분이 무너져서 노출된 것이다. 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유물 가운데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여신이 있다.

 

기본판은 철로 만들어지고, 금판(얼굴이 있는 면)(그림 1-1)과 은판(뒷면)(그림 1-2)을 덮어서 만든 것이다. 이 여신은 날개가 있고 양손에 동물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가슴에는 동심원문양, 하단에는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양 날개와 이마, 손에 쥐고 있는 동물, 다리와 다리 아래의 알 수 없는 장치에는 구멍을 뚫고 은못으로 금판을 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뒷면에도 남아 있다(그림 1-2).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유물이다.

 

 비슷한 유물이 한 점(그림 1-3,4) 더 출토되었는데, 거의 같은 모습이고 같은 방법으로 제작되었지만 여성의 표현으로 보아서, 쌍(pair)은 아니다. 날개의 표현이 다르고, 여성의 하반부 옷자락 표현, 못의 위치에도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쌍으로 만들었지만, 현재 유물의 상태가 별로인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림 1의 여성과 비슷하게 만들었으나 더 잘 못 만들어졌다.

 

 

그림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출토, 1851년 발견품, 철제(기본판)+은판+금판, 1: 10×12cm, 3: 11.6×12.8cm

 

 

헤로도투스(I권 105)에 따르면 스키타이 인들은 근동에서 숭배하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숭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시리아의 도시 아스칼론에 있는 아프로디테 우리니아 신전을 훔쳤고, 여신은 ‘여성질병’으로 그들을 처벌했다고 한다.

IV권(67)에서 이 여신을 숭배하는 스키타이 사제는 내시로 이른바 에나레이라고 하는 설명이 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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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르타모노프는 날개 달리고 양 손에 동물을 쥔 여성을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신 중 타비티, 아피, 아르김파사 중에 한 명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신앙은 그리스 신화 뿐 만 아니라 중동에서 믿는 아타르가티스(그리스명: 데르케토, 반은 여자, 반은 물고기로 시리아의 아스칼론 신전에 새겨져 있다.), 키벨레(땅, 물, 동물의 여신)와 같다. 그래서 스키타이 여성 형상물을 신화속의 인물과 비교해서 찾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알렉세예프 2012).

 

헤로두투스도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신앙이 I권에서는 시리아의 도시에서 숭배되는 것으로 했다가 나중에 IV권에서는 그리스 신화와 비교했다.

 

신화 속의 인물을 찾는 것은 분명히 흥미로운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신화가 어떤 특정 민족의 것이나 나라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누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인간 보편의 생각과 두려움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신앙 혹은 신화, 역사는 깡그리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대충만들고, 수입해서 쓰고.....

상투적이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이런 말이 생각난다.

 

참고문헌

 

Полин С.В., Алексеев А.Ю. 2018 :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Александрополь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в Нижнем Поднепровье. Киев, Берлин: «Видавець Олег Філюк». 2018. 930 с. («Курганы Украины». Т. 6)(폴린, 알렉세예프 2018, 드레프르강 하류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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