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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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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스키타이 문화사람들이 묻힌 장소인 유스티드 XII 유적에는 인간도 2명 이상 매장되지만 말도 2필 이상 매장되는 경우가 있다. 3호, 10호, 13호, 16호, 23호, 25호이다. 그 중에서 사람은 1인이 부장되었으나 말 2필 이상인 경우는 3호, 10호, 13호, 25호이다. 16호와 23호에는 사람도 1명 이상이다.

 

그렇다면 사람 1명과 말 2마리가 부장된 무덤의 주인공은 유물도 많았을까?

10호와 13호는 인간의 뼈가 흐틀어진 채 발견되어서 후대에 무덤이 열렸을 가능성도 있어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3호 무덤, 1-재갈, 2-4: 금박으로 만든 유물, 5-거울, 6-말사슴 송곳니, 7-원판모양의 단추, 8-거울편,9-칼과 검 모형, 10-소형화 된 전투용 도끼, 11-전투용 도끼 연결을 위한 가죽띠, 12-달모양 장식판, 13-화살, 14, 15-칼, 16, 17-쟁반, 18-검은색 물감의 흔적, 19-검게 물들인 가죽 주머니, 20-항아리; 철제(1), 금박(2-4), 청동(5,8,14,15), 뼈와 뿔(6,13), 청동+나무+가죽(9,10,11), 가죽(11), 나무(7,12)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3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1과 일치

 

그림 3. 유스티드 XII유적의 10호 무덤, 1,2-재갈, 3-거울과 주머니, 4-말사슴 송곳니, 5-칼 편, 6-직조물 조각, 7,8-항아리 2점, 9-굴레장식, 10-금박장식, 11-낙엽수 껍질, 철제(1,2,5); 청동(3), 뼈(4), 실크(6), 토제(7,8)

 

 

그림 4. 유스티드 XII유적의 10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3과 일치

13호는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5.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1,2-재갈+재갈멈치, 3,4-굴레장식, 5,6-사다리꼴 장식판(안장의 부속품), 7-항아리, 8-잔의 손잡이, 9-칼, 10-손잡이가 끼워진 도끼, 11-활, 12-사슴머리장식, 13-말의 장식, 14-새장식, 15-동물장식의 편, 16-황금 장식판, 17,18: 목걸이 끝장식, 19,20: 황금제 목걸이 끝장식, 21-목걸이 장식편, 22-반구형 장식판, 23-이빨모양 장식판, 24-거울, 25-거울주머니 장식아플리케, 26-허리끈 장식, 27-30: 아플리케 장식(옷), 31: 쟁반편. 철제(1,2,9,10), 목제(3,4,8,11-15, 17,18,21,26,27, 31), 뿔(5,6), 토기(7), 황금판(16,19,20,23), 청동+철+황금판(22), 청동(24), 가죽(25,28-30)

 

그림6.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5과 일치

 

그림7.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6과 일치

 

 

3호(구덩이 크기 225×323cm, 나무방 175×125cm)와 25호(구덩이 크기 240×329cm, 나무방182×105cm)는 모두 인간 1명과 말 2필이 매장된 무덤이다. 3호는 여성, 25호는 남성의 무덤이다.

3호에는 도끼, 화살, 칼 등 3종 스키타이 무기가 있으나, 도끼와 칼은 소형화된 이미테이션이다. 3호는 인골은 부장된 상태 그대로 였으나, 무기(그림 1-9,10,11,13)와 청동거울(그림 1-8)의 위치가 거울과 무기는 대부분 다리뼈 혹은 골반 주위에서 출토되는데 여느 무덤과는 다르다. 거울은 깨진 채로 출토된 적이 거의 없는 점도 다르다. 게다가 머리 위에서 확인된 금박유물은 모자장식이었는데 그 부분도 의심스럽다. 10호와 13호는 인골의 위치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에서 언제 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도굴되었을 수 있다.

 

 

앞서 살펴본 19호무덤에는 인간1명과 말 1필이 매장된 무덤으로 25호(인간 1명, 말 2마리)와 무덤구조가 거의 유사하다. 무덤 간의 차이는 있지만 부장품의 양이나 질이 확연하게 차이가 있지는 않아 보인다. 19호에 있는 여러 장식(그리핀 포함)은 여성의 의복이나 머리장식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25호에서는 맹수장식은 남성용 목걸이 장식이며 실제 크기의 투부(전투용도끼)와 화살도 남성의 것이다.

그래서 인간 1명에 말 2필이 들어간 무덤과 말 1필 무덤의 부장품의 차이는 여성용과 남성용 정도로 생각된다. 그러나 남성무덤에만 말 2필이 들어간다고 할 수 없는 것은 3호의 여성무덤에도 말 2필이 부장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는 스키타이의 여신인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표현된 유물들이 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후반기에는 여신의 모습이 각 유적 마다 차이가 있다. 침발카 유적에서는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쥔 여성, 쿨 오바 유적에서는 어깨에 그리핀이 달리고, 한 손에는 단검, 다른 손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성이 확인되었다. 볼쇼야 블리지니차 유적에서는 그리핀과 손의 표현은 없고 대신 날개달린 여성이 장식판에 표현되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기원전 450~400년(기원전 5세기 후반)에 해당된다(알렉세예프 2003).

 

*앞의 포스팅에서 유적의 연대를 기원전 4세기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마다 약간씩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세예프가 정리한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연대는 유적에서 채취한 탄소연대와 유적의 유물을 직접 비교한 그간의 업적을 총정리 한 것이다.  비교적 유적의 연대를 세분화 하고 있어서 그가 정리한 연대를 참고로 하고자 한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에게 날개가 생기고, 양 손이 모두 표현된 유물이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다. 이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대형고분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기원전 300년 경(기원전 4세기)에 해당된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이 유물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다고 했으나(아르타모프 1966), 두 손에 옷자락 끝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막대기 끝을 장식하는 일종의 간두식(竿頭飾: 막대기 머리 장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의례용품이다.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15.7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은 흑해에서 가장 큰 무덤 중에 하나인데 높이가 21m 이상인, 둘레길이는 320m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3).  봉분 주변으로는 흙으로 된 벽이 둘려져 있고, 해자도 설치되었다(그림 4-4). 1851년에 봉분의 남쪽에서 철판이 확인되고, 그 때 청동으로 만든 여신(그림1)의 여신과 청동 삼지창(그림 2)이 함께 노출되었다. 발굴은 1853년, 1855-1856년에 했다.

 

그림 2.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28.9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매장주체부는 가장 중앙에 만들어져 있다. 중앙 무덤의 통로에는 인간 두개골이 확인되었고, 복도의 앞부분에는 말 뼈가 확인되었는데 14마리 이상이었다. 이곳에서도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봉분의 북동쪽에는 두 번째 무덤이 있는데, 봉분이 만들어진 이후에 생긴 추가장이다. 입구와 무덤방으로 연결되는 복도로 구성된 것이다. 두 무덤방 모두 도굴당한 흔적이 생생하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은 도굴이 매우 극심했지만 남아 있는 유물로도 매우 중요한 무덤임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의 체르도믹 유적, 솔로하 유적과도 다른 무덤 구조이다. 두 유적의 무덤은 외형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지만, 내부는 그리스식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프키폴 유적은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양식 그대로이지만 당대에서 가장 크게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림 3.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발굴 전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의 단면도, 단면도에서 점선으로 그려진 것은 도굴의 흔적을 그린 것이다. 1,2-도굴입구, 3-추가장(북동쪽 무덤방)의 무덤방단면도, 4, 봉분과 중심무덤방의 동서단면도, 5-중심 무덤방의 남북단면도, 6,7,8-중심무덤방 복도의 단면도

 

 

알렉산드로프스키폴에서 나온 아르김파사는 동물문양이 없고, 날개와 손이 있는 여신이다....

이 모습이 스키타이 인들이 믿었던 신화속의 인물일까?

곧 없어질 자신들의 세상을 알았을까?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츠와 러시아 고고학자인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에서 황금유물이 유명하다.

 

이미 소개해 드린 은제거울, 표범방패장식, 화살통 장식 등이 있다.

 

2020/02/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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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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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개해 드리지 않은 유물 가운데는 황금으로 된 그릇이 있다. 두 개는 세트인데, 하나는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꽃 잎과 마름모문양이 반복되어 표현되었다. 동물문양은 그릇의 바깥이 음각한 것이고, 기하학적 문양은 그릇의 바깥을 양적으로 표현했다.

 

가장 상단에는 타조, 2번째 열에는 사슴바닥에는 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코젤(산염소), 카프카스 염소(Caucasian tur), 사슴이 교차해서 배열되어 있다. 사슴 등에 올라탄 사자(그림 3-2)와 코젤을 쫏고 있는 늑대(그림 3-1)도 2번째 열에 배열되어 있다. 3번 째 열에는 사슴, 코젤(산염소), 염소가 앉아 있고 바닥에는 꽃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그림 4).

 

그림 1.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슐츠 발굴품

 

그림 2.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3.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4. 그림1의 평면도(루덴코 1960)

 

 

켈레르메스 유적이 흑해 부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인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릇에 나타난 사슴그림은 흑해북쪽에서 가장 빠른 사슴문양이다.

 

그런데 이 그릇에 나타난 사자, 타조는 스키타이 지역에는 없던 문양으로 앗시리아와 관련있다. 앗시리아 문화에서는 타조문양이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사자도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문양으로 코카서스 산맥 이남에서 올라온 문양이다. 사자가 이 지역에 등장한 것은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보다 이전인 청동기시대 마이코프 문화에서 확인된 바 있다. 코카서스 남부지역과 교류가 처음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던 주제 뿐만 아니라 동물을 나타나는 방법 중에 갈비뼈를 드러내는 방법은 흑해 북쪽 및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양과는 관련이 없는 앗시리아 양식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사슴과 표범으로 장식된 화살통장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사슴의 표현방법이 몸통과 뿔에서 차이가 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흑해에서 원래 살던 킴메르 인들은 스키타이 사람들 때문에 인접한 소아시아로 도망갔다. 킴메르 인들을 추적해서 코카서스 산맥 남쪽까지 내려오게 되는데, 앗시리아 연대기는 이 시점을 기원전 670년 부터라고 기록했다.

고대 오리엔트 기록에는 기마병단을 보유한 스키타이 유목민족 때문에 거의 100년 동안 고생하고 공포정치로 치를 떠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점도 석연치 않은 것이 스키타이 인과 앗시리아는 기원전 680년에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고 스키타이 사람들은 앗시리아를 도와서 앗시리아의 수도를 공격하는 메디아인을 섬멸했다. 기원전 623-622년.

 

스키타이 인들은 앗시리아 인을 도와서 메디아를 함께 막아 주었건만 정작 속 뜻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앗시리아 입장에서 쓴 기록이 좋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흑해북쪽의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사람의 무덤에서 인접한 지역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그리스, 앗시리아 물건,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앗시리아의 물건은 페르시아의 물건으로 바뀐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잔은 앗시리아와 그리스에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을 ‘phiales’라고 부른다. 피알레스는 왕권을 상징하는 그릇이다. 실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학계에서 처음 이해하던 스키타이인은 흑해 북쪽에 거주하던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이다. 현재는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시베리아까지 스텝지대의 광대한 초원지대에 거주하면서 공통된 경제적, 문화적 생활을 영유하던 여러 문화의 복합체로 스키타이 세계 혹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도 한다. 가장 쉽게 이해하면 넓은 지역의 각 문화가 공통된 경제활동을 하는 연합국가?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이해를 흑해 북안으로 부터 이해한 것은 이 지역을 가장 먼저 발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타이를 발굴한 것은 20세기 초반 혁명 이후에 활발했고, 흑해북안은 아직 로마노프 왕조일 때부터 발굴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발굴한 무덤은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엘리자베트그라드에서 1763년에 시작되었다. 이 유적의 유물은 표트르 1세가 건립한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아직 궁전이었음)에 보관되었다. 그때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는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금제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흑해북안의 유적은 쿨오바를 1830년에 발굴하고, 1859년에 러시아의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황금유물로 잘 알려진 흑해북안의 유적들은 19세기 중후반에 발굴되었다. 특히 이 지역의 고분은 봉분이 매우 높아서 쉽게 일반인들에게 노출되었고, 도굴도 극심했다.

 

흑해북안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알려진 것은 1903년과 1904년에 발굴된 켈레르메스(Келермес, Kelermes) 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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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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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연구자들이 발굴해서 1903년 부터D.G. Shultz(23,24,29호) 및 러시아고고학자 베셀로프스키(18호, 24호,31호)가 발굴했고, 1980년대에도 갈리아나와 알렉세예프가 발굴조사했다. 1980년대 조사에서는 고분을 33개 발견하고 그 중 21개를 발굴했다. 1980년대 조사하면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하면서 만들어진 고분번호를 새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림 1에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은 18, 24, 31호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스키타이 고분, 20세기 초반의 발굴과 1980년대 발굴이 구분되어 있지만, 1980년대에도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31호를 계속조사했다.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고분자료는 그림 2만 남아 있고, 유물만 남겨진 상태이다.(갈리아나 2006), 유적의 평면도는 1980년대 조사하면서 작성된 것이다. 

 

 

 

 

그림 2.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당시의 무덤 1호, 현재는 그림 1의 24번이다. 검은색 점은 무덤방이 설치된 기둥구멍이고, 점선은 매장주체부의 위치이다.

 

유적은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서 2km로 계속 이어졌다.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이른 청동기시대 문화인 마이코프 문화, 얌문화의 무덤도 확인되었다. 유적에서 북쪽에 위치한 6개의 스키타이 무덤은 유적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기원전 8~7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고분의 높이는 4~7m였다.

 

유적은 이미 파괴가 극심해서 1980년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조사하면서도 유적의 범위와 고분의 대략적인 형태만 알아 냈을 뿐이지 무덤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무덤의 구조를 알 수 있는 것은 베셀로프스키가 남긴 그림2의 도면뿐이다.

 

평면형태는 정사각형으로 무덤의 크기는 40㎡로 알려졌다. 말이 최대 24마리까지 묻혔고, 무덤방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말은 화려하게 금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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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된다. 살아생전에 함께 사용하던 일상용구 중에 특히 식기는 무덤방 안에 관 밖에 몇 점 부장되었다. 말은 무덤방 바깥에 무덤구덩이의 북쪽벽에서 늘 확인되는데, 대부분 마구를 착장한 말이 많다.

투엑타 1호분은 말이 8마리 매장되었는데, 다양한 굴레장식(그림4 참고, 마구용어)이 확인되었다.

초본류를 형상화한 것과 동물을 형상화 해서 장식판으로 사용했다.

그 가운데 동물은 사슴, 호랑이, 그리핀 외에도 동물을 간략화한 굴레장식도 많다.

그리핀은 알타이에서 가장 많이 확인되는 독수리머리와 맹수의 몸통을 결합한 것이다. 독수리머리그리핀은 머리만 굴레장식에 많이 활용되었다. 이 유물은 100년 뒤의 파지릭 유적, 아크 알라하-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등에서도 계속 확인된다.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뿔, 귀, 갈기가 독수리 머리에 합체되면서 생성된 것인데, 갈기가 없는 그리핀(그림 1)도 설명드렸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

 

독수리 머리 그리핀과는 다른 종류인 합성동물도 있는데 호랑이가 주인공이다.

호랑이 머리 아래에 구름 혹은 날개가 붙은 장식판(그림 2)이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

 

또 호랑이 머리에 사슴뿔을 부착한 유물이 확인된다(그림 3).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 뿔 달린 호랑이, 가죽 아플리케

 

 

가죽으로 제작된 것으로 파지릭 유적 1호분에서 안장장식으로 가죽으로 표현된 동물문양이 있어서 이 유물도 안장장식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합성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그리핀의 여러 종류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이 유물은 다른 각도에서도 볼 수 있다. 호랑이와 사슴의 결합(동물투쟁문의 요소)이라는 점이다.

 

 

그림 4. 마구 명칭

 

 

파지릭 유적과 투엑타 유적의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파지릭 유적의 유물을 소개한 것이 유투브 동영상에 떠서 소개해 드린다. 대부분 5호 출토품이다. 

코로나 약(백신 혹은 치료제)나오기 전까지 못갈 것 같은데, 구경하시기 바란다. 

 

youtu.be/rAvoeqxfEHI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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