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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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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울란디르크 계곡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8개 있다.
어떤 무덤이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을까?
우선 무덤이 가장 많은 울란디르크 I유적을 보자.

 

울란디르크 I 유적에서는 14기의 스키타이 문화 무덤 가운데서 열의 가장 마지막 무덤 3기 13~15호는 12호와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I유적에서 가장 뒤의 3기가 가장 늦게 만들어진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무덤방의 구조와 말의 유무, 무덤의 두향 때문이다.

특히 13호에는 무덤방의 결구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울란디르크 계곡의 유적은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과는 결구 방식이 다른 무덤이 있다는 점은 이미 설명드린 바 있다)

 

13호의 무덤방은 북서벽->북동벽->남동벽->남서벽의 순서대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양 무덤방벽을 결구 할 때 나무기둥의 끝을 납작하게 다듬고 凹凸 모양(그림 2-b)을 내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림 1. 울란디르크 I유적의 13호 평면도와 유물

 

 

 

그림 2. 울란디르크 I유적의 13호 상부와 단면

 

앞서 살펴본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은 무덤의 짧은벽(동서벽)위에 긴 벽(남북벽)을 결구한 것이다. 위에 올라가는 나무의 아랫단을 잘라내어서 하단의 나무기둥과 맞추어서 무덤방을 짠 것이다.

 

물론 13호의 무덤방의 나무기둥은 나무길이도 딱 맞게 잘라내었다. 그리고 그림에서는 표시가 잘 나지는 않지만 나무의 두께도 얇아진다.

 

 

15호에서도 13호와 비슷한 나무결구방식(그림 3)으로 무덤을 만들었다. 말은 매장되었으나 무덤구덩이 바닥이 아니라 약간 높은 위치에 묻혔는데(그림 4),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보고는 없었다. 이 말은 재갈멈치를 끼우는 고리가 방형에 가까운 청동재갈(그림 3-1)을 물고 있었다.

 

 

 

그림 3. 울란디르크 I유적의 15호 평면도와 유물

 

 

 

그림 4. 울란디르크 I유적의 15호 상부와 단면

 

 

14호는 13호, 15호와 나무 결구방식은 다르고, 이미 보았던 결구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쿠바레프는 이 유적에서 무덤방의 결구방식과 말의 매장 유무 외에도 무덤의 두향도 축조시점의 차이로 보았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키타이 무덤의 두향은 동향인데, 13~15호는 두향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 청동제 재갈(그림 5-2)과 장식성이 전혀 없는(그림 5-3) 재갈멈치도 이제까지 보왔던 재갈멈치와 다르다.

 

그래서 울란디르크 I유적의 끝에 붙은 3 무덤은 가장 늦은 시기로 기원전 2세기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보았다. 어쩌면 이미 스키타이 시대가 아니다.

 

 

 

그림 5. 울란디르크 I유적의 14호 평면도와 유물, 1-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굴레장식, 2-청동재갈, 3-목제 재갈멈치, 4-장식판, 5-항아리편, 6-목제 잔, 7-청동제 바늘, 8-목제 쟁반, 9-말의 턱뼈, 10-가죽장식, 11-목제 쟁반

 

 

 

그림 6. 울란디르크 I유적의 14호의 유물, 번호는 그림 5와 일치

 

청동재갈은 기원전 6~5세기 무덤(파지릭 유적 2호분, 투엑타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등 그 외 다수)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의 말에서 처음 철제 재갈이 발견된 이후에는 계속 기원전 4~3세기까지 그리고 기원전 2세기에도 철제 재갈은 사용된다.

하지만 이 무덤에서 두향이 바뀌고 철제가 아닌 청동재갈은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마지막 시기의 무덤의 징표로 여겼다. 그리고 멧돼지 모양 송곳니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유물로 보았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추야 강 지류인 유스티드 강의 계곡에 있는 유적 가운데서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는 이 유적에서 매우 특이한 무덤이었다. 외관으로도 21~22호와 연결되었고, 내부에도 다른 무덤에는 없던 바닥과 무덤의 서쪽벽 위에서 자작나무 껍질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자작나무 껍질은 주로 말의 다리 아래에서 확인되는 점과는 차이가 있었다. 바닥아래에 나무가 깔리지 않는 공간은 주로 그릇을 두는 공간으로 비워 두지만 이곳에도 사람을 묻는 점도 달랐다.

 

이 무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무덤이 울란디르크 강변의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울란디르크 I유적의 11호무덤이다. 울란디르크 I유적에서는 무덤 17기가 확인되었다(그림1).

 

그림 1. 울란디르크 I유적, 검은색 동그라미가 무덤, 화살표가 가르키는 곳이 북쪽

 

그 중에서 11호 무덤(직경 10.5×11m,높이 20~30cm)은 별로 크지 않다. 깊이 1.3 m가량의 구덩이안에 2중 나무 무덤방(외부: 220×160cm, 내부: 143×83cm)이 있었다. 통나무는 낙엽수(자작나무)로 직경이 28~32cm가량 되는 것이고, 가장 긴 통나무는 240cm짜리도 있다. 무덤방은 6개의 통나무로 덮고 그 위를 자작나무 껍질로 덮었다. 무덤방과 무덤구덩이 사이에 남서쪽 빈 공간에도 통나무로 채웠다.

울란디르크 계곡과 유스티드 계곡의 무덤 안에 인골의 두향은 대부분 동쪽이었으나, 이 무덤은 남동쪽이다. 울란디르크 I유적 전체에서 무덤이 남동방향으로 일렬로 서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유스티드 계곡의 모두 남북방향으로 무덤이 서 있다(그림1). 이 점은 울란디르크 강의 방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중 목곽묘에 자작나무 덮개까지 덮었지만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매우 소략하다. 말은 철제재갈과 멧돼지 송곳니 모양을 한 목제 굴레장식으로 장식되었다. 말의 머리에는 투부로 맞아서 구멍이 나 있었다.

 

나무무덤방 안에는 바닥에 2개의 통나무만 깔려 있었고, 바닥이 없는 공간에 나무쟁반 위에는 양의 엉덩이뼈와 손잡이에 둥근고리가 달린 철제 칼이 놓여 있었다(그림 3-2). 61cm 짜리 나무꼬쟁이도 (그림 3-7, 무덤바닥의 평면도)도 발견되었데, 그 옆에는 알 수 없는 목제품도 출토되었다(그림 3-3, 유물그림에서). 목제 쟁반 옆에는 손잡이가 둥근 목제 잔(그림 3-3, 바닥평면도)과 토제 항아리(그림 3-1)도 출토되었다.

이 무덤의 인골 두개골을 깨진 상태였는데, 그 아래에는 검은색 물감이 타원형으로 두께 1~2cm가량으로 발라져서 확인되었고 그 곳에는 금박이 확인되었다(그림 3-6, 무덤바닥평면도). 인골의 엉덩이 부근에서는 목제 빗의 모형과 손잡이가 붙은 목제거울(그림 3-4,5, 유물그림)이 출토되었다.

 

그림 2. 울란디르크 I유적의 11호분, 1-철제 재갈, 2-멧돼지 송곳니모양 목제 굴레장식, 3-자작나무껍질

 

그림 3. 울란디르크 I유적의 11호분 무덤바닥평면도와 출토유물, 인골의 두개골 부위에 타원형 표시가 검은색 물감의 범위이다. *는 금박이 발견된 곳. 인골의 두개골이 왜 깨졌는지, 이동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음.

 

울란디르크 I유적 11호의 무덤방 천장은 6개의 통나무 위에 자작나무껍질을 덮었다. 말의 위에도 덮었다(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도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유스티드 XII유적의 다른 무덤도 마찬가지였을 수 있다. 그리고 자작나무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는 계절은 늦봄과 여름이다. 기원전 5세기의 파지릭 유적 2, 5호분과 기원전 6세기의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에서도 자작나무껍질은 무덤안에서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에서 고대 자연도로 역할을 한 추야 강의 지류인 울란디르크 강 주변에는 현재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8개가 알려져 있다. ‘울란디르크’라는 명칭을 쓴 유적은 I~V번이고, 타샨타 마을과 가까운 유적은 ‘타샨타’라는 명칭을 썼다.

 

추야강의 다른 지류인 유스티드 강 유역에서 발견된 투구처럼 생긴 모자장식은 울란디르크 강의 유적에서도 발견되는데, 동물문양장식이 없는 것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울란디르크 강의 5개 각 유적에서 무덤의 개수는 차이가 있지만, 여러 기의 무덤이 열을 이루어 만들어진 것은 같다. 열을 이루는 각 무덤의 주인공은 살아생전에 가족 구성원이었다고 본다.

울란디르크 강의 유적은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들 유적에서 가장 이른 무덤으로 생각되는 무덤 중에 하나는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이다. 근거는 유적에서 출토된 마구 중에 하나인 재갈멈치와 굴레에 달았던 굴레장식이다.

 

울란디르크 I~V유적에서는 유스티드 XII, 유스티드 I 유적과 비슷하게 재갈은 잘 남아 있지만 재갈멈치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유스티드 XII유적에 둥근 구형의 장식이 붙은 재갈멈치가 남아 있는 무덤이 있었다.

그런데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에는 재갈멈치의 끝에 동물문양장식이 붙은 것이다. 이는 기원전 5세기 파지릭 유적에서 발견된 것(포스팅참고)과 비슷한 재갈멈치(그림 2-9)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유물(포스팅 참고)과 비슷한 굴레장식(그림 2-1,2,3) 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동물은 그리핀이다.

 

2020/04/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그리핀의 모습

 

2500년 전 시베리아 그리핀의 모습

그리핀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맹수몸통에 독수리 날개를 붙인 것이 표현된 황금유물을 살펴 본 바 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이었다. 그러나

eastsearoad.tistory.com

2020/0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astsearoad.tistory.com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에서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에 그리핀을 단 경우는 없었다. 그리핀이라고 할 수 없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청동거울에 새겨졌고, 맹수자세를 한 그리핀 1점은 유스티드 XII유적의 19호에서 발견되었는데, 출토위치로 보아서 머리장식 혹은 모자장식일 가능성이 있다. 즉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에서 그리핀은 인간과 관련되어 출토되었다.

 

그림 1.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 1~6: 굴레장식, 7~9: 재갈멈치, 10,11-멧돼지 송곳니 모형(목제), 12-목제 채찍 손잡이, 13-뿔제 장식판, 14-안장의 부속품, 15-목제, 벨트 조이개, 16-뿔제 장식판, 목제 그릇에 부착되었던 것, 17, 18-토제 항아리, 19-목제 머리이마장식, 20,21-청동제 귀걸이, 22-목제 머리장식, 23-무릎을 꿇고 있는 목걸이의 끝장식 목제, 24-머리 혹은 모자장식의 일부, 25-머리장식, 26-목제 산양장식, 뿔은 가죽과 뿔로 조각, 금박으로 장식, 27~29-산양장식, 30,31-말 장식, 32-청동제 동물문양장식, 33-새모양 장식, 34-사슴장식으로 하단에 펜던트가 부착되었음, 머리장식, 35-목제의 다양한 펜던트, 36-목제 검집, 37-목제 멧돼지 송곳니 모형, 38-목제 장식판, 39-뿔과 나무로 만든 화살촉, 40-목제 활 대, 41-목제 원형 장식판, 42-목제 고리트 장식, 43-목제 송곳? 44-거울을 담는 주머니를 장식한 가죽 아플리케, 45, 46-청동거울, 47-목제 장식판, 48-목제 허리띠 장식, 49-목제 전투용 도끼, 50-목제 방패, 51-목제 쟁반, 52,53-손잡이 있는 목제 잔

 

그림 2.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3.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4.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5.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49번 이후의 유물은 이곳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발견되면 보여드리겠음)

 

그러나 지난 겨울부터 살펴본 우코크 고원(아크 알라하-3 유적, 아크 알라하-1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파지릭계곡의 그리핀은 주로 말을 장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기원전 4세기) 그리고 지역이 바뀌면서 그리핀의 존재자체가 희미해지는 듯 해 보인다. 그러나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은 앞 세기의 특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무덤으로 생각된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탄소연대와 함께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는 마구와 화살촉이다(쿠바레프 2007, 추구노프 2000). 기술발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Чугунов, К. В. “Бронзовые наконечники стрел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Тувы.” Мировоззрение. Археология. Ритуал. Культура. Сборник статей к 60-летию М. Л. Подольского. СПб, 2000. С. 213-238.(추구노프 2000, 투바의 스키타이시대의 청동 화살촉에 대한 고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에서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유적은 유스티드 강과 인접한 산이 만든 곳에 위치한다. 이 강은 추야강의 지류이다.

추야강은 알타이를 북서와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현재에도 이 강을 따라서 알타이를 이동하는 주요도로가 나 있다. 이 도로(P-256)를 따라서 몽골의 서부로 연결된다. 반대편으로 이 도로를 따라서 가면 카프카스 산맥까지 연결되는 대상도로이다. 협곡사이로 꼬불꼬불하게 연결되는 매우 아름다운 도로이다.

추야강은 그 언제가부터 계속 이용된 자연교통로이다. 그 강의 지류에는 수 많은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 유스티드 강은 추야 강에서 북쪽방향으로 갈라진 강이고, 강의 중류에 무덤이 위치한다. 무덤은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만들어졌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유스티드 강과 반대편으로 뻗은 강은 울란드리크 강이 있다. 이곳에도 유적이 있는데, 모두 8개로(유스티드 I~V, 타샨타 I~III유적)이다. 타샨타는 이곳의 마을명을 그대로 유적이름으로 붙여서 발견순서대로 번호를 매긴 것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발견된 투구모양의 머리장식을 소개하면서 인접한 지역의 유적으로 울란디르크 유적을 잠시 소개한 바 있다. 그 중에서 동물문양장식이 없으면서 이 유물의 출토위치가 인골부근이 아닌 그릇 두는 곳(그림 1-14, 그림 2-14)에서 출토되었던 유물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유적에는 8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이 유적의 무덤에 대한 정보가 유스티드 계곡보다는 많은 편이다. 예를 들면 무덤상부를 덮은 직경, 깊이, 구덩이 크기와 같은 것이다. 울란디르크 유적 1호분의 지름(무덤 위를 덮은 돌의 지름)은 10m이고 높이는 50~60cm이다. 구덩이 크기는 300×240cm이다. 길이 160~170cm의 통나무 4개(무덤 한쪽벽 기준)를 이용해서 양 가장자리에 15~20cm를 남기고 무덤방을 만들었다. 무덤방의 구덩이 남쪽과 동쪽 및 서쪽에 돌을 채웠다.

 

 

그림 1.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

1-철제 재갈, 2-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굴레장식, 목제품, 3-목제 재갈멈치 편, 4-가죽조각과 목제 사슴머리장식 편, 5-목제 버클 장식판, 6-허리띠 장식판, 7-자루가 끼워진 전투용 도끼, 8-청동검, 9-목제 검집, 10-목제 단추, 11-청동거울, 12~13-목제장식판, 15-목제 화살통 지지대편, 16-뿔로 만든 화살촉과 화살대 편, 17-목제쟁반과 철제 칼, 18-토제 항아리, 19-목제 칼, 20-검은색 물감의 범위

 

 

그림 2.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의 출토유물, 그림1과 일치

 

이 유적에서는 재자리가 아닌 모자장식 뿐만 아니라 울란드리크 계곡과 유스티드 계곡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동물장식이 부착된 청동검(그림 2-8)과 전투용 투부(그림 2-7)가 출토되었다. 알타이 추야강변에서 출토되는 파지릭 문화의 청동검은 대부분 손잡이가 T자형이며, 손잡이와 날의 경계에 나비모양으로 벌어진 칼날멈추개가 형성되어 있다(그림 3).

 

그림 3. 알타이 추야강과 우르슬라강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파지릭문화의 검

 

그런데 청동검은 손잡이 끝 장식과 칼날멈추개에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것이다. 추야강 일대의 유적에서도 몇 점 출토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청동제 전투용도끼의 끝 장식도 맹수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서 검 손잡이에 동물장식을 붙이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무덤은 아르잔-2호의 5호무덤었다. 물론 이 보다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진 철검으로 금으로 상감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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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유스티드 계곡에서 확인된 무덤은 7개 유적이 그룹을 이루고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가장 동쪽의 졸린 I(8기), 졸린 II(8기), 유스티드 I유적(10기), 유스티드 XXII (2기)이다(유적은 그림 1에서 표시된 7개 보다 훨신 많음.) 그 뒤에 유스티드 XII유적, XIII(9기)유적이 발견되었다. 유스티드 계곡에서 발견된 무덤은 5천기가 넘고 대략 2개의 큰 시기(기원전 4세기 가량의 스키타이 시대)와 투르크 시대(기원후 5세기)로 나눌 수 있다. 쿠바레프는 이를 들어서 ‘죽음의 골짜기’라고도 표현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무덤 수가 확인된 곳은 유스티드 XII 유적으로 29기(그 중에 26기가 스키타이 문화, 2기는 투르크 시대(기원후 5세기)이고, 가장 작은 유적은 XXII유적으로 2기만 존재했다.  이 유적은 다른 무덤에 비해서 월등하게 무덤 수가 많다. 한 계곡에 일렬로 묻힌 사람들은 서로 무관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유스티드 XII유적에만 왜 이렇게 무덤이 많을까?

 

그림 1. 유스티드  I 유적

(  상단의 윗 네모 박스: 유스티드 계곡의 케렉수르(사슴돌이 있던 곳의) 및  유적의 대략적인 위치, 즉 사슴돌 제사복합유적의 위치를 가르켜 주고 있음, 하단의 네모 안의 표식 차례대로:  유적(а), 케렉수르(б), 발굴된 무덤(в), 고리형 돌 유구(г), 입석(д)

 

이 유적에서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그리핀으로 16호에서 청동거울에 새겨져서 확인되었다. 2인이 매장된 무덤으로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불분명하다(참고문헌의 책에서 캡션이 다른 점을 발견). 아직 그리핀을 다 모으지 못해서 정확하지 않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을 예로 들면 19호에서 맹수자세를 하고 있는 그리핀은 매우 돌출된 형태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그리핀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에서 확인되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모두 26마리의 그리핀이 말의 굴레장식으로 사용된 점도 매우 다르다. 유스티드 XII유적을 볼 때 그리핀이 모든 무덤에서 출토되지 않는 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어떤 점에서 대단한 일을 했던 사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성급하다. 동시대라는 조건이 성립될 때 두 유적에서 나오는 그리핀의 모습이 다른 이유가 더 논리적일 수 밖에 없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22호를 제외하고 모두 철제 재갈이 출토되었다. 22호에서는 청동재갈이 출토되지만 실제로 22호와 21호 사이의 탄소연대 측정결과로는 큰 차이가 없고, 대부분의 무덤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어서 대체로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아크 알라하 3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어깨 문신 남성미라)보다는 약 100년~200년 정도 늦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유적의 무덤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구조가 다른 무덤에 주목한다. 이 유적의 시작은 우코크 고원의 미라가 출토되는 유적 보다 더 빨리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데이터의 축적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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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