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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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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2700년 전 무덤인 아르잔-2호는 직경이 80m나 되는 거대한 무덤이다. 무덤을 둘러싼 경계석 아래에서도 무덤이 발견되었다. 22호 무덤에서는 여성의 두개골에 구멍이 4개나 뚫린 채로 매장된 것이 확인되었다. 호석아래의 무덤은 24호를 포함해서 5기인데, 24호에서도 투부에 머리를 맞아서 구멍뚫린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주인공 무덤방 5호외에도 유적에는 여러 시설물이 무덤 경계석 안에 있다.

 

그림 2에서 아르잔-2호의 평면도에는 호석 담벼락을 따라서 특히 동쪽벽에 노란색 점들이 발견된다. 그 곳은 호석 사이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매납지 혹은 ‘퇴장’지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주로 마구가 출토되었다.

 

 

 

그림1. 아르잔-2호 출토 유물퇴장지1호

 

 

아르잔-2호는 매우 간단하게 구조를 설명하면 무덤구덩이를 파고 벽을 두른 후, 점토로 단을 쌓고, 가장 마지막에 돌을 쌓아서 채운 구조이다. 그림 2에서 각 지점의 벽 구조를 알 수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 경계석의 구조

 

5호 무덤을 중심으로 무덤의 경계에 두 줄로 높이 1m가량의 벽을 쌓았다. 그림 1-2~6에서 각 지점의 벽 단면도인데, 벽을 쌓는 방법을 알 수 있다. 그림 1-4는 그림 1-3과 같은 지점의 사진이다.

 

그림 2-6은 A-G라인을 찍은 사진인데, 납작한 판석을 빼곡히 채워서 무덤을 덮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3-2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아르잔-1호와 비교해보면, 무덤방을 지상으로 쌓은 점은 아르잔-2호와 가장 큰 차이점 이지만, 납작한 판석을 채워서 무덤상부를 덮었다는 점은 같다.

 

그런데 그림 2에서 보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필자가 아직 모든 무덤을 다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은 말무덤과 무덤방 13호, 무덤방 20호 등은 좀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주인공 5호 뿐만 아니라 구조상 알아야 할 부분은 다 설명을 했다.

 

왜 이렇게 빈 공간이 많을까?

 

아르잔-1호에서는 주인공 무덤방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부분 무덤과 관련된 시설물이 있고 그 위를 판석(납작한 돌)으로 덮었다. 아르잔-2호는 무덤의 경계 안에 주인공 무덤 및 여러 무덤을 제외하고 공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그림 3-1에는 필자가 붉은색 화살표와 주황색 화살표를 표시해 놓은 곳이 있다. 붉은색 화살표가 가르키는 곳은 점토가 짙은 색을 띄고, 주황색 화살표는 흙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무덤평면도를 보면, 무덤 평면도 안에는 점선으로 된 라인이 있는데, 1번은 점토가 바닥에서 확인된 라인이다. 2번 라인은 무덤의 단면상에서 확인된 점선라인이다. 1과 2번 점토라인이 다른 이유는 무덤경계벽이 무너지면서 점토로 채운 구조물이 허물어지면서 생기게 된 차이로 볼 수 있다.

 

 

 

그림 3.아르잔-2호, 무덤의 구조

 

즉, 무덤은 단순히 무덤경계에 벽을 쌓고 납작한 돌을 채워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점토를 쌓았던 구조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굴책임자인 추구노프가 생각하는 무덤의 완성된 모습은 그림 4의 첫 번째이다. 기억하시겠지만 무덤 경계벽 바깥에 있던 동그랗게 돌아가는 돌도 무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1단계에서는 북쪽 가장 안쪽에 위치한 주인공 무덤이 만들어졌다.

 

2단계에서는 만들어진 무덤방 안으로 주인공이 들어가고 이때 많은 무덤이 동시에 만들어졌다. 무덤방 9호와 무덤방 10호도 같이 만들어졌다. 무덤방 9호와 10호는 아직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아르잔-2호에서 도굴되었던 무덤이다. 이 곳의 위에는 사슴돌이 있었는데, 아마 도둑에게는 표지석처럼 보였을 것이다. 원래 사슴돌은 마운드의 중앙에 있었고, 무덤벽이 무너지면서 사슴돌도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방 9호에는 남서쪽에 복도처럼 터널이 있고, 무덤방 10호 부근에서 인골과 호박제 구슬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 인골은 무덤 15호의 것으로 도굴당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그림 4. 아르잔-2호 의례복합체의 장례식 단계 및 복원도(추구노프)

 

 

3단계는 장례식이 끝나는 단계로 무덤의 중앙에 직경 45m로 점토구조물을 쌓아올렸다. 가장 높은 사슴돌을 중앙에 배치했고, 중앙의 제단을 둘러싸나 원주모양에도 다른 사슴돌을 세워서 표시했다. 이 단계에서 무덤방 11호의 9달 된 아이의 매장(순장)이 이루어졌다. 추구노프는 어린유아는 희생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3단계에서 여러 무덤방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네 번째 단계에는 말이 의식이 있었는데, 이 위해서 남동쪽 벽을 일부 허물어뜨리고 다시 재건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말을 매장을 위한 무덤방 16호를 만들었다. 내부는 나무로 된 무덤방이고 그 위를 점토와 돌로 덮었다. 말 매장을 끝낸 후에 무덤전체를 판석으로 둥글고 납작한 모양이 되도록 채웠고, 그 위를 점토로 덮고, 다시 돌로 마지막에 마무리했다(그림 5-1). 그 중앙 상부에는 사슴돌을 배치했다. 아르잔-2호는 이후의 시대에도 무덤으로 이용되었다(무덤배치도의 녹색 점은 이후의 시대 무덤이다.) 하지만 후대의 무덤이 스키타이 시대 무덤을 파손하지는 않았다.

 

 

 

그림 5. 아르잔-2호의 단면도

 

아르잔-2호는 단계별로 장례를 치뤘던 흔적이 확인되고, 단순히 무덤 뿐만 아니라 의식과 관련된 구조물(제단)이 발견되어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쓴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 В. “Аржан-2: реконструкция этапо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я погребально поминального комплекса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его хронологии.” 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ежегодник .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СПб ГУ, 2011, С. 262-335(추구노프 2011, 아르잔-2호: 무덤의 축조과정 복원과 절대연대에 대한 질문)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호분의 유물을 약간 자세히 보았다.

아르잔-2유적은 직경 80m의 호석(무덤주변을 두른 돌을 호석이라고 부르는데, 아르잔-2호는 거의 성벽 수준이다)내부에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방이 26개가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 나무로 무덤시설을 만든 곳이 주인공 남녀가 매장된 무덤방 5호와 9달 된 어린아이의 무덤방인 11호 였다. 아이는 통나무관에 매장되었다.

 

어린아이의 무덤방에서 남서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서 무덤방 22호가 확인되었다. 무덤은 호석 아래에 설치된 것이다.

2020/05/2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1m가 안되는 돌널무덤?

 

1m가 안되는 돌널무덤?

2700여 년 전의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인 아르잔-2호는 단순히 하나의 무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주인공 남녀가 묻힌 곳은 5호 무덤방이지만, ‘호석’이라고 둘러쌓인 일종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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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무덤의 경계에 무덤방을 만들었다고? 그렇다. 한 기라면 약간 설명하기가 힘들지만 그런 무덤방은 14호, 25호, 24호, 26호가 있다 22호가 무덤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그 반대편인 동쪽(14호, 25호)과 남쪽(24호, 26호)에 각각 남아 있다. 남쪽벽이 결실된 상태여서 더 있었을 수도 있다. 특히 동쪽벽에는 유물을 매납한 곳(위의 포스팅에서 노란색 점)도 있기 때문에 호석 아래의 무덤방은 우연히 아니다.

 

무덤방 22호는 돌널무덤(1.3×0.55m, 깊이 0.5m)이고, 21~22살 여성이 한 명 묻혀 있었다. 여성은 좌측으로 무릎을 구부린 채로 매장되었다. 왼팔은 펴고 오른팔은 구부린 상태이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22호, 돌널무덤(석관묘). 무덤은 납작한 돌로 관을 만들었고, 덮개돌도 납작한 돌판 여러 매를 이용했다.

 

여성은 머리에 체칸이라고 부르는 스키타이 문화의 전투용 도끼로 맞아서 죽임을 당한 것이 두개골에 그대로 드러난다.

두개골 부위에서 오른쪽 눈썹뼈 부근부터 정수리까지 4개의 흔적(그림 2)이 남았는데, 크기는 다르지만, 2개의 무기에 의해서 난 구멍이다. 정수리 아래의 타격(큰 구멍)으로 뼈를 완전히 부수지 못했지만 정수리까지 뼈가 갈라졌다. 사각형의 구멍은 이마의 중앙에서 약간 왼쪽에 위치해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22호, 여성의 두개골

 

 

 

이 여성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죽임을 당했지만, 유품은 함께 묻어주었다.

청동거울(그림 1-3의 1), 청동제 원뿔모양 구슬(그림 1-3의 2), 황금과 아말금으로 제작된 산양모양모자장식판(그림 1-3의 3), 귀걸이(그림 1-3의 4와 5), 터키석제 구슬, 사슴이빨로 제작된 펜던트(그림 1-3의 7), 목걸이(그림 1-3의 8), 시금석(touchstone그림 1-3의 9), 철제 칼(그림 1-3의 10), 청동바늘이 출토되었다.

 

청동거울(그림 3-5, 그림 4-11)은 우측 골반뼈 옆에서 출토되었는데, 별 다른 문양(직경 11.2cm, 높이 1.2cm, 두께 0.35cm) 없이 뒷면 중앙에 꼭지만 붙었다.

청동제 원뿔모양 구슬(그림 4-1~5, 그림 3-7)은 가죽으로 된 끈에 끼워서 썼을 것인데, 시금석(그림 2-6)의 구멍에 끼운 가죽을 장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철제칼(그림 2-4, 그림 3-12)은 역시 청동거울과 함께 우측 골반부위에서 출토되었는데, 칼끝의 부식상태가 심하다. 출토당시에 목제로 된 칼집과 함께 출토되었는데 거의 남아 있지 못하다. 칼집은 칼끝만 들어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시금석은 좌측 허리부위에서 출토되었는데, 직사각형 모양이다. 옥(jade)?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슴의 이빨로 제작된 펜던트 5점(그림 3-6~10)이 확인되었는데, 가장자리에 구멍이 뚫려있다.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22호(4-7) 출토유물, 1~3은 무덤방 20호.

 

 

 

그림 4.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22호  출토유물

 

 

여성의 머리 위에는 산양모양을 한 장식판(그림 5-6, 그림 6-1)이 출토되었는데, 모자에 달렸던 물건이다. 황금과 아말감으로 제작된 것이다. 산양은 다리를 배쪽으로 말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서 설명했던 호랑이 장식판과 상당히 다른데, 근육표현이 다르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근육표현은 밀랍으로 만들어진 거푸집에서 제작한 것이라면, 이 황금장식판은 편평한 판에 황금판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그 사이를 아말감으로 채워서 표현했다.

 

여성의 귀걸이는 양쪽이 다르다. 오른쪽(그림 5-3, 그림 6-3)은 둥근 링모양이고, 왼쪽(그림 5-5, 그림 6-5)은 고리에 아래로 펜던트 장식이 달려 있고, 고리 위에도 실린더모양의 뼈와 연결되었다. 고리에 달린 수하장식(펜던트)는 원뿔모양의 황금장식판이 연결되었고, 그 아래에 터키석제 구슬을 붙인 것이다.(귀걸이의 제작방법은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다 비슷한데 따로 설명하겠다.)

 

여성의 가슴부위에서 호박(그림 5-7, 그림 6-7), 유리류(그림 5-8, 그림 6-8~25) 등으로 제작된 구슬 345점이 출토되었는데, 목걸이(그림 6-26)를 착용했다. 터키석제 구슬(그림 6-6)도 있다.

 

 

 

그림5.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22호 출토유물(3, 5-8), 1,2는 13B무덤방, 4는 25호 무덤방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11호 출토유물

 

예전에도 스키타이 문화에서 장례식 치르는 시기가 정해져서 사람이 죽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아르잔-2호에서도 주인공 남녀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 무덤의 많은 사람들이 한날 한시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시점에 죽었다면, 그리고 동시에 의식을 치뤘다면........

한 여름의 호러영화같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이제까지 소개한 시베리아의 철기시대문화인 스키타이 문화의  여러 유적 주인공 무덤에서 검이 출토된 적이 있다.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목제검이 있었다. 아래의 포스팅에는 목제칼이라고 잘못 설명했다. 고고학에서 칼과 검은 엄연하게 다른 유물이다.

부엌에서 쓰는 날이 한쪽으로 만 있는 것은 knife이고, 검은 날이 양쪽으로 있는 Sword이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418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진실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9세기 시베리아, 기원전 8세기에 흑해북쪽에서 이른 시기의 유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개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예정이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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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알라하-2 유적의 2호분 소년의 무덤에도 소년의 체격에 맞는 청동검이 출토되었다.

아래포스팅에서 설명하는 ‘청동칼’이 아니라  청동검이다...그때 필자의 눈에 분명히 먼가가 있었던 것 같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432?category=844452

 

2500년 전 알타이 산지의 청동칼

러시아의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잊어버리신 건 아니지요? 이 무덤에는 무덤방 속에 2개의 관이 있었고 소년과 지금의 기준으로 하면 중년인 남성이 각각 묻혔다. 소년의 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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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는 철제 칼이 출토되었다. 통나무관 밖에서 목그릇 옆에서 함께 나왔는데, 분명히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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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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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1호분은 주인공 관련한 유물은 거의 도굴당해서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파지릭 5호분도 앞의 두 무덤 보다는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주인공관련한 유물은 많지 않았다. 도굴 때문이다. 아르잔-1호의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중요한 무기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앞서 소개해 드린 흑해 북안의 유적인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 빗에도 두 남성은 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짧은 단검이었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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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유적은 도굴되지 않은 덕분에 검에 대한 정보가 많다. 앞에서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검집에 달렸던 작은 고리모양을 소개한 바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었다(그림 1-6).

 

이 남성의 검집에는 그 밖에도 여러 장식(그림 1-4,5,7,8)이 달려 있었다.

 

 

그림 1. 아르잔-2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그림 2.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그림 1-4와 동일)

 

그림 2의 검집장식은 호랑이 두 마리가 양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단검의 검집 하단에 달았던 장식이다. 앞의 호랑이는 거꾸로 표현되었으나, 표현은 일치한다. (길이 1.5 cm, 높이 1.3 cm, 두께 0.5 cm; 무게 30.61 g)

 

그림 1-5(그림 3-5~7과 동일유물)는 단검의 벨트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다. 호랑이가 염소를 입에 넣는 장면을 표현했는데, 고리의 앞면에 두 동물의 머리모양만 표현되었다. 뒷면은 문양이 없다. (길이 1.6 cm, 높이 1.2 cm, 너비:1.1cm, 두께 0.4 cm; 무게 11.34 g, 11.44g, 11.82g, 크기는 동일하지만 무게가 각각 차이가 있다. 너무 미미해서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림 3. 아르잔-2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1~3은 앞에서 이미 소개, 5,6,7은 그림 1-5와 동일, 8은 그림1-7과 동일)

 

 

그림1-7,8(그림 3-8, 그림 4)은 검집의 하단과 검집의 상단에 붙었던 장식판이다. 검집의 상단은 남성의 벨트와 연결하기 위한 중간 끈이 부착되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S자형 동물문양장식(그림 1-8, 그림 4)이 부착되었다. 그림 1-7(그림 3-8)이 칼집의 하단에 붙였던 것이다.

두 유물은 앞면은 같은 문양이 묘사되었지만 뒷면은 용도에 따라서 다르다. 앞면은 이 유적에서 출토되는 모든 황금장식판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주물틀에서 만들어져서 기본판에 다시 땜질해서 붙인 것이다. 릴리프(relief)기술이다. 사진에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이 유물의가장자리에 붉은색 페인트 자국이있다고 한다.

 

이 S자판 동물문양장식은 동물 8마리가 각기 다른 포즈로 표현되어 있는데, 구분이 되지 않는 유물도 있다.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 뒤로 돌아보고 있는 우제류(사슴류?), 구부리고 있는 멧돼지, 몸을 등쪽으로 말고 있는 호랑이 혹은 사슴(그림 3-9, 그림 4-2) 등이 표현되어 있다. (길이 5.3 cm, 높이 1.5 cm, 두께 0.3 cm, 무게 55.40 g)

 

 

 

그림 4.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그림 1-8과 동일유물.

 

계속 포스팅을 보시고 있지만 솔직히 주인공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잘 감이 오지 않으신다구요?

 

저도 조심스럽네요..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지하로 판 무덤이 많다. 아르잔-2호 가운데서 주인공 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묻혔고, 이중으로 된 나무 무덤방 속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과 같은 시대의 무덤방은 26개로 둥글게 돌아가는 무덤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호석이 무덤방을 호위하고 있다.

 

그 중에서 5호 무덤의 주인공은 무덤의 시설과 부장된 유물로 보아서 VIP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소개하지 못한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 이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에 청동으로 된 솥(동복)(그림 2-95,96; 3,4)이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바깥의 2차무덤방과 안의 1차 무덤방 사이에서는 나무로 된 접시(그림 2-97, 그림 5)가 출토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의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벽 사이, 그림 2의 95,96이 청동솥이 출토된 곳이다.

 

 

그림 2. 아르잔-1호 출토 무덤방 5호 내부

 

청동솥은 손잡이가 부착되었고, 밑에 받침이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생김새는 다르다. 그림 3의 유물(입구지름: 20~22.7cm, 높이 29.7 cm, 바닥지름: 13.2cm)은 손잡이가 직사각형이고, 솥의 상단에 매듭이 있는 꼬인형태의 끈 모양이 달려 있다. 그림 4(입구지름: 32.8~31.5cm, 높이 45.6cm, 바닥지름: 13.4cm)의 유물은 손잡이가 8자를 옆으로 뉘운 모양이고, 입구와 가까운 부분에 3개의 돌대가 달려 있다. 동체부에 손잡이가 2개 더 달려 있다.

왜 그럴까?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청동솥, 그림 2-95 위치

 

 

그림 4. 아르잔-2호 출토 청동솥, 그림 2-96 위치

 

그림 4의 유물을 보면 입구부위에 불룩 튀어 나온 3개의 줄이 돌아가는데, 손잡이 아래 부분을 보면 솥을 거푸집에 넣고 제작한 흔적이 남아 있다. 3개의 줄 아래에도 매끄럽지 않은 부분(녹색 화살)이 길게 튀어나와 있다. 이 부분은 이 선을 경계로 위와 아래가 따로 제작되어서 붙인 흔적이다. 땜질한 흔적이다. 이 솥에는 이외에도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청동솥은 스키타이 문화 만큼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던 유물이다.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는 출토되지 않았지만, 가장 넓게 유행하던 유물 중 한 가지이다. 중국동북지역 즉 만주라고 불리는 지역과 황하상류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이 유물은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는 점도 유물을 부장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용 임을 알 수 있다.

 

 

 

그림 5. 아르잔 –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 접시, 그림 2-97 위치

 

나무로 된 그릇은 1차와 2차 무덤방 사이에서 출토된다. 높이가 6cm, 직경은 40~43.4cm이다. 나무그릇은 한쪽이 완전치 못한데, 사용하던 그릇을 넣었다. 접시의 상면에는 사용한 흔적이 많이 남았는데, 날카로운 칼로 찌른 흔적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아크 알라하-3유적이나 파지릭 2호분, 파지릭 5호분과는 사뭇 다르다.

이 유적에는 무덤구덩이 안에 말이 없다. 뿐만 아니라 무덤방은 2개 만들어졌지만, 통나무관 없이 안의 무덤방을 관처럼 사용한 것이다. 통나무관이 있는 유적에서는 무덤방과 통나무 사이의 빈 공간에 그릇을 배치했다. 그러나 아르잔-2호에는 통나무관이 없어지고, 무덤방이 관을 대신하면서, 그릇은 2차 무덤방(내부)의 바깥에 껴묻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여 년 전의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인 아르잔-2호는 단순히 하나의 무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주인공 남녀가 묻힌 곳은 5호 무덤방이지만, ‘호석’이라고 둘러쌓인 일종의 무덤벽 안에는 말무덤을 포함해서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은 26개이다.

 

남녀 주인공의 무덤방 5호를 제외하고 2호, 11호에는 나무시설이 있고, 그 외는 전부 돌을 사용한 무덤이다. ‘무덤방’이라고 5호를 불렀지만, 각각의 무덤이다. 2호와 11호도 각각의 무덤이다.

그런데 각각 부를 때는 상관이 없지만, 아르잔-2호 유적의 무덤 5호라고 틀림없이 사람들은 혼돈된다. 2호안에 왜 또 5호가 들어갔지?.. 그래서 필자는 아르잔-2호의 각 무덤을 무덤방으로 부를 것이다.

 

5호와 같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던 나무 시설이 있는 2호와 11호를 제외하고나면 전부 석관묘이다. 석관묘는 교과서에 돌널무덤으로 부른다. 납작한 돌을 사용해서 만든 무덤인데, 사실 돌널무덤도 소재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구분가능하지만, 아르잔-2호에서는 소재는 한 가지이다. 무덤의 상부를 덮었던 일종의 석회암 판석을 이용한 것이다.

 

 

그림 4는 지난번에 같은 그림을 제공했는데, 20호와 8호에도 사람이 매장되었는데, 정정하시기 바란다. 오렌지 색깔이 스키타이 시대, 주인공 남녀와 같은 시기에 매장된 사람과 말이다. 한눈에도 크기가 다른 것이 보이는데, 묻힌 사람의 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2인장이고, 1인장도 있다.

 

혼자서 묻힌 사람은 여성도 있고 남성도 있으며, 단인장(혼자서 묻히는 무덤)이라도 크기가 차이가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의 8호 무덤방

1-무덤의 상부, 납작한 돌로 덮음, 2: 1의 단면도 A-A'는 1에서 자른라인을 의미한다. 3-덮개를 열고 난 후 무덤의 내부 모습, 번호는 유물출토위치. 

 

8호 무덤방은 길이가 0.9×0.75m이다. 남쪽의 무덤벽은 이미 넘어진 상태(그림 1-2)이다. 납작한 판석을 사방으로 둘러서 마치 ‘상자’모양으로 무덤을 만들었고(그림 1-3), 그 위에 돌을 덮었다(그림 1-1). 인골은 북쪽벽에 붙어서 묻혔고, 40~45세 가량의 남성이었다. 왼쪽 측면으로 뉘운 상태였고 매우 뒤틀린 상태였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무덤방은 길이와 너비가 1m가 채 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을 이 속에 넣을 수 있을까?

답은 구겨서 넣는 것이다.ㅋㅋㅋ(매우 쉽게 말했지만 자극적인 말이다.)

 

이렇게 작은 무덤에 인골이 들어가는 경우는 보통 ‘2차장’이라고 부르는데, 살은 어딘가에서 썩히고 무덤안에 뼈만 추려서 넣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2차장이라고 하지 않았으나, 다리뼈가 머리부근에 가 있는 점은 의심스럽다. 그런데 보통 2차장은 뼈만 수습되기 때문에 매우 뼈가 흩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 무덤은 척추를 왼쪽으로 뉘웠다는 점에서 매우 의심스럽다. 완전히 살이 썩지 않은 상태였는지, 살이 남아 있지 않고 뼈만 추려서 넣은 건지...? 

 그런데 청동칼(그림 1-3에서 번호 1번)의 위치를 보면, 완전히 뼈만 남은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보통 스키타이 문화의 칼은 짧아서 허벅지에 붙여서 찬다. 스키타이 전사 복원도를 제공한 적이 있는데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렇다고 어떤 상태로 무덤안에 들어갔는지 단정하기도 힘들다...??

 

무덤 안에서는 유물도 출토되었는데, 청동제(그림 2-1, 7~12)와 주석(그림 1~6)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청동제 칼(그림 2-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신구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8호의 출토유물, 1,7~12: 청동제, 2~6: 주석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8호의 유물, 그림 2-1,2와 같은 유물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내부, 8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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