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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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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30.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 동유럽의 고대 여성 전사들의 유적은 드네프르강 유역 하류, 돈강 하류, 우크라이나 초원, 코카서스 지역 등에서 발견된다.

일찍이 부냐탼(1982)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1/4이 여성무덤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성전사로 판명된 사람들은 270명 가량이다. 물론 이 숫자는 우크라이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여성전사 들은 형질인류학적으로나 무덤의 장례방법으로나 그간 스키타이 인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과 동일하다(팔코 1991).

 

여성전사들의 무기는 활과 화살(그림 1-1~5)세트 혹은 창, 투석이다. 질료니예 2유적의 5호에서는 활통이 여성의 왼쪽에 놓여 있었다. 비슷하게 활통이 발견된 유적은 니크로폴 유적의 20호 쿠르간 내의 2호 분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많은 화살이 부장된 무덤(류비모프카 유적 38호 쿠르간)은 135개까지 있었다.그런데 화살의 양에 대한 규칙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활과 화살세트가 매장된 경우는 여성, 남성 통틀어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사 무덤에는 창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창의 자루에 철제깃봉(그림 1-8)을 달아서 사용했는데, 출토될 당시에 그 장식의 위치로 나무자루의 길이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여성 무덤에서 나온 창의 길이는 유적(노비예 쿠르간과 스테블레브스키 무덤)의 예로 보아서 대략 2.07~2.1m인데, 스키타이 남성 전사의 창 길이와 비슷하다. 여성 무덤에서 창은 대부분 1~2자루 부장되었으나 3자루가 나온 경우도 있다.

 

 

그림 1.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출토된 여성 무덤의 무기

 

 

 

투석(슬링)(그림 1-11)은 1~5개가 무덤에서 발견된다. 투석기는 발견되지 않고 같은 크기의 동근 돌만 확인된다. 아마도 이 무기는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근접무기인 전투용도끼와 검은 2~3곳을 제외하고는 여성 무덤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청동이나 철제 갑옷이 있는 무덤도 여성 무덤에는 거의 없다. 물론 어제 소개한 질로니예 2유적의 5호의 십대소녀의 예는 제외한다.

 

 

여성의 무덤에 근접무기와 갑옷 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이 경무장한 기병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9. 09:22 사르마트 문화

 

헤로도투스는 여성전사들의 집단 혹은 부족인 아마존의 존재를 기록했다. 좀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키타이 혹은 사르마트 문화 속의 여성전사들은 매우 유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헤로두트스 뿐만 아니라 스트라보, 히포크라테스 등도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는 주로 흑해 북쪽,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있는 유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 흑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시베리아에서도 기록속의 장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팔코는 자신이 발굴한 유적인 질료니예 유적에서 2호 쿠르간의 존재에 주목했다. 2호 쿠르간에는 모두 3개의 무덤이 설치되었다. 무덤은 구덩이를 수직으로 파고 다시 벽쪽을 파들어간 형태인데, 3개의 무덤 구덩이가 있었다(그림 1).

그 중에 2호는 남성과 여성이 각각의 무덤방에 안치되었다. 구덩이의 입구는 하나인데 북쪽에는 여성, 남쪽에는 남성이 별도로 매장되었다. 두 무덤방은 남분과 북분이 떨어진 것은 아니고 연결된 형태이다. 수직으로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나무판으로 막아서 무덤방을 폐쇄했다.

 

남성은 바닥에 자신이 입던 철제갑옷을 벗어서 깔고 그 위에는 유기질제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자신의 물건을 부장했다.

 

여성은 철제 갑옷을 깔지는 않았지만 유기질제 깔개를 깔고 주변에 자신의 물건을 두었다. 그 중에는 철제 창(그림 1-31)과 화살통(그림 1-39)을 왼쪽에 두었다. 물론 그 이외에도 각종 장신구 등이 그녀의 옆에 놓였다. 깔개 바깥에는 목제 쟁반위에 칼이 놓여 있었고(그림 1-22,23), 그 아래에는 석제도 놓여 있었다.

 

그림 1. 질료니예 유적의 2호 쿠르간

 

그림 2. 질료니예 유적 2호 쿠르간의 2호묘 평단면도

 

그림 3. 질료니예 유적 2호 쿠르간의 여성 유물(2~18). 어제는 잘못 표기했음.

 

그녀는 목제 상자(그림 3-7)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는 거울(그림 3-13), 구슬(그림 3-15), 송곳, 화병(그림 3-16), 목제 화병(그림 3-5)인데 원통형모양의 유물도 있었다. 이 유물은 pyxis라고 부른다. 목제 상자의 출토위치는 철제 창 바로 옆이다(그림 2-32~34).

 

질료니예 2 유적의 2호 쿠르간 내의 2호묘는 어찌되었든 부부합장묘이기 때문에 여성들만 살았다고 전해지는 아마존으로 보기에는 애매하다. 2호의 여성이 철제 창과 화살을 쏜 것은 맞지만...

 

그런데 질료니예 2유적 5호 쿠르간 내부에는 3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매장방법은 2호 쿠르간과 같았다. 그런데 그 중에 2호묘의 여성은 철제갑옷, 창, 유리구슬, 칼, 거울 등이 함께 매장되었다(그림 4). 나머지 2개의 무덤은 주인공 여성보다는 지위가 낮은 여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은 십대의 여성이다.

 

그림 4. 질료니예 유적 5호 쿠르간

 

여성무덤에서 철제 갑옷이 발견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흥미로운 자료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가장 마지막 시기, 혹은 사르마트 시기의 시작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팔코는 스키타이 시대라고 보고했다.

 

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8. 09:22 사르마트 문화

동유럽에서 스키타이 문화 이후 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봉분이 있는 무덤이 만들어진다. 땅에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을 동굴처럼 파들어간 형식이 많다(그림 1).

 

 

그림 1. 질료니예 마을 부근의 2호 쿠르간, 기원전 4세기, 1: 무덤 평단면도, 2~11: 여성무덤 부장품, 12~18: 남성무덤 부장품

 

 

무덤은 여성, 남성 무덤이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부장품도 다르다. 주로 여성 무덤에는 거울, 귀걸이, 구슬 및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장신구와 화장도구 들이 발견된다. 또 그릇이나 생활용 송곳, 바늘 등도 있다. 남성무덤에는 주로 무기와 마구 및 남성의 장신구(목걸이 및 반지)등이 부장되었다. 무기에는 활과 창, 갑옷, 굴레장식 등이 있고 간혹 청동솥도 매장되었다. 남성여성할 것 없이 나무접시나 쟁반에 고기와 쇠칼을 올려두었고 다양한 그릇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들 부장품 가운데는 여성용품과 무기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성이 무기와 함께 부장되는 무덤을 두고 기록 속의 ‘아마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팔코 2013). 여성들만 사는 부족의 명칭으로 알려진 이들은 헤로도투스 뿐만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스트라보, 등등 여러 사람들의 작품에서 아마존의 존재가 전해진다.

 

아마존은 매우 아름답고 재능있던 존재로 묘사된다. Kallisthenes(그리스 역사가)에 따르면 Alexander Macedonsky가 그의 어머니에게 아마존이 키가 크고, 아름답고, 매우 건강하고 날카롭고, 재치있다는 편지를 썼다. 또 Diodorus Siculus도 아마존의 힘, 지능, 기술,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런데 헤로도투스와 스트라보, 히에로니무스가 묘사한 그들의 복장은 일치하지 않았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들이 남자들이 입는 것과 같은 매우 화려한 복장을 입은 것으로 기록했다(IV, 116). 스트라보는 야생동물의 가죽으로 헬멧, 외투, 벨트를 만들어 입은 것으로 묘사했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 II, 37)는 아마존이 가슴을 드러내고 팔과 다리로 남성 적을 유인했다고 적었다.(팔코 2013).

(아마 히에로니무스는 아마존 여성에게 당한경험을 적은게 아닐까..ㅋㅋㅋ, 뭐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한 듯. )

 

 

공통적인 점은 활, 화살, 전투도끼, 창, 창과 올가미로 무장했고, 방패도 사용한 것은 동일하다. 사실 이 무기들은 스키타이 시대부터 전해져온 전통적인 무기이다. 여성 무기를 위해서 따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그냥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흑해 북안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후반~기원전 6세기경 여성의 무덤에서 남성 무덤에 보이는 무기들이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이런 무덤은 사르마트 시기인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대로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상흔이 남아 있는 여성 인골과 무기의 존재는 흥미롭다.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아르잔-2 유적에서도 여성전사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매장된 예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녀의 어깨 근육이 비대하게 발달해서 궁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녀의 두개골에는 죽음으로 갈 수 있는 뚜렷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헤로도투스가 왕의 장례식에 묘사한 미라와 같이 여성전사의 존재는 시베리아에서도 확인된다(포스팅참고).

 

2020.06.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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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가 흑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스퍼러스 왕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기원전 5세기 경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이 국가는 그리스 문화의 색채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스 문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포스팅 참고).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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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의 지도자 이름 가운데 아스푸르그, 파르조이 등 이란 출신의 이름이나 사브로마트라고 하는 민족명도 있었다. 아마도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1세기에는 특히 보스포러스 왕국 인구의 인종 구성은 크게 혼합되었던 것고 생활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유목생활방식과 흑해 북안의 대초원의 호전적인 성향이 유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된 벽화는 유르트를 묘사하고 있다. 또 케르치 해협에서는 이 시기의 4바퀴의 수레 점토모형도 발견되었다(그림 1). 유목민의 텐트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마차에 부착되었고, (그림 2) 소는 텐트 주변에서 풀을 뜯고 치즈와 우유를 먹었다.

 

사르마트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축업을 했는데 특히 유목생활을 했다. 지리학자는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동했던 것으로 기록했다. “ 그들은 무리를 따라가며 항상 가장 좋은 목초지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데 여름에는 평야, 겨울에는 아조프 해 근처의 늪에서 지낸다.

 

 

그림 1. 기원전 1세기경 보스포러스 지하의 벽화 그림

 

 

 

그림 2. 기원후 1~2세기 케르치반도. 수레모형, 토제품, 1900년도에 구입함.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유사성은 쿠르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로는 무덤이 일렬로 늘어져서 언덕 위에 축조되거나 가장 높은 지역 주위에 그룹화되어서 발견되었다. 사르마트 사람들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고대 무덤에 개인 소지품,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음식(고기 및 음료) 등을 넣었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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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5. 09:22 사르마트 문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강역을 언급하면서 8개의 강을 이야기 했다. 그 중에 한 곳은 타나이스로 지금의 돈 강 유역이다. 그 강을 넘어 가면 사우로마트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이야기 했다. 스키타이 문화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시기는 기원전 4세기인데, 이 때의 상황을 이야기 한 것이다.

실제로 볼가강과 돈강 중간 지점에서 발견되는 유적지는 흑해북안과는 비슷하지만 지역적 특징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사르마트 문화는 기원전 4~3세기경 동쪽에서 들어와서 돈 강유역의 사우로마트 문화와 결합했고 이 문화는 그대로 사르마트 문화로 통칭된다. 이 문화가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에 흑해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작가 Diador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Aorses, Siraks, Roxolans, Yazygs라고 불리는 부족들이 연합했다고 알렸다. 특히 지리학자인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남겨 놓았다. 이와 함께 고고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기원전 2~1세기 부터 러시아 남부 대초원에 어떤 민족들이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기원후 볼가 하류에는 카스피해 북부와 서부 해안을 따라서 오르세스(Aorses)0 부족이 살았는데, 가장 큰 부족이다. 이 부족의 남쪽과 서쪽 이웃은 아조프 해안을 따라서 살던 시라크스(Siraks)이다. 드네프르와 돈강 사기의 광대한 공간은 록솔라니의 소유 였다. 기원후 1세기 후반에는 시라크스의 남동쪽인 카스피해와 아조프 해 사이도 그들이 차지 했다. 아랄 북쪽에는 알라니, Yazygs는 다뉴브 강주변, 메오트Meot 부족의 문화는 쿠반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기원전 1~기원후 1세기 사르마트 문화의 각 부족

 

 

지리학자인 Strabo는 사르마트 전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생소가죽으로 만든 투구와 껍질을 쓰고 나뭇가지로 짠 방패를 쓰고 창, 활, 칼로 공격무기로 사용했다.”

 

그런데 비슷한 모습을 한 사르마트 전사가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기원후 2세기 유적인 타나이스 출신(돈강 하류의 그리스 식민지)의 총독 Tryphon이 대리석으로 된 조각에서 확인된 바 있다(그림 2). 총독은 펄럭이는 망토를 착용하고 어깨에 브로치를 달고 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다. 비슷한 전사의 이미지는 기원후 1세기 보스포러스 해협의 지하실 벽화에서도 발견되었다(그림 3)

 

그림 2. 트리폰이 묘사된 대리석

 

그림 3. 보스포로스 해협의 기원후 1세기 지하실 벽화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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