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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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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을 이동하며 살던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살아움직였던 파지릭문화의 유적 가운데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피고 있다.

우리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의 무덤구조를 보았는데, 앞써 포스팅한 ‘얼음공주’무덤과 달리 이 무덤속에는 ‘말무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말무덤을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무덤방을 덮은 천장을 보아야 한다.

 

깊이 1.8m에 이르자 무덤방을 덮을 정도의 규모로 무덤 천정부에 해당하는 목제들이 드러났다. 무덤방의 덮개는 집을 해체해서 얻어낸 낙엽송 통나무들이다.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통나무 2개가 이어 붙은 것도 있고 이유없이 모서리에 홈이 남아 있기도 했다(그림 1). 이런 부분은 무덤의 무덤방을 만드는데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통나무의 직경은 15~20cm가량으로 통나무 38기가 놓여있었다. 이제 까지 주거지의 통나무를 무덤 천정부로 사용한 예가 없다(앞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1993년 발굴)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크 알라하 1유적은 1990년에 먼저 발굴되었기 때문에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1차 천장부, 그림에서 가장 위쪽인 부분의 통나무를 살펴보면 홈이 파인채로 통나무가 놓인 것을 알 수 있다.

 

 

무덤의 동북쪽에는 나무로 만든 덮개가 없고 큰 돌과 흙으로 채운 말무덤이 있었다. 말무덤은 파지릭 유적의 1호, 4호, 5호분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말무덤은 1차 무덤방을 통나무로 두르고 그 안에 말무덤을 설치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말무덤의 크기는 3.7×0.9m구역 안에 9마리의 말이 부장되었다. 모든 말은 투부라고 하는 쇠도끼로 말의 이마를 내리쳐서 죽였는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말은 두 층으로 묻었다. 7 마리는 머리가 서쪽이고, 2마리는 동쪽으로 향했는데, 말 그대로 빽빽하게 묻었다. 말의 뼈를 분석한 결과 말은 봄에 묻혔다(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말은 9마리이지만 말을 장식하고, 말에 착장한 마구는 모두 7벌이 확인되었다. 5벌은 말에 채워졌고, 2벌은 그 옆에서 확인되었다. 모든 마구는 목제로 제작되었다. 그 중 네 마리에는 철제로 된 재갈이 채워진 채로 확인되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말무덤, 그림1에서 나무로 덮은 곳이 아닌, 돌과 흙으로 덮인 곳의 아래부분에서 말무덤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Гребнев И.Е., Васильев С.К. Лошади из памятников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Южного Алтая / Приложение // Полосьмак Н.В.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Новосибирск: Наука, 1994. С. 106-111.(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알타이 남쪽의 파지릭문화에서 출토된 말)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도 알타이 산맥 중에서 우코크 라고 불리는 고원에 위치한 무덤을 살펴보는 중이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확인되는 문화를 파지릭 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의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지난 달에는 별명이 얼음공주라고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무덤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무덤을 살피고 있다.

우코크 고원의 위치는 어제 포스팅에서 찾으실 수 있다.

 

이 무덤은 얼음공주 무덤보다 3년 일찍 발굴되었다. 무덤을 절개한 면은 그림1과 같다.

무덤의 제일 윗 부분은 움푹들어 갔는데, 원인은 가장 바닥에 있는 무덤방인 목관의 천정부가 내려앉아서이다. 주로 목재가 썩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언제가 공개하게 될 파지릭 유적에서는 천정부가 완전히 내려앉아서 무덤의 최상부가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무덤방은 얼음으로 차 있다고 보고서에도 적혀 있고, 실제로 그림 1에도 얼음이 표시되어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단면도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계속 얼음이 차 있었다면, 무덤방이 내려 앉았을 이유가 없다. 도굴일가능성? 도굴되었다면 무덤방의 뚜껑 및 그 아래의 관도 모두 도굴당했을 것이다.

외부의 요인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상부는 가장 중간이 약간 씩 내려앉은 모습이다.

무덤구덩이는 무덤방 위와 무덤방이 아닌 말무덤 위를 채운 공간의 돌은 크기가 다르다. 말무덤 위는 2.6m까지 큰 돌로 채웠고, 무덤방 위에는 무덤구덩이를 만들 때 퍼 낸 흙으로 다시 덮었고, 깊이 1m가 되어야 큰 돌이 나오기 시작했다. 얼음층은 깊이 0.5m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무덤구덩이의 깊이는 2.9m 가량이다. 구덩이를 파자 9줄의 통나무가 양쪽으로 쌓여진 것이 확인되었다. 길이 4.6m두께는 9cm정도이다(그림2). 무덤구덩이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서 쌓았다. 발굴할 때도 이곳이 무너지지 않게하기 위해서 철제 사다리를 받쳐두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그림1을 좀 더 자세하게 확대.

 

무덤 단면도를 공개했으나, 이제 여러분은 모두 다 눈치챘을 것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2명이라는 사실을,,

통나무관이 2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상상하시나요?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어제부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두 유적의 거리는 3km 가량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얼음공주 무덤이 있었다. 베르텍 마을과 12km 떨어진 곳으로 좀 더 가깝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 중에서도 우코크 구원에 위치하는 유적이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Ploskogor'ye+Ukok/@50.3307878,87.9890127,6.35z/data=!4m13!1m7!3m6!1s0x42b7eb0e314da4fd:0xaf8aeded3a068607!2sAkalakha!3b1!8m2!3d49.6937885!4d87.4078366!3m4!1s0x42b70a2829374ba7:0x6d63a380c8591ae1!8m2!3d49.3077771!4d87.5947237!5m1!1e4?hl=ko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kr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발굴전에는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였다. 무덤의 크기는 남북방향은 17.5m, 동서방향은 8m가량이다.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을 기준으로는 49cm이다. 무덤의 중앙은 0cm로, 고도와 같았다. 무덤이 중간에 함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토(지표면을 덮은 흙)를 제거하자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큰 돌로 호석(가장자리를 두른 돌)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표토만 제거, 남쪽에는 고리모양의 원형 돌무지가 하나 더 있는데, 무덤은 아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호와 관련된 제사 유구로 생각된다. 무덤 중앙을 가로지는 선은 발굴할 때 사용했던 기준점이다. 그 옆의 숫자는 돌의 위치이다. 가장 중간이 ocm이다. 숫자의 간격은 1m이다. 

 

호석 안쪽으로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여 있었고, 일일이 손으로 제거했다. 이를 제거하자 2차 호석이 드러났다(그림2). 1호분의 주인공이 있는 무덤구덩이는 깊이 2.9m가량에서 확인되었다. 동서남북방향과 일치하며 크기는 4.8×4.75m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적석제거 후 드러난 호석과 무덤구덩이, 가운데 네모꼴이 원래 무덤주인공의 무덤구덩이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시가 엉뚱한 사람의 무덤 위치이다.

 

 

그런데 그 전에 적석을 제거하는 가운데 무덤 중앙을 기준으로 깊이 24cm에서 1호분과는 전혀 관련없는 14세기의 것으로 생각되는 엉뚱한 사람?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얄팍한 사람들은 아크 알라하 1호분의 무덤에 사용된 돌을 치워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했다. 사지를 쭉 핀 신전장으로, 두향은 서쪽으로, 손을 가지런하게 모은 자세로 놓았다. 두개골은 흙의 압력으로 눌러서 부서졌다(그림3). 허리춤의 오른쪽에는 철제 원형 재갈(말의 고삐를 채우는 장치) 2점(그림4)과 화살촉이 확인되었다. 이 유물로 보아서 14세기의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이 사람의 성별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없었는데, 유물로 보아서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출토품

 

 

그런데 의문스럽지 않으십니까?

과연 14세기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무덤을 도굴하지 않았을까?

힌트는 앞에서 이야기 한 무덤의 깊이에 있다. 파지릭문화의 사람은 바닥까지 3m까지 파야 그 사람 무덤에 다달수 있었으나, 14세기에 장례식을 치르던 사람들은 24cm정도만 파서 사자를 묻었다. 그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알았지만 손대지 않고 자신이 알던 사람만 그곳에 묻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죽어서 만났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 아크 알라하 무덤)

구글지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현재 시베리아의 굽이굽이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그림 1,5)라고 불리는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라 3유적의 여성미라가 출토된 유적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별칭은 얼음공주이고, 직업적으로는 젊고 유능한 샤먼이었다고 한다.

 

그림 1.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강 계곡

 

여성무덤을 살펴보았으니, 당연히 남성무덤도 살펴보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기왕이면 그녀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던 무덤을 살펴보고 싶었기에 이 무덤을 택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이다. 이 남성무덤은 미라는 없는데, 인골이 남아 있었기에 남성무덤인 걸 알 수 있다.

 

아크 알라하-1 유적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 5기와 제사유구복합체 1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문화의 시기는 1호와 2호이다(그림2). 1990년에 발견되었고, 그 해 1호고분과 그 고분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를 조사했다.

 

K-1이라고 씌여진 1호 고분에서 서쪽으로 25m정도 떨어져서 돌을 쌓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돌을 직경 5m 되게 둥글고 빽빽하게 쌓고 이 유구와 붙어서 동쪽벽에 돌을 고리모양으로 듬성하게 돌렸는데, 완전한 것 6개와 불완전한 것 1개가 남아 있는데, 원래는 7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길이는 8m가량이다. 높이는 높지 않은데, 지점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장 높은 곳은 17cm가량이다(그림 3). 그리고 그림 1에서 K-1이라고 씌여진 남쪽 25m떨어진 곳에 직경 8.5m 가량의 원형의 돌 쌓은 유구가 확인되었는데(그림 4), 그림2와 함께 제사유구로 생각한다. 유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한 층위로 높이는 지표에서 18~22cm정도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1 유적 전면도

 

 

그림 3.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에서 남서방향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 

 

 

 

파지릭문화에서 무덤 주변에 이러한 제사유구가 확인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무덤의 서쪽으로 1~3개의 고리모양으로 쌓인 돌 유구가 확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쿠바레프 1987)

제사유구를 오랫동안 연구한 쿠바레프는 제사유구에서 확인되는 고리모양 돌 유구에 대한 재밌는 해석을 했다. 만약에 돌 고리 한 1기가 크지 않은 무덤에서 확인된다면, 그의 직계가족이 와서 제사 지낸 표시라고 생각한다면,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1호분에는 직계가족 뿐만 친척까지 7개의 그룹이 와서 문상 온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쿠바레프 198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에서는 미라처리는 되어있지 않지만 인골이 확인되었고, 말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만들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무덤에서는 무덤방 외곽에 말을 구겨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들어갔다면, 이 무덤은 ‘말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을 통나무로 만들었다.

 

말은 몇 마리 들어 있었을까?

9마리다. 얼음공주 무덤의 말 6 마리나 말 9마리나 거한 장례식은 마찬가지이다.

그냥 말이 아니라 말은 충분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무덤의 주인공의 성(性)이 달라지면서, 남아 있는 유물도 차이가 있다. 특히 남성의 복장도 달라지고 출토유물도 약간 다르다. 이미 설명한 제사유구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없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강과 우코크 고원의 풍경

 

참고문헌

쿠베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카 무덤 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