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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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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두 유적의 거리는 3km 가량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얼음공주 무덤이 있었다. 베르텍 마을과 12km 떨어진 곳으로 좀 더 가깝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 중에서도 우코크 구원에 위치하는 유적이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Ploskogor'ye+Ukok/@50.3307878,87.9890127,6.35z/data=!4m13!1m7!3m6!1s0x42b7eb0e314da4fd:0xaf8aeded3a068607!2sAkalakha!3b1!8m2!3d49.6937885!4d87.4078366!3m4!1s0x42b70a2829374ba7:0x6d63a380c8591ae1!8m2!3d49.3077771!4d87.5947237!5m1!1e4?hl=ko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kr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발굴전에는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였다. 무덤의 크기는 남북방향은 17.5m, 동서방향은 8m가량이다.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을 기준으로는 49cm이다. 무덤의 중앙은 0cm로, 고도와 같았다. 무덤이 중간에 함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토(지표면을 덮은 흙)를 제거하자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큰 돌로 호석(가장자리를 두른 돌)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표토만 제거, 남쪽에는 고리모양의 원형 돌무지가 하나 더 있는데, 무덤은 아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호와 관련된 제사 유구로 생각된다. 무덤 중앙을 가로지는 선은 발굴할 때 사용했던 기준점이다. 그 옆의 숫자는 돌의 위치이다. 가장 중간이 ocm이다. 숫자의 간격은 1m이다. 

 

호석 안쪽으로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여 있었고, 일일이 손으로 제거했다. 이를 제거하자 2차 호석이 드러났다(그림2). 1호분의 주인공이 있는 무덤구덩이는 깊이 2.9m가량에서 확인되었다. 동서남북방향과 일치하며 크기는 4.8×4.75m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적석제거 후 드러난 호석과 무덤구덩이, 가운데 네모꼴이 원래 무덤주인공의 무덤구덩이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시가 엉뚱한 사람의 무덤 위치이다.

 

 

그런데 그 전에 적석을 제거하는 가운데 무덤 중앙을 기준으로 깊이 24cm에서 1호분과는 전혀 관련없는 14세기의 것으로 생각되는 엉뚱한 사람?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얄팍한 사람들은 아크 알라하 1호분의 무덤에 사용된 돌을 치워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했다. 사지를 쭉 핀 신전장으로, 두향은 서쪽으로, 손을 가지런하게 모은 자세로 놓았다. 두개골은 흙의 압력으로 눌러서 부서졌다(그림3). 허리춤의 오른쪽에는 철제 원형 재갈(말의 고삐를 채우는 장치) 2점(그림4)과 화살촉이 확인되었다. 이 유물로 보아서 14세기의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이 사람의 성별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없었는데, 유물로 보아서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출토품

 

 

그런데 의문스럽지 않으십니까?

과연 14세기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무덤을 도굴하지 않았을까?

힌트는 앞에서 이야기 한 무덤의 깊이에 있다. 파지릭문화의 사람은 바닥까지 3m까지 파야 그 사람 무덤에 다달수 있었으나, 14세기에 장례식을 치르던 사람들은 24cm정도만 파서 사자를 묻었다. 그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알았지만 손대지 않고 자신이 알던 사람만 그곳에 묻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죽어서 만났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 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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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