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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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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07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진실2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9세기 시베리아, 기원전 8세기에 흑해북쪽에서 이른 시기의 유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개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예정이다. 

우리가 현재 살피고 있는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는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앞서 설명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 평가된다. 얼음공주는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4세기중반 정도에 죽었다.

 

우리는 어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관이 2개라는 사실을 알았다.

통나무관에는 누가 있었을까?

남성전사라고 했으니, 한 명은 남성전사일 테고, 그럼 다른 한 명은....?

사실 발굴할 당시에는 16세의 여성으로 판명되었다가, DNA분석에 따라서, 남성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약간 논란은 있지만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일 가능성이 큰데, 좀 더 결과가 필요하다(필리펜코 외 2015). 이것이 이 무덤에서 뒤늦게 밝혀진 진실이다. 

 

그래서 최초로 발굴할 때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통나무관은 1호,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통나무관은 2호라고 명명되었다(그림1).

오늘은 곡절 끝에 남성으로 알게 된 15~16세 유로포이드 소년의 통나무관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그림 1-1).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왼쪽은 남성소년, 오른쪽은 남성중년, 왼쪽 관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2015년에야 알려졌다. 1990년 발굴하고 뼈를 토대로 한 인류학적 분석에서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DNA분석으로 15세 가량의 소년임이 2015년에 밝혀지게 되었다. 

 

소년의 통나무관은 아버지의 통나무관보다 약간 작다는 것은 어제 설명했고, 이 통나무관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고 눕지 않고, 오른쪽 어깨를 바닥으로 해서 옆으로 살짝 누웠다. 머리아래에는 35×19.5×7cm의 목침이 놓여 있었다. 목침에는 새머리모양의 목제장식이 남아 있었는데, 펠트제 모자를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펠트는 이미 없었다. 옆의 통나무관에 있던 남성과 비슷한 스타일의 모자를 썼을 것이다. 세 갈래로 땋아 묶은 머리단이 남아 있다. 귀걸이는 목제 위에 금박을 입혔는데, 한 개만 확인되었다(그림 2-2, 3). 목걸이도 목제인데, 두 마리 늑대가 꼬리를 내리고 마주보는 장식이 압으로 붙인 것이다. 목 뒤쪽으로는 청동으로 연결해서 만든 제품이다(그림 2-1.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남성 소년의 목걸이(목제+청동)와 귀걸이(목제+금박)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남성 소년의 귀걸이

 

가슴부분에는 꼬은 끈을 5개를 4개의 갈래로 묶어서 만든 유물이 나왔는데, 거의 똑같은 것이 아버지의 무덤에도 출토되었다(그림 4). 대퇴골 근처에는 34점의 자안패(그림 5)와 2점의 목제 둥근단추와 네모꼴단추가 확인되었다. 네모꼴 단추 가운데 구멍이 있는 것은 허리띠의 부속품이다(그림 6).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매듭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자안패

 

그림 6.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단추

 

오른쪽 발 근처에는 철제 투부(전투용 도끼)가 확인되었는데, 손잡이는 목제이다(그림 7). 허리춤 근처에는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는데, 가죽으로 된 쌈지에 담겨 있었다(그림 8). 오른쪽 엉덩이족에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목제 칼집에 넣은 철제 단검과 가죽끈이 발견되었다. 왼쪽 엉덩이에는 화살통에 붙어 있던 화살집 장식통이 목제로 제작된 채 놓여 있었다. 멧돼지와 표범이 싸우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그림 9). 그 근처에는 7개의 화살촉과 화살대도 확인되었다.

소년은 붉은 색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있었고, 엉덩이뼈와 다리뼈 부근에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신발에는 펠트로 만든 부츠를 신고 있던 흔적만 남아 있지 상태는 좋지 않았다.

또 무덤에는 파지릭문화에서 매우 드문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목제 칼이다. 길이 20cm가량으로 한쪽은 둥글게 처리되었고 다른 한쪽은 매우 정확하게 잘라졌다. 안쪽으로는 길이 19.5cm의 홈이 길이방향으로 파져 있었다. 목제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손잡이는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다.

쿠바레프는 울란디르크 유적의 출토품에서 작은 크기의 칼이 5점 확인된 것을 예로 들면서 이 유물이 크기가 작은 것에 주목했다. 칼은 규칙적은 크기로 대부분 길이가 22.5cm가량인데, 유물은 20cm가 채 안되는데 이미테이션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무덤 부장을 위해서 모방품으로 제작된 유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쿠바레프 1987).

그렇다면 이 소년의 관에는 실제 무기(화살과 화살통)와 부장용 무기(목제 칼)가 함께 묻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철제 투부

 

그림 8.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거울과 가죽주머니, 사진의 중앙에 에 작은 거울과 옆에 놓인 주머니가 이 유적의 출토품이다.

 

그림9.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화살통집 장식.

 

그림 10.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목제 칼

 

소년의 관은 가장 나중에 수습되었는데, 소년의 관을 모두 정리하고 통나무관과 무덤방을 모두 들어내자 무덤의 바닥을 정리 할 때 썼던 도구로 보이는 두터운 막대기가 놓여 있었다. 무덤팔 때 땅을 다지던 도구였다.

다시 말하면 무덤에서 가장 먼저 들어간 유물은 무덤을 썻던 도구이다. 무덤을 만들던 도구가 무덤안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은 파지릭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을 다진 도구는 어디에도 그림과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매우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소년의 화살통과 화살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참고문헌

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Пилипенко А.С., Трапезов Р.О., Полосьмак Н.В. Палеогенет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носителей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з могильника Ак-Алаха-1 (Горный Алта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Изд-во Ин-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5, том 43, № 4, с. 144 — 150(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된 파지릭문화인의 고인류학적 분석)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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