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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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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08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3km 떨어진 곳에 붙였다.

학자들은 이곳의 이름을 아크 알라하 1유적이라고 주소를 붙였고, 유적에서 1호분에는 어제 이야기 한 15세 가량의 유로포이드 소년과 함께 45~50세의 유로포이드 남성으로 밝혀졌다. DNA분석법으로 두 명다 남성으로 밝혀졌는데, 둘이 아버지와 아들일 가능성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한다(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어쨌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고 처음에는 알았으나, DNA분석법이 도입되면서 전혀 다른 양상이 밝혀졌다.

 

소년의 무덤과 크기가 약간 크지만, 중년 남성의 무덤 부장품도 용도가 같은 유물도 있지만 생김새는 다르고, 소년의 무덤에는 있는 유물이 중년남성에게는 없는 유물도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왼쪽 소년, 오른쪽 중년남성의 관

 

그는 몸을 편채 오른쪽으로 누워있었고, 두향은 동북쪽이고 손은 팔꿈치 쪽으로 굽혀 있었다. 머리아래에는 바닥이 편평한 목침(48×23×8.5cm)이 있었는데, 소년의 것보다 크다. 목침 근처에는 새머리 고깔모자가 확인되었다. 고깔모자의 가장 정수리 부분을 장식하던 새머리 장식과 분리된 채였다.말과 사슴에는 금박을 입혔을 것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의 새머리 고깔모자

 

이 남성도 목에는 목걸이를 착용했는데, 목제로 제작되었고 금박을 입힌 것이었다. 표범 두 마리가 마주보고 사슴머리를 같이 물고 있으며 그 아래에도 사슴머리가 표현된 것이었다(그림 3). 목제 귀걸이도 확인되었다. 두개골에는 검은색의 직모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목 근처에는 양모로 만든 끈이 여러 갈래로 만들어진 매듭이 확인되었다. 끝에는 둥근 술이 달려 있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의 목제 목걸이의 앞 장식

 

허리춤에는 목제로 제작하고 금박을 입힌 허리띠의 부속품과 허리끈이 확인되었다. 모두 6점인데, 4점은 2점씩 짝을 이루어 양쪽으로 대칭되게 제작되었고 가장 끝에 두 점은 각각 모양이 다르다. 가장 중심의 동물모양장식은 표범이 조각되어 있는데 2점(그림 4-3,4)이다. 동물모양장식 허리끈 부속품 옆에는 허리띠 장식은 부채꼴모양이 새겨져 있다. 가장자리에 네모꼴 프레임을 새기고, 그 안에 3열로 부채꼴이 새겨졌는데, 열과 열의 부채꼴 방향은 다르다(그림 4-2,5). 가장 하단의 중앙에는 긴네모꼴로 구멍이 뚫려져 있다. 이 허리띠 장식도 2점이다. 가장 끝에 허리띠 장식은 크기가 가장 작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오른쪽에 오는 부분은 부채꼴 모양이 3열로 새겨져 있는데(그림 4-1), 가장자리의 네모꼴 프레임과 구멍이 없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왼쪽의 네모꼴은 무문양으로, 하단의 중앙에 네모꼴 구멍이 있다(그림 4-6).

허리부근에서 불로 만든 빗이 확인되었고,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날이 위로 향하게 한 투부가 확인되었다(그림1).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전사의 허리띠 부속품, 상단은 중년남성의 것, 하단은 소년의 것이다.

 

오른쪽 대퇴골 근처에는 상태가 않 좋은 목제 칼집과 그 안에 철제 단검이 들어있었다. 왼쪽 대퇴골 근처에는 이미 형체가 없어진 활집에 붙어 있던 목제가 붙어 있던 것이 발견되었다. 일렬로 구멍은 남아 있었지만, 소년의 화살통처럼 동물문양장식은 없었다. 활대가 붙은 화살 5점과 조합식 활의 목제부분도 남아 있다.

 

남성은 펠트제 붉은색 바지와 펠트로 만든 신발도 신고 있었다.

 

소년의 관에서는 자안패, 거울, 목제칼 등이 발견되었으나 이는 중년 남성의 무덤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소년의 관에서는 고깔모자는 발견되지 않고 목침 위에 말모양장식등이 확인되었는데, 모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안패, 거울, 목제칼과 함께 충분히 여성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발굴당시(1990년)과 보고서가 출간된 해(1994년)에는 인골분석에 DNA분석은 그 때까지 고고학에 도입되기 전이기 때문에 단순히 뼈를 보고 여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학자들은 보고 당시에는 바지를 입은 소녀전사정도로 생각했다.

 

둘 다 남성인 것이 밝혀졌 진 덕에 소년의 목침 위에 있던 산양모양 조각도 용도가 분명해 졌다. 모자장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모자장식 부속품, 산양장식. 뿔이 빠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유물은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 활과 화살통, 목제 목걸이와 귀걸이, 허리띠 버클과 고깔모자 등이다. 하지만 용도는 같지만 전부 모양이 달랐다. 하나만 빼고,. 그것은 매듭이다. 매듭은 두 관에서 출토된 유물이 거의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되었다.

 

 

둘은 어떤 연유로 같은 무덤에 묻히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면.,,

 

참고문헌

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Пилипенко А.С., Трапезов Р.О., Полосьмак Н.В. Палеогенет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носителей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з могильника Ак-Алаха-1 (Горный Алта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Изд-во Ин-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5, том 43, № 4, с. 144 — 150(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된 파지릭문화인의 고인류학적 분석)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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