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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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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05 2500년 전, 알타이 남성전사의 방패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고 있다. ‘스키타이문화’라고 불리는 초원의 철기시대문화로 스키타이문화에서도 알타이 산맥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이 유적은 이 문화의 일원이다.

 

‘얼음공주’이라고 알려진 여성미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이 여성의 직업과 관련된 유물을 설명한 바 있다. 여러 유물이 있지만 거울과 그녀의 목걸이는 상반된 특징이라고 했다. 거울은 다소 소박했고, 목걸이는 최상급 무덤이라고 하는 파지릭 유적에서 나온 목걸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유물은 목제라고 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물론 청동과 금박을 덧입혔지만.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이 여성의 무덤에는 없었던 유물이 말무덤을 상세하게 쳐다보셨다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말무덤에서 가장 상부에 튀어나와 있던 유물 중에 하나는 방패이다(그림 1).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방의 1차덮개 노출 후, 현재 보이는 장면은 말무덤을 덮은 흙과 일부 삐져나온 유물 및 2차 무덤방의 덮개와 무덤방의 부속품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설명할 것이다.

 

오늘은 그  방패에 대해서 약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방패가 말 무덤에서 확인되는 이유는 평소에 안장에 달았기 때문이다. 현재 파지릭문화에서는 가죽제에 나무가 달린 것과 목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방패는 목제인데, 투엑타 유적의 1호분, 타산타 유적 출토품과 생김새가 유사해서, 가죽방패를 목제로 모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크기는 27.5×38cm이다. 방패의 손잡이 면은 매끄럽게 마연되었고, 문양이 새겨진 면에는 선을 그어서 문양을 표현했다. 가장 바깥의 테두리는 위아래는 2.5cm, 양쪽은 1cm의 여백을 두고 그 안에 28개의 선을 그어서 표현했는데, ‘×’자 모양이다(그림2).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방패, 마구옆에서 출토된 목제 방패

 

투엑타 유적과 타산타 유적에서도 목제로 제작된 방패가 확인된 바 있다.

파지릭문화가운데서 가장 먼저 방패가 확인된 것은 투엑타 1호분의 것이다(그림 3). 유적을 발굴한 후 루덴코는 목제방패는 가죽방패에 나무막대기를 댄 것과 같은 형태여서, 알타이 인들은 아마도 가죽방패를 사용했다고 확신했다(루덴코 1960).

투엑타 1호 출토품은 42×50cm(그림3의 왼쪽), 46×50cm(그림 3의 오른쪽), 타산타 유적의 1호분도 44×35cm이다(그림5-9).

타산타 유적의 두 유물은 네모방향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안을 수직으로 표현한 것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것과 다르다. 그리고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남성전사의 것이 약간 작다.  또한 투엑타 유적의 출토품은 네모틀에 그 안은 가죽을 나무막대기에 꼬아서 만들고 틀에 넣어서 만든 것이다(그림 3, 4).

 

그림3. 투엑타 유적 출토 방패, 너비 1cm가량의 가죽과 37개의 나무막대기에 꼬아서 방패 앞부분을 장식. 가장자리에는 턱이 있음. 원래는 이정도만 남아 있었으나 가죽의 원래모양을 복원(그림 3)했다.

 

그림4. 투엑타 유적 출토 방패 복원도, 필자는 1960년에 나온 책이라고 믿기지가 않았다.

 

 

 

그림5. 타산타 유적 출토 방패,  9번 유물이 방패이다.

 

 

타산타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1987)는 소형과 목제의 방패는 무덤에 매납하기 위해서 만든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을 발굴한 폴로시막은 고렐리크(1987)의 의견을 인용했다. 고렐리크는 파지릭 문화에서 출토되는 방패는 모두 작은데, 보병용 전사의 것이라면 가능하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솔로하(흑해 북쪽, 지금의 우크라이나 국경내)라고 하는 유적의 유물 때문이다.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크기 12.6×10.2cm의 황금 빗이다.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5~4세기 가량으로 평가된다. 세 명의 전사가 싸우는 장면을 가장 꼭대기에 배치해서 조각했다. 중앙에는 말탄 전사, 오른쪽과 왼쪽에는 보병의 전사가 싸우는 장면이다. 그 중에서 네모 방형의 방패를 든 이가 스키타이 전사자이다(그림 6~8).

 

그림 6.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네모방패를 들고 있는 보병을 스키타이 전사로 본다.

 

그림 7.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세부사진

 

그림 8.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스키타이 남성전사의 다른 면

 

 

참고문헌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고렐리크 1987, Горелик М.В. Вооружение народов Восточного Туркестана // Восточный Туркестан в древности и раннем средневековье.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5. С. 359-430.(고렐리크 1987, 투르케스탄 동부 민족의 무기에 대해서)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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