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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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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거동 유적에서 확인된 연해주 청동기시대 문화는 어떤 경로로 내려왔을까?
 전고(김재윤 2004)에서는 남부지역(대평, 본촌리유적)을 제외하고는 중부지역에서는 미사리 유적 이외에는 확인된 바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이 보다 북쪽인 강원도 유적에서는 연해주 청동기시대 문화의 요소가 확인되고 있다.


그림1. 유적분포도(19: 미사리, 20: 가평 연하리, 21: 철정리, 22: 평창종부리, 천동리, 23: 아우라지, 24: 평거동)

 정선 아우라지에서는 평거동과는 달리 동체부가 긴 외반구연 발형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흥성유적과 비교된 바 있다. 지적된 아우라지 출토품은 구연부에 돌대를 부착한 토기로 분명히 구연부를 접은 평거동 출토품과는 차이가 있어 흥성 유적의 토기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아우라지에서는 석기 중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것과 유사한 것이 확인되는데, 뒤에서 설명하겠다.
 철정리 C지구 1호에서는 돌대문토기는 출토되지 않았지만 외반구연된 옹형토기와 구연단을 접은 이중구연토기, 돌류상 돌대 등은 평거동 7호 주거지의 토기 조합이 유사하다(그림2).  

그림2. 철정리 C지구 1호 유물


 이 토기 조합은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의 특징에 해당된다. 노보셀리쉐-4 유적의 청동기시대 층에서는 발형토기에 부착된 것으로 추정되는 타원형 돌대()가 확인되었다.  하린 유적에서는 호형토기의 동최대경 높이에 돌류상 돌대()가 부착되어 있다(평거동 돌류상 돌대가 발형토기에 두 개만 붙지 않았을 가능성은 12호 출토품(그림)가운데서 확인가능하다).
 평거동 3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구연단을 접지 않고 점토띠를 부착한 토기는 평창 천동리 유적 2호 주거지에서도 돌대문토기, 부리형석기 등과 함께 출토된 바 있다. 


 토기 뿐 만 아니라 경로를 추측할 수 있는 석기가 한강, 북한강과 남한강 유적에서 출토되는데, 석촉형 석기와 곡옥형 석기이다. 이 석기가 석촉이 아닌 점은 함께 출토되는 단면이 육각형이며, 슴베가 들어간 것과는 확연 한 차가 있다 청동기시대 조기의 석기양상을 분석하면서 시니가이식 석총형 석기와 무경식만입석촉이 같이 분류(김민지 2012), 되었지만 두 석기는 단면과 평면형태, 인부 등에서 차이가 크다.


 석촉형석기는 미사리 A-1호, 아우라지, 철정리, 외삼포리, 연하리 유적 에서 출토된다. 모두 슴베가 편평하거나 약간 둥글게 처리된 것으로 단면도 편평하며, 인면을 제작한 흔적이 없다. 미사리 A-1호, 철정리 등지에서는 무경식 석촉으로 단면이 육각형인 것이 함께 출토되는데, 두 유물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아우라지(그림 3-22)와 미사리 A-1호에서 출토되는 곡옥형 석기(그림3-21)도 시니가이 문화의 곡옥형 청동기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시니가이 문화에서 모방 토제품은 곡옥형 청동기 뿐 만 아니라 청동단추(그림 3-25)도 있다. 아우라지와 미사리 유물은 연해주의 곡옥형 청동기를 모방했을 개연성도 있고, 연해주에 청동기를 모방한 토제품 뿐만 아니라 곡옥형 석제품(그림 3-43,43)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앞서 설명한 연해주 부리형 토제품과 석기는 평거동 유적 뿐 만 아니라 아우라지(그림 3-27~29), 천동리(그림 3-30) 등에서 석제품으로 출토된다. 한반도에서는 주로 석제품이 북한강과 남한강, 남강 등 광주산맥 이남에 존재한다. 평거동 유적에서 출토된 무공석도도 외삼포리(20), 아우라지(15~17,19), 종부리 등에서 확인된다.


 평거동에서 출토된 장타원형 갈돌도 아우라지(그림 3-26,31) 유적에서 출토된다. 장방형 갈돌은 긴 단면이 안쪽으로 휘어지며, 짧은 단면도 장방형이다. 이는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인 하린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는데, 평면형태, 장축과 단축의 단면 등은 모두 유사하다.
 따라서 강원도 철정리, 아우라지, 천동리,종부리, 연하리 등지에서 확인된 연해주의 토기와 석기는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이 모두 확인된다.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아우라지 유적에서는 흥성식 토기도 출토된 바 있다. 


 강원도에서 확인된 철정리 C지구 11호 토기는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과 유사 한 점을 미루어 판단하면, 평거동에서 확인된 시니가이 문화 동부 1유형의 토기 뿐 만 아니라 서부 2유형의 토기도 남강 유역에서도 확인될 수도 있다.
 연해주 내 혹은 북한동북부 지역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유형과 동부유형이 결합된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혹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1유형과 2유형 사이에 돌대가 구연단에 연접한 옹형토기가 주를 이루며 서부 2유형의 석기상을 포함한 유적군이 앞으로 확인되기를 기대해 본다.
 평거동 유적에서 출토되는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강원도를 통해서 인간이 이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주는 단발적이지 않고 연해주의 동부 1유형부터 청동 유물이 동반된 시니가이 문화의 2유형까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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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한국에서 청동기시대는 비파형동검 등장 이후에 청동유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불과 1~2년까지 전만해도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이다. 기원전 15세기가 한국청동기시대의 시작으로 보는데, 기원전 8세기가 되어야 청동유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바뀔 계가 있었는데, 1996~1999년에 남강의 대규모 댐공사로 인해서 대대적인 발굴이 있었다. 그 때 대평리 옥방 5지구에서 곡옥형 청동기가 출토된 적이 있다http://eastsearoad.tistory.com/129?category=737917. 이것은 한국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유물일 가능성이 있었으나 유물의 반출관계나 출토맥락이 분명치 않아 학계에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2016년 한반도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유적 중에 하나인 강원도 아우라지 유적의 주거지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이 출토됨으로 인해서 비파형동검 이전에 이미 한국에 청동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학계는 이 자료는 신뢰하는 분위기이다. 이는 시베리아 카라숙문화로부터 전해졌을 가능성이 논의 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강 대평의 청동유물 또한 비파형동검 이전의 유물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옥방 5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에서도 두 시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시기와 청동기시대 시작 단계이다. 그간 연구된 바로는 비파형동검 시기에 곡옥형청동유물이 확인된 예는 없다. 그렇다면 남강 대평 유물은 청동기시대 시작 단계의 유물로 볼 수 있다.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곡옥형 청동기가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에서 전해졌을 것이라고 이미 간략하게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의 반출관계가 명확하지 못해서 어떤 맥락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청동기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평거동 유적에서 직접 청동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토기와 석기가 남강 평거동에서 확인되며, 특히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면 그 영향력은 대평 유적까지도 가능성이 있다.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 유적인 시니가이 A유적 중층, 아누치노-14 유적과 동부2유형 수보로보 6 유적은 청동유물이 반출된다. 그 종류는 곡옥형 청동기, 청동단추, 연주형 청동유물 등 주로 소형이다. 뿐만 아니라 곡옥형 청동기와 청동단추는 토제모방품도 유적에서 출토된다.http://eastsearoad.tistory.com/144?category=737917 청동유물의 성분분석을 바탕으로 이 지역 출토의 청동유물은 바이칼 지역의 서쪽에 있는 카라숙 계통과 같다는 의견이 있다(콘코바)으며, 이는 카라숙 문화가 동진하면서 생긴 결과로 보고 있고, 기원전 13~9세기 가량의 사건이다.

 시니가이 문화에서 출토되는 청동 유물은 단추, 연주장식품, 곡옥형이다. 단추와 연주장식품은 기타 지역에서도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곡옥형은 연해주와 대평에서만 출토되고 있으며 가장 유사한 형태는 시니가이 A유적 중층 출토품이다.

 그렇다면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곡옥형 청동기는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과 관련성이 깊으며, 평거동 뿐만 아니라 남강 대평 유적으로도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며 그 시기는 3300년 전 부터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말은 그렇다고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의 주류가 연해주로 부터 온 문화에 의한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비파형동검은 압록강 유역과 인접한 그 지역으로 부터 들어왔으며 이로 인해서 한국은 비파형동검을 특징으로 한 청동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그렇다면 연해주에서 남강 유역까지 어떤 경로로 오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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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 평거동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 1유형과 유사하며 석기는 주로 서부 2유형과 닮아 있다. 그런데 평거동 유적에서 확인되는 연해주 청동기 문화의 토기와 석기가 유형의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이점은 필자가 평거동 유적에서 구연부 제작방법과 기형이 유사한 토기의 증거로  동부 1유형을 강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이 남강 유역에서 확인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서부 2유형에서도 기형은 확인이 불가하지만 구연단에 연접해서 돌대를 부친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7호에서 이중구연옹형토기와 함께 홑구연토기가 출토되는데, 이는 서부2유형 유적에서 확인된다. 그런데 평거동 유적의 홑구연토기는 너무 작은 편이며, 소량이라는 점은 평거동 유적에서 주류를 이루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의 토기 양상이 강원도에서 확인되는 점을 볼 때 남강 유역에서도 서부 2유형과 유사한 유물이 출토될 개연성은 있다. 서부 2유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철정리 유적인데, 이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앞서 지적한 대로 서부 1유형과 서부 2유형로 변화하는 가운데, 이중구연 옹형토기와 돌대문 옹형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호형토기 등장 이전의 단계 유적이 발견된다면, 평거동 유적의 물질문화 양상은 오히려 서부지역과 더 가까울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연해주의 발굴자료를 기대코자 한다.
 돌대문토기 단계의 주거지도 서북계통을 지지하는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인 하린 유적에서는 주거지에 주초석과 석상위석식노지, 동부 2유형인 루드나야 프린스턴 3층에서 장방형의 주초석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토기의 구연부 제작방법과 주거양상만으로 반드시 서북지방 계통임을 단정하는 것은 이르다.


 평거동 유적의 연대는 표1에 제시되어 있다. 평거동 유적은 시니가이 문화http://eastsearoad.tistory.com/148 보다는 약간 늦은 시점에 시작된다. 

표1. 남강 유역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 유적의 절대연대(고민정 2011 표4 재인용)
 

따라서 앞서 살펴본 평거동의 물질문화는 대략 3300 B.P.부터 서부경남까지 시니가이 문화가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단발적이지 않았고 청동유물을 공반한 2유형까지 지속적이었을 것이다.


청동기?

물론 이 유적에서는 출토되지 않지만 같은 남강 유역의 대평유적http://eastsearoad.tistory.com/129에서 출토된바 있다.


필자는 이 유물도 시니가이 문화가 남강 유역의 평거동 유적 뿐만 아니라 대평유적에서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이미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그간 청동유물만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그 실체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았다.
평거동 유적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면 대평유적에서 곡옥형 청동기가 확인되는 것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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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평거동 유적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흔적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쓴 글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데, 구연단을 접어서 만든 이중구연토기는 발형 뿐만 아니라 옹형도 있다고 했지만 그림(1)이 빠졌다.

그림 1.구연부를 접은 옹형토기

그림 1-1. 그림 1의 디테일
 

이 토기로 기형이 전혀 다르다. 어제 제시한 연해주의 에피스타피-1. 리도프카-1 유적의 하층 등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7호 출토 토기 가운데 높이 4cm의 저면이 장방형인 소형토기(그림 2)도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에서 많이 확인되는 토기이다.


그림2. 소형토기

2. 석기  

토기 뿐 만 아니라 평거동 유적에서는 동북지방 요소로 꼽혔던 부리형 석기 이외에도 장방형 갈판, 무공석도, 곰배괭이 등도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문화요소이다. 특히 평거동 유적의 부리형 석기는 돌대문토기 단계의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비율 높다.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인 하린 유적에서는 부리형 토제품과 석제품(그림9)이 출토된다. 발굴자는 일종의 동물형 토우라고 보았다. 이 토제품과 석제품은 평면형태가 양단을 자른 반월형인데, 양단의 한쪽변이 약간 길다. 토제품과 석제품 모두 긴 쪽에는 홈을 내었고, 토제품에는 홈의 반대편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평거동에서 출토되는 부리형 석기(그림 3,4)는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평거동 유적에서 출토된 부리형 석기는 대부분 이중구연토기 및 돌대문토기와 함께 반출된다. 돌대문토기 단계의 다른 유적에서 확인되는 부리형석기와는 달리 가장 많은 출토양을 보이고 있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대체적으로 자갈돌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평면형태가 같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자갈돌을 깨어서 한쪽 면을 편평하게 하고,  한 쪽에 홈을 낸 것은 연해주의 것과 아주 유사하다.


그림 3. 평거동 출토 부리형 석기

그림 4. 평거동 출토 부리형 석기

평거동 유적에서는 돌대문토기 단계에서 장방형 석도를 포함한 무공석도(그림5)가 출토된다. 3호 출토품 가운데 평면형태가 장방형 석도와도 다르게 평면형태가 주형(舟形)이며 직인에 가까운 유물이 출토된다. 3호 출토품(5-오른쪽) 중 인면의 끝이 부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견한 결과 원래 처음부터 부러진 것으로 의도적으로 제작되었다. 인면에서 약간 꺾여서 손잡이 부분으로 손질되었을 수도 있다(만약 발굴 과정 중에 떨어진 것이라고 해도 한쪽 끝은 뾰족하고 반대 면은 직선인 4호 출토품과 유사할 것이다). 4호 출토유물(5-왼쪽)은 장방형 석도와는 달리 한쪽 끝이 뾰족하고 다른 끝은 편평하고, 직인이다. 이와 유사한 유물은 부리형석기와 마찬가지로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인 시니가이 A유적 중층에서 출토되었다. 무공석도는 강원도 돌대문토기가 반출되는 유적인 아우라지, 외삼포리, 천전리 등에서도 출토된다.


그림 5. 무공석도

 이 외에도 평거동 5호에서는 장타원형 갈돌(그림6), 곰배괭이(그림7), 환상석기(그림8) 등이 출토되었다. 환상석기와 곰배괭이는 시니가이 A유적의 신석기시대 후기 층부터 청동기시대인 중층까지 계속해서 출토되는 유물이다. 곰배괭이(그림7)는 부리형 석기와 마찬가지로 회령 오동 유적을 중심으로 한반도 동북지방의 요소로 지목된바 있다.

그림 6. 장타원형 갈돌

그림 7. 곰배괭이

그림 8. 환상석기

장타원형 갈돌(그림6)은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에서 출토된다. 연해주에서 갈돌과 갈판은 신석기후기인 자이사노프카 문화에서부터 출토된다. 이 때 갈돌의 형태가 사진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안으로 안쪽으로 휘어들어 간 형태고, 작업면은 편평하다.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에서 장타원형의 갈돌이 출토된다.
 
 이외에 3호 주거지에서 관옥형 옥기와 5호, 7호 등에서 편평석부가 확인된다. 이 유물도 시니가이 문화의 2유형에서 확인되는 것이지만, 연해주 만의 것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편평석부는 압록강 유역의 심귀리 유적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림9. 시니가이 문화의 부리형 석제품(29,33~36)와 토제품(28)

그림 10. 시니가이 문화의 무공석도

그림 11. 시니가이 문화의 갈돌(45,47)과 곰배괭이(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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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계속해서 시니가이 문화에 대해서 연재하고 있다.

왜냐하면

 청동기시대 시니가이 문화가 교류 흔적? 혹은 사람의 이주 흔적? 등이 경남 진주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토기, 석기, 청동기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1. 토기
 평거동 청동기시대 주거지(집터)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점토띠를 부착한 돌대문토기와 구연단을 접은 이중구연(입술이 두겹)토기가 출토된다. 이 토기들은 한국에서 청동기시대 가장 빠른 시기인 조기(早期)로 평가되고 있다. 좀 더 세분화 하면 조기 후반 혹은 전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절대연대는 대체적으로 BC1316~1122(보정연대)까지 여러 시료가 있음.)


 평거동에서 출토된 이중구연토기는 입술부위를 접어서 만든 것이고, 이 보다 앞서(청동기시대 시작 무렵, 조기 기원전 15세기) 들어온 서북지방에서 들어온 토기에서 발전해서 재지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에서는 모순점이 있는데, 이중구연토기는 모두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기형(토기의 모양)이 다른 것이 있으며 이중구연이라고 해도 구연부 제작방법에 차이가 있다. 먼저 주장된 것은 나팔상으로 벌어지는 발형토기(그림1.2)이다.

그림 1. 평거동 출토 이중구연토기. 

그림2. 그림1을 복원한 것. 발형토기

그러나 평거동에서 출토된 토기 가운데 같은 시기에 기형이 다른 것은 경부(목)이 생기는 옹형토기(그림)가 있다. 

그림 3. 이중구연토기(점토띠를 덧붙임)

그림 4. 그림3을 실측한 것(왼쪽) 그림 5를 복원한 것(오른쪽)
 

뿐만 아니라 구연부 제작방법에도 차이가 있는데, 점토를 부쳐서 만든 발형토기(그림3)와 옹형토기(그림 5, 그림3의 오른쪽)가 있다.

그림 5. 이중구연토기(입술부위에 점토띠를 부친 것), 옹형토기



이들 토기는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1유형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며 같이 출토되는 석기 들 중에서도 연해주 출토의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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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고(김재윤 2017)에서 ‘전환기’라고 명명했던 한카호 유역의 3유형 가운데 레티호프카 04년 수혈, 아누치노 29유적은 시니가이 문화 중에서도 가장 이른 단계의 유적일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수혈에서는 신석기 후기 문양이 그려진 토기()와 함께 이미 무문의 봉상파수토기가 출토된다. 신석기 문양이 그려진 토기라고 해도 높이가 60cm인 발형토기()는 신석기 토기와는 크기와 용량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또한 석착, 편평석부, 성형석부, 석검 등은 마제석기가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비중이 크다. 편평석부, 성형석부, 석검은 신석기시대 후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김재윤 ). 이 유적의 절대연대는 연해주 신석기 후기 가운데 가장 늦으며, 이미 연해주 해안가 유적에는 마르가리토프카 문화가 등장한 시기이다(표). 이 유적을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1유형으로 볼 수 있다. 서부 2유형은 앞서 살펴보았던 시니가이 A유적의 중층, 하린 유적이다.

 

따라서 시니가이 문화의 상한은 시니가이 문화 서부의 1유형에 해당되는 레티호프카 유적의 04년도 수혈(구덩이)를 참고로 할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상한연대를 삼을 수 있다. 현존하는 절대연대는 3600B.P.년까지 올라가 있지만 두만강 유역에서는 아직 신석기 시대 마지막 시기이다. 이 때 동부지역에서는 마르가리토프카 문화가 존재했는데, 이를 참고로 해서 3400 B.P.정도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유적의 하한연대는 3200B.P.로 동부지역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의 하한연대 3300B.P.보다 약간 늦다(표1). 그렇다면 3300~3200B.P.년 경에 서부 1유형과 마르가리토프카 문화가 끝나고 서부2유형과 동부 1유형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유적

절대연대(B.P.)

보정연대(BC)

참고문헌

신석기후기

자이사노프카문화

한카호2유형(김재윤 2017)

보골류보프카-1 06년 주거지

3890±60 (SNU07-260)

 

가르코빅 2008

노보셀리쉐-4 주거지

3840±70(AA-13400)

3755±35(AA-36748)

 

얀쉬나. 클류예프 2004

청동기시대

마르가리토프카 문화

글라조프카-2

3605± 35(AA 37114)

 

J.Cassidy 2003

3580± 40(UCR-3773)

 

J.Cassidy 2003

에프스타피-올렉 1

3615± 80(ГИН 6948)

 

J.Cassidy 2003

프레오브라줴니예1

3510±70(Вета-172568)

 

J.Cassidy 2003

자랴-3

3570±80(Вета-133846)

 

J.Cassidy 2003

3520±40(Вета-172570)

 

J.Cassidy 2003

3540±70(Вета-172573)

 

J.Cassidy 2003

모나스트르카-3

3420±40(ГИН-10218)

 

댜코프 1999

3340±40(ГИН-10219)

 

3400±40(ГИН-10220)

 

시니가이 문화

레티호프카 04년 수혈

3610±80(COAH-6108)

 

쿠르티흐 외 2008

3240±80(COAH-6109)

 

金材胤 2006

3200±100(COAH-6110)

 

노보셀리쉐-4 중간층(청동기시대층)

2980±50(ГИН-6951)

 

얀쉬나 클류예프 2004

수보로보-6

2960±90(ГИН-7234)

11-10

쿠즈민 외 2003

2935±50(СОАН-3023)

11-10

2320±55(СОАН-3022)

5-4

2540±40(АА-36623)

7-6

아누치노-14 청동기시대

2640±55(СОАН-4491)

 

Klyuev 2001

시니가이 A 중층(청동기시대층)

2875±45(СОАН-1540)

 

브로댠스키 1996a

2820±55(СОАН-1541)

 

리도프카 문화

리도프카 1의 상층

2610±45(СОАН-1390)

 

댜코프 1989

2535±40(СОАН-1424)

 

2570±60(СОАН-1388)

 

2450±50(СОАН-1389)

 

표1. 연해주 신석기후기~청동기시대 절대연대(유적의 위치는 http://eastsearoad.tistory.com/145에서 확인가능함)

그런데 현재 측정된 자료는 서부 2유형과 동부 2유형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연대가 3000.~2500B.P. 집중된다(표1). 서부 2유형에서 연대를 참고 할 수 있는 것은 청동유물이다. 시니가이 A유적의 중층에서 출토되는데, 이를 직접 분석한 콘코바는 자바이칼 유역의 카라숙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며, 기원전 13세기~9세기에 유라시아에서 동아시아로 전해졌다(강인욱 2017).  그렇다면 서부 2유형은 현재 측정된 절대연대 보다 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또한 동부 1유형의 연대는 여기에 해당되는 유적의 측정연대가 없다. 그래서 2유형(그런데 시도렌코()는 동부 2유형에 해당되는 베트로두이 유적(테튜헤 유형)의 절대연대인 1~3세기를 하한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연해주 폴체문화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시료채취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베트로두이 유적의 유물은 참고할 수 있으나 절대연대를 논하기에는 적당치 않다)에 속하는 연대를 수보로보-6유적의 연대  를 참고 할 수 있는데, 대략 3000B.P.에 2유형이 시작됨으로 이를 1유형이 끝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동부 1유형은 마르가리토프카 문화가 끝나는 3300B.P.부터 동부2유형이 시작되는 3000B.P에 속할 수 있다.
시니가이 문화의 하한은 이 문화의 다음 시기에 해당하는 리도프카 문화가 2500B.P.부터 임으로 이를 참고할 수 있다.  

표2. 시니가이 문화의 연

따라서  연해주의 청동기시대는 단절적이지 않고 신석기 후기로부터 자연스럽게 변화된다. 3600년경은 마르가리토프카 문화가 연해주 동부지역에서 먼저 시작된다. 3400B.P.년경 시니가이 문화로 서부에서 먼저 변화되며, 3300B.P.마르가리토프카 문화가 끝나는 시점에 동부지역에서 시니가이 문화가 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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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가이 문화의 유적은 연해주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지만,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의 유적은 연해주의 동부지역(해안가)에만 위치하고 있다(http://eastsearoad.tistory.com/145?category=737917의 그림 1 참고). 현재의 자료로는 시니가이 문화와 마르가리토프카 문화 사이의 공백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고고학 현상과는 차이가 있다.
  연해주 내륙의 신석기 후기 단계에는 레티호프카 유적, 시니가이 A유적, 아누치노-14, 노보셀리쉐-4유적 등 신석기시대 후기 유적에서는 반드시 그 상층에서 시니가이 문화 청동기시대 층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신석기시대 토기가 주거지 바닥에서 확인된다. 레티호프카 유적의 절대연대는 이어지는 시니가이 문화의 연대와 이어지고 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단절적이지 않은 점은 여러 가지 정황이 확인된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변화는 토기에서 확인된다. 신석기시대 외반 구연의 발형토기(그림1-1,2)는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에서는 토기 기형의 기고가 짧아지면서 발형에서 많이 변형되었다(그림1-8). 이 변화는 전고(김재윤 2011)에서 뇌문토기 기형에서 변화한 것으로 보았다. 뿐만 아니라 시니가이 문화의 토기도 신석기시대 외반 구연 발형토기가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구연부가 좀 더 외반하면서 옹형(그림 1-9)화되었다. 일부 토기는 경부가 좀 더 길어지고 호형으로 변하며, 무문화되었다(그림 1-12). 

그림1


 뿐만 아니라 구연부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신석기후기의 구연부에 돌대를 부착하거나 구연단에 접해서 이중구연(그림 2-1~3)처럼 붙는 제작방법은 청동기시대문화(그림 2-4~9)에서도 이어진다. 호형토기의 구연부는 외반하면서 약간씩 접고 그 상단을 손으로 눌러서 마무리 하면서 퇴화 이중구연(그림 2-10)처럼 보인 것도 있고, 일부는 구연단화 되어 홑구연(그림2-11)이다. 

그림 2

 이를 신석기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자연스러운 변화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은 레티호프카 유적와 아누치노 29이다. 레티호프카 유적 04년도 수혈과 아누치노 29 유적에서 무문 봉상파수부 토기(그림 3-1~6)가 모두 출토되었으며, 이는 서부 2유형인 시니가이 A유적의 중층에서도 출토되었다. 또한 이와 함께 신석기 문양이 그려진 높이 60cm 가량의 구연부 외반된 발형토기(그림 1-6)가 유사한 기형으로 문양이 없는 토기(그림1-7)가 시니가이 서부 2유형에서 출토된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42?category=737917의 그림 1-2)이 토기는 기고보다는 동최대경이 훨씬 더 큰 독특한 기형으로 청동기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만약 몇 백년간 단절이 있었다면 거의 유사한 형식의 토기가 비슷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림 3

 특히 직접 발굴에 참가한 바 있는 레티호프카 유적의 04년도 수혈에서는 편평 석부, 성형석부, 환상석기, 석검의 봉부 등은 이 지역 신석기시대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마제석기(그림4- 6~12,15,17~19)가 수혈의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아누치노 29 유적에서도 다른 신석기후기 유적에서 확인되는 타제석촉과 함께 마제석부, 마제석착(그림 4-5,13,14,16) 등이 출토된 바 있다. 필자는 레티호프카 유적이 이미 신석기시대 후기가 아닐 가능성도 있음을 밝힌 바 있고, ‘전환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김재윤 2004, 김재윤 2017).
 토기 뿐만 아니라 곡물자료도 레티호프카 유적의 시대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04년 수혈에서는 조와 기장이 출토되었는데, 그 형태와 수가 신석기후기의 다른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다르다(세르구세바)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그림4

이 문제는 시니가이 문화의 연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측정된 연대로만 시니가이 문화의 시작시기를 알 수 없다. 현재 이 문화는 연해주에서 유적조사가 그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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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가이 문화의 동부지역에서는 1유형과 2유형 모두 타제석기가 서부지역에 비해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이전 시기인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동부 1유형(루드나야 프리스턴 2층)에서도 타제석기와 함께 마제석부(http://eastsearoad.tistory.com/145 의 그림 2 참고)도 확인되었다.


 동부 2유형 석기는 타제(때려서 만드는 방법)로 제작된 석촉(그림 1-1), 뚜르개(그림 1-2), 긁개(그림 1-3) 등은 1유형에서부터 계속 확인되며 석부, 석촉형 석기, 석촉, 석창, 석도 등 마제(갈아서 만드는 방법)석기의 종류가 늘어난다. 석부(그림 1-4)는 단면이 거의 직사각형에 가깝게 각이 져 있다. 석촉형 석기는 끝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단면은 편평하다. 반면에 석촉(그림 1-6)은 중앙에 석촉의 중앙에 홈이 파져 있으며 끝부분이 들어가 있다. 석도(그림 1-7)는 반파된 것으로, 호선모양에 날이 마연되어 있다. 석창(그림 1-8)은 슴베가 부러진 것인데, 중앙에 능이 있다.

(그림 1. 시니가이 문화 동부지역의 석기, 1유형-상단, 2유형-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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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가이 문화는 연해주 해안가에도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이를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유형이라 할 수 있고, 1유형과 2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유형과 2유형은 시간적 흐름에 따라서 구분한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루드나야 프리스턴 유적에서 층위를 이루며 확인되고 있다.
 

(그림 1. 1-시니가이 A, 2-레티호프카, 3-아누치노 4, 4-아누치노 14, 5-쿠르글나야 돌리나, 6-블라고다트노예-1, 7-보다라즈젤나야, 8-루드나야 프리스턴, 9-수보로보 6, 10-리도프카 1, 11-에피스타피-1, 12-졸로타리 유적)


동부 1유형에 해당되는 토기특징은 신석기시대 문양이 남아 있는 토기와 함께 무문양으로서 구연부위가 벌어진 옹형토기(그림 2-1)이다. 이 토기의 구연은 점토가 하나 더 붙어 있는 이중구연이다. 구연단을 접은 것(그림 2-3)과 구연단 부근에 돌대를 부착한 것(그림 2-2)이 있다. 돌대나 이중구연단에 여러 가지 도구로 문양을 새기거나 문양을 새기지 않은 것도 있다. 문양을 새긴 것은 신석기시대 시문도구로 각목한 것, 단치구에 의한 단순한 각목이 있으며 파상으로 접은 것도 있다.


(그림 2, 시니가이 문화 동부 1유형 루드나야 프리스턴 2층(상단), 동부 2유형 루드나야 프리스턴 3층(하단)

동부 2유형 토기양상을 알 수 있는 곳은 루드나야 프리스턴 유적의 3층, 수보로보 6, 보도라즈젤나야, 베트로두이 유적 등이다. 발형토기 뿐만 아니라 옹형과 경부가 길어진 호형토기(그림 2-4)가 출토된다. 서부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연된 토기이다. 구연부 제작방법은 홑구연도 있고, 구연단을 접은 이중구연토기(그림 3-1)도 출토된다. 구연단 상단에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1유형에서 확인된 단치구로 찍어서 새긴 각목(그림 3-7)도 확인되지만, 새로운 문양이 관찰된다. 삼각형(그림 3-6), ∩(그림 3-5), 완전 관통된 공열문(그림 3-3), 반관통된 공열문(그림 3-4) 등인데, 시니가이 문화 동부지역의 2유형에서만 보인다.


(그림 3. 시니가이 문화 동부 2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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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가이 문화에서는 청동 유물이 출토된다.
한반도 청동기시대에 존재한 비파형동검은 없다. 
 

청동 유물은 시니가이 A, 하린, 아누치노-14유적에서 모두 출토되었다. 대부분 소형으로 곡옥형 청동기(그림 1-15~20), 청동단추(그림-1-5·6·11·12·21), 연주식 청동기(그림 1-1~3·7) 등이다. 하린과 아누치노-14유적에서는 청동단추가 출토되었으며 그 외는 시니가이 A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곡옥형청동기는 평면형태는 직각삼각형의 좁은 끝부분을 구부려 놓은 모양이 대부분이며, 다른 한쪽에는 구멍을 뚫어 놓았다. 크기와 구멍이 있다는 점에서 곡옥형 청동기와 유사하나,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것도 존재한다. 곡옥형 청동기의 직선인 면은 능이 있다.
청동 유물을 분석한 콘코바는 자바이칼 유역에 있었던 카라숙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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