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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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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


벨리카야 케마 강 하류의 동해 바닷가에 위치한다. 1908~1909년 사이에 아르세네프에 의해서 유적의 평면도가 작성되었다(그림 88).




그림88.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1908~1909년에 아르세네프가 육안으로 작성함)


유적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에 가깝고, 장축방향은 남북이다. 아르세네프는 이 요새에서부터 북--북 쪽으로 약 3km 정도 가면 산 정상위에 3개의 구덩이가 있다.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고대인 들이 이 곳에서 자신의 집을 위해서 편편한 돌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적었다


아르세네프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사람들이 이야기 하기를, 타케마 강에는 아주 오래전에 남쪽에서 어떤 사람들이 와서 강 하류 부근에 성을 짓고, 갔다고 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20명 정도의 군인이 와서, 그들은 이 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는데, 10인 정도가 남고 나머지는 가버렸다. 그 사람들은 모두 검과 활과 화살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그들한테 오로치 족들이 다가가서 활을 쏘았고, 그 중에서 2명이 살아나서, 반대쪽 강가로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도 타케마 강가로 오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연해주-아무르 고고학탐사대는 이 곳을 조사하였는데, 이 성은 거의 파괴되고 남아 있지 않았다.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은 평지성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이 성의 용도는 방어 감시용으로, 동해의 시토르모바야 항구쪽에서 강의 하류로 들어오는 곳을 통제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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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켐스코예-돌리노예 성곽


케마 강의 왼쪽 해안가에 이 강의 하구에서 1.5km 떨어진 곳으로 벨린카야 케마 마을 안에 위치한다. 처음으로 1907년 아르세네프가 유적의 평면도를 작성하였다(그림 86).


그림 86 1907년 아르세네프가 육안으로 작성한 유적의 평면도


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이 곳을 조사하였다. 성곽은 케마강의 좌안 강가와 강 줄기 사이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북쪽의 양 모서리가 깎인 방형이다(그림 86, 87).


그림 87. 켐스콩예-돌리노예 성곽 평면도(2001년 작성)



성벽의 길이가 130m가량이고 평면적은 1700에 달한다. 유적에는 총 3개의 문시설이 있는데, 북쪽, 서쪽, 동쪽 벽의 중앙에 위치한다. 문의 너비는 5~7m이다. 성벽은 흙과 큰 자갈돌로 쌓아졌다. 성벽의 높이는 대부분 1~1.5m가량이고, 북서쪽은 2m가량이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5m가량이다. 성벽의 상부 너비는 1m이다. 성내부안에는 여러 번 축조가 반복되어서, 성의 구조물들이 파괴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층을 조사했는데,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고, 지표에서 시대를 알 수 없는 토기편 들이 채집되었다.


p.s. 유적은 발해시기에 조성 혹은 제작된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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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마 강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부터 시작하는 큰 강으로, 이 강의 수원지는 시호테 알린 산맥과 접하고 있다(사진 49, 그림 78). 강은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동해의 시토르마야 항구로 흐른다. 길이는 119km이다. 이 강의 왼쪽 지류가 세레브랸카, 브루스니치나야, 돌리나야 강이고, 오른쪽 지류는 스메호프카, 포로지스타야, 자파드나야 케마, 탈니코바야 강이다.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에 위치하며, 이 지역의 산은 산맥에서도 울퉁불퉁하고 높지 않은 곳으로 아주 많은 강이 흐르고 있다. 산의 높이는 1000~1400m, 강의 하류역은 400~600m가량이다. 강의 하류에는 아주 넓고, 편평해서 사람 살기에 적합하다.

1907년에는 아르세네프는 타케미에서 살기에 적합한 곳은 강 하류에서부터 2.5베르스타(2.7km) 떨어진 곳이라고 하였다. 강 유역의 전 지역은 침엽수림이 많은데, 강의 상류는 툰드라 식물들로 덮여 있었다.

케마 강 유역에는 4개의 성이 확인되었는데, 동해의 시토르마야 항구로 흐르는 강의 상류에서부터 우스티 일모, 켐스코예 돌리노예, 켐스코예 스칼리스토예 , 캠스코예 모르스코예 성이 있다.

 

1. 우스티-일모 성곽

벨리카야 케마 마을에서 북쪽으로 17km 떨어진 탈니코마야 강 입구에서부터 서쪽으로 0.5km 떨어진 곳으로 케마강의 오른쪽 강가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성은 아르세네프에 의해 1907년에 성의 평면도가 작성되었고, 1992년에 크바신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2001년에는 도굴꾼이 트렌치를 파고 금속탐지기로 작업한 흔적을 남겨 놓았다.

2002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가 조사하였는데, 이때 정확한 평면도와 수혈을 조사하였다.

 

그림79. 1907년 아르세네프가 육안으로 작성한 우스티 일모 성곽의 위치 및 평면도



성은 높이 10m가량의 테라스에 위치하는데, 이 곳의 동쪽면은 현대도로가 거의 성벽이 있는 곳까지 놓여서 테라스를 잘라먹은 상태이다.

성의 형태와 성벽은 자연적 입지를 아주 잘 따르고 있는데, 남쪽과 동쪽은 테라스의 경사면이 아주 가파르기 때문에 성벽은 하나이고, 북쪽과 서쪽은 자연적인 방어시설이 없이 테라스가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유적이 4개의 부채꼴 모양의 성벽과 해자가 있는데, 북서쪽의 모서리가 평행한다. 기본적으로 성벽은 폐쇄형으로 성의 평면형태가 거의 방형인데, 긴쪽의 길이가 50m이고, 평면적은 2500이다.



그림 80. 우스티 일모 성의 평면도



성에는 문지가 동쪽과 서쪽에 서로 마주보고 2개 위치한다. 문의 너비는 1m, 깊이는 0.25~0.3m가량이다. 동쪽문으로 도로가 하나 지나가며,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두 번째 도로는 테라스에서부터 올라와서 북동쪽 모서리에 있다. 남쪽 성벽에는 3개의 절개면과 0.5×0.7m 크기의 수혈이 하나 있다.

성의 내면은 서쪽으로 갈수록 2m가량 높아진다. 그 곳에서 많은 수혈 등이 확인되었는데, 대략 면적은 15~25이다. 그 곳에서 토층을 조사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알 수 있었다.

 

1. 부식토의 두께 0.1~0.15m

2. 암갈색 사양토 두께 0.3~0.4m, 문화층

3. 명갈색 사양토로 발해토기가 확인됨. 주춧돌

 

가장 안의 내 성벽은 폐쇄형으로, 큰 돌로 축조된 석벽이다. 하지만 이 돌의 크기는 각기 다른 것으로 10×20, 40×30, 50×30cm로 다양하다. 몇몇 장소에는 돌이 아주 많이 쌓여 있는 곳도 있다. 내성벽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는데, 북쪽벽은 0.3~0.5m, 동쪽은 0.9m, 너비는 5~7m 가량이다. 성벽의 정상부는 편평하고 너비는 1~1.5m이다.

외 성벽은 흙과 돌로 제작되었는데, 내 성벽과 내성벽에서 부터 첫 번째로 위치한 성벽 사이에는 깊이 0.5m의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성벽은 테라스를 두고 축조되었는데, 이 성벽의 높이는 0.3~0.6m로 일정하지 않다 세 번째 성벽의 너비는 2~4m, 네 번째 성벽의 너비는 7m이다.

 

*우스티 일모 성곽은 언덕형으로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깝다. 내부에는 테라스, 내부성, 보루 등이 없고, 성벽의 구조물로써 치는 없지만 옹성이 설치된 문이 2개 있다. 소형으로, 취락 방어용으로 제작되었다. 성의 축조시기는 출토된 토기로 보아 발해시기이며, 10세기 말에서 12세기 초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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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코프 클류치 석성유적


세레뱐카 강의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시미리코프 강의 시호테 알린 산맥 한 산에 위치하고 있다(사진 38-41, 그림 63, 6). 성곽은 테르나야 마을에서 서쪽으로 10~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거의 공항 맞은 편에 위치한다


이 성은 지역주민들에게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곳으로 소풍하러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1950~1970년대에 그곳에서 푸른색 관옥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그곳으로 가는 도로가 끊겨서 가기 힘들고, 언덕의 아래에는 다르메노바야 밭의 건초 만드는 곳이 위치한다.

1997년에는 댜코바가 처음으로 이 곳을 발견하였고, 2001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탐사단에 서 발굴조사 하였었다.

성벽은 언덕의 정상부에 설치되었다. 남쪽 부터 시작해서 외벽이 설치되었는데, 개폐된 성벽으로 언덕의 구릉 정상부를 따라서 축조되었다. 성의 외벽은 높이가 7.5m에 달한다. 성벽의 안쪽으로는 도로가 지나가는데, 언덕의 아래까지 이어진다. 성벽의 길이는 200m가량이고, 그 남쪽에는 너비 3m 가량의 문지가 있다. 성벽의 길이는 거의 200m에 달하고, 문지는 3m가량의 절개면이 있다. 도로는 문 앞으로 들어와서, 도로의 다른 쪽 끝은 아래로 떨어진다.

두 번째 성벽은 부정형으로 폐쇄형이다. 성벽의 길이는 280m, 성벽의 너비는 4900이다. 성벽 외벽 높이는 거의 6m에 달하고, 동쪽 성벽의 안쪽으로는 그 성벽을 따라서 첫 번째 성벽(외성벽)에서부터 나온 도로가 내성벽의 북북동쪽 모서리에 위치한 문지를 통해서 구불거리며 돌아간다. 성의 남쪽과 서쪽에서는 두 번째 성벽이 세 번째 성벽과 부채꼴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 번째 성벽의 길이는 140m에 달하고, 개폐형이다. 가장 중앙 언덕의 정상부에 타원형의 성벽이 있다. 네 번째 성벽으로 길이는 135m이다. 성벽의 높이는 세 번째와 같은데, 6m를 넘지 않는다.

네 번째 성벽의 북쪽과 남쪽 끝나는 곳, 첫 번째와 두 번째 성벽의 남쪽에 편평한 돌로 만들어진 둥지 같은 곳이 있다.




그림 63. 스미리코프 클류치 석성 유적의 평면도


 

 

  

성벽은 판암으로만 축조되었고, 흙으로 채운 흔적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성은 축조방법으로 보아서 자볼레치나야 성곽과 거의 유사하다.


*성은 산지성으로 패쇄형이다. 테라스가 만들어져 있고, 성의 평면적은 소형이다(4900). 성벽은 돌로 축조되었고, 용도는 세레브랸카 강의 하류를 방어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곳곳에서 푸른색 관옥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석성은 발해시기에 지어진 것이지만, 그 뒤에도 계속해서 이용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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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브랸카 강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 흐르는 큰 강으로 볼샤야 우수르까 강의 지류로 합해진다. 이 지역의 산은 산맥에서도 높지 않은 산으로 강이 아주 많이 흐른다. 산의 정상부는 뾰족하고, 경사면은 아주 가파르고, 곳곳에 계단상으로 테라스가 형성되어 있다, 산의 아래 기슭에는 암벽이 자주 확인된다. 산의 높이는 1200~1400m로 낮은 것은 300~600m가량이다. 이 강의 왼쪽의 큰 지류는 세레브랸카와 자볼레치나야(툰샤) 강이다. 오른쪽 지류로는 테르네이 마을지역의 신추고프카 강이다. 세레브랸카 강은 스트라쉬느이 언덕 뒤로 동해의 한 항구로 떨어진다. 강의 하류는 매우 넓고 편평해서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다(사진 33).

세레브랸카 강의 수계는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계로써 아르세네프는 1907년 다음과 같이 이 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테르나야 항구에서부터 북쪽으로 아디미 강까지는 만도 없고 항구도 없다. 해안가는 거의 절벽에 가깝다. 많은 곳에서 파도에 의해 절벽이 침식되는 것이 관찰되고, 해안가 동굴 등이 보인다. ’시짜 강 계곡은 침엽수로 뒤덮여 있다. 이 강은 아주 두꺼운 해안 단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점토와 말머리 크기의 숯이 섞인 바위로 구성되어 있다. 시짜 강은 아주 빠르게 흐른다. 강 중류역의 너비는 약 10m정도이고, 물의 양이 작고 강속은 8km/h정도 이다(아르세네프 1969).

 세레브랸카 강 유역은 두 개의 석성 유적이 알려져 있는데, 산성으로써, 강의 상류부터 설명을 시작한다(그림 60, 30페이지 지도, 사진 33).

  

그림 60. 세레브랸카 강 유역



1. 자볼레치나야 석성(알타르)

자볼레치나야 강의 좌안에 위치한 테르나야 마을의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14km 떨어진 곳으로, 세레브랸카 강의 상류에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사진 34, 35~37, 그림 60, 6).

1997년 댜코바가 처음으로 이 유적의 평면도를 작성하였고, 2001년 아무르 연해주 고고학 탐사단에 의해서 조사되었다(사진 34, 35~37, 그림 60, 6).


언덕의 경사면에는 돌 무더기가 확인된다. 언덕의 정상부에는 석벽이 장방형으로 평면크기 165×45m로 쌓여져 있다. 평면크기는 7500이다. 성의 장축 방향은 북서방향이다. 석벽은 납작한 돌로만 쌓아져 있다. 석벽의 외면은 수직 높이가 1.2m이며, 내면은 편평하게 처리되었다. 석벽의 너비는 1.8~2m이다. 성벽에는 절개면이 2개 있는데, 문지로 판단되고 그 너비는 1.2m이다.

언덕의 경사면에는 북쪽방향으로 문이 확인되는데, 그 곳에는 석축 흔적이 남아 있는 2개의 수혈이 있다. 수혈의 평면형태는 원형으로 크기는 1.5×2m, 깊이는 0.3m이다.


그림 61. 자볼레치나야 성곽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은 방어 용도로 축조되었는데, 주변이 늪지대여서 접근하기 힘든 곳에 위치하고 , 바닥에 돌이 깔려 있다. 성곽에서는 자볼레치나야 계곡이 아주 잘 보인다.

테르나야 마을에서 주민들 중에는 이 유적이 마이스 강의 성곽처럼 치유력이 있는 곳으로 믿는 사람도 있었다.

성곽에는 방호 파는 것처럼 보이는 구덩이가 많은데, 이는 금을 찾기 위한 도굴흔적으로 생각된다.

성은 산성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크기는 소형에 해당하고, 성의 축조시설은 단순하고 치가 없다. 성의 안에는 테라스, 내성과 보루가 없고, 문지가 2개 확인된다. 성의 용도는 방어용이다.

성벽을 혼합물 없이 돌로 쌓고, 산의 정상부에 쌓는 기술은 고구려 전통의 것과 유사하다.


*질문: 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석성이 과연 고구려 전통일까?

과연 그러하다면 아주 많은 논쟁이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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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쥬 박물관...

러시아 최초로 동방정책을 시작한 표트르 대제의 겨울궁전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건물자체가 박물관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박물관이 정말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박물관이 없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박물관, 일본 동경박물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등 동아시아는 건물은 현대식이고, 유물만 예전의 것으로 전시된 경우가 많다.

그 나름대로 현대식 건물과 오래된 유물이 주는 독특한 느낌도 있지만.

이런 환경에 익숙한 내가 정말 머리를 한대 꽝 맞은 느낌을 받은 곳이 에르미타쥬이다.











모두 박물관의 모습이다.


작년에 한국에 온 러시아 연구자와 이야기 하다가

한국의 박물관이 너무 좋다는 거다..현대식건물..

난 반대로 이야기 했다.

역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거가 맞는 얘기 일까?


하지만 우리나라도 먼가 한 곳은 이런 느낌을 받는 곳이었으면 한다.

이런 느낌이라는건...건물과 전시된 유물 모두 오래된 느낌.

덕수궁박물관이 일부 그렇지만.. 거긴 한 나라 역사 전체를 보여주는 곳은 아니다.


에르미타쥬는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유물 부터 거장의 그림까지...

정말 탁월한 박물관이다.


이런곳은 바라지 않더라도.

중요한 유적 발굴된 곳에 이것을 살려둔 박물관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발굴되고 난 뒤에 대부분 유적은 사라진다...유물은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지지만.

그런데 중국 박물관은 요즘 새로 지어져도 이런 곳을 살려 두고, 유물은 그곳에 전시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베이징 이야기가 아니라...지방인 낙양 같은 곳에도 그런 곳이 여러 곳이었다.



레고랜드...웃긴다. 아마도 거기다가 고고학유적을 그대로 살려둔 박물관을 지었다면.

한국에서도 독보적인 곳이 되었을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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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방학이다...그리고 여름 휴가 시즌이다.

(어제 나도 성적처리를 했음으로...방학)


사실 방학이 있는 직업은 일반인들에겐 좋아보일 수 있지만.

나는 사실 주 몇 시간 일하는지 모른다.

책상앞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10시간 이상은 될 듯. 머 다 연구에 집념하진 않지만.

지난 겨울부터 봄 동안 몇 편의 논문을 써서 사실 휴일도 없었다.


그래서 인지 지난 주 부터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휴가철이니 나도 그동안 다녔던 박물관 사진이나 한번 올려볼까 한다.ㅋ


난 개인적으로 모스크바 보다는 상트페테르부르그를 더 좋아한다.

옛날 도시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스크바는 현대의 도시인데,,, 돈은 많이 도는 것 처럼 느껴지나.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적 아이템은 드물다.


예외가 있는데, 붉은광장이다.

아마 TV를 통해서 가장 많이 보이는 곳 중에 한 곳이 붉은 광장이다.

크레믈린 궁도 여기 있고, 미라로 만들어진 레닌의 묘도 이곳에 있다.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이 곳에는 인기 없는 러시아국립역사박물관도 있다.

아마 붉은광장의 여러 장소들 중에 제일 한가한 곳이 아닐까 한다.


난 맘이 제일편하다.


러시아국립역사박물관은 유물이 되게 많다. 러시아 전 지역의 유물을 다 모아놓았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 보다도 난 이 박물관의 건물도 너무 맘에 든다.

박물관 스러운 곳이다.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은 이런 맛은 없다.)



러시아역사국립박물관(모스크바 소재)




특히 박물관 천장에 그려진 러시아 황제들의 초상화를 보고 난 순간 멈짓했다.








러시아국립박물관의 내부, 천장과 벽(건물과 내부 인테리어 모두 러시아 답다.)

책의 프로필에 실은 사진. 박물관의 내부,,,사실 나와 배경이 동일시 되는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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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제작방법은 크게 때려서(타제) 만드는 방법과 갈아서(마제) 만드는 방법으로 나눠진다.

 

석기를 가는 데 필요한 것은 숫돌(砥石)이다. 숫돌로는 잘 갈리게 하기 위해서 입자가 고운 사암, 이암계통의 돌을 많이 이용한다.

 

찰절은 그림과 같이 돌로 돌을 갈아서 만드는 방법이다.


주로 석기에 홈을 낼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결상이식과 같은 장신구 제작에도 부분적으로 사용했다.

결상이식 외에도, 돌에서 돌을 잘라낼 때 주로 사용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에는 석제 낚시바늘에 홈을 내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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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나야 강 유역의 지리학적 입지는 이 강 주변의 유적입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비교적 덜 가파른 동쪽 경사면에서 이 강이 발원함에도 불구하고 그 상류가 매우 높은 언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현재까지 상류와 중류 역에서는 방어시설은 하나도 확인되지 않는다. 모두 5개의 유적이 확인되는데 하류에서 확인된다. 그 유적은 에스톤카 성곽, 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 바시코프스코예 성곽, 프리스탄 성곽, 달네고르스코예 방어시설 등이다. 이 중 에스톤카 성곽과 프리스탄 성곽은 평지성으로서, 중국 영향을 받은 발해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은 산지성으로 역시 발해시대에 축조되었고, 달네고르스코예 자연 방어성, 석성인 바시코프스코예 성곽도 발해시기에 축조되었는데 일종의 곶 성이다. 


http://루드나야강유역: 바시코프스코예 발해성곽

http://루드나야 강 유역: 에스톤카 발해성곽

http://루드나야 강 유역: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https://www.google.com/maps/place/Unnamed+Road,+Primorskiy+kray,+러시아+692434/@44.3645455,135.6795226,40634m/data=!3m1!1e3!4m5!3m4!1s0x5fa96b455dc84a43:0x49f7b21216643bd4!8m2!3d44.352075!4d135.8008982


이들 유적의 입지는 제르칼나야 강과 루드나야 강의 발해 교통로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한다. 제르칼나야 강 계곡에서부터 루드나야 강 유역으로 가는 길은 테튜헤 고개 중에 가장 낮은 부분으로 1950년대까지 주민들이 이동하던 경로였다. 지금은 그곳에 도로가 놓여서 ‘보고폴 도로’로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루드나야 강의 우안 지류인 모나스티르카 강은 루드나야 강의 입구 근처에서 합쳐지고, 테튜헤 고개가 모나스티르카 강을 지나간다. 이 강 유역에는 유적이 많아서 고고학자들이 아주 흥미 있게 생각한다. 


루드나야 강 유역에는 4개의 성곽과 1개의 자연방어시설이 존재한다. 2개의 성은 장방향 평지성(에스톤카 성)이고, 다른 한 개는 곶 성으로 한쪽의 성벽이 없는 개방형(프리스탄 성)이다. 곶 성으로 한쪽 성벽이 없는 석성(바시코프스코예 성곽)과 산지성(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 자연방어물(달네고르프코예 성곽)이 그것이다. 모든 방어시설물은 발해국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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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코프스코예 성곽


 스미치카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1.5~2km 떨어진 곳으로 모나스티르카 강의 우안 언덕 위에 위치한다. 성의 남쪽 부분은 절벽이다(그림 37).
 언덕의 정상부를 안쪽으로 하고 북쪽과 서쪽의 석벽이 둥글게 돌아가게 축조되어 있다. 성벽의 안쪽에서부터 높이는 1m에 달하고, 외면은 언덕의 경사면 돌에 의해서 쓸려서 내려갔다. 성벽의 중앙에는 돌로 쌓아진 모나스트르카 강의 입구 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석축이 있다. 석축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크기는 3.5×4m이고, 작은 문이 있다. 성벽의 모서리에는 펴연형태 1.5~1m 크기 타원형의 수혈이 있는데, 가장자리에 큰 돌이 둘러져 있다. 성벽의 둘레에는 타원형 수혈이 2기 존재하고, 길이는 160m이다. 성의 전체 크기는 1260㎡이다.
 1995년 타타르니코프에 의해서 처음으로 성이 발견되었다. 1997년, 2001년, 2003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에 의해서 조사되었다. 성에서 시굴조사 한 결과 다음과 같은 토층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림37. 루드나야강 유역의 바시코프스코예 발해성곽


1. 부식토층의 두께는 0.03m

2. 암갈색 사양토가 혼입된 자갈층

В 지점의 시굴에서는 말갈문화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 바시코프스코예 성곽은 산지성으로 한쪽 성벽이 없는 부채꼴 모양의 성벽으로 크기는 중형에 해당한다. 성벽은 돌로 축조되었고, 성에는 치가 없다. 성곽의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가 확인되지 않으며 단순하다. 성곽의 용도는 방어용으로 생각된다. 석벽은 고구려의 것과는 관계가 없다(보로비요프 1961).
   이 유적은 발해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인접한 스미치카 마을의 발해 마을유적과 12~13세기까지 잔존하였던 모나스티르카-3 말갈 분묘 유적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