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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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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는 유적에서 가장 많이 확인되는 유구는 주거지(집터)이다.

주거지...(住居地), 집터이다.
집이면 집이지 왜 집터? 집은 없고 집을 짓기 위해서 땅을 판 흔적만 남기 때문이다.
국사책에 보면 ‘움집터’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걸 수혈(修穴)주거라고 한다..
수혈은 땅을 판 구덩이라는 뜻이다.

즉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집은 땅을 파서 그 위에 나무 등을 이용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한반도의 토양이 유기물질을 대부분 녹이는 성분이어서 특수한 경우(늪, 패총, 화재)등이 아니면 유기물질이 남아 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이다.
그래서 현대에 발굴을 하고 나면 집터만 남아 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방형(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장방형(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원형(청동기시대)이 있다. 방형과 장방형은 모서리를 줄인 말각인 경우가 많다.

(*주거지의 사진에서 하얀색 선은 발굴후에 사진에서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선을 그은 것이다. 원래 남아 있는 것은 아님)

그림1. 신석기시대 방형 집터. 연천삼거리 유적, 화재난 주거지여서 목재가 남아 있다. 중앙에 돌을 두른 위석식노지

그림2. 신석기시대 장방형집터, 송죽리 7호 주거지, 노지와 기둥구멍이 남아 있다. 그림1에 비해서 주거지 깊이가 얉은데 땅의 특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림 3. 청동기시대  장방형 주거지. 남강 대평유적. 한반도 남부에서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주거지


그림 4. 청동기시대 송국리형 주거지. 원형주거지. 주거지 중앙의 돌이 쌓여 있는 곳은 노지로 보지 않는게 학계의 통설이다. 이 원형주거지의 중앙에는 노지가 아닌 집수시설 혹은 석기작업공과 같은 공간으로 보고 있다.



주거지에는 기본적으로 그 집의 정보를 제공하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노지이다.
노지는 불땐자리, 즉 화덕자리이다.
노지는 종류가 다양한데, 아무런 시설이 없는 무시설식, 돌을 두른 위석식(그림 1~3), 돌로 만든 상자 같이 생긴 석상 위석식(그림 3) 등 다양하다.

그 외 주거지에서 확인되는 것은 기둥구멍이다.
기동구멍이 잘 남아 있는 경우 집의 구조 파악을 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외에 주거지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일종의 배수로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지도 있다(그림5). 이 주거지는 위의 원형집자리인 송국리형 주거지가 한반도 남부에서 확인될 때, 포항, 울산 등지에서는 원형 주거지가 아닌 배수구가 설치된 주거지가 확인된다.

그림 5. 청동기시대 주거지 배수로 시설이 있는 주거지.


수혈 주거지 이외에 고상건물지(그림 6)가 있다. 건물지라고 하는 것은 사는 기능 보다는 어떤 특별한 기능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수혈주거지 보다 훨씬 큰 건축물이었을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고상건물지는 일종의 원두막을 생각하면 된다. 발굴 후 남은 흔적은 집터 구덩이는 남지 않고 기둥구멍만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규모가 작은 경우는 일종의 창고 같은 역할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마을에 있으며 규모가 큰 경우는 일종의 신전이나 회의장소로 추정한다. 예를 들면 사천 이금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그림 6. 청동기시대 주거지. 사천 이금동(좌). 고상식 주거지 복원도(우)


이 외에도 동굴을 집터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