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포스팅에서 역사를 연구하지만 고고학이 다른점을 설명한 바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51)
역사학은 사료 즉 남겨진 역사서를 중심으로 연구하지만, 고고학은 옛 사람이 남긴 유적, 유구, 유물이 연구대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유적과 유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유적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00 유적
예를 들면 부산의 동삼동 유적,, 동래 읍성, 만덕사지 절터, 부여 송국리 유적 등이 있다.
유적은 부동산의 개념이라고 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
좀 더 들어가면, 부여의 송국리 유적은 행정구역 명에 따라서 이름 지어진 것이다. 이 곳의 성격은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이다(그림 1). 마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집이 있었겠죠. 집이 여러 개 모이면 마을(그림1)이 된다. 송국리 유적에는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환호라고 하는 둥근 구덩이가 있었다. 일종의 울타리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그림 2)한다.
(그림 1. 부여 송국리 유적, 집터를 두르고 있는 것이 환호이다. 집터와 환호는 유구이며, 이 송국리 유적은 여러 용도의 유구로 이루어졌다).
(그림2. 환호복원추정도 야요이시대, 한반도 청동기시대 송국리 문화는 기원전 8세기 부터 시작되었다. 일본 북부구주 야요이시대에 송국리형 주거지가 나타나는데, 그 기원은 한반도 남부로 부터 이주했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학계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유구는 무엇을까?
집, 환호, 배수시설 등 유적을 이루고 있는 개개의 장소를 유구라고 한다.
여러 용도의 유구가 모여서 어떤 특정한 유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유적에는 한 성격의 유구만이 여러 개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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